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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아귀가 거대한 입을 벌리면서 찬란한 빛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더 이상 외부의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호였고, 아귀의 보호가 끝이 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볼풀 안에서 뛰어놀던 황금 사신들이 가장 먼저 밖으로 뛰쳐나갔다.

    두 팔을 펼치고 활짝 웃는 황금 사신들.

    황금빛 햇살을 받아 더욱 크게 빛나는 사신들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제임스가 황금 사신들을 따라서 밖으로 나가자, 따스한 햇살이 그를 반겨주었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탁 트인 하늘.

    끈적끈적한 점액이 무겁게 흘러내릴 것만 같아서 묘한 불안감을 조성하던 검은 하늘은 평온한 푸른색으로 변해 정상과 평화로의 복귀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가 시선을 내리자, 폐허가 되어버린 관악구의 참상이 보였다.

    검은 점액의 희생양이 된 관악구는 점액의 수위가 점점 낮아지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앙상한 콘크리트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재난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마 관악구를 복구하는 데는 기나긴 시간이 걸리겠지.

    하지만 그래도 거대 해파리는 파괴된 것으로 보이니까, 인류가 살 수 있는 영역이 조금은 늘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층빌딩과 도시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폐허에 헬기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헬기들은 줄지어서 폐허에 잔뜩 내려선 뒤, 협회 소속 군인들을 잔뜩 토해냈다.

    그리고 군인들 사이에 섞여서 보호 장비를 충실히 갖춘 기자들이 폐허 위로 내려섰다.

    군인들이 폐허의 안전을 체크하는 동안 기자들은 제임스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다가오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아마, 기자들은 궁금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 회색 사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도 알게 되겠지.

    뀨.

    제임스가 손에 들린 아귀볼을 누르자, 특유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임스가 관악구에서 겪은 일의 증거이자, 추억의 파편으로 남을 아귀볼이었다.

    제임스는 손에 들린 아귀볼을 자신의 장식장에 보관할 생각을 하면서 기자들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나저나 회색 사신은 어디 간 거지?

    그리고 하얀 아귀랑 황금 사신들도 사라져 버렸어.

    ***

    관악구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거대 해파리를 처치하기 무섭게 다가오는 수많은 헬기.

    귀찮아.

    기자들이 잔뜩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서 폐허 틈으로 숨어들어 갔다.

    이제 사건도 끝났으니, 슬슬 세희 연구소로 돌아가면 되겠지.

    양손을 깍지 끼고 위로 들어 올려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푸른 사신이 다가와서 문자열을 보내왔다.

    <엄마! 따라오세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푸른 사신은 저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지 안절부절못하면서 뭔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부끄럼이 많은 녀석인데, 이번에는 한층 더 심하네.

    뚜방뚜방.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서 유유히 미끄러지는 푸른 사신의 뒤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뼈대만 남은 폐허를 산을 타듯이 천천히 올라갔다.

    점점 높이 높이 올라가는 푸른 사신.

    아, 나도 비행 능력이 있으면 저렇게 편하게 다닐 텐데….

    그리고 도착한 곳은 주변이 탁 트인 높은 폐허의 위. 

    주변을 탁 트인 시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대.

    이곳에서 바라보는 변해버린 관악구의 풍경은 꽤 괜찮았다.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던 고층 빌딩이 사라진 탁 트인 시야는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폐허 위로 내리쬐는 태양과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상처투성이 풍경과 대비를 이루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이 풍경의 풍취를 더욱 더해주었다.

    이걸 보여주려고 나를 여기로 부른 건가? 

    푸른 사신을 쓰다듬어 주려고 주변을 찾아봤지만, 푸른 사신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투다다다닷.

    들려오는 작은 발걸음 소리.

    갑자기 나타난 황금 사신들이 힘차게 뛰어오르며 내 등 뒤를 밀었다.

    어?

    황금 사신의 예상치 못한 습격에 당황한 나는 그대로 폐허 위에서 아래로 낙하를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황금 사신들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키득거리고 있었다.

    밑에는 폐허의 틈에 고여있는 검은 액체.

    속였구나! 

    하지만 나는 검은 액체로 빠지기 전에 미니 사신 정원으로 내 몸을 옮겼다.

    후후.

    나를 속이기에는 아직 100년은 이르지. 

    황금 사신과 푸른 사신의 함정에서 벗어나, 미니 사신 정원에 도착해서 바닥에 발을 딛었다. 

    탈출 성공!

    함정 회피를 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순간 바닥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퐁당.

    황금 사신이 만들법한 핫초코가 가득한 함정이었다.

    내 목까지 오는 깊이의 함정에 빠져있자, 승리의 미소를 띤 황금 사신들이 마시멜로 망치를 들고 내 머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마시멜로 망치가 머리를 때릴 때마다 황금 사신의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장난들을 성토하는 감정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감정은 ‘같이 해파리 잡는다고 했으면서 속였다는 억울함’과 ‘다시는 안 한다고 거짓말한 억울함’이 주된 감정이었다.

    성토하면서 나를 때리는 상황이 즐거운지, 마시멜로 망치를 휘두르며 즐겁게 웃는 황금 사신들이었다.

    요즘 너무 괴롭혔나…? 

    ‘그래도 푸른 사신은 없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과자 틈에 숨어있던 푸른 사신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마시멜로 망치로 한 대 뿅.

    아.

    푸른 사신 너마저….

    ***

    뚜벅뚜벅.

    어둡고 질척질척한 지하에 단정한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굴은 모호해서 인식할 수 없고, 단정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이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얼굴이 모호하고 인상도 희미했지만, 대신 주변에 잔뜩 떠다니는 수많은 램프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마 이 남자를 봤던 그 누구도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한 가지만은 뇌리에 남을 것이다.

    ‘램프를 잔뜩 데리고 다니는 남자’라고.

    한때 트리니티 제3 연구소장이 사용하던 개인실은 검은 점액에 침식되고 무너져 내려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다.

    램프의 남자는 그 처참한 방에 들어가서 구석에 놓인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램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표면을 두들기자, 오래돼 보이던 램프는 완전히 새것처럼 깨끗하게 변모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방 중앙에 램프를 올려둔 남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

    달과 별이 떠오르고, 황금 사신들도 잠든 깊은 밤.

    하지만 세희 연구소는 잠들지 못하는 밤.

    그런 밤에 나는 세희 연구소 뒤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관악구에서 벌어진 일들로 협회 사람들도 바쁘고, 세희 연구소도 엄청 바쁜 것 같았지만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속세와는 무관한 게 오브젝트 라이프의 장점이니까 말이다.

    문명의 권리를 누리면서 의무는 다하지 않는 생활!

    나는 새로운 달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하늘을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 위에는 3개의 달이 둥실둥실 떠올라있었다.

    커다란 달, 푸른 달, 붉은 달.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4번째 달이 떠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대 해파리는 ‘밤의 진주’가 달이길래 달 하나가 더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하긴 무지개색이 아니긴 했지.

    그래도 이번 트리니티 연구소에서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첫 번째는 커다란 비상식량 아귀.

    그 외에도 두 가지 능력을 더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트리니티 연구소에서 오브젝트를 꽤 많이 해치운 것 같은데, 생각보다 수확이 적었다.

    오염된 오브젝트들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트리니티에서 선호하는 오브젝트들이 육체파 근육질 오브젝트라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얻은 능력 중, 좀 쓸만해 보이는 건 촉수 소환이었다.

    그림자에서 촉수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었다.

    해파리가 소환하던 거랑 비교하면 숫자는 딱 1개가 한계였고, 크기도 앙증맞았다.

    그래도 튼튼하고 힘도 세니까, 쓸만해 보여.

    나는 그림자에서 촉수를 하나 뽑아내서,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머리 위에 정신을 집중하자,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머리 위에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아귀의 초롱불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휘적휘적.

    내 의지에 따라 머리카락이 춤을 췄다.

    머리카락의 특정 부분에 빛을 밝히고 움직일 수 있게 되는 능력이었다.

    아귀를 처리해서 아귀 소환을 얻은 줄 알았는데, 왜 이런 능력이 생긴 거지?

    하얀 아귀의 출처가 모호해진 느낌이었다.

    ***

    깊은 밤, 오브젝트 협회 조사단원들은 아직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로 조사하는 곳은 트리니티 제3 연구소가 위치했던 건물터.

    완전히 부서진 것처럼 보이지만, 지하 시설은 꽤 많이 남아있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증거로 쓰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빛과 방호복에 의지해 천천히 지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가는 협회 요원들은 어떤 특이한 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완전히 난장판이 된 상태였지만, 이상하게 깨끗하고 멀쩡해 보이는 가스램프가 방 중앙에 놓인 방이었다.

    “여기, 오브젝트로 의심되는 물건이 보인다. 가스램프다.”

    가장 앞장서서 들어간 군인이 신호를 보내자, 뒤따라오는 연구원들이 램프를 잘 밀봉해서 회수했다. 

    그때 연구원의 뇌리에 말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나랑 계약하자. 오브젝트의 지식을 줄게.]

    매우 달콤하고 빠져들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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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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