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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39층의 술집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증명의 층에 있는 어느 건물을 들어가도 의자 갯수보다 사람 수가 더 많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천변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목에 이렇게 많은 마법사가 몰린다는 것은 중층에서 활동하는 공략대에게 호재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최근 공략에 성공한 실프 공략대의 참모 마가렛은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완전 호황 그 자체에요! 주딱의 한 마디에 지금까지 미적거렸던 마법사들이 죄다 위로 올라가려 하고 있다니까요?”

       

        점심 시간, 안경을 치켜올리며 급하게 들어온 그녀는 내 앞자리에 앉자마자 운을 땠다.

        다른 좌석보다 유독 널찍한 이 룸도 마가렛이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에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가입 문의는 쇄도하지, 등반 관련 장비나 마도서가 죄다 품절이라 공방도 24시간 불이 켜져있지, 이러다 조만간 진짜로 탑 꼭대기에 깃발을 꽂는 공략대가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정말인가요?”

        “당연하죠! 탑주가 재립했다며 대륙의 모든 신문이 떠들고 있다고요! 아마 이번 시기를 놓치면 향후 백년 간은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죠.”

       

        흠, 그 정돈가?

        현실적으로 근시일 내에 최상층의 공략대 중 하나가 탑을 정복하는데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애초에 그들은 내가 세계선에서 릭트쇼를 하기 전부터 죽어라 공략만 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바쁜 마가렛이 이렇게 비싼 식당을 예약해 내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내가 실프 공략대에 들어와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클락 씨는 어떠세요? 이제 기억도 되찾았으니 저희랑 같이 가신다면 상층까지 최대한 지원을…….”

        “으음,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쉬고 싶네요.”

        “네? 어째서 인가요?”

        “최근에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나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벽에 세워놓은 창과 똑같은 각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접시에 깔려 나온 생선 대가리와 아이컨택 하는건 덤이었다.

       

        “그저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무한경쟁이라니, 이건 우리 사회가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그런가요?”

        “진정으로 마법의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라면 등반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되죠. 계층지기들에게 돈 주고 시련을 건너뛰면 뭐합니까? 5위계 마법만 써보라 해도 쩔쩔매는 이들이 태반인데. 그래서는 신비를 손에 넣기는 커녕 신비로부터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탑을 올라가고 싶다면 급행 티켓이라도 구하면 되는 거라고요.”

        “아하하, 계층지기를 만나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보통 그들은 돈 같은 건 받지 않지만요…….”

       

        생선살을 한 점 입에 넣은 마가렛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지금은 위계를 높이는 데 더 집중하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 사업도 하려고 합니다.”

        “사업이요?”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익명의 단체로부터 청사진을 구체화할 수 있는 ‘핵심기술’을 전수받아 추진해보는 중입니다.”

       

        그 청사진이란 얼음정수기 하부에 정맥인식기를 설치함으로써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의 복사뼈 사진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는 중요한 개인정보 보호 위반(성추행)으로 적발 시 30년 이하의 대학원형에 처할 수도 있지만 전지를 향한 나의 뜨거운 열망은 고작 체제에 굴복할 정도로 나약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정수기에 이런 기능을 탑재할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내겐 마녀들로부터 받은 얼음정수기가 있었다.

        새벽에 라면도 끓여주는 그 마도구를 역설계하여 모든 정수기에 적용시킬수만 있다면 ‘현재 마탑에서 가장 주목받는 복사뼈 랭킹!’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흠, 클락 씨가 하시는 사업이라면 저희 쪽에서도 흥미가 돋는데요. 혹시 투자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원하신다면 끼워드릴 수는 있습니다.”

        “어째 말씀하시는 게 거짓은 아닌 것 같네요…….”

        “제가 이래 보여도 재물운이 있어서요.”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태연하게 진행할 수 있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오직 돈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모험가 시절부터 모아왔던 골드와 여러 부산물, 기숙사 사감의 급료, 마리엘에게 심심해서 뜯어낸 돈 뿐 아니라 대학원 시절 칼레이도스 학파에게 받은 경매금과 치안부에서 누명을 쓴 값으로 받아낸 보상금까지.

        지금의 나는 어지간한 지방 하급 귀족가문의 2년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물론 공략대의 투자를 받으면 새롭게 제작될 ‘얼음복사에너지정수기’를 1층 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설치할 수 있었으니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저희 사업부 쪽에 전달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보세요.”

        “그럼 당장은 마법 연습과 사업 준비로 인해 등반할 계획이 없으신 걸로…… 다른 이유는 또 없으시죠?”

       

        까각, 까각, 까가각-.

       

        “응? 클락 씨, 저 검이…….”

        “아, 신경쓰지 마세요. 요즘 좀 기분이 안 좋나 보네요.”

       

        나는 바닥을 긁기 시작한 살살이를 검집에 억지로 밀어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이유 따위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로요.”

       

       

       

        *

       

        자유.

        인간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행복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그치만 살살이 넌 사람 아니잖아.

        공역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자신의 본체를 꺼내달라고 시위하는데 별로 내키지 않았다.

       

        “살살아, 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내가 언제 안 고쳐준다고 했니? 요즘 갤러리 사정이 어려워서 그래. 분탕도 많고 저번에 세계선 나가서 파딱들이랑 회식할 때도 죄다 법인카드로 결제했단 말이야.”

        — ㅇㅏ드득 ㄲㅏ드득 ㄲㅏ드득……!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너 돌 돼서 시간 흐른다고 썩지도 않을 텐데 정수기 사업부터 끝내고 가도 안 늦는다니까? 아까 마가렛 말 못 들었어? 마탑 물가가 죄다 올랐는데 무턱대고 사람으로 돌아오면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우리 딱 30년만 더 일하자, 나중에 토비가 은퇴할 때쯤에 같이…….”

        — ㅋㅣㅅㅑ아아ㅇㅏ아!!!

       

        순수하게 녀석이 걱정되는 마음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갖자고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다.

        살살이는 완전히 고장나버린 것처럼 이상한 괴성을 지르는 것도 모자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갤러리에 도배까지 시작했다.

       

        ====

        [주ㄷ닥에게 감금당하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주ㄷ닥에게 감금당하고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주ㄷ닥에게 감금당하고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주ㄷ닥에게 감금당하고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

        ====

       

        하는 수 없군.

        나는 이쯤에서 한 수 접어주기로 했다.

       

        “그래그래, 알겠어. 네 말대로 일단 공역으로 가자. ”

        — 진ㅈㅈㅏ?

        “안 그래도 거래처와 미팅이 있어서 한 번 올라가 보려고 했고 마가렛에게 부탁하면 더 쉽게 갈 수 있겠지. 근데 너도 알다시피 지금 내 해주 실력으로 석상에 걸린 저주를 풀 수 있을지는 미지수…….”

       

        스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리나의 연락처를 내미는 녀석.

        나는 떨떠름하게 위치노트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확실히 저주에 대해서라면 선배인 그녀만큼 스페셜리스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프리나는 나와 거의 비슷하게 중층에 올라온 참이고, 무엇보다 그녀가 지금 등반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선배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혹시 지금 등반 중이세요?

        — 프리나나나아님 : 아니

        — 프리나나나아님 : 중층에 사람 너무 많아서 당분간 안 하려고

        ====

       

        이럴 줄 알았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개추가면단, 아니 황금별의 탄생과 함께 주딱이 세계선에 모습을 드러내어 대등반시대가 열린 현재.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프리나가 개나소나 탑을 오르려는 모습을 보며 입밖으로 낼 말은 뻔했다.

       

        ====

        — 프리나나나아님 : 인싸 놈들 평소에는 30층 위로는 성신제 같은 행사 있을 때나 올라오면서 이젠 중층이 무슨 지들 데이트 코스인줄 안다니까?

        — 프리나나나아님 : 누구는 공략대 같은 거 안 들고 학파에서 도움 하나 안 받으면서 꾸준히 정진해서 올라온 건데

        — 프리나나나아님 : 하필 공역 결계가 풀리는 시기라 내수 진작이랑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재무부에서 급행까지 열어버려서 더 최악이야

        — 프리나나나아님 : 팍 막차 못 타서 갇혀 버리라지, 아님 이상한 구역 들쑤시고 다니다가 저주나 받던지

        ====

       

        역시 프리나나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물어보기도 전에 악담을 퍼부으며 절대 공역에 가지 않겠노라 깔끔하게 선언해주는 모습이었다.

        이러면 살살이도 저주를 풀 방법이 없으니 알아서 포기할 터…….

       

        ====

        — 프리나나나아님 : 근데 왜?

        — 반고닉도절반은고닉 : 아뇨, 다행이에요 혹시 선배만 일정이 맞으면 공역에 같이 갈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사람도 많고 시끄러운 곳이니까 다음에…….

        — 프리나나나아님 :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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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

        — 프리나나나아님 : 생각해 보니까 1년에 두 번씩 너랑 여행 가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네

        — 프리나나나아님 : 학파규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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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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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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