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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각.

         

       밤늦게는 초빙한 궁정 마법사들이 마법의 무대를 열기에 일찍 수확제 파티를 열었다.

         

       “수확제 같은 좋은 날, 다들 공작저에 온 걸 환영해.”

         

       상석에 앉은 프란체의 건배사.

         

       “오늘은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성대하게 준비했어. 마음 편히 즐기렴!”

         

       퐁! 샴페인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파티가 시작됐다.

         

       “와, 전보다 요리가 많아요…!”

       “언니, 이 요리 뭐야…?”

       “저번 파티보다 더 성대하다니…….”

         

       순수하게 감탄하는 라데아와 라이아.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은 듯한 카자르. 케일은 샴페인의 맛에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다들 잘 즐기고 있네.’

         

       헬레나도 전과는 달리 부담을 없애고 음식을 맛보고 있다. 볼을 빵빵하게 키우고 행복한 얼굴을 짓는 걸 보니 내가 다 뿌듯하다.

         

       “분위기가 좋네.”

       “수확제니까요.”

         

       싱긋 웃으며 잔을 흔드는 프란체.

         

       “이제 나는 데카르트 공작이 됐네.”

         

       의회에서 프란체가 데카르트를 이어받는 거에 만장일치로 동의해 정식적으로 공작이 되었다. 역시 돈과 권력이 최고라니까.

         

       “네 말대로 공작은 의회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져 퇴위했어. 그리고 내게 저주를 받은 채 변방의 별장으로 쫓겨났지.”

         

       프란체는 “라인도 마찬가지야.”하곤 피식 웃었다.

         

       “소 공작… 아니, 에덴 데카르트도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공녀… 공작님께서 하신 겁니까?”

         

       에덴은 자신이 사용하던 검과 함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아니,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몰라. 카자르가 준 마법서에 있던 지독한 저주를 걸어뒀으니 편히 살아가진 못할 거야.”

         

       가벼운 미소를 짓는 프란체. 그 저주는 대체 무슨 저주일까. 괜히 물어보기가 두렵다.

         

       “이전까진 마음이 심란했는데, 이거로 됐어. 보란 듯이 내가 데카르트의 주인이 되었으니까.”

         

       그래, 내가 다 자랑스럽다.

         

       “탑도 완성됐으니 좀 있다가 공작령으로 나가면 보러 가자?”

       “그럽시다. 오랜 기간동안 준비했던 거니 완공된 건 봐야죠.”

         

       내가 계획했던 마탑이 완공됐다. 외부뿐만이 아니라 내부까지.

         

       카자르가 만든 마법서를 보고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마법사들도 마탑에 들어오겠다고 했으니 과제는 끝났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금방이었네.”

       “공작님께서 잘 따라와주신 덕분입니다.”

         

       이건 정말이다.

         

       최소 3년, 최대 5년은 걸릴 줄 알았던 계획이 단 1년 만에 성공했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거나, 마법에 대한 엄청난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이었다.

         

       “이제 다음 해가 되면 나는 황실에 정식적으로 바렌베르크 해방을 요구할 거야. 그럼 너도 더는 전쟁 포로, 노예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될 거야.”

         

       프란체는 “당연히 노예 각인도 풀어줄 거고.”하곤 싱긋 웃었다.

         

       “그러면 바렌베르크의 왕족, 귀빈이니 데카르트 공작가의 데릴사위로 들어올 수 있겠지.”

         

       전부터 얘기한 바렌베르크의 해방. 나와 혼인을 하기 위해서 프란체가 직접 세운 계획이다.

         

       “황실도 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야.”

         

       현재 데카르트 공작가의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 원래 황실, 데카르트, 페르시아가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옛말이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프란체와 혼인할 수 없다.

         

       “아무튼,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하고. 지금은 다같이 파티를 즐기자?”

         

       나와 프란체는 술잔을 부딪쳤다. 그러고는 원샷. 화끈한 기운이 목안에 감돈다.

         

       그러던 그때.

         

       “공녀… 공작님! 저 진짜 데카르트 기사단의 부단장 되는 거 맞아요?”

         

       라데아가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 얼굴이 빨개진 걸 보아 취기가 오른 모양.

         

       “맞아. 케일은 단장이 될 거고, 너는 부단장이 될 거란다. 물론, 너희 둘에게 기사 작위가 내려질 거야.”

         

       케일이 흠칫 놀라 이쪽을 바라봤다.

         

       “내게 기사 작위가 내려진다고?”

       “그래. 단장이 되어야 하니까.”

       “기사 나부랭이가 되는 건 싫은데.”

         

       표정을 찡그리며 잔뜩 거부감을 표출하는 케일. 프란체는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데카르트의 기사단장이라는 새로운 이명이 추가되는데?”

         

       프란체의 말에 솔깃한 케일.

         

       “흠, 그건 나쁘지 않군.”

         

       이명이 생긴다는 건 명예가 올라간다는 뜻.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데카르트의 기사단장이라면 차고 넘친다.

         

       ‘케일은 그 어떤 것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니.’

         

       게임 할 때는 돈만 주면 다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첫 만남 때도 쓸데없는 충돌이 있었지.

         

       “너희들은 데카르트에 들어올 거야. 공작저에 숙소도 따로 마련해줄 예정이고.”

         

       케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숙소도 따로 마련해준다고? 드디어 그 드높은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건가!”

         

       뭐지. 데카르트의 기사단장 보다 이걸 더 기뻐하는 거 같은데.

         

       “라이아랑 같이 살아도 될까요?”

         

       프란체는 “당연하지.”하곤 말을 이었다.

         

       “좋은 방으로 배정해줄게. 아, 참. 그리고 카자르도 슬슬 집 계약이 끝나가니 공작저로 들어오렴.”

         

       고기를 썰던 카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공작저로 들어가요?”

       “그래. 실질적으로 마탑을 관리하는 건 너니까.”

         

       공식적으로 마탑주는 프란체지만, 사실상 실세는 카자르다. 데카르트의 일원과 다를 바 없지.

         

       “흠, 그러면 저도 드디어 귀족 레이디처럼 살 수 있겠군요.”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위엄을 뽐내는 카자르. 하지만 어째서 귀족다워 보이지 않는 걸까.

         

       “원래는 세이렐 백작령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여기 생활이 좋아서 딱히 생각이 안 드네요.”

       “그러니? 다행이구나.”

         

       마음을 굳힌 듯하다. 세이렐 백작, 카자르를 프란체에게 뺏겨 버렸구나.

         

       ‘좋아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미안하다. 너의 사랑을 빼앗아서…….

         

       “그럼 다들 공작령에서 살아가는 거에는 불만 없는 거지?”

         

       모두가 일제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는 이제 막 데카르트 공작이 되어 너희들의 보좌가 필요하니까.”

         

       프란체가 잔을 높게 들었다.

         

       “정식적으로 데카르트의 일원이 된 걸 환영해!”

         

       그에 맞춰 라데아와 라이아는 잔을 높게 들며 꺄르르 웃었다. 케일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충 잔을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공작님.”

         

       카자르가 따스하게 웃었고.

         

       “저는 데카르트에 와서 행복해요!”

       “이렇게 단기간에 출세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환한 미소를 짓는 라이아와 아련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라데아.

         

       “한 곳에 자리를 잡는 건 선호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케일까지.

         

       ‘대체자들을 잘 데려왔어.’

         

       이후에도 시끌벅적한 파티는 이어졌다.

         

       라데아는 옆에 있는 라이아를 챙겨주었고, 케일과 카자르는 머리 색이 같아서 그런지 묘하게 사이가 좋았다.

       

       “…….”

         

       나만 소외된 기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걸 보는 시청자의 느낌.

         

       나만이 멀어져 간다.

         

       모두의 삶은 이대로 쭉 함께하지만, 나만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아니야.’

         

       고개를 휘젓곤 샴페인으로 타들어가는 목을 축였다. 이런 좋은 시간에 울적해지면 안 되지.

         

       이별이 찾아올 거란 건 알고 있었잖아.

         

       그래서 내 대체자들을 구했고, 떠날 준비까지 마쳤잖아.

         

       ‘그러니 나는 웃으면 돼.’

         

       내 마지막 소임을 다 했고, 약속도 지켰다. 프란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주변 인물들을 구성했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씁쓸한 입맛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왜 그래?”

         

       프란체가 물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잔뜩 묻어있었다.

         

       “표정이 안 좋은데, 또 그때처럼 아픈 거야?”

       “아닙니다.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 좀 많았어요.”

       “…그러니? 그럼 다행이고…….”

         

       걱정을 완전히 떨쳐내진 않았지만, 미소를 보여주는 프란체.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슬슬 나가자. 사용인들도 각자 파티를 하고 있으니까.”

         

       프란체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도중에 카자르가 우릴 바라보며 뭔 일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내가 손을 흔들자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마법사라면 눈썰미가 좋은 걸까?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거 같다.

         

       아무튼.

         

       우리는 공작저를 나왔다.

         

       “축제라서 그런지 밤거리가 예쁘구나.”

       “그러게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는 공작령의 거리.

         

       사람들은 겨울의 추위도 잊어버린 채 바깥에 모여 술을 마시거나, 놀이를 즐기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 탑으로 가자. 거기서 보면 마법의 무대가 더 잘 보일 거야.”

         

       나는 웃으며 “그래요.”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 * *

         

         

       구름에 닿을 정도로 높아 고개를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

         

       공작령의 버려진 숲 일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넓이.

         

       겉으로 보이는 마력의 흐름을 보니 카자르가 결계 처리까지 끝낸 모양.

         

       그런데…….

         

       <제작자 – (Armond d’Oghegeois)>

         

       “…….”

         

       공작령의 명소가 될 수도 있는 이 거대하고 웅장한 탑에 새겨진 제작자 이름이…….

         

       아르몸 도게자.

         

       ‘갑자기 탑이 볼품없어졌어.’

         

       뭔가 느낌이 팍 죽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이럴 줄 알고 있었잖아…?

         

       “올라가자?”

       “예.”

         

       나와 프란체는 마탑 안으로 들어섰다. 마법이 걸려있는 것인지 마력을 사용해야 들어올 수 있었다.

         

       “마력만 있으면 다 들어올 수 있는 건가요?”

       “아니, 마력이 등록된 사람만 열 수 있어.”

         

       프란체는 “카자르가 만든 마법이야.”하곤 싱긋 웃었다. 용케도 그런 걸 만들었군.

         

       그리고 더 놀라운 건 평범한 승강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건 뭡니까?”

       “마력으로 움직이는 승강기.”

         

       프란체는 “타렴?”하고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얼떨떨하게 승강기에 올라탔다.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마석 개발이 어느 정도 많이 된 모양이다.

         

       ‘마석 혁명은 위대하네.’

         

       승강기야 원래 도르래 식으로 존재했지만, 이렇게 단번에 발전될 줄이야.

         

       ‘게임에선 못 봤는데.’

         

       내가 카자르에게 준 영향 때문일까? 발전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뭐, 아무튼.

         

       그렇게 프란체의 연구실로 배정된 최상층에 도착했다.

         

       “여기야.”

         

       유리창 너머로 공작령의 모든 곳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풍경.

         

       축제로 인해 모든 거리의 불빛이 반짝여서 그런지 유난히 더 아름답다.

         

       “예쁘네.”

       “그러게요.”

         

       프란체는 내 손에 깍지를 끼곤 들어올려 뺨에 비볐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나는 입술을 머금었다.

         

       “바렌베르크 해방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거야. 기다려.”

         

       그리 말하곤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

         

       더 슬퍼지기 전에, 마음이 변하기 전에 나는 대화를 돌렸다.

         

       “공작님을 위해 만든 선물이 있습니다.”

         

       프란체는 “선물?”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뒷주머니에 있던 에메랄드 목걸이를 꺼냈다.

         

       “직접 만든 겁니다. 모양이 좀 투박하지만요…….”

         

       완전 못 만든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공작이 차고 다닐만한 목걸이는 아니기에 좀 부끄러웠다만…….

         

       “진…!”

         

       프란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정말 기뻐… 고마워….”

       “그리 좋아해주시니 좋네요.”

         

       나는 싱긋 웃으며 목걸이를 눈빛이 아련한 프란체의 목에 걸어주었다. 달빛을 받아 반사되는 것이 마치 그녀의 눈빛과 공명하는 것 같았다.

         

       “잘 어울리시네요.”

       “그러니?”

         

       생글생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프란체. 나는 픽 웃곤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펑─! 펑─!

         

       폭음이 들리며 마법의 무대가 시작됐다.

         

       “시작했다…!”

         

       눈빛을 반짝이며 마법의 무대를 감상하는 프란체. 나 또한 창밖을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피어나는 가지각색의 마력이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메웠다.

         

       붉은 마력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열정을 상징하고, 파란 마력과 녹색의 마력이 춤을 추며 유려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황홀한 별들이 내리는 듯한 찬란함의 순간 속에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봤다.

         

       “진.”

         

       프란체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좋아해.”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밤하늘에서.

         

       프란체와 나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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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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