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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그렇게 찾아온 정적 속에서, 도로 방숙자의 혼령만 남아 힘을 잃은 인체모형은 털썩,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아이까와는,

       

       『요시꼬! ……윽,』

       

       역시 몸에 힘이 빠졌는지 곧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고꾸라지고 말았다.

       

       본래부터 체력이 약했던 아이까와였는데, 생력을 그렇게 방출했으니 서 있을 기력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쓰러지던 아이까와는, 

       

       『앗……?』

       

       바닥에 넘어지지 않고 무언가에 의해 부축을 받았다.

       

       그것은, 인체모형으로부터 스르르 빠져나온 반투명한 형상을 갖춘 무언가—열 살 남짓한 어린 여자아이의 혼령이었다.

       

       『요시꼬……?』

       [『그래. 나야.』]

       

       방숙자의 혼령은, 6년 전인 1931년, 소학교 5학년이었던 11세의 나이로 죽었을 당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까와는, 인체모형에 빙의된 것이 옛 친구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있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나니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했는지, 

       

       『요시꼬…… 정말, 너구나. 으흑.』

       

       결국 어린아이의 혼령에 몸을 기댄 채 눈물을 보이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방숙자의 혼령은 그런 아이까와를 도닥여주며 말했다.

       

       [『사또미, 왜 울어? 괜찮아. 울지 마.』 ]

       『요시꼬, 요시꼬……』

       [『이렇게 너를 봤으니, 나는 이제 여한이 없어.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고.』]

       『으응. 알았어. 나, 꼭 성공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던 아이까와는 눈을 감았다. 그런 아이까와의 얼굴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방숙자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잠든 거여.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숙자의 영혼을 향해 말했다.

       

       “너, 그게 원래의 모습이구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방숙자의 영혼은 인체모형을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뭐, 일케 생겨먹었는줄 알았나벼?]

       “뭐, 그런 건 아니지만.”

       [할튼, 인제 이거는 불에 태워도 되야.]

       “……태우라고?”

       

       인체모형을 불에 태워버리라는 말에, 나는 되물었다.

       

       “그럼 어디로 빙의하게? 묘지도 없잖아. 지금이야 아이까와가 곁에 있으니까 괜찮지만, 학교에서는 그 기계 때문에 붙어있을 수도 없고……”

       

       거기까지 말하던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아. 렌까의 인형에 빙의될 생각이야? 그러려면 이대로 렌까가 있는 곳까지는 가야 하는데……”

       

       하지만 방숙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여. 나는 인제, 가도 될 것 같구만.]

       “간다고? 설마……”

       

       방숙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려. 말했잖애. 내가 바란 것은 사또미가 성공하는 그것 한가지여. 그래서 애시당초에 야가 핵교에 입학했을 적에 이미 한이 풀려가지고선, 왕생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디, 또 니 말을 듣고서는 졸업하고 취직하는 것까지도 봐야겄지 혔지. 근디……]

       

       방숙자는 아이까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시방와서 야를 보니께, 인제는 아무런 여한도 걱정도 없어. 일케 애가 다부지게 되었으면은, 응, 앞으로 뭘 하던간에 잘 할거라는 생각이 드네.]

       

       아이까와가 상처를 이겨내고 성장한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아이까와가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글고, 사또미한테는 인제 학생 어빠같은 동무도 있잖애. 뭐, 죽은 내 소원까지 들어두는 학생 어빠가 동무인 사또미를 안 도와주겠는가.]

       

       그러니 자신이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이미 정신적으로 성장한데다 과거와는 달리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까와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께 나는 이만 왕생하는게 맞는 일이여. 그리고 저거, 여기 그대로 내비두면 딴 혼령이나 악령이 붙을지도 모르니께…… 태우는게 좋을 것이여.]

       

       그래서 결국 방숙자의 성불 조건이 갖춰진 것인가.

       

       ‘뭐, 아깝기는 한데……’

       

       여러모로 활용할 방도가 많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성불해버린다니. 그래서 다소 아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그래.”

       

       나는 칼자루의 손잡이를 눌러 검신에 불을 붙이고는, 바닥에 놓인 인체모형을 향해 휘둘렀다.

       

       화르륵!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달라붙어있던 혼령 에너지가 흩어지며 수분이 증발한 덕분인지 인체모형은 완전히 말라 있었다.

       

       잘 마른 셀룰로이드 재질에 시원하게 불이 붙는 모습을 보며 방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가야.]

       “응.”

       

       방숙자의 혼령이 공중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남은 여한은 정말로 없어? 왜, 가족을 찾고 싶다거나……”

       [허, 참! 가만있다가 왜 갈때 되니까 그런디야……]

       

       공중으로 떠오르던 방숙자는 한 번 웃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애시당초 사또미가 한이 되어 남아있던 혼령이여. 근디 그 한이 풀리니께…… 인제는 식구고 뭐고, 이상하게도 아무 여한도 안 들어.]

       

       그렇구나. 혹시라도 여한이 남아있다면, 그걸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얘를 꼬드겨서, 렌까의 인형에 빙의시키고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뭐, 이제는 정말로 놔 주자.’ 

       

       이미 6년 전에 죽은 아이의 혼령을 내 이득을 위해 이용하겠다니. 양심적인 사람이 할 짓은 못 되었다.

       

       [참, 내 여한까지는 아니지마는……]

       

       방숙자는 문득 생각난듯이 말을 이었다.

       

       [한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앞으로는 나같은 년이 안 나오는 시상이 됐으면 히여. 조선 사람이라고 핍박받고,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의 것을 뺏고…… 나는 몰라도 여깄는 혼령들, 다아 그런 것이 한이었던 거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이 모든 비극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일어난 일이야. 하지만 몇 년 뒤면……”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했다. 조선이 해방된다는 미래를 말해줘도 될까? 그렇게 잠시 고민했지만, 

       

       “일본은 패망하고 조선은 해방돼. 그러면 더 이상, 일본인이 조선인을 차별하는 세상도 없어져. 그러니까 마음 놓고 성불해도 돼.”

       

       다른 사람에게라면 모를까, 어차피 방숙자는 성불할 녀석이니까 상관없으리라. 

       

       [기여? ……근디, 학생 어빠는 그런 걸 워찌 안댜?]

       “미래에서 왔거든. 조금 다른 미래이긴 하지만.”

       [믿어줄라니께 또 션찮은 헛소리를……]

       

       방숙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얼굴은 배시시 웃고 있었다. 방숙자는 아이까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할튼간, 입만 열면은 헛소리긴 해도 원채 좋은 사람인걸 내 아니께 부탁히여. 사또미 야가 혼자서두 원채 잘 자빠지고 긍께, 잘 좀 챙겨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서 가.”

       [겨.]

       

       내 배웅인사를 받으며, 방숙자의 혼령은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서서히 흩어지며 흐릿해지던 혼령은, 어느새 구름 사이로 드러나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극락왕생하기를.’

       

       나는 마음 속으로 깊이 기원하며, 아이까와를 등에 업고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와, 인력거를 잡았다.

       

       나는 대전역으로 향하는 인력거에 아이까와와 함께 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완전히 맑게 개었다.

       

       

       

       

       

       

       

       

       

       

       

       

       

       

       

       

       

       

       ***

       

       

       

       맑게 개인 하늘 높이, 방숙자의 혼령은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그렇게 날아오르며, 그녀의 형체를 이루던 혼령 에너지는 서서히 흩어져갔다. 드디어 한을 풀고 성불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썩 괜찮은 인생이었지.’

       

       아이까와의 성장도 확인했고, 이제는 속세에 머무를 그 어떤 여한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방숙자의 사념 속에서는, 드디어 쉴 수 있다…… 그 생각뿐이었다.

       

       마치 물에 뜬 채로 잠에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혼령 에너지도 완전히 흩어져, 비로소 무(無)로 돌아가려는데……

       

       그런데 그 찰나에, 문득, 

       

       ‘근디 말여.’

       

       남학생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몇 년이면은 이 조선 땅이 해방이 된다고야.’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조선이 일본의 일부로써 존재하는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방숙자가 듣기에는 그저 허황된 말이었다. 

       

       ‘뭔, 헛소리도 별게 있지. 설마 그러겄어?’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근디, 그게 진짜면은……’

       

       또 그 남학생의 말인지라,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 헛소리는 아녔지.’

       

       미래에서 왔다느니 하는 말은 믿기 어려웠지만, 뭔가 영특한 재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보이는 남학생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이 해방된다는 것은 어디서 미리 정보를 얻거나 해서 알아온 진짜 얘기일수도 있는 것이었다.

       

       ‘할튼, 그 학생 어빠 말마따나, 조선이 해방된다면……’

       

       사또미는 일본 내지로 돌아가는 것일까? 나고 자란 곳이 조선이라, 적응하지 못할 텐데…… 뭐, 지금같이 성장한 사또미라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해방된 조선은 어떤 세상이 될까. 배운 것이 짧은 방숙자로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은 분명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이 달라질텐데, 앞으로 고작 몇 년을 기다리지 못해서 그걸 못 보고 사라져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아차!’

       

       방숙자는 어느샌가, 자신의 영체가 공중에서 흩어지던 것이 멈추고, 도로 본래의 형상을 갖추게 된 것을 깨달았다. 성불이 멈춘 것이었다.

       

       ‘얼레? 워째 이런댜?’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방숙자 역시 그 까닭을 모르지 않았다. 조선이 해방되는 그 날을 보고싶다는 것이 여한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 학생 어빠가 되도않는 헛바람을 넣어서……!’

       

       대체 몇 번이나 왕생을 막는 것인가? 전부 그 남학생 탓이었다. 그런 남학생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 당장 신경써야 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당장 돌아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묫자리는 밀어져 버렸고, 인체모형은 이미 완전히 불타버렸다. 머물 곳 없이 이대로 혼령 상태로 남아있다간, 또 다른 원한을 가진 혼령들과 동화되어 악귀가 되어버릴 터.

       

       ‘사또미, 우선 사또미한티 가야……’

       

       아이까와를 찾아봐야 뾰족한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방숙자의 혼령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남학생과 아이까와는 도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대전역으로 향했을 터. 대전의 그리 크지 않은 시가지 가운데에 광장을 앞에 두고 대전역의 지붕이 보였다.

       

       그녀는 하늘에서부터 곧장 대전역 지붕을 향해 쏟아져내리듯 강하했다. 지붕을 그대로 통과해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막, 유럽풍으로 높게 지은 2층의 지붕을 쏜살같이 통과하고는 더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턱, 

       

       어딘가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 아래로 내려가지지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뭐지?’

       

       어두웠고, 사방에는 무언가가 꽉 차 있으며, 마치…… 짐가방 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무언가에 빙의되어 있었다. 대체 어디에 빙의된 것인지 알 수도 없어 몸을 움직여보려는 찰나,

       

       『후우. 시라바야시 상…… 늦는군요.』

       

       단단하고 어두운 공간의 밖에서부터 일본인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그제서야 방숙자는 자신이 어디에 빙의된 것인지 깨달았다.

       

       ‘……그 인형!’

       

       『아마도, 애초부터 저와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던 것이겠죠.』 

       

       혼잣말같은 그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 목소리는 이번에는, 더 가깝고 다소 조용해진 목소리로 다시 들려왔다.

       

       『……까뜨린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목소리와 함께, 퉁 퉁, 하고 뭔가가 이곳을 두드렸다. 방숙자가 빙의된 인형이 들어있는 가방을 손으로 두드리는 듯 했다. 

       

       ‘뭐여? 뭐여? 나한테 말 건 거여?’

       

       방숙자는 혼란스러워져서, 까뜨린느인지 뭔지는 또 뭔지, 대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대답을 한다면 소리가 전해질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마냥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그럼! 시라바야시 그 녀석은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인걸!』

       『까뜨린느! 그런 말을 하면 나빠!』

       

       하며 아가씨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방숙자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본인 아가씨의 자문자답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후우…… 바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이 두려워서, 이곳 대전부에서 시라바야시 상과 오후까지 시간을 보내면서 기운을 얻을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런 조선인 따위는 필요 없어! 내가 있잖아!』

       『후훗. 그래, 까뜨린느. 너라도 함께라면 괜찮아.』

       

       쑤욱! 가방 전체가 들어올려지는 느낌과 함께, 걸어서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뭐여? 뭐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여……?’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아가씨는 마침내 어딘가에 멈추어 앉고, 방숙자도 가방 바깥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아내려는 순간, 역사 내의 안내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부산행 상행선 아까쓰끼호 11시 30분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부산행 상행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늦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도 그런대로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렌까 팬아트를 받았습니당! 팬아-트 공지에 올릴테니 한번씩 보고가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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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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