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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프란체와 입술을 맞추는 순간, 우리를 중심으로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

       “…….”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내가 비춰 보였다.

       

       행복감, 불안감, 죄책감, 애틋함.

       

       이 네 개의 감정이 섞여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나의 얼굴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직 부족해…….”

       

       프란체는 팔을 내 목에 감싸며 다시 입술을 맞춰왔다.

       

       “음…….”

       

       두 입술이 만나는 순간,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설렘과 두근거림이 몸 전체를 감쌌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의 접촉은 마치 꽃잎처럼 연약하면서도, 내게로 향한 프란체의 마음을 전달해주었다.

       

       둘 다 처음인지라 다소 서툴렀지만,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엔 충분했다.

       

       조화롭게 이어지는 입술의 움직임은 서로에 대한 욕망과 사랑을 나타냈고, 우리 사이에 강력한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심장은 가슴속에서 떠오르듯 뛰고, 호흡은 가까워져 합창을 이루었다.

       

       “아…….”

       

       키스가 끝나 입술이 서서히 분리되면서도, 단절된 순간에도 여전히 닿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좋아해, 진.”

       “…….”

       

       사과처럼 붉어진 그녀의 얼굴.

       

       나도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프란체, 너와 함께한 이 1년이 즐거웠다고.

       

       이 세계에 와서 불행만이 가득할 줄 알았건만, 당신이 내 희망이 되어주었다고.

       

       결국엔 나 역시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전하고 싶었다.

       

       말 할 수 없었다. 전할 수 없었다.

       

       “진…?”

       

       프란체가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프란체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공작님.”

       

       내가 부르자 프란체는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지금은 프란체.”

       “…프란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자 심장에 통증이 일었다.

       

       이 앞에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나만이 알고 있기에.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 말하곤 배시시 웃는 프란체. 그 미소는 내 가슴을 더 옥죄어왔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에 너를 만났다.

       

       너와 내가 함께한 여름은 열정이 가득했고.

       

       변화의 가을이 지나 결국 이별이라는 겨울에 도착했다.

       

       오늘이 지나면, 새로운 봄이 오기 전에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진, 나는 너와 만나 행복이 뭔지 알게 됐어.”

       

       내 뺨을 어루만지며 눈빛을 반짝이는 프란체.

       

       “권태로움이라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내게 희망이란 색을 알려준 존재가 너야.”

       

       그녀의 손길은 역시나 따뜻했다.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그 흑백의 세상 속에서 자멸해 이내 사라졌겠지.”

       

       프란체는 “네가 내 모든 걸 바꿨어.”하곤 싱긋 웃었다.

       

       “고마워, 진. 그리고 좋아해. 사랑해.”

       

       그녀의 마음에 대답하고 싶다. 보답하고 싶다. 하지만 입술만 달싹였을 뿐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완전 정지했네. 부끄러운 거구나?”

       

       뺨을 콕콕 찌르며 미소짓는 프란체. 그저 내가 부끄러워서 이런 줄 알고 있다.

       

       “…아닙니다.”

       

       휙. 고개를 돌리며 유리창을 바라봤다. 여전히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마법의 무대가 진행 중이었다.

       

       “행복해…….”

       

       프란체는 내 가슴에 안겨 얼굴을 비볐다. 자연스레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좋아해.”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쉴 틈 없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에도, 다음에도, 다다음에도 함께하고 싶어.”

       

       프란체는 내게 안긴 채 녹아내릴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 첫 번째 아군이자, 유일한 아군이 되어줬던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그리 말하곤 다시 내 심장 소리에 집중하는 프란체. 유리창에 비춰 보인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앞으로도 프란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뜻이 아니야.

       

       “프란체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은 제게 정말 소중하고 특별했어요.”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시선을 마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억만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프란체와 함께한 마지막 추억이었다.

       

       

       * * *

       

       

       수확제가 끝난 직후, 가장 어두운 새벽.

       

       나는 숙소에서 짐을 챙겼다.

       

       “음…….”

       

       일단 보따리에 모옥에서 가져온 보석들과 장신구 같은 것을 전부 싸 모았고, 내가 이곳에 온 직후 1년간 함께한 보급형 롱소드를 챙겼다.

       

       “너랑도 참 오래 가는구나.”

       

       보급형인지라 금방 부서질 줄 알았건만, 어찌나 튼튼한지 내 오러도 견디고 날 한 번 무뎌지지 않았다.

       

       진 바렌베르크의 뛰어난 검술이 감각에 묻어나온 것도 있고, 오러가 너무 순수하여 검에 무리가 가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래도 얘는 비정상적으로 튼튼해.’

       

       이 검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제국에서 무력으로 제일 강한 젠부코로스를 괴멸시키고, 모옥을 이 대륙에서 지워버렸다.

       

       죽인 건 인간뿐만이 아니다. 재앙의 파도에서 수천을 죽인 이 검은 보물로 간직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수많은 피를 머금은 이 보급형 검은 내 한정으로 마검과도 같았다.

       

       ‘웬만한 건 냅두고 가려고 했는데.’

       

       이 검과는 정이 들어서 못 버리고 가겠다.

       

       ‘이 정도 횡령은 용서해주지 않을까?’

       

       음.

       

       데카르트의 주인, 프란체는 아량이 넓으니 이 정도는 허락해줄 거다. 내 마음대로 생각한 거지만.

       

       “돈은 문제없고…….”

       

       모옥에서 가져온 이 보석들만 팔아도 평생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 있다.

       

       대충 떠날 채비를 마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을 보니 더 기다려야 하는데.’

       

       수확제가 끝난 늦은 새벽인지라 아직 마구간이 열리지 않았다. 떠나기엔 시간이 남은 상황.

       

       나는 침구에 누운 채 다리를 꼬았다.

       

       ‘근데 이제 뭘 하면서 살지?’

       

       이 대륙에서, 이 세상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나마 초월 마법사가 나를 상대할 수 있으려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지식을 알고 있고, 무력도 최강이다. 할 수 없는 게 이상한 수준…….

       

       ‘딱히 목표가 없네.’

       

       이전에 뭔가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동기화가 계속되며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바람에 그건 이미 잊어버렸고.

       

       ‘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떠오르는 것이 인생이다. 사하라 관광한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뭔가 생각날 터.

       

       ‘그래, 세계 여행도 나쁘지 않겠다.’

       

       아무리 ‘로판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이 된 이 세상의 전부는 알지 못한다.

       

       사하라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처음엔 그냥 이름만 듣고 사막 국가인 줄 알았는데, 관광 명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나중에 배 하나 구해서 동양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겠어.’

       

       신 대륙 발견이라는 히든 퀘스트가 있다. 그 정체는 무려 동양에 도착하는 것.

       

       실제 동양을 모티브로 한 곳이라 내가 살던 곳이나 익숙한 나라들이 많다.

       

       ‘쌀밥 같은 음식도 땡기고.’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음식 몇 개가 있다.

       

       ‘국밥이랑 삼겹살 기름에 김치, 그리고…….’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저것들만 먹어도 충분히 만족하겠지.

       

       “슬슬 편지를 써볼까.”

       

       자리에서 일어나 이 날을 위해 준비했던 펜과 편지지를 꺼냈다.

       

       ‘꽤 비싼 거였지.’

       

       질감도 좋고, 무늬도 예쁘고. 귀족 영애들이 쓰는 건가 보다.

       

       뭐, 아무튼.

       

       ‘쓰자.’

       

       일단 펜을 잡았다. 무엇을 적으면 좋을까.

       

       ‘감각대로.’

       

       다소 두서가 없더라도 지금 내 마음을 전하는 게 최고라고 판단했다.

       

       나는 곧장 펜을 움직였다.

       

       사각사각.

       

       프란체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느낀 인상을 썼다.

       

       사각사각.

       

       공작저에 와서 프란체가 받는 취급을 보며 느낀 감정을 썼다.

       

       사각사각.

       

       당시 내가 왜 프란체를 돕고 싶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사각사각.

       

       프란체와 같이 프리다를 무너트렸을 때 어찌나 쾌감이 생기던지.

       

       사각사각.

       

       아실 프라이덴을 엿 먹이면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각사각.

       

       황실 파티를 같이 즐겼던 일이 기억났다.

       

       사각사각.

       

       흑마법을 처음 배웠을 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그녀는 모를 거다.

       

       사각사각.

       

       프란체와 함께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매일, 매일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사각사각….

       

       조금이라도 프란체와 같이 있고 싶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았다.

       

       사각사각…….

       

       그녀를 데카르트의 주인으로 만들어서 어찌나 뿌듯하던지.

       

       사각… 사각…….

       

       모두와 함께 작은 파티를 열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사각…… 사각……….

         

       같이 수확제를 즐기고, 탑에 올라 단둘이 마법의 무대를 감상하며 키스했던 감촉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

       

       뚝…. 뚝…….

       

       뺨을 타고 무언가 흘러내렸다.

       

       “하.”

       

       감정의 과잉을 막으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톱. 덜덜 떨려오는 손에서는 망설임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마구 솟았다.

       

       “아니야. 결정했잖아.”

       

       내가 사라지기 전에 떠나야 한다. 프란체가 좋아한 인물은 다른 차원에서 온 김공략이라는 인물이지, 진 바렌베르크가 아니니까.

       

       전과는 달리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곁에 더 있을 수만 있다면, 그 끝에 파멸이 있더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프란체에게 내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게 나와 그녀를 위한 최선이다.

       

       사각사각.

       

       마지막 내용까지 적었다.

       

       당신과의 추억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오늘이 지나면 나를 잊어 달라.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동기화로 인해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알려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면 프란체는 지금 내가 주는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을 테니까.

       

       “…….”

       

       탁. 펜을 내려놓고 내 숙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책상 위에 올려뒀다.

       

       “벌써 시간이 됐군.”

       

       별안간 심장이 시려와 입술을 머금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까지.

       

       “후우…….”

       

       편지를 정성스럽게 포장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떠나는 건가?”

       

       복도에서 케일이 팔짱을 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라데아는 옆에서 뒷짐을 지고 입술을 삐죽였다.

       

       “떠나야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래. 공작님께 내가 죽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잖아.”

       “알겠다. 너의 선택이니 말리지는 않겠다.”

       

       케일다운 발언이다. 픽 웃곤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진 오빠.”

       

       라데아가 소매를 붙잡았다.

       

       “뭐냐, 너도 마지막 인사야?”

       “이럴 때 농담하지 마세요…….”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울먹이냐. 괜히 나까지 슬퍼지잖아.

       

       나는 라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잘 살아가라. 라이아도 잘 챙기고. 뭐, 이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겠지만.”

       

       씩 웃자 일렁이는 선홍색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잊지 못할 거예요.”

       “뭐를?”

       “복수를 도와주신 거요.”

       

       라데아는 “그리고.”하며 말을 이었다.

       

       “저와 라이아를 공작령에 데려와 주시고, 케일 아저씨나 카자르 언니, 공작님처럼 좋은 사람들을 잔뜩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히끅거리며 울음을 참는 라데아. 비록 짧은 시간이었어도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그래, 나도 잊지 않을게.”

       “잊지 마세요.”

       

       라데아는 내 소매를 꾸욱 쥐었다.

       

       “…의지할 수 있는 오빠가 생긴 기분이라 좋았어요. 떠나고서도 잘 지내길 바랄게요.”

       

       그제야 소매를 잡았던 라데아의 손이 힘없이 풀어졌다.

       

       “다들 잘 지내라. 카자르에겐 잘 말해주고, 내가 없는 공작님을 잘 부탁해.”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공작저를 나왔다.

       

       이별을 알리는 편지만 남겨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ㅠㅠ

    진을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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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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