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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하아.”

       

       “왜 그래?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주변을 둘러보자 선혈이 낭자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사람들의 피는 아니다.

       

       흘리고 있는 것은 마수의 피.

       

       회의 중에는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수들을 도륙 내고 있었다.

       

       

       “다들 굉장하구나, 싶어서.”

       

       

       탐지 관련 능력이 없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공격을 회피하는 모습들을 보면 감탄이 나왔다.

       

       나처럼 직감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도 간단하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다들 능력 없이도 잘 피하는구나.

       

       사실 내가 없어도 되는 건 아니었을까.

       

       아르테를 지켜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오만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보다 고전했던 적들을 손쉽게 처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야, 친구.”

       

       “···아. 안녕하세요.”

       

       “아빠는 또 왜 여기에 있어? 일 안 해?”

       

       “이 아빠는 생각보다 비싼 몸이란다, 딸아. 저런 일은 다른 사람들이 맡아줘야지.”

       

       “꼰대···.”

       

       “어허.”

       

       

       허구한 날 싸워대는구나.

       

       멍하니 두 명이 싸우려는 것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라이오넬 씨가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다들 여기 처음 오면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꼬마야, 그건 오만한 거란다.”

       

       “···오만하다니요?”

       

       “저 사람들은 너와는 달리 이 전장에서 오래 살아왔어.”

       

       “···.”

       

       “그러니 네가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단다.”

       

       

       알고 있다.

       

       나는 고작해야 아직 학생이고, 저들은 이 전장에서 한참 동안 보내왔다는 사실을.

       

       나보다 저들이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내가 저들보다 강하다면 저 사람들이 억울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르테를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

       

       그게 나의 약속이자 다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저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저들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들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구나?”

       

       “다짐했으니까요.”

       

       “다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위버멘쉬의 간부.

       

       그 바람을 다루던 간부가 이곳에 있어도 저들이라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겠지.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저 사람들을 이길 힘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숨어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그 빌런 하나에게 죽을 뻔했던 내가 아직 저들과 비교하면 약한 것은 당연했다.

       

       당연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우는 아르테를 지키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니 자괴감이 드는 것은 자신의 약함과 나태함.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꾸준히 강해진다면 아르테를 지킬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꾸준한 것으로는 부족했어.

       

       아르테는 말했지. 작가님이 진심을 낸다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르테가 했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믿지 못한 것 같다.

       

       정말 그녀의 말을 믿었더라면 더욱더 열심히 노력했을 테니까.

       

       아르테를 괴롭히는, 세상을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존재를 저지하기 위해 더욱 힘을 기르고 있었을 테니까.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인가요?”

       

       “그래. 이다음부터는 휴식이란다.”

       

       “알겠습니다.”

       

       

       시우는 자신의 나태함을 벗어던지기로 결심했다.

       

       정말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르테를 괴롭힌다면.

       

       그렇다면, 세상을 모두 적으로 돌리더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야 그 존재로부터 아르테를 해방해줄 수 있을 테니까.

       

       

       

       ***

       

       

       

       “쟤는 나보고 미친 거 아니냐고 맨날 말하면서, 자기도 정상이 아니라는 건 모르더라.”

       

       “···.”

       

       

       라이오넬은 무언가 다짐한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숙소로 향하는 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딸아이의 말대로였다.

       

       제정신이 아니야.

       

       

       “···저게 부족하다니.”

       

       

       저 말을 듣지 못 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비웃을 게 뻔했다.

       

       그 누구도 저 나이대에 저만큼의 성취를 이룬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세기의 천재.

       

       같은 나이대라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라이오넬이 보기에 시우와 동료들은 그런 아이들이었다.

       

       사실 라이오넬과 본대는 마수의 기습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들을 대피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냐고?

       

       신고식이었으니까.

       

       아무리 최전방이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신입끼리 떼어놓고 작전을 시키지는 않는다. 미친놈들도 아니고 말이야.

       

       귀한 목숨을 파리처럼 날려 보낼지도 모르는 위험한 행동을 할 리가 없잖아.

       

       떼어놓은 이유는 그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유일한 색적 능력자의 전투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지원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모두 경악했다.

       

       처음 전장에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패닉과 공포에 휩쓸린 채로 도망치기 바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녀석들의 실력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고작해야 학생이.

       

       고작해야 전장에 이제 처음 발을 내디딘 네 명의 신입이 마수 무리를 늦지만 확실하게 도륙 내는 모습을 보고 다들 얼이 빠졌으니까.

       

       

       “네 친구는 신이라도 때려잡을 생각이니?”

       

       “몰라.”

       

       

       조금만 전장에 익숙해지면 금방 날뛸 것 같아 보이는 녀석이 부족하다며 무언가 다짐하는 모습이 기가 찼다.

       

       

       “···그래도 낭만이 넘치는 녀석이네.”

       

       

       지키고 싶은 녀석이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라이오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그 아이지? 흑발에 뭔가 날카로운 인상의 그 아이.”

       

       “아르테? 맞아.”

       

       “역시.”

       

       

       라이오넬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우리 딸은 저런 남자 잡지 않고 뭐 하나 몰라. 딸, 지금이라도···.”

       

       “미쳤어? 내가 저런 놈이랑 왜 사귀어? 내가 훨씬 아깝거든?”

       

       “그래, 그래. 기대도 안 했다.”

       

       

       요즘 즐겨보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모습이라, 사위가 되지는 않을까 조금 기대했는데.

       

       딸아이의 모습을 보니 글렀군.

       

       언제쯤 손주를 볼 수 있을런지.

       

       저 털털한 성격 탓에 손주를 보지도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벌써 앞날이 캄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어허. 아빠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이상한 소설이나 보는 아빠.”

       

       “이상한 거라니! 네가 그 매력을 몰라서···!”

       

       

       

       ***

       

       

       

       온통 회색빛으로 물든 도시.

       

       무너진 빌딩 사이에서, 한 소녀와 거대한 개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시끄럽네.”

       

       “비명과 신음에 가득 찬 소리야, 애니. 아무래도 전투가 있는 모양이야.”

       

       “전투···.”

       

       

       크르륵.

       

       소녀가 쓰다듬던 개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로 소음이 들려오는 장소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마수들이 가끔 싸우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까지 단체로 몰려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마수가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단 하나.

       

       

       “···협회 놈들인가?”

       

       “그런 모양이야, 애니. 아마 우리를 쫓는 게 아닐까.”

       

       “그렇구나. 역시 미르는 똑똑해.”

       

       

       협회라.

       

       그 가증스러운 이름에 절로 이가 갈려왔다.

       

       언제까지고 우리를 방해하는구나.

       

       위버멘쉬가 있었던 무렵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우리를 바닥에서 기게 하지.

       

       

       “그때 이후로 사람을 줄이지도 못했는데···.”

       

       “그때 그 녀석 때문이야, 애니. 그 녀석을 빨리 찾아 죽였어야 했어.”

       

       “···.”

       

       

       협회 놈들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힘을 얻은 지금, 몰려다니는 몇 명 정도야 전투가 끝난 직후의 영웅 놈들을 기습해서 죽이는 건 쉬웠다.

       

       그래서 죽였다.

       

       하지만 그것이 실책이었던 걸까.

       

       나의 존재를 깨달아버린 저들은,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저들끼리 잔뜩 뭉쳐 다니고 있었다.

       

       한 두명 정도야 죽일 수 있겠지만···.

       

       그 순간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로잡히겠지.

       

       그것만은 안 돼.

       

       모두의 평등을 이루기 전까지, 나는 죽을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녀석들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을까.

       

       강해지기 위해 최전방에 숨어들고, 그 결과 강해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저녀석들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잖아.

       

       숨어들 때도 들킬 뻔했는데. 이렇게 커다란 동료까지 달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떻게 해야···.”

       

       

       저렇게 뭉쳐 다니는 녀석들 사이에 섞여서 나갈 방법이 무엇일까.

       

       소녀는 한참을 고민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크르륵···!”

       

       “응? 왜 그래?”

       

       “크륵···!”

       

       

       그리고 어느 건물에 들어가려는 순간.

       

       여태껏 함께 해왔던 마수가,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무섭다고? ···왜?”

       

       “이곳은 위험하다, 라···.”

       

       

       다른 마수들이라면 이 불길한 마나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피했겠지.

       

       소녀의 옆에 함께 붙어 다니던 마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소녀는 그러지 않았다.

       

       본능보다 호기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가 있길···.”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가.

       

       소녀는 그것이 헛소리라고 치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을 빠져나갈 열쇠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찾았다. 방법.”

       

       

       거대한 거미의 시체가 점차 썩어가는 빌딩 안.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고치들이, 발을 딛기 힘들 정도로 널려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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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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