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21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딱히 유하늘이 ‘사라’를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하늘은 ‘사라’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사라의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라’는 사라와 늘 함께 있는 존재였고, 같이 지내면서 딱히 나빴던 기억은 없었다. ‘사라’가 유하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천성 때문이건, 아니면 그저 사라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건, 유하늘과 함께 할 때는 별로 날카롭게 굴지는 않았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과거형인 이유는, 단순히 유하늘을 대하는 ‘사라’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탓만은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의 그 행동으로, 유하늘은 ‘사라’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으니까.

        

       아마도 ‘사라’는, 사라를—

        

       “……나랑 친하게 지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유하늘의 생각을, ‘사라’가 끊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라는 아직 창밖을 보고 있었다. 놀이기구도 엄청나게 무서워하고, 유령의 집도 엄청나게 무서워했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오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함께 그 두 가지를 즐긴 사람은 ‘사라’가 아닌 사라였으니까.

        

       “사라가 그렇게 부탁하긴 했어.”

        

       왠지 그 말에 지고 싶지 않아서, 유하늘은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알고는 있다. 자신의 이런 태도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처럼 사라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낭만적인 장소와 시간인가.

        

       사실, ‘사라’는 조금 전에 유하늘의 생각을 거의 꿰뚫어 보았다.

        

       어느 정도는 실험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걸 핑계 대서 사라와…… 그, 이런저런 일을 해보고 싶었으니까.

        

       요즘 들어 사라는 ‘친구 간의 거리’에 대해서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본인이 선을 딱 긋지는 않았지만, 친구 간의 스킨십이 최근 들어서 매우 자연스러웠으니까. 말로 하지는 않아도, 사라가 먼저 적당히 행동하니 그 이상으로 넘어가려면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니면 ‘명분’이라거나.

        

       아무 명분도 없이 그 이상 선을 넘었다가, 사라에게 반감을 사는 것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얼마 전 교실에서 있었던 그 일이다.

        

       사실 그 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몹시 치사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라’는 유하늘은 성적으로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오로지 사라를 불러와 주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던 거니까.

        

       그런 행동을 ‘성적인 이유로’ 이용하는 것은 별로 떳떳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라는 형태에는 수많은 다른 형태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유하늘은 아직도 ‘사라’ 앞에서는 솔직할 수가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유하늘은 ‘사라’는 사라와 다른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유하늘이 만약, 그, 사랑을 나누고 싶다면— 당연히 그 대상은 ‘사라’가 아니라 사라여야만 했다.

        

       유하늘이 좋아하는 사람은 사라였으니까.

        

       그런데, 이번 일로 그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고작 키스도 아니고 얼굴을 가져다 댄 것으로 인격이 바뀔 정도라면,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참 안됐네.”

        

       그런 고민에 빠져있는데 마침, ‘사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시 시선을 그녀 쪽으로 옮겨봤지만, ‘사라’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혼잣말하듯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키스하려고 할 때마다 인격이 나로 돌아와 버리면, 결국 첫 키스를 해도 ‘나’랑 해버리는 거잖아. 걔랑 너는 키스 같은 건 못하겠네.”

        

       “…….”

        

       명백한 도발이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말은 같은 몸을 사용하는 사라와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사라’가 사라를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둘이 신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는 없다. 정신적이라면 또 모를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랬다.

        

       “혹시 결혼이라도 하면 내가 같이 딸려가는 거기도 하고. 걔랑 결혼하면 나랑도 같이 결혼하는 거네.”

        

       하지만, 지금 유하늘의 머리는 별로 냉정하지 못했다.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유하늘이 다소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

        

       ‘사라’는 한동안 대답이 없다가, 이내 유하늘에게로 고개를 돌려서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욕심이 생겨서.”

        

       “…….”

        

       그 말에, 유하늘의 머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래, 소희나 수아가 사라에게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알았다. 지금 당장은 함께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그 둘도, 결국에는 유하늘과 같은 ‘친구’라는 선 위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 사라는 자신과 함께 다니는 세 사람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라’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처음부터 사라와 함께해온 사이. 비록 서로 말을 주고받거나 서로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않았었지만, 사라는 ‘사라’를 진심으로 위하고 있었다. 동등한 관계에서 대화하는 유하늘과 소희, 수아와는 그 감정의 종류가 사뭇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 감정을 두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없었다.

        

       게다가 사라와 ‘사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24시간을 붙어 다니는 존재였다.

        

       “……한 가지 물어볼게.”

        

       “뭔데?”

        

       굳은 유하늘의 표정을 보고 묘하게 우월감에 젖은 표정을 하고 있던 ‘사라’가 되물었다.

        

       “너는 그 말이, 사라에게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들렸다면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을까?”

        

       ‘사라’는 뽐내듯이 말했다.

        

       “이렇게 표면으로 나와 있을 때는 대표자가 몸을 움직이지만, 의식 안에서는 내가 훨씬 우위에 있거든. 사라는 내 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대화 내용을 숨기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어.”

        

       잘난 척 하듯 말하는 그 말을 듣고, 유하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렇구나.”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

        

       그 뽐내는 것 같은 말투를 이어 나가려던 ‘사라’는, 갑자기 유하늘이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유하늘을 본 뒤에는 조금 겁먹었다.

        

       “어, 자, 잠깐—”

        

       그리고 뒤늦게 일어나 도망가려고 해봤지만—

        

       안타깝게도, 그 둘이 앉아있는 장소는 좁은 관람차 안이었다.

        

       “잠깐, 이게, 무슨 짓이야!”

        

       발버둥 치기는 했지만, ‘사라’의 힘은 유하늘보다 훨씬 약했다.

        

       둘의 몸싸움은 금방 끝났다.

        

       자리에 제대로 앉은 채는 아니지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사라’와, 그 위에 올라탄 유하늘이라는 형태로.

        

       사라의 양손은 위쪽으로 올라가 포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양손 위를, 유하늘의 손이 꽉 눌러 붙잡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오래 갈 자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하늘에게는 큰 상관 없었다. 어차피 ‘잠깐’이면 될 일이었으니까.

        

       “너, 너너너너너! 무슨 짓이야! 키스는 내가 아니라 걔랑 하고 싶다며!”

        

       “그래, 그랬지.”

        

       유하늘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내가 사라에게 키스하려고 할 때 네가 돌아왔으니까, 반대로 내가 너에게 키스할 때면 사라가 돌아오지 않을까?”

        

       “그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사라’는 악을 쓰며 발버둥을 쳤지만, 근육 하나 없는 부드러운 복부는 유하늘을 들어 올릴만한 힘이 없었다.

        

       유하늘의 표정이 불쑥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너’랑 키스하는 건 사라랑 키스하는 거랑 같다는 말이잖아?”

        

       물론 유하늘의 머리가 냉정했다면 그런 생각을 했어도 이렇게 우악스러운 태도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라’가 몸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라에게 자리를 내어줄 거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유하늘의 머리는 별로 냉정하지 못했다.

        

       즉, 객관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유하늘의 눈이, ‘사라’는 무척 무서웠다.

        

       “흐힛……! 잠깐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가까워지고 있는 유하늘의 얼굴을 보고, ‘사라’는 기겁했다.

        

       “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싸가지 없게 말한 거 알고 있으니까! 응?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이성적으로!”

        

       ‘사라’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그랬다. 지금 상황은 유하늘에게 있어서 첫 키스 직전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라’에게 있어서도 첫 키스 직전인 상황이기도 했다.

        

       갇혀 지내며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녀라도, ‘키스’가 어떤 것인지는 알았다.

        

       ……그러니까, 적어도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라는 건 알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절체절명의 순간인 건지 알고 있었다.

        

       관람차는 아직 완전히 내려가려면 한참 남은 상황이었다.

        

       유하늘의 얼굴이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오고, 시야가 그 깊은 눈동자와 거의 마주치고 나서—

        

       입술과 입술이 마주 닿기 직전에, ‘사라’는 자신의 정신이 몸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

        

       “…….”

        

       정신을 차려보니 관람차 좌석에 축 늘어져 있었다.

        

       “으, 으에……?”

        

       그런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간신히 눈을 뜨니,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하늘이의 얼굴이 보였다.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꼭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그대로 다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관람차 안인 것을 보면, 하늘이가 나를 끌어안았을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기절이라도 했던 걸까?

        

       “미안.”

        

       하늘이가 나를 향해 갑자기 사과했다.

        

       “어?”

        

       내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렇게 물어보자, 하늘이는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야.”

        

       “어…… 아.”

        

       그리고 그제야 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라’를 만난 거야?”

        

       “응.”

        

       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응.

        

       ‘사라’가 탐탁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마 얼굴을 봤다면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겠지.

        

       그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나에게 달라붙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적어도 최나경과 붙어 앉을 필요가 없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졌으니까.

        

       이제 사라가 뭔가하고 싶을 때면 표면으로 나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괜찮아. 좋은 일이잖아.”

        

       “그, 그렇지?”

        

       내가 웃으며 대답해주자, 하늘이는 그제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 그런데.

        

       자극적인 기억은 계속 겪으면 조금씩 그 ‘자극적’인 부분이 희석되지 않을까?

        

       혹시 이것보다 더 자극적인 기억이 필요하게 된다면……

        

       “…….”

        

       뭐, 지금 당장 고민할 일은 아닌가.

        

       천천히 대책을 세워보도록 하자.

        

       갑자기 인격이 바뀌어 기분이 상했는지, 내 마음속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언짢은 기운을 내뿜는 사라를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