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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

        

        

        이반은 무료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수많은 눈동자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교탁에 섰다.

        

        마족의 생태 강의와 겹치는 인원이 제법 많았다. 5학점짜리 선택 교양 과목으로 한 학기를 편하게 보낼 작정인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의지 같은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교육과정은 ‘보통교육’을 추구한다. 학생의 질과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이 미개한 세상에도 현대 문명의 아름다운 문화를 전파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구 대표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다.

        

        

        “너희는 이번 수업에서 생존술에 대해 익힐 것이다.”

        

        

        그는 움찔 떠는 몇몇 학생들(여름방학 캠프 참가자들이었다.)을 힐끗거리며 말을 이었다.

        

        

        “생존술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포기’라고 할 수 있다. 생존에 직결되는 것들을 선택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이반은 뒤를 돌아 칠판에 판서를 시작했다.

        

       -자원, 신체, 전우.

        

        

        “적대적인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개인은 생존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차례로 포기해야 한다. 자원, 지금 소지하고 있는 물건들.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남겨두고,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며 안전 지역을 찾는다.”

        

        “신체. 모든 자원을 소모했을 때 비로소 소모할 수 있는 마지막 개인 자산이다. 사실상 가장 마지막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전우. 사지가 온전한 개인보다 신체에 결손이 있는 다수가 생존에 보다 더 유리하다. 생존을 하나의 과업이라 가정할 때, 모든 업무는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반은 칠판을 등지며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의 표정이 약간 질려 있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생존술’이니 ‘전우’니 하는 단어들은 당연히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후일을 생각해본다면 반드시 필요한 수업이다.

        

        이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난 전쟁에서, 마족령에 진입한 병사의 평균 생존 시간은 17분이었다. 너희는 이 수업을 통해 그 17분을 어떻게 17일로 바꿀 수 있을지 배울 것이다. 질문 있나?”

        

        

        좌중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대체로 하나 같았다.

        

        이 수업 진짜 들어야 하나?

        

        하지만 5학점에… 교양이고… PF학점제는 너무 매력적인데….

        

        

        “질문이 없다면 강의설명은 이걸로 끝내겠다. 다음주 수업엔 활동이 용이한 복장을 하고 오도록.”

        

        

        이반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면면을 차분하게 훑었다.

        

        

        ‘첫 강의와 겹치는 인원은 47명.’

        

        

       *

        

        

        [인체 구조와 마력]

        

        

        이반은 판서를 마치고 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엔 마법사도, 기사도, 사제도 있으니 마력에 대해 부연하지 않겠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원은 이 수업을 수강해선 안 된다.”

        

        

        이반은 미대와 음대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이 자리의 거의 모두는 귀족이며, 마력 운용은 귀족들의 기초 소양에 불과했으므로 반발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람의 육체는 골격, 근육, 골격근을 잇는 힘줄, 신경망과 혈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충분한 훈련을 거친다면, 이 모든 구성 요소들에 각각 다른 작용의 마력을 흘려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는 간단하게 도식화된 팔뚝을 칠판 위에 그렸다.

        

        

        “마력은 이용 방식에 따라서 이 모든 종류의 구성 요소를 대체할 수 있다. 가령 근육이 끊어져도, 골격이 파괴되어도, 신경이 부전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마력의 조율로 신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학생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미개한 전근대 사회에선 해부학이란 개념이 거의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너희는 이 수업에서 신체 각부를 마력으로 대체해 활용하는 방식을 배울 것이다. 골절부터 신경 손상,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심정지 상태에서의 자기구제가 가능해질 때까지.”

        “심…정지…?”

        

        

        한 학생이 멍하니 탄식했다.

        

        

        “이 수업에 이론은 오직 실습을 통한 체화에서 보충한다. 인체 구조도를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편이 더 습득에 도움이 되니까. 이 수업이 진행되는 5개월이 지난 후에 너희는 팔다리가 부러져도 전투를 지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거세어졌다. 이거 미친 놈 아니야? 하며.

        

        이반은 그런 사소한 잡음 따위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강하지 않을 인원들은 빠져주면 좋다. 가르침의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으므로.

        

        그리고, ‘의심군’이 줄어드는 것은 이번 작전에 도움이 된다.

        

        

        “질문 있나?”

        “그… 실습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나요?”

        “좋은 질문이군.”

        

        

        이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올린 학생을 바라보았다. 왜소한 체구의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벌벌 떨며 이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증된 약물을 통해 특정 부위의 감각을 통제하고, 마력을 통해 다시 기능하도록 훈련한다. 모든 과정엔 성녀가 배석할 예정이며, 후유증이 남지 않는 약물만을 활용할 것이다.”

        

        

        완전히 안전하며 심지어 유익하다. 이반은 내심 문명인으로써 자랑스러워졌다. 21세기에선 학생들의 안전까지 고려하며 수업 커리큘럼을 짜는 것이 상식이었던 탓이다.

        

        판타지 세상 학생들은 지구의 체계적인 교육 과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진짜 미친놈 아니야?”

        “이 수업 어쩌지? 그냥 드랍해?”

        “그래도, 출석만 하면 5학점인데….”

        “사제는 뭘 하지? 저 놈 저거 안 잡아가고.”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질문이 없다면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음주에 보지. 오른팔부터 시작할 예정이니 소매를 걷기 쉬운 옷차림을 하고 오도록. 예브게니 노비코프 카람진. 교수실로 따라오도록.”

        “네, 네 형… 아, 아니. 교수님?!”

        

        

        이반이 강의실을 떠나자마자 학생들 사이에선 혼란이 폭발했다.

        

        

       *

        

        

        지난 ‘칼리온 공중전함’ 사태 당시 이후로, 이반은 얀스크 대학의 모든 재학생 인적사항을 외우고 있었다.

        

        따라서 출결 확인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각 수업에 수강을 신청한 인명과 착석한 이들의 인적사항을 훑어본다면 불참 인원을 역산해내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세 수업에 공통적으로 수강한 인원은 23명 안팎인가.’

        

        

        수강신청자 명단을 훑으며, 이반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굳이 세 개의 과목을 개설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특정 집단 내에서 ‘의심군’을 산출하기 위해선 최소한 세 개의 분류지표가 필요했던 탓이다.

        

        아카데미 주인공들의 수업 내엔 반드시 마족 또는 마족 프락치가 잠입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주인공들의 수업이 항상 테러에 휘말리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애초에 강의실에 첩자가 앉아 있는 것이다.

        

        한 강의당 5학점씩, 총 3개 강의를 준비하는 것은 보상에 비하면 대단할 것도 없는 노력에 불과했다.

        

        헤르미온느조차도 초등학생 시절부터 해왔던 일의 강사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이 세상엔 아쉽게도 타임 터너가 없는 탓에 이반은 보다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여가 시간(수면 시간을 포함한)을 극단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생존술의 기본기라고 하겠다. ‘선택과 집중’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 결과로, 이반은 마침내 주인공들을 한 자리에 모두 몰아넣어 완벽한 트랩을 설계해 낼 수 있었다.

        

        

        ‘이자벨, 오스칼, 엘피헤라, 에시디스.’

        

        

        세 개의 과목에 모두 이 학생들을 앉혀놓는 데에 성공했다.

        

        수업의 내용을 지난 방학 수련회와 동일하게 구성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 학생들에게 이반의 수업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미 경험해본 이상 어려울 것 없는 수업이, 심지어 총 15학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대학교 1학년생은 결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김선우의 입장이다.)

        

        그리고.

        

        

        ‘유진, 오스왈드, 유리.’

        

        

        이 셋을 같은 수업에 몰아넣는 것도 어려울 것 없다. 이쪽은 그냥 명령하면 그만이었으니. (개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이토록 유용한 수업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 각자 다른 학부 출신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조건이라면 무조건 마족 프락치가 잠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테니까.

        

        그런 수업이 세 과목이다. 두 과목 사이에서 겹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선택 교양 과목 세 개에 동시에 겹치는 인원은 반드시 의심스럽기 마련이다.

        

        허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에 다소 겁을 주고,

        

        그러나 동시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모두를 ‘쓸모 있을 수준의 훈련 상태’로 만들기 위해 강의 계획표를 짜두었다.

        

        전쟁이나 특수 상황이 터졌을 경우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력 손실로 ‘아카데미 상식 이벤트’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자고로 훈련된 요원이라면 한 번에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작전을 수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리다.

        

        그리고.

        

        

        “저 녀석은?”

        “인간입니다, 형님!”

        “음.”

        

        

        이쪽엔 종족판별 치트키, 상태창이 있다.

        

        유진은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비열하게 웃었다.

        

        

        “저는 그럼 실습에서 빼주시는 것 맞죠?”

        “그런 약속을 했던가?”

        “엑.”

        

        

       

       Ep17. 머글 출신 마법사식 학점관리법.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카데미 학부생과 교직원 중엔 배신자가 있다.’
    ‘아카데미엔 마족 지지자나 마족 본인이 반드시 숨어든다.’

    Ep3. 아카데미 입학열차에선 반드시 테러가 일어난다. (1)

    ‘이반은 학부생, 교직원, 그리고 대학과 연관된 각국 귀빈과 학생 각자의 가족까지 총원 2429명의 인적사항을 외우고 있다.’

    Ep6. 입학 첫날에 상태창이 열렸다. (3)

    ‘상태창은 유진이 지금 시점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을 보여준다.’
    ‘유진은 첩보를 위해 태어났다.’
    ‘유진은 학교 한정으로 스파이 색출에 특화되어 있다.’

    Ep8. 별 헤는 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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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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