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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한 사칙연산을 좀 해보도록 하자.

         

         대충 악랄한 8인팀이던 호흡 잘 맞는 듀오 해커던지간에, 라비린스급 금고를 따는데 러프하게 30분이 걸린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경쟁이 과열될 여지도 넘치는 만큼 혼자서 도전할 정도로 객기 넘치는 참가자도 없다고 보고.

         

         그럼… 모두가 적당한 조를 짜고 금고 해제에 평균적인 시간을 소모하며 착실하게 시험이 진행된다면, 과연 우리 차례인 170번 언저리까지 오는 데는 대충 얼마나 걸릴까?

         

         음… 못해도 16시간? 심하면 꼬박 하루?

         

         식사는 또 직원들이 가져다준다 쳐도. 이대로는 여기서 노숙하면서 밤을 지새야 할 판인데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아무도 불만이 없나?

         

         그리고 작전을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여유가 주어지는 게 아무리 유리하다지만 그걸 열 몇 시간씩 반복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심지어 먼저 테스트를 끝내고 걸린 시간을 봐서 얼추 결과를 아는 인간들은 구태여 남아있을 이유조차 궁한데.

         

         ……라고 생각했었다. 이 지저분한 난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아니, 갑자기 상영 장르가 볼거리도 풍부하고 지겨워할 틈도 없는 배틀 로얄 쪽으로 바뀔 줄은 나도 몰랐지.

         

         

         “12번과 나머지, 해제 실패. 다음은… “그훕?! 우웨에엑…!!” …이 망할 것들 좀 치우도록. 바닥에 소독약도 뿌리고.”

         

         “푸하핫! 쟤들 어디 출신이더라? 깡촌 출신들 수준은 알만 하네!”

         “…접속부터 기절까지 5분쯤 걸렸으니, 정작 금고 시스템에는 근접도 못했겠어.”

         

         애당초 금고를 열 실력이 부족했는지, 앞서간 선배들이 준비한 ‘선물’을 얕봤는지 또 한 팀이 성대하게 쓰러졌다. 그 꼴을 본 나머지는 손뼉을 치며 크게 비웃어 주었고.

         

         

         “17번! 멍청하게 서있지 말고 차례가 됐으면…! ……기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는 외부로 나갈 수 없으니 구석에서 기다리도록.”

         

         “이 쫄보들! 니들은 아랫도리도 없냐??”

         “뭐, 오늘은 안 달고 나왔다 왜?! 꼽냐!”

         

         과제의 난이도가 스스로의 기량 너머로 올라갔음을 깨달은 이들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런다고 야유를 받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흙바닥에 머리 처박은 채, 관계자에게 호송되어 끌려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리라.

         

         허나 전자前者들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반응조차, 대망의 마지막 부류가 받는 환호성(?)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었으니.

         

         

         “24번 패거리. 28분 38초 걸렸다. 그리고 성공했어도 출입이 제한되는 건 똑같으니 얌전히….”

         

         “아이고 머리야…. 이거 수지타산 안 맞는 장사였구만. 그나저나… 담당자 형씨? 나도 이 우라질 꽃밭에 몇 송이 심어도 괜찮나? 마침 새로 개발한 맬웨어(Malware; 악성 소프트웨어의 줄임말)를 임상 실험할 곳이 필요했거든~”

         

         “……나야 상관없다만.”

         

         ‘그야 댁은 시발 자기 생체 임플란트를 저 짬통에 안 담가도 되니까, 당연히 상관없겠죠…!’

         

         나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무책임한 방조라도 허가는 허가.

         역시나 말릴 생각따위 전혀 없는 레오나르 경의 대답을 듣자마자, 질문한 남자를 비롯해 그의 팀원들은 신나서 열린 금고에 맹독을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야 이 미친 새끼들아 그만두지 못해?!”

         “지랄을 해라, 지랄을! 폐쇄 회로에다가 그런 공격성 높은 코드를 퍼부으면 다른 것들이랑 섞여서 무슨 변조가 일어날 줄 알고…!”

         “으하핫—!!”

         

         아직 순서가 오지 않은, 뒤 차례 참가자들은 난리법석을 피웠다.

         사실 순화해서 표현한 게 저 정도일 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재밌는 거라며 매운맛을 일단 추가하고 보는 괴짜들을 향한 온갖 욕설은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건 순수하게 시험 결과에 따라 나눈 반응만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금고 보안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각자의 효율 증진 수단을 보일 때마다 튀어나오는 감상까지 합하면, 여기는 숫제 넷 해커들의 교류회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되었으니까.

         

         “31번!”

         

         “…….”

         

         번호가 불린 남자가 묵묵히 금고로 다가간다.

         연결을 위한 와이어나 복잡한 연산을 대신 수행해주는 보조 장치보다 먼저 품 안에서 꺼내진 건 호흡기 환자들이나 쓸 법한 흡입기(Inhaler).

         

         입가에 댄 약병이 치익! 하는 잡음을 내뿜으며 작동하고, 수상한 내용물을 환자…가 아니라 중독자 씨에게 호쾌하게 흘려 넣는다.

         

         “후우…!”

         

         동공이 수축하고 퀭하던 두 눈에 돌연 번들거리는 흥분이 깃든다.

         아직 사이버웨어는 공격받지도 않았거늘, 흉하게 벌어진 턱이 벌벌 떨리는 데다가 목이 타는지 튀어나온 혓바닥이 연신 입술을 더듬는다.

         

         무엇을 부정하리, 각성 효과가 있는 마약 복용자가 되시겠다.

         그것도 꼴을 보면 의존증이 발병한 게 확실해 보이는 수준의.

         

         게임 때야 패널티-부작용- 좀 있는 버프 아이템이라 생각하고 막 썼다지만, 여기서는 제 살 깎아 먹는 망측한 행위나 마찬가지.

         

         ‘실력 이상의 솜씨를 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지참하는 단말기나 임플란트, 보조 도구와 다를 바가 없는 물건일지 모르나.

         선을 넘는 순간 단번에 사용자 자신이 곤두박질친다는 특성과 사실상 미래를 팔아먹는 자충수라는 인식이 합쳐져 곱지 않은 시선이 향해진다.

         

         이런 개싸움 판을 일으킨 방해 공작을 본 대다수의 감상이 니들이 그럼 그렇지… 였다면, 저걸 보고서는 경멸했다고 할까?

         

         철컹!!

         

         “……31번, 20분 40초. …제법.”

         

         “쯧.”

         

         허나 여기저기서 혀 차는 소리가 튀어나오더라도 그 효과만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혼자서도 거의 20분 저스트. 약에 취한 탓에 사이버웨어로 쏟아지는 바이러스는 대응하지 못했는지, 금고가 열림과 동시에 쓰러져서 후송되었으나 굉장히 독보적인 기록임은 명확했으니까.

         

         뭐, 그 외에도 무슨 작업에 앞서 체내 화합물을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다짜고짜 안테나 달린 쇠구슬부터 삼키는 도시전설 신봉자.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생긴 듯, 정공법으로 금고를 돌파하는 게 아니라 안에 있는 악성 데이터만 추출해 보려던 미친놈.

         

         읽어내는 코드 자체를 도식화해서 손으로 쥐고 퍼즐을 맞추듯이 계산한 능력자 등등 세부적인 해킹 기법은 몰라도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는 건 덕분에 잘 구경했다.

         

         더군다나 통과한 사람이 늘어나며, 이 괴상한 인간들이 부적 마냥 들고 다니던 바이러스가 끓는 솥에 투하될 때마다 해킹에 실패하거나 기권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니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결판이 날 수도 있었고.

         

         “귀염둥아? 조금만 집중해 줄래? 그냥 자료 금고면 몰라도 저런 판도라의 상자스럽게 변한 물건은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서 불안하다고!”

         

         “아 글쎄, 나는 실전파라 직접 건드려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어깨에 달라붙으려는 마리나의 얼굴을 꾹 눌러서 밀어냈다.

         

         얘는 여태 여유만만하게 빈둥거렸으면서 막상 일이 나사 빠진 수레바퀴 마냥 통통 튀기 시작하자 이 모양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보고 자신감이 사라지기라도 한 건가? 그럴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반면에 켄은… 이름도 모르는 녀석에게 기록을 추월당한 게 분했는지 찡그린 표정을 지은 쌍둥이들이 지적질을 한 게 합당하다 여겨질 정도로 뛰어난 준비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두 사람 모두 따로 연산보조는 필요 없나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음… 마음만 받을게.”

        “나는 부탁해! 게스트 ID라도 만들어서 좀 등록해 줘!”

       

         

         허망하게도. 그가 열심히 끌고 다니던 짐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왜? 애당초 가방이라 여겼던 물건이, 실은 손잡이와 바퀴 달린 컴퓨터 그 자체였으니까.

         

         짤깍. 짤깍….

         

         휴대용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컸으나 들고 다니는 만큼 먼지 대책 같은 건 완벽한지 맨바닥에 좌우로 펼쳐진 컴퓨터 케이스에는 모니터부터 시작해 옛날 향취가 감도는 키보드에 열 몇 개씩 꽂힌 램(RAM; Random Access Memory, 사용자나 시스템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메모리) 카드까지.

         

         무엇보다 쿨러가 형광 빛이 찬란한 수냉식인 점에 가산점을 크게 주고 싶다.  

         …짜식이 뭘 좀 아네.

         

         “……좋아.”

         

         코드 라이브러리가 어쩌니, 데이터 볼트 환경을 상정한 프레임워크가 컴퓨터에 깔려 있느니 없냐느니 하며 화면에 집중하는 두 사람에게 동조하는 척 몸을 기울였다.

         

         마침 중앙 무대에 올라오는 인간들이 모든 관심을 독차지해줘서 일을 치르기 딱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89번! 음……? 아, 네놈들이군.”

         

         “오…!”

         

         레오나르 경도 아는 척을 했고, 주변에서는 나지막한 탄성이 올랐다.

         얼핏 들리는 명칭은… 사이퍼 사이코? 무슨 단체 이름이 암호 괴짜들인지는 몰라도, 나름 업계 유명인사인지 수근거리는 소음과 집중된 시선이 그들의 실력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무슨 은박지를 잘라 입은 것 같은 촌스러운 옷을 갖춰 입은 친구들이 금고 근처에 옹기종기 모이거나 말거나, 나는 조용히 제로에게 안테나를 펼쳐 달라 부탁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하려 한 건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보고 조목조목 따져봐도 미심쩍은 구석이 보인다면 최소한 무대 장막 뒤편을 들춰보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믿는지라.

         

         오랜만에. 조금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해볼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풍덩.

    너무 많이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화면 쳐다보고 있는 만큼 글이 정비례해서 써졌다면 3연참도 했을 텐데 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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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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