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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가게 밖으로 나온 진성은 그늘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ॐ स्वभाव सुद्भाः सर्व धर्माः स्वभाव सुद्धोऽहम्).”

         

       눈을 감은 진성의 눈에서는 번쩍이는 불꽃이 새어 나왔다. 불꽃은 실뱀이 악마의 아가리에서 빠져나오려는 듯 필사적으로 눈 밖으로 몸을 뺐으나, 눈 안쪽에 무저갱이라도 있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며 곧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에 조각난 불똥이 감긴 눈에서 눈물처럼 흘러나왔고, 주언을 외우는 진성의 입에서 조각난 열기가 숨결에 흩어져 나오며 짙은 하얀 입김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수증기와 닮았고, 연기와도 닮은 모양새였다.

         

       주술로 강화된 진성의 눈에 주언이 더해지자 감긴 눈은 어떠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휴업을 알리는 한 주류 전문점의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자그마한 벌레가 바닥에서 가게 위를 바라보는 모양새였다.

         

       “—-”

         

       진성은 이제 되었다는 듯 어떤 소리를 내뱉었다. 그것은 어찌 들으면 고음에도 가까웠으며, 칠판을 날카로운 것을 긁을 때 나는 끔찍한 소리와도 닮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내뱉어지자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그의 눈꺼풀이 만들어내는 어둠이 그의 시야를 덮어버렸다.

         

       하지만 CCTV를 돌리듯 다른 장면이 또 들어왔으니.

       이번에는 비열해 보이는 인상의 주인장이 있는 주류 전문점이었다.

         

       그는 가게의 지하실에서 싸구려 술과 비싼 보드카를 섞어서 담고 있었다.

       보드카 한 병이 그의 손을 거치면 무려 4병으로 바뀌게 되니, 이것이 바로 전설에나 볼법한 ”황금 법칙’을 깨달은 연금술사가 아닐까 싶었다.

       한참이나 그러한 작업을 한 것인지 뒤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섞인, 진짜가 첨가되어 있지만, 한없이 가짜에 가까운 술 비스름한 것들이 병에 담긴 채 가득 쌓여있었다. 빅토르가 본다면 ‘소련 시절 보급품 빼 처먹던 새끼들도 술 가지고 이 지랄은 하지 않았다’라며 격노해서 인맥을 이용한 끔찍한 보복을 하고도 남을 장면이었다.

         

       벌레의 시야로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성은 다시 한번 소리를 내었다.

         

       “—!”

         

       하지만 이번의 소리는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아까의 소리가 그냥 날카롭기만 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소리는 무언가 리듬이 들어가 있었다.

         

       파드득.

         

       벌레는 진성의 주언이 말한 대로 움직였다.

       지하실 구석에서 가게 주인을 바라보고 있던 벌레는 날개를 펄럭이며 힘차게 날아올랐고, 바닥에 흐른 알코올로 가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을 내며 타버렸다.

         

       그렇게 시야는 다시 어둠에 잠겼고, 진성은 이제 되었다는 듯 눈을 번쩍 뜨고는 중얼거렸다.

         

       “인생은 새옹의 말과 같으니. 만들어놓은 가짜 술이 죄다 사라지고, 가게가 활활 타올라 돈을 잃는 것이 도리어 복이 될 것이로다.”

         

       진성은 자비를 베풀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 * *

         

         

         

         

       “불이 났군.”

         

       빅토르는 직접 가짜 술을 확인하고 조져버리기 위해 주류 전문점을 찾았다가, 검은 연기를 풀풀 피우며 타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불길의 기세가 상당히 강해 가게가 전소, 아무리 운이 좋아도 반소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저런 상황인데 가짜 술을 찾느니 벌을 내리겠다느니 하며 개입하는 것은 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짜 술을 팔았다고 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놈의 집에 난 불이니만큼 굳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기에 빅토르는 가짜 술을 팔았다고 하는 주인 놈을 조져버리는 대신 용서해주었고, 불을 꺼뜨릴 수 있음에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소방서에 전화할 수 있음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아이고, 아이고!”

         

       뒤에서 가게 주인의 곡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알 바인가?

         

       해야 할 일이 넘쳐나는 와중에 천벌 받은 놈까지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천벌, 천벌이라.’

         

       몸을 돌려 걸어가던 빅토르는 무언가 떠올라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진성.

       그리고 우크라이나 출신의 병신 나치 새끼였다.

         

       ‘흠.’

         

       빅토르는 진성의 존재를 몰랐을 적, 인신공양 의식의 범인으로 우크라이나의 아조프 대대 놈을 범인으로 여기고 움직였었다. 그리고 자신의 동기에게 부탁해서 그놈들이 일본의 주술사와 연계해서 러시아에서 엿 같은 짓을 벌였다는 증언을 받았고, 위에 일본에 보복하는 게 어떻겠냐는 계획을 말하고 승인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 범인은 맞는 것인가?’

         

       빅토르의 검기를 막았던 것은 진성이었고, 의식을 벌인 놈은 아일랜드 놈이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일본이 끼어들 요소가 있나?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뭐, 내 알 바 아니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뭐, 의식을 벌인 놈이 아일랜드 놈이면 어떤가.

       그놈이 우크라이나 놈과 일본 놈들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의식 장소가 아주 거창한 데다가 돈을 잔뜩 바른 것처럼 보였으니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그리고 뭐….

       아니면 말고.

         

         

         

        * * *

         

         

       누군가 말했다.

         

       별빛으로 반짝이던 하늘은 사람에 의해 어둠으로 뒤덮였다.

       다만 이는 사람이 제 손으로 별을 땅에 만들었기에 생긴 일이다.

         

       그 말대로 문명화된 나라의 하늘은 별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매캐한 매연으로 뒤덮여 별은커녕 달빛마저 흐릿하였고.

       별처럼 보이는 것은 오직 인공위성뿐이라.

         

       한국 역시 이와 같았다.

       서울의 하늘은 새까맣고, 오직 달만이 외로이 떠 있다.

       쓸쓸해 보이는 달빛은 자신 혼자 떠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 싸늘함을 더하고,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며 변화를 이어감에도 오직 달은 그것을 우두커니 서서 볼 수밖에 없으니 그 외로움에 사무쳐 저 혼자라도 모양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옆에 놓여있어야 할 별은 가로등이라는 이름으로 땅에 박혔고, 자신과 함께 지구를 돌아다니며 보아야 할 불빛은 핸드폰 불빛으로, 야근으로 불이 켜진 빌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밤에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이 전기로 발하는 불빛으로 바뀌어 달을 떠났으니.

         

       외롭고도 참으로 외롭다.

         

       하지만 혹자는 말한다.

       아무리 장막으로 가린들 본질은 그대로이며.

       어둠이 드리워진들 그것을 꿰뚫어 볼 눈이 있다면 진실은 볼 수 있다고.

         

       그리고 여기, 그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가 있었다.

         

       서울의 목동에 있는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가부좌를 튼 채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릿한 달빛이 하늘을 덮고, 오직 어둠만이 보이는 하늘을.

         

       흐르는 구름이 어둠에 물들어 입체감을 만들어내고, 한밤중에도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랜 수련과 함께 강화된 무인의 눈은 그러한 어둠과 현혹하는 불빛을 꿰뚫고 그 장막 너머의 본질을 그대로 눈에 담았으니.

         

       그의 눈에는 별의 바다가 보였다.

         

       별이 무리를 이루며 강을 만드는 것이 보였고, 별이 흩어져 제각기 빛을 발하며 모양을 만드는 것도 보았다. 별자리의 모양새로 하늘을 따라 흐르는 것을 보았고, 빛이 약해졌다가 강해졌다 반복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 역시 보았다.

         

       그 궤적을 가만히 눈에 감고 있던 노인은 중얼거렸다.

         

       “천기가 참으로 좋지 않구나.”

         

       그는 하늘을 보고 미래를 읽었다는 고대의 도사처럼, 혹은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여 미래마저 내다본 예언자처럼 진중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별이 만드는 모양을 보았고, 흐르면서 자아내는 그림에 감탄하였다.

         

       “나무의 기운은 날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니. 이는 일본만이 이득을 보는 것이니 참으로 끔찍한 일이로다. 오직 애국만을 생각하며 살아왔거늘, 어찌 이리 한국의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형국으로 흘러가게 되는가.”

         

       노인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랫동안 도를 닦아 이치를 깨달은 도사의 모습과 흡사했다.

       하지만 옆에 차고 있는 검이 그가 무인임을 알려주고 있었고, 돌덩이 같은 굳은살과 나이에 맞지 않는 훌륭한 근육은 그가 고강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심각한 분위기는 곧 깨져버리고 말았다.

         

       “지랄 염병하네.”

         

       노인의 옥상 문을 열고 올라온 노파가 노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노파는 가부좌를 튼 채 잔뜩 무게를 잡은 노인에게 호통을 쳤다.

         

       “이 노망난 영감탱이 같으니. 주술의 ‘주’자도 모르는 주제에 천기니 뭐니 허튼소리나 하고 있어!”

       “어허! 노망이라니!”

         

       노파의 호통에 노인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본래 이 나이쯤 되면 하늘의 뜻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법! 게다가 나는 무인으로서 마음을 수련하였고, 토정비결(土亭秘訣)도 정독했으니 천기 정도는 얼마든지 읽을 수 있어!”

       “아이고, 이 미친 노인네야. 하던 칼질이나 계속 연습하지 왜 말년에 이상한 것에 꽂혔어.”

       “말년이라니! 무인이 얼마나 오래 사는데 벌써 말년이야!”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된 것 같은데, 그게 말년이지!”

         

       짜아아아악!

         

       “끄악!”

         

       노파는 손에 기를 담아서 노인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아이고 영감탱이야! 자식놈한테 회사 물려주고 홍익애국단(弘益愛國團) 활동에 전념하겠다더니! 웬 이상한 것에 꽂혀서 이러고 있어! 주술은 무슨 주술이고 천기는 무슨 천기! 가서 칼질 연습이나 좀 해!”

       “어허! 이 할망구가 진짜! 내가 천기를 읽는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데!”

         

       짜아아악!”

         

       노파는 다시 한번 노인의 등을 후려쳤다.

         

       “기본도 모르는 인간이 무슨 천기를 읽어! 뭐? 나무가 어쩌고 저째? 이 양반아! 한국은 음양오행의 토(土)와 목(木)의 성질을 둘 다 가지고 있어! 그러니 무슨 일본이 어쩌고 풍전등화가 어쩌고! 듣는 내가 다 창피해 죽겠네! 청승 그만 떨고 들어가서 검술 연습이나 해!”

         

       노파는 노인을 계단으로 밀어 넣으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이고 진짜. 얼마 후에 그 누구야. 이양훈, 그래 이양훈이가 데리고 사는 아이가 성인식을 한다고 했는데 어? 거기서 그런 소리를 했어 봐. 얼마나 내가 창피하고 얼굴을 들지를 못하고 다녔겠어? 어? 그런 소리를 하면 다른 인간들이 뭐라고 생각을 했겠냐고. 저 영감탱이가 드디어 노망이 들었구나. 노망이 들어서 자식놈한테 회사 물려주고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게로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것 아니야, 어? 아이고. 내가 못산다 못살아. 이놈의 영감탱이는 어째 나이를 먹으니까 어린애 같아져서는. 철이 덜 들었다, 철이 덜 들었어!”

         

       그렇게 아래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뒤편에 우뚝 세워진 검 한 자루가 그려진 그림이 있었으니.

         

       한국의 재벌 그룹, 일검 그룹의 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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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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