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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금화 1개…….

         

       예정된 금액을 확인하듯 진행자가 크래프트의 낙찰가를 입에 담았다.

         

       제국은행 측 신사숙녀들이 머리를 싸매며 절망했다.

         

       중진급의 누군가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회사 측 방향으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매케나스 백작의 멱살이 잡혔다.

         

       ―매케나스 백작!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와 얘기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금화 0개로 입찰을 포기하는 짓거리가 용납된다 생각합니까?!

       ―왜 이러시오, 점잖지 못하게.

         

       매케나스 백작이 중진의 손을 꺾듯이 돌려 멱살을 풀었다. 그리곤 연회장을 느긋이 둘러봤다. 신사숙녀들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툭 말했다.

         

       ―0 골드를 적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 않소?

         

       중진이 격분했다.

         

       ―상식적으로 그딴 게……! 우리 제국은행은 이 사안에 엄정 대응할 겁니다! 철도 부설권을 소유한 상단이 수의계약으론 상상도 못 할 푼돈으로 낙찰되는 게 정상 경매로 인정될 거 같습니까?! 담합은 원칙적으로 무효입니다!

         

       매케나스 백작이 멱살 잡혔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중진과 시선을 마주 보더니 삐뚜름한 비웃음이 입가에 맺혔다.

         

       ―감당할 수 있겠소?

         

       중진이 얼어붙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정적 속에서 작은 발소리가 여유롭게 울렸다. 중진이 그대로 굳은 채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담합이라뇨. 오해예요.

         

       분홍 머릿결이 숨 막힐 듯 일렁였다. 다가온 소녀는 다소 억울한 표정이었다.

         

       ―저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전혀 몰랐어요. 매케나스 백작님의 자금력에 반쯤 포기하며 적었던 건데, 설마 낙찰될 줄이야. 정말이지 놀라운 우연이에요.

         

       분홍 눈동자가 신사숙녀들을 둘러봤다. 눈동자가 부드럽게 눈웃음쳤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반박은 들려오지 않았다.

         

       제국은행 측 인원들이 시선을 피하고 고개 숙였다. 홀로 남겨진 중진의 표정이 변하고 식은땀이 점점 흘렀다.

         

       소녀가 다소 미안해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도 낙찰된 건 맞으니까…….

         

       주머니에서 금화가 꺼내졌다. 소녀는 중진의 떨리는 손을 곱게 펴더니 금화를 쥐여줬다.

         

       ―선불.

         

       중진의 손이 억지로 접히며 금화를 잡았다. 중진은 절망한 표정이 됐다.

         

       소녀는 싱긋 웃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연회들 즐기세요. 저는 너무 즐기면 혼나거든요.

         

       발걸음은 연회장 출구로 향했다.

         

       분홍색 잔상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

         

         

         

       “마셔야 하는가, 마시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파스텔은 연회장 밖의 정원을 발로 콩콩 뛰며 걸어갔다. 토끼처럼 촐랑촐랑 뛸 때마다 분홍 머릿결이 출렁였다.

         

       은발 소녀가 조용히 뒤따랐다.

         

       파스텔은 휘리릭 회전하더니 친구를 가리켰다.

         

       “앨시어! 마셔야 할까? 마시지 말아야 할까?”

         

       앨시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뭘?”

       “와인!”

         

       파스텔은 정원 테이블에 대놓고 있는 와인병을 가리켰다. 치즈와 비스킷도 간단히 있었다.

         

       “우와! 우와아!”

         

       반항아라면 지나치지 말아야 할 구성!

         

       하지만 완전 착한 파스텔이라면 꾹 참고 지나칠 구성이었다.

         

       허억.

         

       나 완전 착한 파스텔인데 그냥 지나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럴 수가아.

         

       나 왜 완전 착한 파스텔이지?

         

       오늘부터 완전 안 착한 파스텔로 변신할까?

         

       “상하기라도 했어?”

         

       앨시어가 와인병을 들었다. 유리잔에 따르더니 한 모금 마셨다.

         

       오잉, 막힘없는 행동.

         

       앨시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 상했는데.”

         

       파스텔은 다소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거 맞나?

         

       사실 앨시어는 불량아?

         

       아니 지난번 매물 설명회 때도 멜리사나 엘리가 별 거리낌 없이 마시긴 했지만.

         

       허억.

         

       그럼 나만 빼고 모두 불량아?

         

       “파스텔만 착했던 거야?!”

         

       분홍 눈동자가 충격으로 동그래졌다.

         

       어쩐지 자꾸 억울한 상황이 생기더라!

         

       여긴 선악 역전의 세계였던 거야……!

         

       “어쩐지! 어쩐지!”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억울하더라!

         

       파스텔은 드디어 깨달아 버렸다.

         

       자신은 완전 착한 파스텔인데 세상이 잘못된 거였다. 잘못된 세상에 올곧게 맞서는 분홍색 소녀.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핑크핑크가 자신이었던 것이다.

         

       “뭐가 어쩐지야?”

         

       앨시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잔에 와인을 따르더니 스스럼없이 건네줬다.

         

       “헛!”

         

       파스텔은 흠칫 놀라며 한 발자국 떨어졌다. 손바닥을 펼치며 와인잔을 경계했다.

         

       “난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잘못된 세상에서 순수성을 증명할 방법은 오직 때묻지 않은 도덕관념의 구현뿐이라구! 그것이 핑크핑크로 태어난 자의 사명인 거야!”

         

       아자아자!

         

       앨시어가 어리둥절해했다.

         

       “무슨 소리야.”

         

       와인잔이 들이밀어졌다.

         

       “허엇!”

         

       파스텔은 후다닥 떨어졌다.

         

       “너어! 내 마음을 더럽히기 위해 이런 짓도 하는구나! 그렇게 안 봤는데에!”

         

       배신감……!

         

       방금 와인을 받았으면 슈퍼 울트라 어쩌구저쩌구 효과로 마음이 타락했을 거야!

         

       당장 저 와인을 봐봐!

         

       완전 보랏빛!

         

       보라 그 자체!

         

       파스텔은 친구를 삿대질했다.

         

       “완전 악마!”

         

       어쩐지 머리카락이 은색이더라!

         

       사악한 존재는 사악하지 않은 외형을 하고 다가온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어!

         

       “난 절대 안 마셔!”

         

       머리를 좌우를 흔들었다. 조금 양갈래로 묶은 분홍 머리카락이 파닥였다.

         

       “절대 절대 안 마셔!”

         

       앨시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 와인은 원샷하더니 파스텔에게 주려던 와인은 그냥 자기가 마셨다.

         

       “그러던가.”

         

       와아!

         

       “파스텔의 승리!”

         

       만세! 만세!

         

       파스텔은 폴짝폴짝 뛰었다. 분홍 머리카락이 출렁였다.

         

       그러다 머릿결 일부가 와인잔에 퐁당 담가졌다.

         

       퐁당.

         

       “아.”

         

       앨시어가 동동 떠다니는 분홍 실타래를 바라봤다. 표정이 멍해졌다.

         

       “아앗?!”

         

       파스텔은 충격에 굳었다.

         

       “내 머리카락……!”

         

       서둘러 건져내자 보라색으로 얼룩진 머리카락이 힘없게 들렸다. 와인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으아아!

         

       “진짜 보라색이 됐어어!”

         

       우아앙!

         

       파스텔은 울상으로 변했다.

         

       생애 딱 한 번뿐인 기회가 이런 식으로 낭비되다니.

         

       타락의 순간은 악마님이 목도해야 짜릿할 텐데……!

         

       익숙한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여기 있었나. 경매는 벌써 끝난 건가? 연회가 남았을 텐데 용케 바로 빠져나왔군.』

         

       마중 나온 악마가 다가왔다.

         

       “악마니임!”

         

       파스텔은 후다닥 달려갔다. 울상인 표정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보여줬다.

         

       “이거 보세요!”

         

       으아앙!

         

       와인 방울이 떨어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악마의 미간이 좁혀졌다.

         

       『설마 마신 건가?』

       “그릴 리가요! 완전 착한 파스텔은 그런 나쁜 짓은 안 한다구요!”

         

       진짜임!

         

       『흠.』

         

       악마가 미심쩍게 응시했다. 파스텔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더니 아무리 그래도 취한 모습은 아니라 생각했는지 믿어줬다.

         

       『기다려 봐라. 끈적해지기 전에 어서 닦는 게 좋겠군.』

         

       악마가 손수건을 꺼내려는 듯 품에 손을 넣었다.

         

       파스텔은 그걸 지켜보다가 젖은 머릿결을 바라봤다.

         

       끈적끈적?

         

       당분당분.

         

       설탕설탕.

         

       분홍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머리카락을 입에 넣었다.

         

       냠.

         

       우물우물.

         

       손수건을 꺼낸 악마가 멈칫했다. 붉은 눈동자가 당혹스러워했다.

         

       『그걸 왜 먹는 거냐.』

         

       우물우물.

         

       파스텔은 무시하고 맛을 음미하다가 점점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써.

         

       써어.

         

       “완전 써어!”

         

       쓴맛이 혀를 괴롭혔다.

         

       “에퉤퉤!”

         

       파스텔은 서둘러 머리카락을 뱉었다. 여러 의미로 깔끔하지만 더 축축해진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악마님 사기꾼! 당분당분 끈적끈적은 있지도 않잖아요! 완전 맛없어요!”

         

       이거 왜 먹음?

         

       커피나 찻물은 맛없긴 해도 각성 효과로 생산성을 높여주지만 이건 맛없는 주제에 생산성 하락까지 동반하잖아!

         

       와인 친구!

         

       미안하지만 넌 친구 리스트에서 없어져야 할 거 같아!

         

       친구인 적도 없지만!

         

       『아니 그걸 왜 먹는 거냐.』

         

       악마가 당혹스러워했다. 머뭇거리다가 침 묻은 머리카락을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런 맛 없는 건 말도 안 돼! 위대한 파스텔 각하로서 시행령을 내려야겠어요! 앞으로 하늘섬의 모든 와인은 포도 주스만큼 달지 않으면 판매 금지예요!”

       『이상한 폭거를 계획하지 마라.』

       “그러면그러면! 범위를 축소해서 최소한 학생회 일원은 마시지 못하게 해야겠어요!”

         

       맞아맞아!

         

       이런 맛도 없는 생산성 하락은 위대한 파스텔 각하로서 용납 불가능!

         

       내 수족이라면 업무 중엔 딴짓 안 하고 일에 집중해야 해!

         

       “이런 음용이 습관화되면 본인이 취한 상태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일하게 된다구요! 무생물과 인사하고 대화도 나누며 나사 하나 빠진 채로 지내는 거죠!”

         

       절대절대 용납 불가능!

         

       악마가 묘하게 바라봤다.

         

       『그건 네 평소 상태군.』

         

       허억.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럼.

         

       『설마?』

         

       악마가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파스텔은 급격히 억울해졌다.

         

       “아니에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무슨 내용이든 아니에요! 지나가던 구름 친구! 내 결백을 증언해줘!”

       『호오. 저 구름 친구 덕분에 네 신뢰가 대폭 하락했다. 증인을 잘못 구했군.』

       “그럴 수가아!”

         

       털썩.

         

       파스텔이 주저앉아 절망했다.

         

       그곳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앨시어는 여전히 와인잔을 내려봤다.

         

       보랏빛 액체에 분홍 머리카락 한 가닥이 동동 떠다녔다. 미쳐 구조되지 못 한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이 인사했다.

         

       ―안녕!

         

       앨시어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알딸딸한 정신으로 심각하게 고심하다가 슬쩍 대답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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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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