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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2

       사라의 언짢은 기분은 쉽게 가실 줄을 몰랐다.

        

       원하지 않았는데 몸으로 끌려 나온 것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하늘이와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한 셈이기도 했으니까. 둘이 친구 사이라고 하더라도, 신체접촉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 하더라도 원래 생에선 동성 친구와 스킨십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 감정을 풀어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 미안해…….”

        

       내가 하늘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과받아보기도 했고, 내가 직접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사라는 삐진 상태였다.

        

       …….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느껴지는 감정 덕분에 거기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풀어질까.

        

       일단은 몸을 움직이고 있는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단 게 먹고 싶네. 우리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까?”

        

       아이스크림 가게도 가 보고,

        

       아직 너무 차가워.

        

       ……바로 실패했다.

        

       그렇다. 아직 4월이긴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즐기기에는 애매하게 따뜻하긴 했다.

        

       사라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걸까?

        

       “회전목마라도 탈까?”

        

       내 몸으로 탈 수 있는 최선의 놀이기구도 골라서 타 보고,

        

       ……어린애야?

        

       ……확실히 어린애들이 많기는 했다.

        

       “퍼레이드! 퍼레이드 할 시간이네!”

        

       이 놀이공원이 자랑하는 퍼레이드도 구경했다.

        

       …….

        

       아, 그래도 여기에는 조금 만족한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다면서 짜증이라도 내면 어떨까 고민했었는데.

        

       하지만, 그래도 그 미묘한 언짢음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별로 볼 것도 없었다.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니 길게 줄을 설 이유도 없었고, 뭔가를 또 먹기에는 이미 아이스크림도 먹었으니까. 사실 여기 있는 애들이라면 더 먹을 수 있기야 하겠지만, 내 몸으로 그 이상으로 먹으면 반드시 속이 안 좋아질게 뻔했다.

        

       저녁에는 불꽃놀이도 한다고 하지만…… 저녁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그때까지 계속 밖만 돌아다닐 수는 없지.

        

       언짢음을 가시게 하려고 하는 일인데, 여기서 더 언짢게 만들면 안 되니까.

        

       “아, 맞다. 사파리.”

        

       열심히 놀이공원 안내도를 보던 나는 중얼거렸다.

        

       “여기도 갈까?”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자, 아이들은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엄청나게 들뜬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관람차에서 나온 이후에는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니까. 사라 신나게 하겠다고 조금 과장되게 좋아한 것도 있었고.

        

       뭐, 그것 때문에 분위기가 좋아진다면 나쁘지도 않긴 하지만……

        

       하늘이는 여전히 조금 죄책감이 서린 표정이긴 했다.

        

       ……이 이야기는, 오늘 밤에 사라와 제대로 대화해보기로 하자.

        

       *

        

       저 아이들은 행복할까?

        

       ……그리고, 나는 사파리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 결정을 격하게 후회했다.

        

       그렇다. 사라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그 저택 안에 갇혀 있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또 다른 갇힌 존재를 보여줘서 어쩌자는 건지.

        

       ……행복하길 바라야지.

        

       차마 그 중얼거림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나는, 사라에게 그렇게 말했다.

        

       행복할 수 있을까?

        

       …….

        

       그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저 동물들이 아니었으니까.

        

       자연 상태에서 굶는 것 보다는 영양상태가 좋을 수도 있다. 적어도 여기서는 굶지 않을 테니까. 동물원 안에서 살고 있으니 자신은 물론이고 새끼들의 안전도 보장받을 테고, 이런 곳에서 자라는 동물들은 사육사와의 유대가 끈끈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동물들이 동물원 밖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여기 있는 것이 행복할까?

        

       사실 이런 말은 동물원의 동물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키우는 모든 애완동물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키움으로써 평균연령보다 훨씬 오래 사는 동물들도 있고, 반대로 수명이 줄어든다는 동물들도 있으니까.

        

       식량이나 가죽을 위해서 키우는 가축들이나, 타기 위해서 키우는 말이나……

        

       ‘동물이 정말로 자연상태에서 제일 행복한가?’라는 것은 환경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결국 동물을 보고 행복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런 동물의 권리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정상적인 양어머니에 의해 갇혀서 바깥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란 사라.

        

       그 결과, 사라는 감정의 대상이 자기 양어머니 하나뿐이라는 기형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은 나와 감정과 기억이 조금 섞여서 조금 덜했지만, 원래라면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그런 사라가, 저택 밖으로 나와서 과연 행복할까?

        

       어쩌면, 사라를 그냥 두고 가려고 했던 나는, 너무 무책임했던 것은 아닐까?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

        

       혼자 차 창문 밖을 쳐다보면서 상념에 잠겨있으니, 사라가 짜증을 냈다.

        

       내가 불행하면 벌써 그렇게 말했겠지.

        

       …….

        

       하.

        

       하긴 그렇다.

        

       돌아온 사라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아이였다.

        

       아직 삶에 대한 큰 의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와의 관계를 포기해버릴 수준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삶을 포기하긴 했지만, 자신 옆에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할 정도의 아이도 아니었다.

        

       이미 가능성을 보았다.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자신이 불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아마 알고 있었다.

        

       …….

        

       아, 그렇구나.

        

       어쩌면,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해 초탈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는데.

        

       어쩌면, 사라가 돌아온 시점에서 이미 내가 걱정할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슴 속의 언짢음이 조금은 가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무리 열심히 놀고 다녀도, 오후 4시가 우리가 놀 수 있는 한계인 모양이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사라의 몸으로 놀 수 있는 한계라고 하는 쪽이 맞는 말이겠지.

        

       우리가 아무리 걸어 다닌다고 해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거다. 체력을 효율적으로 쓰고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면 조금은 더 오랫동안 많이 걸어 다닐 수 있긴 하겠지만, 본인의 기초체력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결국 이렇게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체력이 고갈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불꽃놀이는 다음에 보기로 했다.

        

       “다음에는 아침 일찍이 아니라 조금 시간을 두고 나오면 되겠지.”

        

       소희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사라에게 불꽃놀이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인격을 바꾼다고 체력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사라가 그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함부로 시도할 수도 없고.

        

       오늘 너무 무리하면 내일도 지장이 올 수 있다. 물론 그럴 것을 미리 알고서 토요일에 나온 것이지만, 그래도 일요일 내내 끙끙 앓는 것은 나도 사양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은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아, 그럼, 돌아가기 전에 기념품이라도 살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놀이공원에서 기념품을 산 적이 없다. 놀이공원 기념품이라고 해봐야 평소에 쓸 일도 없는 머리띠나 인형 같은 것이었고, 남자끼리 놀러 가서 그런 것을 굳이 살 이유도 없었으니까.

        

       나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찬성했다. 양혜인은 따로 의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뭐, 이 사람이야 언제나 이러니까.

        

       내가 말하고 나서야 들어온 곳이었지만, 사실 나보다는 소희, 수아, 하늘이가 더 신이 났다.

        

       세 사람은 주로 나를 이끌고 다니면서 나의 머리에 이것저것 씌워 보이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다. 이런 쪽으로 미적 감각이 없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뭐,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여기 있는 물건 다’ 같은 말을 농담이나 허세가 아니라 진짜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럴 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사실 사려면 매장 내의 물건뿐만이 아니라 창고 물건까지 다 털 수 있을 정도의 돈이기는 하지.

        

       …….

        

       내가 다른 아이들과 신난 것을 보고, 다시 사라가 토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같이 놀고 싶으면 아예 나와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뭐, 사라는 아직 이런 식으로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어색한 모양이었으니까.

        

       나는 근처에 있는 머리띠를 아무거나 집었다. 아마 이 놀이공원의 마스코트처럼 보이는 턱시도 입은 고양이와 똑같은 귀가 달린 머리띠였다.

        

       나는 그 머리띠를 머리에 쓰면서 물었다.

        

       어때?

        

       ……응?

        

       내 갑작스러운 물음에, 사라가 반응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보이며 말했다.

        

       어울려?

        

       …….

        

       사라는 여전히 내가 뭘 묻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한 모양이었다.

        

       너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래, 내가 몸을 움직이고 있긴 했지만, 원래 이 몸은 사라의 몸이었다. 이 얼굴은 사라의 얼굴이었고.

        

       고양이 귀 머리띠를 골라 쓴 것은 나였지만, 이 머리띠가 어울리는지 아닌지 따져보고 있는 이 얼굴은 사라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 골라주겠다는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쪽 세상으로 올 때 돈을 가지고 오진 않아서 사는 건 사라 돈으로 사겠지만.

        

       어……?

        

       아니면, 어때? 다른 걸로 골라볼까?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감각을 공유하는 사라라면, 내가 보는 모든 것을 함께 보고 있을 테니까.

        

       “기왕사는 거, 제일 예쁘고 제일 어울리는 걸로 고르자. 어때? 같이 골라줄 테니까.”

        

       일부러 작게 목소리를 내서 그렇게 말한다.

        

       사라는 나와 같은 의식 안에 있다.

        

       비록 다른 몸으로 합류하여 함께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어딜 가나 함께 하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굳이 언짢아할 필요 없어.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는데, 뭘.

        

       …….

        

       사라는 잠깐 말이 없다가,

        

       그, 그럼 저쪽으로…….

        

       다소 소심하게 그렇게 말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라의 의식이 가리키는 ‘저쪽’이 어디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마녀들이 쓰고 다닐 것 같은 챙이 넓은 고깔모자였다.

        

       “좋아.”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결국, 사라는 그 이후로 자신의 머리 위에 열 번 넘게 다른 머리띠와 모자, 머리핀을 씌워보고는, 그 전부를 다 사버렸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이렇게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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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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