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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레드 드래곤, 이드밀라.

       

       천 년 전 마신과의 전쟁, 그 최전방에서 전력을 다해 싸웠던 드래곤 중 하나.

       

       마법을 다른 드래곤들보다 잘 다루는 편은 아니었지만, 브레스의 위력만큼은 드래곤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해 있어 대도시 하나쯤은 브레스만으로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드래곤이 바로 이드밀라였다. 

       

       최후의 은룡 카르사유가 마신과 싸우는 동안, 이드밀라는 대륙 반대편에서 온 힘을 쏟아 무려 마왕 둘을 쓰러뜨렸다. 

       

       -카르사유, 내가 도우러 갈 테니 기다려.

       

       마왕을 물리치고 힘을 거의 다 썼지만, 이드밀라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마신과 싸우고 있을 카르사유에게 갔다.

       

       -…카르사유?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이상 카르사유는 없었다. 

       

       카르사유가 패배한 게 아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마신이 현신하면서 그의 악기惡氣에 썩어 문드러져 가던 일대가 점점 다시 원래 모습을 찾기 시작했으니까. 

       

       더 이상 마신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고, 동시에 카르사유의 흔적도 사라졌다. 

       

       이드밀라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설마 마신을 아공간에 데려간 거야…?

       

       카르사유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마신을 아공간에 데려가 공멸한 게 분명했다. 

       

       마신이 최소한 자력으로는 절대 부활할 수 없도록, 아공간에 마신을 봉인해 버린 것이다. 

       

       -이, 이 미련한 것…!

       

       대부분의 드래곤이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나면 반강제적으로 동면에 들어가리라는 걸 예상한 카르사유는, 무리를 해서라도 마신을 확실하게 봉인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만약 마신을 제대로 봉인하지 못했다가 드래곤들이 동면에 들어갔을 때 마신이 부활하고 만다면 대륙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테니 말이다. 

       

       -젠장할, 젠장할!

       

       마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드밀라의 마음은 공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드밀라는 카르사유와 해츨링일 시절부터 함께 자라 온 몇 안 되는 고룡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해츨링일 때 카르사유는 정말…. 귀여웠지.’

       

       -쀼우!

       

       제대로 말도 못 할 시절부터 카르사유는 이드밀라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고작 몇 살 언니라는 이유로 나를 엄청 따랐지.’

       

       신나게 놀다가 지칠 때면 카르사유는 이드밀라에게 꼭 붙어서 안고 잠들곤 했다.

       

       -졸려?

       -우응…. 이듀밀랴 품 따뜨태…. 조타….

       

       카르사유는 특유의 말랑한 외모와 순수한 얼굴로 주변을 천방지축 누비고 다녔다. 

       

       -이두밀라! 요기 이상한 거 이써!

       -야! 조심해!

       -쀼욱!

       -하아…. 그러게 조심하랬지?

       -뿌, 뿌에에에엥!

       

       훗날 위대한 고룡이 되어 드래곤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고, 두고 두고 칭송받는 최후의 은룡이 되었지만.

       

       아마 그 위대한 고룡의 어릴 적 모습이 저랬다는 건 이드밀라를 포함한 몇몇 고룡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카르사유 녀석…. 어릴 때 엄청 울보였는데.’

       

       다른 용들이 말랑한 카르사유를 놀려서 카르사유가 펑펑 울 때면 이드밀라는 어김없이 나타나 입에서 불을 뿜으며 난동을 부려 주었다.

       

       -이 빌어처먹을 용새끼들이! 카르사유한테 무슨 짓이야! 콱!

       -으아악! 이드밀라다!

       -괴팍한 이드밀라가 나타났다!

       -도망쳐!

       -뿌에에에엥…. 이듀밀라…. 훌쩍.

       

       몇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드밀라의 기억 속에는 그때 눈물콧물을 짜며 펑펑 울던 카르사유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뿌에에에엥!”

       

       바로 지금, 이드밀라는 그때의 카르사유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카르사유?”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카르사유는 마신과 싸워 공멸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로부터 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카르사유가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나타난다 해도 해츨링 때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드밀라는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의 카르사유를 보는 것 같구나.’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후손이라도 남기고 떠났다면 모를까, 카르사유는 끝까지 한 마디 인사도, 예고도 없이 떠나 버렸다.

       

       동면하는 동안, 이드밀라는 카르사유와 함께 했던 순간을 곱씹었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란 걸 알면서도.

       

       그런데 그 긴 잠에서 깨어난 지금, 이드밀라의 눈앞에는 기적처럼 카르사유의 후손이 서 있었다.

       그것도 어릴 적의 카르사유와 똑 닮은.

       

       정말 기적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카르사유 녀석…. 알을 숨겨 두었었구나.’

       

       은룡의 유지를 잇기 위해, 혹여나 마신의 씨앗들이 그 유지를 끊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알을 숨겨 둔 것이었다.

       

       ‘예쁘게 자라고 있구나.’

       

       이드밀라는 눈앞에 있는 해츨링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잘 먹고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비늘의 때깔이 아주 야무지게 빛나고 있었다.

       

       ‘다행이야.’

       

       이렇게 카르사유의 후손을 만난 것도 어찌 보면 운명이리라. 

       

       오래전부터 생각해 뒀던 대로, 누구보다 잘해 줄….

       

       “뿌에에에엥!!”

       “얘야.”

       “후에에에에에엥!!!”

       “…….”

       

       이런.

       

       이드밀라는 자신의 말에 마나가 담겨 있음을 깨닫고, 황급히 마나를 거두었다. 

       동면하는 동안 회복한 힘이 자기도 모르게 넘쳐 흘러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던 것도 인지한 즉시 가다듬어 가라앉혔다. 

       

       이드밀라는 은빛 해츨링 옆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인간, 그리고 엘프인가.’

       

       그중에서도 인간과 영혼의 계약을 맺은 모양.

       

       ‘하필 인간이랑 계약한 건 맘에 안 들지만…. 이것도 카르사유의 뜻이겠지.’

       

       울음을 그치게 하려면 아무래도 녀석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을 취하는 것이 좋을 터.

       

       슈우우우.

       

       곧 빛무리가 이드밀라의 몸을 감싸더니, 점점 작아져 인간 정도의 크기로 변했다. 

       

       폴리모프를 한 이드밀라는 적발에 금안, 그을린 피부톤을 가진 장신의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얘야, 뚝. 해치지 않을 테니 울음을 그쳐 보거라.”

       “뿌에엥…?”

       

       해츨링은 폴리모프한 이드밀라의 모습을 보고 놀란 듯, 울음을 그쳤다. 

       

       이드밀라는 해츨링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이드밀라. 너를 낳은 최후의 은룡, 카르사유의 오랜 벗이다.”

       

       그리고 물었다. 

       

       “너의 이름은?”

       

       ***

       

       꿀꺽.

       

       나는 간신히 침을 꿀꺽 삼켰다. 

       침이 메마른 목을 타고 내려갔다. 

       

       ‘위기는… 넘긴 건가?’

       

       아르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만 해도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레드 드래곤의 난폭한 성격 상 레어 안에서 시끄럽게 우는 존재를 내버려 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입에서 ‘카르사유’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비로소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 이름을 부를 때 드래곤은 깊은 감정이 담긴 눈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카르사유의 벗이라고 소개하며 진명을 알려 줬어.’

       

       드래곤은 동료이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진명을 먼저 밝히지 않았다. 

       「레키온 사가」를 오래 한 나조차도 레드 드래곤의 진명이 이드밀라였다는 건 지금 처음 알았을 정도였다. 

       

       진명에 담긴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잘은 모르지만 그래서 나도 아르를 항상 애칭으로만 불렀고 진명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적은 없었다. 

       

       ‘어쨌든, 그렇다는 건 적어도 우리를 해칠 생각은 없다는 거겠지…?’

       

       성격이 성격이라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지만….

       

       “쀼우…?”

       

       아르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이름을 말해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르는 입을 열었다. 

       

       “내 이룸…. 아르젠때. 아르젠때예여….”

       “아르젠테? 좋은 이름이구나.”

       

       휴.

       한마디 할 때마다 내 살이 떨리네.

       

       이드밀라는 아르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아르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그리고 감탄했다. 

       

       “정말 카르사유가 어릴 때 모습이랑 판박이구나.”

       

       …판박이라고?

       그 위대한 은룡이자 마신을 물리친 카르사유와?

       

       나는 실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실비아도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아르와 이드밀라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드밀라는 어느새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아…. 그리운 그때를 다시 한번 보는 것 같구나.”

       “쀼우…!”

       

       이드밀라는 아르의 말랑한 뺨을 쥐더니, 손가락으로 눈물 자국을 마저 닦아 주었다. 

       

       “뀨우…. 따뜨태….”

       

       아르가 중얼거리자 이드밀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따뜻하지? 하하. 조금 더 이리 와 볼래?”

       

       이드밀라는 이제 못 참겠다는 듯, 다가온 아르를 품에 꼭 안았다. 

       

       “쀼욱…!”

       “앗, 숨 막혔니? 미안.”

       

       품에 파묻힌 아르의 얼굴에 숨통을 트이게 해 준 이드밀라는 아르를 안은 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뀨우…. 싸우나 온 거 가타…. 씨워어어내….”

       “풋.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동족이라서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르는 놀랍게도 별 거부감 없이 이드밀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간만의 행복을 즐긴 듯한 이드밀라는 곧 정신을 차리고 아르를 놓아 주었다. 

       아르도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나에게 달려와 내 옷자락을 꼬옥 잡았다. 

       

       “크흠. 보아하니 인간 쪽은 이 아이의 계약자인 것 같고…. 엘프는 숲에나 처박혀 있는 종족인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이드밀라는 팔짱을 끼며 우리에게 물었다.

        

       “설명해 다오. 너희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포함해서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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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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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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