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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다이튼은 예르나의 집 앞에서 후우, 심호흡을 하고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일단 차림새는 문제없음…….’

    동물원때보다야 힘을 좀 빼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괜찮은 꼴이라고 생각한다.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은 되겠지, 아마도.

    뒤이어 왼손에 쥐어진 과일바구니를 내려다본다.

    남의 집에 가는데 당연히 빈손으로 갈 수 없으니 적당히 예르나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사온 것이다. 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예르나를 위해 레몬, 오렌지, 파인애플 뭐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웠다.

    “아, 긴장할 게 뭐있어. 정신차리자.”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긴장을 푸는 다이튼.

    그는 주먹을 쥐어올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주먹에서 손가락을 하나 빼 초인종을 눌렀다.

    마치 정권이라도 찌르는 것처럼 어색한 자세였지만, 다행인것은 밖에서 기묘한 자세를 취하고있는 그를 굳이 바라보고있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없다는 점일까.

    -띵동!

    조금 기다리니까 문이 열리고, 거기엔 편한 복장의 예르나가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그를 반겼다.

    “어머, 조금 일찍이네?”

    “아, 안녕, 예르나. 하하……. 이거, 일단 받아.”

    “이게 다 뭐야?”

    “빈손으로 오긴 뭐해서. 네가 좋아할만한 것들로 모아왔어.”

    “고마워, 얼른 들어와.”

    다이튼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

    “그……. 그랬구나…….”

    일요일에 러브레터를 쓴다등의 핑계로 어떻게든 예르나랑 데이트할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루크가 자해를 하는 장면을 들킨탓에 두근두근해야했던 데이트는 완전히 물 건너가고, 일정은 심각한 분위기의 육아상담으로 변해버린 탓이었다.

    어쩐지 아직 금요일인데 부르나 했다.

    ‘루크……. 나 도와주기로 한 거 아니었냐.’

    다이튼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겠어. 다이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음…….”

    다이튼은 사과를 깎으며 예르나의 말을 깊이 생각했다.

    솔직히, 예르나의 말만 들어보면 루크는 진짜 말도안되게 불쌍한 아이가 되어버린다.

    음, 실제로 불쌍한 녀석이기는 하지만, 그정도까지는 아닐텐데.

    “그래도 루크가 이유없이 자해를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긴 하지만, 정말 그었는걸.”

    하지만 자기 손목을 긋는 건 너무했다.

    예르나는 그 모습이 거의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듯 하다.

    그야 그렇겠지.

    다이튼 역시 동물원에서 잘 놀고 돌아와서 제 손목을 긋는 모습을 디아나에 대입해보면, 미쳐서 까무러칠 지경이 될 테니까.

    그렇지만 루크라면 그런 행위도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걔는 분명 그럴 것 같단 말이지.’

    다이튼이 곰곰히 떠올려봤을때 그랬다.

    요 며칠 디아나와 즐겁게 놀아주던 순간도 그렇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히죽히죽 웃는 것들도 그렇고.

    당장 그런 모습만 떠오르는데 갑자기 손목을 긋는다니.

    “뭔가 호기심같은게 생긴게 아닐까. 괜찮을거야.”

    “호기심때문에 손목을 그어? 근데, 그것뿐만이 아냐.”

    “또 뭘 했는데?”

    “저번에 백화점에 데려갔을 때 말이지.”

    예르나는 한숨을 쉬며 그 일이 있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봤다.

    ——–

    때는 루크가 손목을 긋기 훨씬 전, 집에 샴푸가 떨어져 백화점으로 갔을 때였다.

    생각보다 루크가 머리를 감는 걸 좋아해서 조금 더 좋은 샴푸를 둬야겠다는 생각에 예르나는 일부러 차를 운전해 조금 더 다양한 상품이 존재하는 곳으로 향했다.

    세레나가 운영한다는 백화점이다.

    게다가, 이전번에 세레나가 준 백화점상품권도 사용하고 싶었고.

    그동안 조그만 가게들은 자주 갔지만 백화점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루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을 빛내면서 감탄했다.

    “오……. 세레나가 이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었나……. 역시 세레나는 대상인이었나보군.”

    “가게가 아니라 백화점이야.”

    “백화점이라……. 그렇군!”

    그렇게 루크를 데리고 샴푸를 고르던 순간이었다.

    예르나는 샴푸들을 비교해보다가 루크에게 의견을 물었다.

    “루크, 넌 무슨 향기가 좋겠어?”

    “향기? 뭐, 딱히 선호하는 향은 없네만, 지금것보다 머릿결이 조금 더 부드럽게 오래 유지되는 그런 거면 좋겠군.”

    “그래? 음……. 그럼 이 마낼로가 함유된 샴푸가 좋으려나……. 아니면 젤핀? 도로네스? 고민되네…….”

    루크한테는 도로네스의 은은한 향기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점차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던 순간이었다.

    “오! 이건!”

    “왜? 뭔데 그러니?”

    예르나는 샴푸를 고르다 루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굳어버렸다.

    “이 칼날, 엄청난 예리도로군! 대체 샤프니스를 몇중첩이나 인챈트한게지? 대단해! 이정도의 칼날이 겨우 한묶음에 2000길밖에 하지 않다니, 정말 놀라워! 그렇지 않느냐, 예르나?”

    “그, 그건 면도날이잖아! 그거 당장 내려놔, 다쳐!”

    “예르나, 이거 한 묶음만 사면 안되나? 굉장히 흥미로운데.”

    “안돼! 쓸 데도 없잖아!”

    ———-

    그외에도, 괜히 칼날만 보면 관심을 보였던 장면이 떠올랐다.

    “루크가 그랬단 말야?”

    “그랬다니까, 그땐 몰랐지만……. 이렇게 되니까 자꾸 그런게 떠올라서…….”

    “흠…….”

    다이튼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건 그냥 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고보면 저번에도 그랬지 않던가.

    요리용 식칼에 눈을 초롱초롱뜨면서 칼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

    그걸 생각해보면 위험한가 싶지만 얼른 칼을 뺏고 껍질칼을 쥐어줬을때는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처럼 보였다.

    게다가 자신의 면도기에도 분명 큰 관심을 보였었고.

    ‘오, 그대는 이걸로 면도를 하는건가? 호오, 굉장한 칼날이야. 근데, 이건 대체 왜 날이 몇개씩이나 달린게냐?’

    아마 사실은 거의 모든 것에 신기해한 것이었지만, 이미 예르나에게 남아버린 기억이란 그런 것 뿐이어서 그런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 것이겠지.

    그런걸 보면 그건 그냥 칼보다는 호기심이 많은 여자애인게 아닌가싶기는 하다.

    “그냥 호기심이겠지. 걔도 아무렇지 않아했잖아?”

    다이튼의 감성으로는 루크가 손목을 그은 뒤에 순식간에 베인 상처를 회복했다는 부분이 더 신기했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솔직히 자신도 한번쯤 손목을 그어보지 않았을까?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해본다.

    원래 남자는 그런 생물이니까.

    물론 루크가 남자애라는 건 아니지만, 아마 비슷한 감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얘기다.

    루크가 정말 감정이 복받쳐서 손목을 그을 정도로 우울한 기색을 보인적이 없지않던가.

    “뭐, 그냥 자기회복능력같은걸 실험해보고 싶었던게 아닐까? 걔, 자기 몸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가…….”

    다이튼은 조금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입을 열었다.

    “예르나, 네가 루크를 많이 신경쓰는건 알겠어. 하지만, 나도 루크를 몇주간 돌본 입장에서 말하는 거야. 걔가 정말 그래서 손목을 그었을 것 같지는 않아.”

    “…….”

    다이튼은 깍아놓은 사과를 예르나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젠 안 한다고 했다며? 믿어줘야지, 그러면. 루크는 괜찮을거야.”

    “응…….”

    예르나는 사과 한 조각을 집어들고 입 안에 집어넣었다.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다.

    “고마워, 네 말은 위로가 좀 되네.”

    확실히, 이젠 더이상 루크가 자해를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옛날에 친했던 친구를 찾아서 그런가.

    그 뒤로 확실히 표정도 밝아졌고, 학교도 거부하지 않았고.

    ‘이제는 정말 괜찮을거야.’

    예르나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뭘. 그럼, 우리 일요일에 시간 아직 괜찮은거지?”

    “응. 일요일에 보자.”

    다이튼은 예르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냈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메리는 자리에 앉아서 실수로 용인의 피를 날려버린 탓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는 루크에게 살갑게 다가와 빵과 우유를 건넸다.

    “루크, 밥 안먹어서 배고프지? 빵이랑 우유 사왔어.”

    “아, 마침 배고팠는데. 정말 고맙구나.”

    “헤헤, 뭘…….”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는 메리, 루크는 그런 메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리도 배려심이 깊은 아이인지.’

    루크는 쉬는시간이 가기전에 얼른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빵을 뜯어 크게 한입 물었다.

    한입을 물자 터져나오는 크림이 달콤하다. 크림때문인지 조금 딱딱한 겉표면과 대비되는 촉촉한 속살이 씹는 맛도 더해주는 훌륭한 식감이다.

    그러나 아무리 촉촉하다한들 역시 빵이라서 그런지, 약간은 퍽퍽하고 막히는 감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유를 들이키니 말끔히 씻겨나가고 고소한 뒷맛만을 남겼다.

    꽤 행복한 느낌이다.

    역시 배가 고프기는 했던 모양인가보다.

    루크는 순식간에 먹어치울 기세였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식사매너를 지키려고 노력은 했다만, 제대로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최소한 소리는 내지 않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쉴새없이 입을 오물거리던 루크를 바라보던 메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맛있어? 헤헤, 다행이다.”

    “음…….”

    루크는 입가에 가득 들어찬 빵을 우유와 함께 넘기며 후우, 하는 소리를 냈다.

    “이 빵의 이름은 뭐지? 굉장히 맛있구나.”

    “그거? 메론빵이라고 해. 처음 먹어보는구나.”

    루크는 메리의 대답에 먹던 빵을 내려다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메론빵? 메론 맛은 안 났는데?”

    “이름은 그냥 그렇게 생겨서 그런거야!”

    “허. 꽤 직관적이군.”

    생긴대로 이름을 붙이다니, 그런데 이건 이렇게 생기도록 만든게 아닌가?

    어째서 굳이 그런 이름을.

    ‘실제로 메론이 들어가도 맛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빵을 다시 우물거리기 시작한 루크가 시루드의 시선을 느꼈다.

    옆자리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있는 시루드.

    그러나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시선을 피하는게 여전히도 부끄러움이 많구나 싶었다.

    루크는 먹던 빵을 내려다봤다가, 시루드의 시선을 봤다가 훗, 하고 웃으며 건넸다.

    “먹고싶어서 그런거면 이야기를 하지 그랬느냐. 나눠줬을텐데.”

    그러자 시루드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나, 나는 메론빵 못 먹는다고!”

    “어? 어째서지?”

    “거기엔 우유가 들어가잖아!”

    “아.”

    그러고보니 시루드는 하이엘프였다. 꽤 엘프의 특성을 진하게 물려받은 탓에, 예르나와는 달리 유제품마저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음, 미안하군. 내가 배려심이 부족했어.”

    “아니, 괜찮아.”

    루크는 책상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불쌍하구나, 이 맛있는 걸 먹지 못하다니.’

    굉장히 맛있는데, 이 맛을 평생 느낄 수 없단다. 

    예르나를 보면 요즘 엘프라고해도 유제품은 크게 문제되지 않던데말이다.

    루크는 그런 시루드가 안쓰러웠다.

    이 불쌍한 아이에게 한번이라도 비슷한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시루드, 그럼 내가 후에 너도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어주겠다.”

    “에, 아? 어? 아니, 그럴 필요는…….”

    “걱정 말거라, 내 어떻게든 우유 없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만들어볼테니.”

    “어? 어?”

    ‘이것도 꽤 재미있는 연구감이 되겠어.’

    당황하는 시루드를 보면서, 루크는 멈췄던 식사를 재개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 있던 메리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엄청 적극적이야! 멋있어!’

    좋아하는 남자애를 위해서 요리한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말일까!

    루크는 정말 남자애를 잘 아는게 분명했다.

    원래도 루크는 많이 적극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루크, 뭔가 멋져…….”

    “으, 응……? 그, 고맙……구나?”

    루크는 눈빛을 빛내는 메리의 시선을 넘기며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빵을 먹는게 그렇게 대단해보였나……? 아무래도 체통에 조금 더 신경써야겠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이튼의 예르나 멘탈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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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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