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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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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시선이 유리방 안에 갇힌 아이들을 향했다.
   
   
   일반적으로 인간 같지 않은 정령들을 처음 보게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리안은 유령은 물론 좀비들도 지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계에서 살아왔다 보니 피부가 파란 정도로는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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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아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다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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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웬 애들이 이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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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이 전부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아이들이 방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떨어져 앉아있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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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실험체로 잡혀 온 아이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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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땅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노예이며, 그 노예들이 물처럼 사용되는 곳이 흑마법사의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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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보니 네스트 조직에 들어오는 아이들 대다수가 실험체인 경우가 많았다. 리안이 곧바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정령들을 실험체라고 생각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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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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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치를 보던 조수가 허리를 간신처럼 앞으로 휜 채, 두 손을 파리 마냥 겹치고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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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리안의 분위기에 반쯤 압도되었음에도 어떻게든 말을 붙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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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위쪽에서 오신 분이다! 잘만 보이면 나도 연구원 말석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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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마법사의 조수인 그들은 실험체보다 살짝 높은 계급을 가진 노예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그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고귀한 분들의 눈에 드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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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로 오신 건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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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처럼 손을 비벼대는 조수도 있었지만, 벽에 따개비처럼 붙어 몸을 오들오들 떠는 조수들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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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땅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란, 손짓 한 번으로 생명을 거둬들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약자들은 항상 권력자 앞에서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자비를 바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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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딱 봐도 살벌한 분위기를 물씬 흩뿌리는 마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놀라기보단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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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숨찐 놀이를 하는 권력자에게 함부로 거들먹거렸다가 사지가 찢어지는 놈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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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처럼 대놓고 ‘나는 강하고 위험한 놈이다.’를 표출해주는 게 약자인 조수들에겐 매우 큰 자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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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유로 벽에 붙어 몸을 덜덜 떨어댔지만, 그들도 마왕의 땅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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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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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사악하게 웃음며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조수를 베지도 않고, 가지고 놀지도 않는 모습에 눈 폭풍 속 펭귄들처럼 모여있던 조수들이 하나 둘 리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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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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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원래 계획은 연구원 한명을 협박해 노아네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당장 눈앞의 조수를 제압하거나 상황을 이용하여 정보를 캐내야 했지만… 유리방에 갇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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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혹시 애들이 여기 갇혀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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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들어오는 유리 감옥만 수십 개는 넘어 보였다. 어쩌면 노아가 이곳에 갇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히죽거리는 조수의 얼굴이 시야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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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히 소동을 일으키면 노아를 다른 곳에 이동시킬지 몰라. 지금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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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리 결론 내린 후 어느새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조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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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잡혀 온 사람이 있다던데…”
   “아! 그 남자라면 저쪽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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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와 아이들은 다른 부서에서 데려간 탓에 조수는 노아네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몰랐다. 그 탓에 리안이 말한 이를 기사로 착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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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온화한(?) 태도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조수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마치 대기업 회장이 후원하는 연구소에 방문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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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로잡힌 기사는 입구와 가까운 곳에 방이 배정된 상태였다. 그 덕분에 순식간에 기사와 리안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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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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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리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려 했지만 마검에 의해 포커페이스가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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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리안은 무심하게 기사를 내려다보았고 기사는 입을 살짝 헤 벌린 채 경악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구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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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설마 실종되었던 각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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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그렇게 오해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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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유는 하얀 머리와 금안의 조합. 하얀 머리카락 자체도 흔하지 않은 세상에서 금안까지 같이 타고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도 리안처럼 불순물 하나 없이 새 하얀 머리카락과 찬란한 금안은 공작가 직계혈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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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이유는 리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과 품위 때문이었다. 익숙한 색을 가진 이가 공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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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실종된 각하의 자식 성별을 제대로 몰랐다는 데 있었다. 실종된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걸 알았다면 리안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다가 금방 착각이라는 걸 알아차렸겠지만, 그는 각하의 자식이 실종되었다는 사실만 알았지, 성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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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뜯어보면 공작과 리안의 외모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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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은 눈 폭풍 속에서 우아하게 사냥을 나선 설 표범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눈꼬리는 그녀가 휘두르는 검처럼 날카롭고 입꼬리는 항상 무겁게 다물려있었다. 군주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위엄을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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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 비해 리안은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 순한 인상을 가진 편이었다. 군주보다는 교주가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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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지만, 첫인상이 워낙 강렬하여 ‘실종된 각하의 자식’이라는 오해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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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쪽을 닮은 거라면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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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은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쟁에 나갔다가 아이를 가진 채 돌아왔었다. 처음에는 적군에게 붙잡혔던 게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었지만, 돌아오자마자 결혼식 준비를 하는 모습에 논란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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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결혼식 준비가 다 끝나감에도 공작의 피앙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공작은 결혼식을 취소했고 그 이유가 남편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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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리안이 색은 어머니를 생김새는 아버지를 닮은 거라면 모든 상황이 퍼즐처럼 딱딱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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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기사는 거의 리안을 실종되었던 공자님라고 결론내리며 충격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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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공자님께서 이리되신 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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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조직의 간부로 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기사는 참담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그와 정반대로 리안은 속으로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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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아이리스를 데리고 제국까지 도망쳤던 그 기사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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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덕분에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리안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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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여기에 갇혀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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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옆에서 조수가 필요했던 정보와 필요 없던 정보를 전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간신의 구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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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긴 설명이었기에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눈앞에 있는 기사는 연구소에 침입하여 실험체를 강탈하려 시도했고 실패하여 잡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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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이 실험체를 노린 이유는 아직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위대한 실험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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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여기 ‘그 병기’가 만들어지는 곳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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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새로운 충격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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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이 순식간에 다른 나라들을 싹 밀어버리고 제국을 거의 죽음 직전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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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전부 이 연구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대량 학살 전투 병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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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하나가 제국의 기사보다 강한대다가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베어도 죽지 않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전투 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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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이 인간의 땅 대부분을 꿀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병기가 무려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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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면 시설도 다 파괴하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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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목표는 이젠 너무나 소중해진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 마왕군을 방해하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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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머릿속에 새로운 목표가 등록되었을 때 조수가 새로운 사실을 입술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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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알다시피 정령들은 자연의 기운을 품고 있어 성질을 변화시키기 쉽습니다. 그 덕분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죠.”
   “…설마 이 방에 있는 게 전부 정령인가?”
   “하하하, 맞습니다! 실험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이만한 수를 구하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게 위대하신 분들의 도움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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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는 리안을 귀족 후원자쯤으로 생각하고 간신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조수들도 입을 모아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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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 어머니를 납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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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에 리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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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정령이 원래 미쳐있던 게 아니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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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속 정령들은 굉장히 공격적이며 포악하게 묘사되었다. 거의 몬스터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령들이 포악해진 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실험의 결과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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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말없이 유리방 안에 갇혀있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은 체구의 정령들이 울적한 얼굴로 웅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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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엄마.. ]
   [ 훌쩍….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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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들은 소리를 죽인 채 어머니를 찾으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범죄자도 ‘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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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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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말없이 수십 개의 방을 바라보다가 마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살짝 녹은 버터에 나이프를 가져다 대는 것처럼 유리 벽에 검을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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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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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꽤 어려운 주문을 건네자 마검이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마검에서 영롱한 색을 가진 핏물이 마치 유리방을 전부 집어삼킬 것처럼 끝도 없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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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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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허억…!”
   “흐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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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리안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조수들이 바닥에 주저앉거나 뒤로 도망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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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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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간 조수들이 벽 쪽에 도달하기도 전에 핏물이 마검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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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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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물이 집어삼켰던 유리 벽이 녹아내린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령들이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벅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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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
   [ 자유, 자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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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자유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정령들이 환하게 웃으며 허공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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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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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마리가 넘는 정령이 허공에 떠오르자 바닥에 주저앉은 조수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작은 비명에 정령들의 시선이 일제히 조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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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이제… ]
   [ 어머니를 찾을 수 있어. ]
   [ 그리고 친구의 복수도 할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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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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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하단 이유로, 연구원에게 혼났다는 이유로 제 친구에게 화풀이하던 조수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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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폭력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제 친구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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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것 하나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분노가 조수들에게 쏟아진 건 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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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리안 : 유리벽만 녹여줘!
마검 : (뚜둑뚜둑) 우후훗 내 실력을 보여주마!

병원다녀오느라 늦게 올려버린 ㅜㅠ

오전에 업로드 하는 게 좋으신가요? 오후에 업로드 하는게 좋으신가요?
딱 정해서 업로드 하는건 힘들 수 있지만 독자분들이 선호하는 시간대에 최대한 맞춰서 올려볼까 고민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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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의 시선이 유리방 안에 갇힌 아이들을 향했다.

일반적으로 인간 같지 않은 정령들을 처음 보게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리안은 유령은 물론 좀비들도 지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계에서 살아왔다 보니 피부가 파란 정도로는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다고만 생각했다.

‘…? 웬 애들이 이렇게 많이…’

벽이 전부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아이들이 방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떨어져 앉아있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아, 실험체로 잡혀 온 아이들이구나.’

마왕의 땅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노예이며, 그 노예들이 물처럼 사용되는 곳이 흑마법사의 실험이다.

그렇다 보니 네스트 조직에 들어오는 아이들 대다수가 실험체인 경우가 많았다. 리안이 곧바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정령들을 실험체라고 생각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저…”

눈치를 보던 조수가 허리를 간신처럼 앞으로 휜 채, 두 손을 파리 마냥 겹치고 리안을 올려다보았다.

조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리안의 분위기에 반쯤 압도되었음에도 어떻게든 말을 붙이려 했다.

‘딱 봐도 위쪽에서 오신 분이다! 잘만 보이면 나도 연구원 말석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흑마법사의 조수인 그들은 실험체보다 살짝 높은 계급을 가진 노예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그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고귀한 분들의 눈에 드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오신 건지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파리처럼 손을 비벼대는 조수도 있었지만, 벽에 따개비처럼 붙어 몸을 오들오들 떠는 조수들이 더 많았다.

마왕의 땅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란, 손짓 한 번으로 생명을 거둬들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약자들은 항상 권력자 앞에서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자비를 바래야 했다.

리안이 딱 봐도 살벌한 분위기를 물씬 흩뿌리는 마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놀라기보단 감사했다.

힘숨찐 놀이를 하는 권력자에게 함부로 거들먹거렸다가 사지가 찢어지는 놈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리안처럼 대놓고 ‘나는 강하고 위험한 놈이다.’를 표출해주는 게 약자인 조수들에겐 매우 큰 자비였다.

그런 이유로 벽에 붙어 몸을 덜덜 떨어댔지만, 그들도 마왕의 땅 주민들.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차고 넘쳤다.

리안이 사악하게 웃음며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조수를 베지도 않고, 가지고 놀지도 않는 모습에 눈 폭풍 속 펭귄들처럼 모여있던 조수들이 하나 둘 리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지?’

리안의 원래 계획은 연구원 한명을 협박해 노아네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당장 눈앞의 조수를 제압하거나 상황을 이용하여 정보를 캐내야 했지만… 유리방에 갇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아, 혹시 애들이 여기 갇혀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눈에 들어오는 유리 감옥만 수십 개는 넘어 보였다. 어쩌면 노아가 이곳에 갇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히죽거리는 조수의 얼굴이 시야에 들었다.

‘괜히 소동을 일으키면 노아를 다른 곳에 이동시킬지 몰라. 지금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보자.’

리안은 그리 결론 내린 후 어느새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조수에게 말했다.

“이번에 잡혀 온 사람이 있다던데…”

“아! 그 남자라면 저쪽에 있습니다!”

“…!”

노아와 아이들은 다른 부서에서 데려간 탓에 조수는 노아네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몰랐다. 그 탓에 리안이 말한 이를 기사로 착각하고 말았다.

리안의 온화한(?) 태도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조수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마치 대기업 회장이 후원하는 연구소에 방문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로잡힌 기사는 입구와 가까운 곳에 방이 배정된 상태였다. 그 덕분에 순식간에 기사와 리안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

기사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리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려 했지만 마검에 의해 포커페이스가 지켜졌다.

그 탓에 리안은 무심하게 기사를 내려다보았고 기사는 입을 살짝 헤 벌린 채 경악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구도가 되었다.

‘서, 설마 실종되었던 각하의 아들?’

그가 그렇게 오해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하얀 머리와 금안의 조합. 하얀 머리카락 자체도 흔하지 않은 세상에서 금안까지 같이 타고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도 리안처럼 불순물 하나 없이 새 하얀 머리카락과 찬란한 금안은 공작가 직계혈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두 번째 이유는 리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과 품위 때문이었다. 익숙한 색을 가진 이가 공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실종된 각하의 자식 성별을 제대로 몰랐다는 데 있었다. 실종된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걸 알았다면 리안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다가 금방 착각이라는 걸 알아차렸겠지만, 그는 각하의 자식이 실종되었다는 사실만 알았지, 성별은 몰랐다.

자세히 뜯어보면 공작과 리안의 외모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공작은 눈 폭풍 속에서 우아하게 사냥을 나선 설 표범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눈꼬리는 그녀가 휘두르는 검처럼 날카롭고 입꼬리는 항상 무겁게 다물려있었다. 군주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위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리안은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 순한 인상을 가진 편이었다. 군주보다는 교주가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지만, 첫인상이 워낙 강렬하여 ‘실종된 각하의 자식’이라는 오해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 쪽을 닮은 거라면 말이 된다.’

공작은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쟁에 나갔다가 아이를 가진 채 돌아왔었다. 처음에는 적군에게 붙잡혔던 게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었지만, 돌아오자마자 결혼식 준비를 하는 모습에 논란이 잦아들었다.

문제는 결혼식 준비가 다 끝나감에도 공작의 피앙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공작은 결혼식을 취소했고 그 이유가 남편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은연중에 퍼져나갔다.

만약 리안이 색은 어머니를 생김새는 아버지를 닮은 거라면 모든 상황이 퍼즐처럼 딱딱 떨어졌다.

어느새 기사는 거의 리안을 실종되었던 공자님라고 결론내리며 충격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공자님께서 이리되신 거란 말인가..’

딱 봐도 조직의 간부로 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기사는 참담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그와 정반대로 리안은 속으로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미친! 아이리스를 데리고 제국까지 도망쳤던 그 기사분이잖아!’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덕분에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리안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런데 왜 여기에 갇혀있는 거지?’

그런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옆에서 조수가 필요했던 정보와 필요 없던 정보를 전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간신의 구애였다.

워낙 긴 설명이었기에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눈앞에 있는 기사는 연구소에 침입하여 실험체를 강탈하려 시도했고 실패하여 잡힌 상태다.

놈이 실험체를 노린 이유는 아직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위대한 실험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떠들어댔다.

‘헉, 여기 ‘그 병기’가 만들어지는 곳이었네.’

리안은 새로운 충격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마왕군이 순식간에 다른 나라들을 싹 밀어버리고 제국을 거의 죽음 직전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그게 전부 이 연구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대량 학살 전투 병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가 제국의 기사보다 강한대다가 심장을 찌르고 머리를 베어도 죽지 않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전투 병기.

마왕군이 인간의 땅 대부분을 꿀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병기가 무려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능하면 시설도 다 파괴하고 가자.’

리안의 목표는 이젠 너무나 소중해진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 마왕군을 방해하는 게 좋았다.

리안의 머릿속에 새로운 목표가 등록되었을 때 조수가 새로운 사실을 입술에 담았다.

“그리고 알다시피 정령들은 자연의 기운을 품고 있어 성질을 변화시키기 쉽습니다. 그 덕분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죠.”

“…설마 이 방에 있는 게 전부 정령인가?”

“하하하, 맞습니다! 실험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이만한 수를 구하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모든 게 위대하신 분들의 도움 덕분이죠!”

조수는 리안을 귀족 후원자쯤으로 생각하고 간신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조수들도 입을 모아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정령 어머니를 납치했다고?’

또다시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에 리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럼 정령이 원래 미쳐있던 게 아니었단 말이야?’

원작 속 정령들은 굉장히 공격적이며 포악하게 묘사되었다. 거의 몬스터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령들이 포악해진 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실험의 결과물로 보였다.

리안은 말없이 유리방 안에 갇혀있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은 체구의 정령들이 울적한 얼굴로 웅크려있었다.

[ 엄마…엄마.. ]

[ 훌쩍….어머니.. ]

정령들은 소리를 죽인 채 어머니를 찾으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범죄자도 ‘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었다.

“…”

리안은 말없이 수십 개의 방을 바라보다가 마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살짝 녹은 버터에 나이프를 가져다 대는 것처럼 유리 벽에 검을 꽂아 넣었다.

[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군. ]

리안이 꽤 어려운 주문을 건네자 마검이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마검에서 영롱한 색을 가진 핏물이 마치 유리방을 전부 집어삼킬 것처럼 끝도 없이 퍼져나갔다.

털썩.

“헉,허억…!”

“흐악..!”

갑작스러운 리안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조수들이 바닥에 주저앉거나 뒤로 도망쳐버렸다.

스르륵.

도망간 조수들이 벽 쪽에 도달하기도 전에 핏물이 마검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어..?”

핏물이 집어삼켰던 유리 벽이 녹아내린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령들이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벅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아아! ]

[ 자유, 자유다! ]

뒤늦게 자유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정령들이 환하게 웃으며 허공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힉!”

수십 마리가 넘는 정령이 허공에 떠오르자 바닥에 주저앉은 조수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작은 비명에 정령들의 시선이 일제히 조수를 향했다.

[ 그럼 이제… ]

[ 어머니를 찾을 수 있어. ]

[ 그리고 친구의 복수도 할 수 있어. ]

정령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심심하단 이유로, 연구원에게 혼났다는 이유로 제 친구에게 화풀이하던 조수들의 모습을.

그런 폭력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제 친구들의 모습을.

어느 것 하나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분노가 조수들에게 쏟아진 건 정당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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