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3

    세희 연구소 내부에 방문객들을 유도하기 위한 안전선들이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세희 언니. 정말 격리실을 방문객에게 공개해도 괜찮을까요?”

    “회색 사신이를 보고 싶다는 요청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지. 협회 측의 허가도 나왔으니 사고만 안 터지면 괜찮을 거야.”

    세희 언니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나는 사신이의 격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했다.

    사람들이 자꾸 드나들면, 사신이랑 못 놀잖아!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는데, 격리실에 웬 연구원이 들어가 있으면 이상할 테니까….

    아침 10시가 되자, 방문객용 ID를 달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안전선을 따라서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인솔자는 김중뢰 선배.

    회색 사신 격리실 최초 공개라서 그런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회색 사신을 구경하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몰려온 것을 느꼈는지, 회색 사신이의 안테나가 매직미러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그리고 좌우로 살랑살랑.

    황금 사신이들은 매직미러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서 폴짝폴짝 뛰고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와.””

    방문객 쪽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사신이가 좀 귀엽기는 하지.

    예전과는 달리 여론이 많이 좋아져서 그런지, 방문객 전부 호의적인 시선으로 격리실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진짜로 TV를 보고 있어서 신기하다든지, 황금 사신이들이 너무 귀엽다든지, 수많은 소리가 복도로 퍼져나갔다.

    평온하고 즐거운 분위기.

    다행이야, 사고가 생길 것 같지는 않네.

    ***

    포근한 침대와 맛있는 간식, 그리고 미니 사신들이 뛰어노는 평소의 격리실.

    평소와 비슷해 보였지만 오늘은 격리실이 한층 더 소란스러웠다.

    격리실은 소리 차폐가 뛰어나니까, 딱히 소리가 시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격리실 매직미러 너머에 사람들이 잔뜩 있어서 장작적인 관점에서 소란스러웠다.

    호의가 가득한 감정이 격리실 밖에서 안으로 마구 밀어닥치고 있었다.

    푸른 사신들은 부끄러운지 투명화한 채 구석에 숨어서 사람들의 호의가 느껴지는 매직미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로 황금 사신들은 사람들이 잔뜩 있는 매직미러 방향으로 달려가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몇몇은 매직미러에 달라붙어서 반대편을 보려고 허튼 노력을 했다.

    유령화로 넘어가면 되는데, 왜 안 그러는 거지? 

    가끔 황금 사신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네.

    소란스러운 바깥은 애써 무시하고 TV를 켜서 뉴스를 틀었다.

    그러자 TV에서 나오는 것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무표정하지만, 왠지 모르게 후련한 표정의 내 모습.

    [그러니까 이게, 거대 해파리를 해치우고 난 뒤의 회색 사신의 모습인 거군요.]

    [네, 정황상 확실합니다.]

    나오고 있는 것은 제임스가 뉴스에 나와서 인터뷰했던 것의 재방송이었다.

    여기서 제임스가 뭘 잘못 먹었는지, 내가 죄다 해결했다고 떠벌려서 온 세상이 내 이야기로 가득해져 버렸다.

    요즘은 뜸해졌던 ‘내가 춤추는 장면’도 다시 TV에 간간이 나오기 시작해서 아주 곤란했다.

    예린이는 사신 굿즈가 잔뜩 나와서 행복해 보였다.

    상당한 가격의 인형이나 피규어를 잔뜩 사는 것 같았다.

    실물이 바로 옆에 있어도, 굳이 피규어가 필요한 건가?

    “와!”

    그러던 중, 격리실의 벽을 뚫고 들어올 정도의 환호성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황금 사신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었다.

    둠칫둠칫.

    그리고 중앙에는 현란하게 춤을 추는 황금 사신.

    작은 몸으로 꿈틀꿈틀 춤을 추는 황금 사신을 보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장작이 늘어나는 건 좋지만, 너무 소란스러우니까 쫓아내야겠어.

    나는 유령화를 하고 사람들 사이로 몰래 숨어들어 갔다.

    “어? 회색 사신이 사라졌어.”

    갑자기 내가 사라져서 그런지 복도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스위치를 내려서 복도의 빛을 모두 꺼버리자, 불안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

    “어? 뭐야?”

    깜깜한 어둠 속에서 휴대폰 전등만을 의지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한가운데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래줬다.

    히히, 이제 사람들이 놀라서 도망가면 평온한 일상이 돌아오겠지?

    하지만 내 예상은 반만 맞았다.

    반 정도는 깜짝 놀라서 거리를 벌렸고, 김중뢰가 놀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나를 보더니 달려들어서 마구 쓰다듬기 시작한 것이다.

    “회색 사신 귀여워!”

    “여기 머리카락 왠지 꿈틀거리는데?”

    그리고 혼란을 틈타서 예린이도 나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안겨서 이리저리 끌려다닐 뿐이었다.

    이건 다 제임스 때문이야.

    다음에 만나면 장난 좀 쳐야겠어.

    ***

    늦은 밤, 커피 향이 은은하게 나는 탐정 사무소에서 시끄러운 TV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사태는 트리니티 연구소에서 깊이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3 연구소장의 개인적인 일탈이었지만, 그것을 사전에 잡아내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트리니티 제3 연구소의 붕괴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결국 저렇게 망해버렸네요. 아저씨.” 

    금발 소녀는 살짝 씁쓸한 표정으로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사막에서 만났던 트리니티 연구소 소속 연구원 2명을 떠올렸다.

    “저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장본인들이니까, 직접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영원히 못 하게 되었네요.”

    “아가씨….”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짓던 소녀는 검은 요원을 보면서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저렇게 되면 나머지 연구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 트리니티 소속의 다른 연구소들도 해체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조사 결과 제3 연구소의 독단이라고 나온 것 아니었나요?”

    “그래도 이번 일은 너무 커서 누군가가 책임을 지게 될 겁니다.”

    검은 요원 생각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진화액’이라는 것이었다.

    마침 TV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 트리니티 제3 연구소에서 인간을 오브젝트로 바꾸는 실험을 자행했다는 말씀이죠?]

    [네, 현재 제3 연구소에서 발견된 자료를 보면 거의 확실합니다.]

    현재 조사로 밝혀진 ‘진화액’의 재료는 바로 인간.

    인간을 고문해서 만든 액체로 인간을 진화시키고 오브젝트를 지배한다는 미친 발상의 물건.

    진화액에 대한 끔찍한 자료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게 한 자료가 하나 더 튀어나왔다.

    트리니티 제3 연구소에서 팔던 간식이 진화액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인육 과자’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었다.

    간식 하나 사 먹었더니, 그게 인육 큐브였다니.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컸고, 반응은 격렬했다.

    그 간식은 맛있고 향기로운 데다가 가격까지 싸서 꽤 많은 사람이 즐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트리니티 해체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TV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소녀가 TV를 끄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튼을 열자, 달빛이 소녀의 위로 쏟아져 들어왔다.

    “요즘 탐정 아저씨는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네요. 이래서야 언제쯤 저는 태양 아래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분명 태양 아래 설 날이 올 겁니다.”

    “분명 그렇겠죠?”

    살짝 불안해하면서도 씩씩한 표정의 소녀를 보며 검은 요원은 마주 웃었다.

    ***

    미니 사신 정원의 캐노피 하늘 근처, 날아다니는 과자집이 하나 있었다.

    푸른 사신들이 모여 사는 과자집이었다.

    원래는 핫초코 바다 위에 떠 있던 집이었지만, 언제나 싱글벙글한 황금 사신들의 관심을 피해서 하늘로 날아오른 집이었다.

    그 안에서 10명의 푸른 사신이 모두 모여서 물거품으로 만들어진 수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정안에 보이는 것은 세희 연구소 세탁실의 전경.

    그 안에서 심심해 보이는 표정의 회색 사신이 회전 중인 세탁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무서워!>

    그 표정을 보면서 푸른 사신이 공포에 떨었다.

    세탁기 안에는 수많은 황금 사신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마시멜로 망치로 때렸던 황금 사신들을 죄다 붙잡아서 세탁기 안에 넣어버린 것이다.

    황금 사신들은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회전하고 있었지만, 푸른 사신에게는 무서운 장면이었다.

    물리 면역이 없고 연약한 푸른 사신은 크게 다칠 테니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들오들 떠는 푸른 사신을 다른 푸른 사신들이 껴안아 주며 위로했다.

    그리고 수정에 비친 회색 사신이 푸른 사신 쪽을 돌아보면서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거기 있는 걸 알고 있다는 것 같은 의미심장한 표정.

    화들짝 놀란 푸른 사신들은 물거품 수정을 없애고 다 같이 서로를 끌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

    깊은 밤, 트리니티 제3 연구소 발굴 현장.

    대부분이 퇴근한 시간, 한 연구원이 남아서 발굴된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건 뭐지?”

    [머리 없는 도마뱀이야. 죽어도 불 속에 집어넣으면 살아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연구원이 오브젝트를 가리키며 질문하자 허리춤의 고풍스러운 램프에서 답변이 들려왔다.

    연구원은 그 말을 노트와 필기구를 이용해서 열심히 받아적었다.

    연구원은 제3 연구소에서 발굴된 수많은 오브젝트를 보관 중인 임시 보관소를 돌아다니면서 질문을 하고 받아 적기를 반복했다.

    그때 돌아다니던 한 연구원의 눈에 특이한 오브젝트가 보였다.

    검은색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는 보라색 소라게였다.

    집게발은 썩어서 떨어져 나갔고, 힘을 잃고 쓰러진 채 죽어가고 있는 소라게였다.

    오브젝트로 보이는 소라게를 보고 연구원은 램프를 들어 올리고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야. 이 소라게는 뭐지?”

    [보라색 달의 권속이야.]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램프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면 이제 계약할 거지?]

    “아니.”

    연구원은 램프를 두꺼운 합금으로 둘러싸인 보관함에 넣고 밀봉해 버렸다.

    <취급 주의.>

    <사람을 유혹하는 램프.>

    <자세한 사항은 보고서를 확인.>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