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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원더스타인이 주먹을 내뻗은 방향으로 수십 미터 길이의 파인 자국이 형성되었다.

       그 길을 따라 흙먼지가 연기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길의 끝에는 방금까지만 해도 없던 바위산이 있었다.

       그곳은 원래 언덕 경사면을 따라 절벽이 있던 자리였다.

       그것이 단 한 번의 충격으로 박살이 나버렸다.

         

       대포를 몇 번 쏴야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한 사람의 주먹질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엘라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덕분에 새삼 깨닫게 됐다.

       고향에 남은 스승님과 친구들의 목숨을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거두어갈 수 있다는 협박은 결코 빈 말이 아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그에게 얻어맞은 사신 본인이었다.

         

       그는 바위 무더기에 깔린 채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뼈 몇 군데가 부러진 것 외에는 큰 상처가 없었다.

         

       맞기 직전에 등에 있는 검은 날개를 사용해 몸을 보호한 덕분이었다.

         

       “무슨 인간 따위가 이런 힘을…….”

         

       그가 허공에 손짓하자 그의 몸을 짓누르던 바위들이 둥실 떠올랐다.

         

       무너진 절벽을 헤치고 나간 그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검은 옷의 남자를 마주했다.

       그는 겉보기에는 다른 인간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사신은 더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가 보인 힘을 생각하면 그의 몸은 이미 인간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사신의 손에 낫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낫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지금이 사신을 처치할 좋은 기회였다.

       신체 능력은 자신이 우위를 점한 상태이지만, 상대가 낫을 사용하면 승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승부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그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힘은 영구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유라크네가 타준 차를 마신 덕분에 1시간 동안 능력치가 도핑된 것이었다.

         

       현재 그의 3대 기초능력치는 전부 2배로 증가한 상태였다.

       말이 쉬워 2배지, 정석대로 포인트를 투자해서 올리려면, 1만이 넘는 데볼루트가 필요했다.

         

       어마어마한 능력치 뻥튀기였다.

       유라크네의 호감도 15 보상은 조건이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 위력 하나는 절륜했다.

         

       “끼아악!”

         

       사신은 다시 원더스타인에게 달려들었다.

       그 외침은 불과 몇 분 전보다 훨씬 처절하게 들렸다.

         

       원더스타인 역시 땅을 박차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강화된 근육은 공격력뿐만 아니라 속도도 증가시켰다.

         

         

       -근육 강도: 6.0 (+6.0 유라크네의 정성) (시리얼 먹은 호랑이->빙하 타고 내려온 티렉스)

         

         

       상태창에 떠오른 수식어를 본 순간, 원더스타인은 어릴 때 본 국산 영화가 떠올랐다.

         

       외계인에 의해 초능력이 심어진 티라노사우르스가 주인공이었다.

       그가 빙하 속에서 깨어나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리자, 정부에 의해 비밀리에 사육되어 군사 훈련을 받은 고릴라 여단이 투입되어 싸우는 내용이었다.

         

       사신의 품 안으로 파고든 그는 영화 주인공의 대표적인 기술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내찔렀다.

       호이.

         

       콰드득.

       그의 손가락에 걸린 사신의 허벅지 근육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신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히죽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허벅지는 그가 일부러 내비친 허점이었다.

       다리를 내주고 상대의 팔을 묶어놓은 다음, 자신의 손톱으로 공격하려는 속셈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힘을 증폭시켰는지는 몰라도, 그래봤자 생물의 범주에 들었다.

       강철도 베어내는 그의 손톱에 걸리면 그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톱이 원더스타인의 등을 베어 들어갔다.

       공격은 적중했다.

         

       사신이 웃음을 터뜨리려는 순간.

       우드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신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서 난 소리였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손톱이……

       그의 종족의 자랑거리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원더스타인은 그것을 보고 씩 웃었다.

       어지간히 단단해야 말이지.

         

         

       -조직 경도: 6.0 (+6.0 유라크네의 정성) (방탄유리->다이아몬드 장갑차)

         

         

       눈으로 봤음에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손톱이 인간의 피부 따위를 뚫지 못하다니.

         

       부정하고 싶었지만,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얼얼한 충격은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의 피부는 자신의 손톱보다 단단했다.

         

       “믿을 수……없습니다……. 이 무슨…….”

         

       사신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원더스타인은 그를 향해 밉살맞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후, 제 등을 긁어주시려면 조금 더 단단한 것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원더스타인의 비웃음에 사신은 이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는 허세를 피우는 것도 속임수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오만을 떨어도 될 정도의 강자였다.

         

       가슴 한구석에 패배감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그때, 사신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어떤 신호를 느꼈다.

         

       저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기.

       사신의 낫.

       그것이 마신 카이랄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보통의 물리력으로는 저 인간에게 상처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신의 낫이라면 어떨까?

         

       그것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모든 물질을 절삭할 수 있었다.

       설사 용의 뼈라고 해도 말이다.

         

       사신은 땅을 박차고 자신의 무기를 향해 날았다.

       원더스타인이 그 뒤를 쫓았다.

         

       속도는 사신이 더 빨랐다.

       원더스타인이 아무리 힘을 강화했다지만 근육의 구조 자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것 그대로였다.

         

       짐승의 뒷다리로 웅크렸다 뛰는 폭발력은 사신이 우세했다.

         

       그는 사신의 낫을 집은 즉시 마력을 불어넣었다.

       웅 하는 떨림이 자루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그것을 다가오는 원더스타인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먹혔다.

       사신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그의 낫이 저 괴물 인간의 팔을 잘라낸 것이다.

         

       “끼르르, 어떠신가요? 사신의 낫에 베인 기분은?”

         

       원더스타인은 충격에 몸을 비틀거렸다.

       사신의 낫이 가지는 공격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게임에서 ‘방어불능’의 공격을 한다는 수식어는 방어도에 상관없는 ‘고정 피해’로 해석되었는데, 여기서는 정말로 방어가 불가능한 공격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은 피해 그 자체가 아니었다.

       팔 따위는 데볼루트를 지급하면 얼마든지 새로 뽑아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세포 재생력: 6.0 (+6.0 유라크네의 정성) (비 온 뒤의 잡초밭->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콩나물)

         

         

       그의 팔이 잘린 자리에 뼈가 죽순처럼 솟아나고 근육들이 면발처럼 뒤엉키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엘라와 사신은 넋이 빠져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잘렸던 팔은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엘라는 퇴마사 두 사람을 봤을 때, 순간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에게 부탁해서 원더스타인을 물리쳐달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더스타인은 팔이 자라나는 동안 같은 자리에 서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그의 입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어떤 상실감이 비치는 듯했다.

         

       “사신.”

         

       그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덕분에 몇 가지를 잃었습니다.”

         

       원더스타인은 상태창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신의 낫에 베이는 순간, 그가 모아온 것들이 일부 소멸했다.

         

         

       [사신의 낫에 베인 대가로 기억보다 경험치가 우선 공제됩니다. {다시 보지 않기 (X)}]

       [데볼루트 –180]

         

       남은 데볼루트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의 낫에 베이는 순간 뭔가 부정적인 기억들이 가슴에서 꿈틀거렸는데, 데볼루트들이 쑥 빠져나가면서 그런 증세가 바로 사라졌다.

         

       사신의 낫은 게임에 나온 설정대로 우울함을 심고 행복을 뺏는 것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시스템의 힘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경험치로 대납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상당히 우울한 소식이었기에 사신의 낫은 원래의 효과도 조금은 발휘한 택이 되었다.

         

       “끼끼끼! 효과가 있군요!”

         

       사신은 원더스타인의 말하는 것을 듣고, 또, 그의 분위기가 변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상대의 무지막지한 회복력에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공격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절삭도 제대로 먹혔고, 기억 흡수도 제대로 작동했다.

         

       “끼르르! 그럼 계속해봅시다!”

         

       사신은 신이 나서 원더스타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몇 차례 공방을 더 주고 받았다.

         

       그동안 사신은 상대의 약점을 알아차렸다.

       상대는 전투경험이 거의 없었다.

       동작은 완벽했지만, 기술을 내놓는 타이밍이나 대처 능력에서 자주 허점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속임수인가 했지만, 몇 번 사신의 낫에 베이고도 쩔쩔매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원더스타인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스킬북’에 데볼루트를 써서 ‘격투기’를 등록했다.

       그것 덕분에 그는 완벽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싸움이라는 것은 기술과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것은 현실의 격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샌드백에 완벽한 원투를 못 하는 프로 복서는 없었다.

       랭킹 하위권 선수도 미트치기에서 신들린 위빙을 보이는 일이 흔했다.

         

       다만, 링에 오르면 그 모든 것이 순간순간의 판단으로 결과가 나오는 수싸움이 되었다.

         

       기술이 완벽해봤자 허초와 실초를 구분 못하는 판단력과 수를 머리로 계산하려 드는 0.1초의 머뭇거림이 공방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몇 번의 공격 허용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사신의 낫에 베인 대가로 기억보다 경험치가 우선 공제됩니다. {다시 보지 않기 (X)}]

       [세포 재생력: 6.0->5.0]

         

         

       데볼루트 대부분이 털렸다.

       최대 수용량도 반토막이 났다.

       ‘손바닥 입’도 소멸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초 능력치에도 손상이 가고 말았다.

         

       사신 역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끼르르! 어떻게 된 거죠? 회복이 상당히 늦어졌군요! 체력이 소진되고 있는 건가요?”

         

       사신은 자신이 휘두르는 낫이 그의 능력치를 깎는다는 것을 몰랐다.

         

       상대의 호감도나 서커스단의 명성을 감지한다는 것부터가 시스템은 이 세계 주민들의 인지를 초월한 형태로 작동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30분 넘게 이어지던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원더스타인과 사신은 서로를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절 이길 생각입니까? 분명 몇 번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시군요.”

         

       사신의 조롱에 원더스타인은 대꾸할 수 없다.

       확실히 사신의 낫에 맞는 걸 각오했다면, 그에게도 반격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살을 취하기 위해 뼈를 내주는 선택지였다.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회피를 우선해야 했고, 덕분에 기회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사신 입장에서는 그것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신의 낫의 능력에 겁먹은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하긴 종종 있었다. 용사들 중에도 타고난 힘에 비해 정신적으로 나약한 자들이.

         

       “그렇게 아깝습니까?”

       “지난 몇 달간 힘겹게 쌓아온 것들을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지요.”

       “상당히 소중한 것들인가 보군요.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죽음을 결정지을 겁니다.”

         

       멀리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엘라의 귀에도 둘의 대화가 들렸다.

         

       몇 달간 힘겹게 쌓아온……

       ……소중한 것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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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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