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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뿌옇게 물든 하늘을 본 순간 화음 군수 양한문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단 걸 깨달았다.

       

       몇 번이고 보았던 풍경이었다. 얼마나 익숙하냐면 이제부터 다음에 펼쳐질 장면이 뭔 지를 예고할 수 있을 정도로.

       

       곧 한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끄흡! 흐윽!…”

       

       얼마 안 가 뼈가 뚜둑 하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그치고, 숨소리 또한 함께 그친다.

       

       그 후에 양한문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거기엔 수많은 이들의 시체가 늘어서 있다.

       

       전형적인 문관이었던 그를 대신해 관군을 이끌었던 자.

       

       평소 유약해 피를 보는 것도 버거워 했으나 화음이 위기에 빠지자 무기를 쥔 자.

       

       고향을 지키는 일이 자랑스럽다 말을 하던 자.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되었음에도 양한문의 꿈에 나오는 이들의 얼굴은 선명했다. 당장에라도 원망에 찬 말을 내뱉을 것처럼.

       

       공포심에 이빨을 부딪히면서도 꿈속의 양한문은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그 곳에는 피투성이인 무복을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무심한 눈. 제멋대로 뻗은 빗자루 같은 머리카락. 개방의 일원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꾀죄죄한 행색임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는 미모.

       

       천마. 백화령.

       

       재앙이라는 단어가 현신한다면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라는 소리를 듣던 악마.

       

       저 얼굴 또한 몇 년 째 보는 것이지만 양한문은 여전히 백화령과 눈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두렵나?”

       

       천마의 물음에 양한문은 딱따구리마냥 필사적으로 고갤 끄덕였다.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신으로 화음에 존재하는 모든 관군을 때려 부순 그녀가.

       

       흔들림 하나 없이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가는 그녀가.

       

       웃지도 울지도 않고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복수만을 이야기 하는 그녀가.

       

       어찌 두렵지 않을까.

       

       천마는 겁에 질린 양한문을 보고 입술을 일자로 만들더니 손을 치켜 들었다.

       

       죽음을 직감한 꿈속의 양한문이 눈을 감지만 양한문은 그가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터벅.

       

       발소리에 조심스레 양한문이 눈을 뜨자 등을 돌려 시체 사이를 걸어 나가는 천마의 모습이 보였다.

       

       “기억하라.”

       

       천마가 내기를 실어 내는 목소리가 화음군 전체에 울려 퍼진다.

       

       “오늘 이 곳에 있었던 일은 화산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그대들이 대신 치른 것이니.

       그대들은 내 어미를 욕보인 화산을 원망해야 할 것이야.”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뜩 눈을 뜬 양한문은 침범벅이 된 종이를 보곤 길게 숨을 내뱉었다.

       

       언제쯤이면 이 꿈에서 벗어날는지.

       

       쾅쾅쾅!

       

       “들어와라.”

       

       양한문이 잘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이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그 자는 화음이 천마의 손에 멸할 뻔한 후로 군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남자였다.

       

       평소부터 일처리가 빠릇하고 눈치가 좋아 양한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이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군수님!”

       “잠깐. 정신을 차릴 시간을 좀 주게.”

       

       가쁜 숨으로 말을 이으려는 남자를 막은 양한문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안에 담긴 피로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든 양한문의 눈엔 언제나와 같은 총기가 깃들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화산파가 멸망했습니다.”

       

       뭐?

       

       …과연 다급할 만 했군. 

       

       화산이 갑자기 멸망할 이유가 있었나?

       

       양한문은 정확하진 않아도 화산의 사정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다.

       

       워낙에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고, 이전에 천마의 침공이 벌어진 이후로 서로 어느 정도 협력을 하고 있기에.

       

       지금의 화산은 결코 약하지 않다.

       

       한 번 멸문의 위기에 몰렸으나 현 화산문주를 중심으로 부활하는 데 성공한 화산은 다른 육대문파엔 미치지 못할지언정 그 바로 아래 정도는 되는 곳이었다.

       

       그런 화산이 하루아침에 멸망 했다니. 천마가 다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한 건가.

       

       “전후사정은 파악이 되었나?”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여러 외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 바에 따르면 이러합니다.”

       

       남자의 말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화산이 혈교와 손을 잡고 무언가 일을 벌이려 했으나 한 외부인이 그것을 가로 막았다고.

       

       단어 하나하나가 양한문을 어지럽게 만들었으나 그는 최선을 다해 평정을 유지했다.

       

       “지금 말한 것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이리라 보는가?”

       “여러 번 교차해 검증을 했기에 구할 이상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철저한 녀석이 구할이라 이야기 했다는 것은 사실상 틀릴 리 없다는 이야기겠지.

       

       천마신교가 잠잠해지니 이제는 혈교의 나부랭이들이 활개를 치는 건가. 무림엔 바람 잘날이 없군.

       

       “일단은 이 근방에 순찰을 돌려라. 혈교의 흔적이 있는 지를 확인해봐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화산에 일어난 재앙을 막았다는 외부인에 대한 정보는 있나?”

       

       화산과 혈교가 협력을 해 벌인 수작을 단신으로 막았다는 것은 그 외부인의 무위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빙하고 있었다.

       

       최소한 화경.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른 이일 수도 있겠지.

       

       그런 괴물이 존재한다면 지금부터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맺어둬야 한다. 언제 재앙이 일어나더라도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양한문이 외부인에 관해 묻자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는가?”

       “…그 외부인이 사용하는 무공이 천마신공이라고 합니다.”

       

       천마신공.

       

       그 무공이 현 무림에서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날의 재앙을 눈으로 보지 못한 외부인들이 유입되며 그 공포가 많이 희석된 지금도 그러했다.

       

       천마 백화령이 단신으로 무림을 박살내던 때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천마신공이란 재앙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천마신교와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 자인지는 밝혀졌나?”

       “아뇨. 그에 대해선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가.”

       

       양한문은 자신의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천마신공을 다루는 무인이 천마신교와 관련이 없을 리는 없다.

       

       혹여 그 자가 만일 옛 천마신교의 생존자에게 가르침을 얻은 자라면 그건 새로운 재앙이 될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기묘한 우연이었다.

       

       과거 천마가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먼저 복수의 대상이 된 게 화산이었는데 이번에도 천마신공의 사용자와 가장 먼저 싸운 게 화산이라니.

       

       책상을 두드리던 양한문의 손이 멈췄다.

       

       “그 외부인은 지금 어디에 있나.”

       “화음의 낭인객잔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 번 직접 만나보아야겠다. 그 자가 어떤 사람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만일 그 자가 정말 재앙이 될 씨앗을 품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테니까.

       

       *

       

       본래는 단신으로 낭인객잔을 찾아가려던 양한문이었지만 그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만류했다.

       

       천마신공의 사용자와 만나 무슨 변고가 있으면 화음이 어찌 될 지를 생각해 달란 부하의 말에 양한문은 어쩔 수 없이 관군 몇을 이끌고 낭인객잔 앞에 도착했다.

       

       낭인객잔은 고요했다.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양한문이 낭인객잔을 찾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랬기에 이 곳이 언제나 여러 낭인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소리를 낸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군.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외부인과 관계있는 일일까.

       

       무작정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될 수 없겠지.

       

       양한문은 관군에게 멈추라 신호를 보내 놓은 후 외부인의 이름을 소리쳤다.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

       

       그가 소리를 치고 얼마 있지 않아 낭인객잔의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자는 여류무인이었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을 비녀로 정리했고,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검은 무복을 입은 데다,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는 여인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양한문은 경계를 풀 수 없었다.

       

       여인의 무표정한 눈 때문에.

       

       사람을 사람이 아닌 사물로 보는 그 눈은 분명 양한문이 기억하는 천마의 눈과 한없이 닮아 있었다.

       

       “자네가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인가.”

       

       양한문의 어투가 공격적으로 변한 건 그 탓이었다. 그 눈을 본 순간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이 생각나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네만 무슨 일이지?”

       

       거의 시비조나 다름없던 어투 때문일까. 여류무인이 낸 대답도 온건하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분위기에 양한문이 데리고 온 관군들이 하나 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충돌을 짐작한 이들이 침묵을 지키던 순간 또 다시 객잔의 문이 열렸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건 여자아이였다.

       

       긴장간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아이가 음식을 우물거리는 모습에 진중하던 분위기가 무너져 내렸다.

       

       여류무인이 먼저 헛웃음을 흘리며 내기를  거두자 관군 측의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자신이 끼친 영향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아이는 느긋이 주변을 둘러보다 양한문을 발견하고는 눈을 번쩍 떴다.

       

       “화음군수! 오랜만이구나! 왜 최근에 돌산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게냐!”

       

       그 밝디 밝은 어투에 양한문은 당혹을 느꼈다.

       

       왜 이리 반가운 척을 하는 거지? 이 어린 아이와 만난 적이 있었던가?

       

       양한문이 쉬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여자아이가 눈썹을 내리며 서운한 티를 냈다.

       

       누구지? 화음군수라 칭한 것을 보면 다른 사람과 나를 착각한 것도 아닌 듯 한데.

       

       “너무하군. 생명의 은인을 어찌 이리 쉽게 잊는단 말이더냐.”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들을 순간 양한문은 무엇인가가 떠오를 듯 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아이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꼬마야. 무슨 착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우리는 공무를 집행하는 중이다. 물러나라.”

       

       양한문이 고민을 하는 동안 관군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 여자아이를 가로 막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어투에 여자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병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나는 꼬마가 아니다! 이 녀석아! 내가 먹은 소금이 네가 먹은 쌀보다 많을 터이거늘!”

       

       그 말을 들은 순간 양한문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산에 조난을 당했을 적에 자신을 구해주었던 산신령님의 모습을.

       

       하얀 색의 단발과 붉은 색의 천진한 눈동자.

       

       여우 귀나 꼬리가 없기는 했지만 분명 이 여자아이의 얼굴은 산신령님과 같았다.

       

       존귀한 분께서 어찌 하여 여기에 계신 거지?

       

       “거 어려운 말을 쓸 줄 아는 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알겠으니 이만.”

       “그만. 그 분은 가벼이 대해도 될 분이 아니다.”

       

       양한문이 제지하자 앞으로 나섰던 병사가 당황해선 고개를 돌렸다.

       

       “빨리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뒤로 물러나도록.”

       

       병사의 눈은 의문으로 가득 했지만 그는 양한문의 지시를 어기지 않았다.

       

       자신이 따르는 군수가 이상한 지시를 내릴 리 없다 여긴 것이다.

       

       병사가 태도를 바꾸어 고개를 숙이자 산신령은 그럴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사과를 받아 들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동료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음식이 멋지게 발전했더군!”

       “동료라 함은 뒤에 있는 외부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하네!”

       

       한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양한문이 눈을 끔뻑였다.

       

       어찌 천마신공을 다루는 자가 신령님의 동료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마공을 다루는 자가 어찌 신령님처럼 고귀한 존재의 곁에 설 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양한문이 날 선 목소리를 내자 바루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가 왜 이러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님이 저질러 놓은 게 워낙 많아서 천마신공을 다루면 보통 적대부터 관계가 시작됩니다.

    ——

    슬나임님 10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우선 머리부터 박겠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니 세상에. 실수로 뒤에 0을 하나 더 붙이신 거 아닌가요?
    너무 고액이라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을 재밌게 읽어주신 것만 해도 기쁜데 이런 선물을.
    응원을 보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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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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