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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

         

       신PD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한시우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물었다.

         

       “예린 양. 혹시 신PD가 이상한 짓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죠? 손찌검을 했다거나….”

         

       한시우는 그러면서 내 몸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나에 대한 진한 걱정이 느껴져 나는 작게 웃으며 답했다.

         

       “아뇨, 그러지는 않았어요.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근데 예린 양.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PD에게 대들다니…,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

         

       한시우는 내게 끼칠 악영향을 걱정했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하지만….

         

       “특히 신PD는 조심해야 합니다. 저 사람…, 연예계에 끼치는 영향력도 상당히 크고 무엇보다 머리가 좋고 권모술수에 능해서 아무리 끗발 있는 연예인이어도 저 사람과 척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죄송해요. 한시우 프로듀서님이 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 알겠지만…,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저는 똑같이 행동할 거에요.”

         

       나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끊고 말했다.

         

       “그도 그럴게…, 저 사람 제 소중한 사람들을 건드렸는걸요. 생각하기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어요.”

         

       “소중한 사람들이라면…, 회사 사람들인가요.”

         

       “네.”

         

       “그렇군요.”

         

       한시우가 납득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돌자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한시우 프로듀서 님은 어쩌다가 이 으슥한 곳까지 온 거예요?”

         

       “아…, 사실은 저도 예린 양에게 볼일이 있어서 예린 양을 찾다가 이곳에 닿은 것이었습니다.”

         

       “저를요? 저를 왜….”

         

       “……이거 부끄럽지만 저도 신PD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시우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전에 회사를 차릴 거라고…, 예린 양에게 1호 아티스트가 되어 달라고 제의했던 거 기억하시죠?”

         

       “……네, 당연히 기억하죠.”

         

       어떻게 잊겠는가.

         

       나아아가 끝난 직후 한시우가 창립하고 빠르게 대기업의 반열에 들게 될 HS 엔터테인먼트.

         

       원래 HS 엔터의 1호 아티스트는 유 설이 되어야 했지만 한시우가 전생과 달리 내게 1호 아티스트가 되어 달라하여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그때 아주 매몰차게 거절하셨었죠. 그 이후로 마음을 접으려 했지만…, 갈수록 성장해 나가는 예린 양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 머릿속에서 아른거렸습니다.”

         

       “한시우 프로듀서님….”

         

       “이대로 예린 양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가져와 예린 양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한시우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속 안에 든 감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제가 그 어떤 조건을 가져와도 예린 양을 설득할 순 없겠군요.”

         

       바로 실망감과 아쉬움.

         

       지금 한시우의 표정은 흡사 눈앞에서 보물을 놓친 사람을 연상케했다.

         

       이에 나는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그에게 푹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죄송해요. 저는 아무리 한시우님의 제안이더라도…, 지금의 회사를 옮길 생각이 없어요.”

         

       “예린 양이 죄송해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척거려서 예린 양을 심란하게 한 제가 죄송하지요.”

         

       한시우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한 번 치고는 말을 이었다.

         

       “방금 신PD가 한 말은 잊어 버리세요. 형제기획…, 지금 예린 양의 회사는 예린 양을 발굴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능력 있는 회사입니다.”

         

       “…그리 말해주시니 감사해요.”

         

       “그리고 신PD가 제안했던 MS기획…. 그쪽은 눈길도 주지 마세요. 그곳이 노예계약으로 소속 연예인을 착취하는 회사라는 걸 알 사람은 다 압니다. 거기다 거기 대표가 더러운 뒷소문도 있어서…, 아무튼 쓰레기 같은 회사입니다.”

         

       “아….”

         

       신PD가 내게 제안한 회사는 MS기획. 나도 들어 본 적 많은 회사였다.

         

       분명히 3대 기획사 다음으로 규모가 큰 2군급 기획사였지.

         

       내가 아는 소속 연예인도 꽤 있어서 좋은 곳인지 알았는데 한시우가 이리 말할 정도면 그렇지도 않았나보다.

         

       “알려 줘서 감사해요, 한시우 프로듀서님.”

         

       “감사하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도록 하죠. 예린 양 이번 주 무대도 최고였고…, 수고하셨습니다.”

         

       한시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작별이라는 듯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의문이 하나 떠올라 그에게 소리쳐 물었다.

         

       “저…, 한시우 프로듀서님!”

         

       “네, 예린 양. 뭐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그게…, 아까 아무리 끗발있는 연예인이어도 신PD와 척지려고 하지 않는다 했는데…, 왜 저는 신PD와 척을 지면서까지 도와주신 거죠?”

         

       “…….”

         

       내 질문에 한시우가 잠시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생각 났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아까 예린 양이 그러셨죠. 신PD가 회사 사람들을 욕해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나갔다고.”

         

       “그랬…, 었죠.”

         

       “저도 예린 양이 신PD한테 협박 당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나갔습니다.”

         

       “…….”

         

       “예린 양이 저한테 그런 의미였나 봅니다. 대답이 됐으면 이제 정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다음 주에 뵙도록 하죠.”

         

       휘휘.

         

       한시우는 그 말을 끝으로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흔들고 떠났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멋지네.’

         

       그리고 고맙다.

         

       저런 사람이 회사 대표라면…,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형제기획과 강형만이 있기에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강 사장님을 만나지 못해서 한시우의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한시우의 회사에 들어간 내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신PD 때문에 더러웠던 기분이…, 한시우 덕분에 조금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

       

         

         

       신PD 그리고 한시우와 대화를 나눈 시간이 꽤 길었나보다.

         

       “아무도 없네.”

         

       나는 휑한 세트장을 둘러보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사장님 기다리시겠다.’

         

       늘 차를 대던 주차장 안쪽에서 강형만이 나를 기다릴 게 분명했다.

         

       이에 나는 빨리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래서 할 말이 뭐…….”

         

       ‘……음?’

         

       코너 너머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누군가 싶어서 빼꼼 고개를 빼 얼굴을 확인해보니….

         

       “네? 할 말이 뭐에요. 얼른 말하세요.”

         

       “…….”

         

       서유진과 유 설이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유진과 유 설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직 풀어야 할 앙금이 남아 있지 않는가.

         

       ‘남의 대화 엿듣는 건 예의가 아닌데…!’

         

       그걸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내가 등장할 타이밍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리고….

         

       “…미안해.”

         

       “……!”

         

       유 설의 사과에 입을 틀어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경연에서 내 득표수를 위해 너를 이용했어.”

         

       “…….”

         

       서유진은 유 설의 대답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에 유 설이 말을 이었다.

         

       “…네가 미웠던 건 아니야. 이게 핑계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대중들에게 돌을 맞을지도 몰랐어.”

         

       “…….”

         

       “…너에게 용서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것도 아니야. 그냥 내 속마음을 말해주고 싶어서….”

         

       “…….”

         

       “…미안해. 정말로.”

         

       푹.

         

       이내 유 설의 고개가 아래로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유진에게 머리를 푹 숙였나보다.

         

       “…후우.”

         

       그런 유 설의 모습을 보고 착잡했는지 서유진이 긴 한숨과 함께 답했다.

         

       “저 그때 엄청 힘들었어요. 진짜 죽을까 생각도 했고 아이돌도 그만두려 했어요. …언니 때문에. 그래도….”

         

       “…….”

         

       “…일어나세요, 용서해드릴게요.”

         

       “…뭐?”

         

       용서한다는 말에 나는 물론이고 유 설도 놀랐는지 바보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서유진은….

         

       “…저도 그때 잘한 게 없었으니까요.”

         

       …쉽게 볼 수 없는 진지한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저는 분명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계속 보였었죠. …이번 같은 일 없이 데뷔를 했다면 분명 활동하면서 더 큰 문제가 터졌을 거예요. 그리고….”

         

       “…….”

         

       “…이번 일 덕분에 진짜 소중한 사람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진짜 소중한 사람?”

         

       “제가 제일 힘들 때…, 모두가 외면할 때 저를 잡아주고 안아 준 사람이요.”

         

       “…….”

         

       저거 내 이야기인가.

         

       …뭔가 부끄럽다.

         

       서유진의 목소리가 뭔가 사랑 고백을 하듯 애틋했기에 부끄러움은 배가 되었다.

         

       “그러니까 용서해 드릴게요. 언니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동시에 나는 서유진의 어른스러운 모습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안하무인에 자기밖에 모르던 서유진이 저렇게 성숙한 모습을 보이니 뭉클할 수 밖에 없었다.

         

       “…고마워.”

         

       이는 유 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가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유 설을 보고 먼저 가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서유진이 조금 툴툴하지만 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건 끝났으면 저 먼저 가 볼게요.”

          

       “…그래.”

         

       “…다음 촬영 때 봐요, 언니.”

         

       타타탓.

         

       서유진은 그 말을 끝으로 왠지 쑥스러움이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떠났다.

         

       “……하아.”

         

       유 설은 서유진이 떠나고도 한참이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슬슬 가야 하는데.’

         

       나 또한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강형만이 걱정할 게 분명한데…, 그렇다고 지금 나가면 대화를 엿들었다는 게 들킬 게 뻔하고….

         

       그렇게 내가 전전긍긍하던 그때였다.

         

       뚜르르-.

         

       “…!”

         

       갑작스레 울린 핸드폰 벨소리에 나는 기다리던 강형만이 전화를 한 줄 알고 식겁했다.

         

       하지만….

         

       “…여보세요?”

         

       ‘……휴.’

         

       다행히 벨소리의 주인은 내가 아닌 유 설이었다.

         

       심각한 전화였는지 유 설은 서유진 때보다 더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긴급수술이요…?”

         

       나는 그녀의 다음 말에 흠칫할 수 밖에 없었다.

         

       “제, 제가 얼른 갈게요. 수, 수술비는….”

         

       “…….”

         

       “수술비는 다음달 말까지 어떻게든 수납할 테니…, 예, 예…! 감사합니다…! 얼른 갈게요!”

         

       타다다닥.

         

       그 말을 끝으로 유 설은 빠른 속도와 함께 세트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수술비?’

         

       나는 유 설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방금 전 그녀가 꺼낸 말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YuSeol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매일 이렇게 코인 후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YuSeol님이 좋아하시는 사이다를 매번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빚갚돌은 고구마가 심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는 작품을 감상하시는데 영향을 끼쳐드릴까봐 아무 말도 못했는데.. 빚갚돌의 전개와 배경 등 여러가지에 대해 독자님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YuSeol님을 비롯한 많은 독자님들!

    지금까지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하고 그때까지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생이 바빠서 자주 연참을 드리지 못하는 점도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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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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