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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

       “평화속에 잠드소서.”

       

        ‘…어디서 저런 고수가…’

        ​

        마인들의 눈에 긴장이 달렸다.

        ​

        그들이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며 피를 탐하는 마귀들이라고 해도, 눈앞의 사내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하리라.

        ​

        “아까는 그렇게 시끄럽게 굴더니, 왜 조용해졌나?”

        ​

        윌리엄은 평소보다 목소리를 내리 깐 채로 마인들을 둘러보았다.

        ​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잡졸 열.

        ​

        그럭저럭 귀찮은 놈 셋.

        ​

        ‘최대한 빨리 정리한다.’

        ​

        어차피 죽여야 하는 상대라면, 최대한 빨리 죽이는 것이 효율적이었으니까.

        ​

        일격에 절정고수 하나를 살해한 그는 느긋하게 다음 표적을 응시했다.

        ​

        “하.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

        “시끄럽고, 유언 정도는 말하게 해주지.”

        ​

        마치 그가 곧 죽을 거라고 단정 짓는 말과 함께, 그가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

        “아무리 그대가 고수라도 우리들이 전부 달려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소.”

        ​

        흑백쌍귀 중 형인 흑귀가 손에 낀 조갑(爪甲)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

        ‘저자를 죽여야만 여기서 나갈 수 있다.’

        ​

        어지간한 고수도 나갈 수 없을 만큼 굳게 잠긴 공간에서 단시간에 빠져나갈 수는 없다. 

        ​

        눈앞의 괴인이 그들이 탈출하려는 것을 곱게 봐줄 리가 없었으니까.

        ​

        “아우야. 최악의 경우엔…”

        ​

        “형님. 걱정 마시오. 우리들이 전부 달려들면 초절정고수라도 쉽게 이기지 못할 테니.”

        ​

        “잡담은 끝났나? 그럼…”

        ​

        흑사자의 엄지가 안쪽으로 반바퀴 돌아 아래로 내려간다.

        ​

        마인들은 그 행위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저것이 그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

        “죽어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윌리엄의 몸이 흑백쌍귀를 향해 짓쳐 들었다. 수라도마냥 단번에 끝내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그의 돌진을 가까스로 피한 흑백쌍귀는 급소를 향해 조갑을 휘둘렀다.

        ​

        ‘우리를 너무 얕보는군!’

        ​

        초절정고수라도 기를 이용한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흑백쌍귀는 사자탈을 쓴 괴인이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거라 짐작하고 다음 수를 준비했다.

        ​

        ‘놈이 공격을 막는 순간 내 창으로 심장을 노린다!’

        ​

        인간의 팔은 고작 두 개에 불과하니, 세 방향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쉽사리 막아낼 수는 없을 터. 사혈창은 그와 반평생을 함께한 창을 거침없이 내질렀다.

        ​

        ‘저런!’

        ​

        하오문주는 깜짝 놀란 눈으로 윌리엄을 쳐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이미 잔뜩 땀이 밴 상태.

        ​

        하지만 그런 급박한 상황임에도, 윌리엄은 막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

        막을 필요 따위는 애초에 없었으니까.

        ​

        “이게 무슨…!?”

        ​

        부러진 손톱.

        ​

        강한 반탄력에 튕겨 나간 창.

        ​

        거침없이 백귀의 팔을 붙잡은 손.

        ​

        백귀가 저항할 틈도 없이, 윌리엄의 몸이 그에게 바짝 붙었다.

        ​

        백귀는 최후의 발버둥으로 금나수법을 펼쳐 윌리엄의 얼굴에 손을 휘둘렀지만, 그의 손짓은 윌리엄의 얼굴에 닿지 못하고 막혔다.

        ​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

        자연스레 그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살의를 담은 눈이 그의 심장을 죄어오고 있었으니까.

        ​

        “동생부터 보내주지.”

        ​

        “형님…!”

        ​

        윌리엄과 백귀의 몸이 달라붙었다. 남녀의 밀착이라면 좋았겠지만, 둘의 밀착은 사형선고와 다를 바가 없었다.

        ​

        “아우를 놔라!”

        ​

        흑귀의 반쯤 부러진 손톱이 윌리엄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다. 마기가 가득 담긴 살벌한 손짓이었지만, 윌리엄에게는 나비의 날갯짓이나 다름없는 공격.

        ​

        윌리엄은 그가 공격하든 말든 백귀의 몸을 거꾸로 들어 올렸다.

        ​

        “젠장…! 뭐 이딴 괴물이!”

        ​

        절정고수가 어떤 사람들인가.

        ​

        최고수는 되지 못할지언정,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이지 않은가.

        ​

        ‘초절정고수라도 절정고수 여럿이 달려들면 이리 쉽게 상대하지는 못한다. 어떻게 이런 녀석을 하오문주가 데려왔지?’

        ​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절정고수가 고작 하오문주를 도우러 올 존재던가. 

        ​

        이 중원 땅에서 초절정고수라는 존재들은 그런 존재였다.

        ​

        압도적인 힘을 가진 무인들. 그들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해 금괴를 100개는 바쳐야 움직일까 말까 하고, 그마저도 대부분 특정 문파에 속해 돈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자들.

        ​

        그렇기에, 그들은 하오문주가 무려 초절정고수를, 어쩌면 그보다 더한 고수를 데려왔을 것이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

        “괴물이라. 마인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한데.”

        ​

        윌리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살기가 그득한 미소였다.

        ​

        비록 탈 안쪽에 있어 아무도 보지 못한 미소였겠지만, 마인들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망할 놈들! 우물쭈물대지 말고 빨리 도우란 말이다!”

        ​

        기껏해야 일류 남짓한 마인들. 그들도 마냥 약하지는 않지만, 절정고수의 특권이라는 기의 발출을 하지 못하는 그들은 윌리엄의 위용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

        “일단 하나.”

       

        거꾸로 들려 그의 가슴께에 닿은 백귀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서렸다.

        ​

        “주, 죽고 싶지 않…”

       ​

       “저승에서는 착하게 지내도록.”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과 백귀의 몸이 급격하게 뒤로 넘어갔다. 잔상이 보일 정도의 속도.

        ​

        단말마와 함께 바닥에 부딪힌 백귀의 몸이 크게 솟아오른 먼지에 가려졌다.

        ​

        하지만 모습이 가려졌다고 한들, 사람의 몸이 우그러지는 소리까지 가려질 수는 없는 법. 흑귀는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에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질렀다.

        ​

        “아우야!”

        ​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좀 조잡했군.”

        ​

        두 명이 넘어졌지만, 일어난 것은 하나. 

        ​

        윌리엄은 오랜만에 사용한 레슬링 기술에 아쉬움을 느끼며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

        롱소드와 다르게 짧고 끝이 뾰족한 검을.

        ​

        “아우야…!”

        ​

        “저승사자 만나러 간 동생 걱정할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하는 게 낫지 않겠나.”

        ​

        “네 놈… 죽여버리겠다!”

        ​

        “니들이 죽인 사람들의 형제자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

        흑귀의 눈의 실핏줄이 터져 핏빛으로 물든다. 그리고, 그의 몸을 거무스름한 기운이 뒤덮기 시작했다.

        ​

       역혈대법.

        ​

        마인에게 주어진 최후의 수단.

        ​

        윌리엄은 흑귀의 역혈대법을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했다.

        ​

        ‘직인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힘들었겠군.’

        ​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

        역혈대법은 사용자의 선천진기까지 끌어내 강력한 힘을 끌어내는 비기였으니까.

        ​

        허나 지금의 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

        그는 마스터였기에.

        ​

        “으아아아아아!”

        ​

        “잠깐!”

        ​

        사혈창의 다급한 만류에도 흑귀는 검은 잔상을 흩뿌리며 윌리엄에게 달려들었다. 사혈창도 어쩔 수 없이 윌리엄에게 뛰어들어 창을 내질렀다.

        ​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승산조차 없을 것이기에.

        ​

        윌리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릎을 살짝 굽히고 그의 손에 쥔 검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렸다.

        ​

        그리고, 그는 흑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

        정확히는, 손잡이를 쥔 주먹을 흑귀를 향해 휘둘렀다. 

        ​

        검객이 했다기에는 지나치게 단순 무식한 대응에, 두 마인은 기회라는 듯 전력으로 절초를 사용했다.

        ​

        “죽어라!”

        ​

        “죽으시오!”

        ​

        제발! 이라는 절규가 생략된 일격이 윌리엄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날아가는 화살만큼이나 재빠른 출수에 윌리엄의 눈이 느긋하게 목을 노리는 창끝을 쳐다보았다.

        ​

        그리곤 신경조차 쓰지 않고 흑귀의 얼굴을 로마 검투술의 기본 초식 중 하나인 스트레이트로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동시에 사혈창의 창이 윌리엄의 목에 부딪혀 긁히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미끄러졌다.

        ​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이건 말로만 듣던 금강불괴가 아니오?”

        ​

        세상에 어떤 미친 무인이 자신에게 공격이 날아오는데도 몸으로 받아낸단 말인가. 사혈창은 그의 대응에 금강불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금강석처럼 몸이 단단해진다는 전설의 외공.

        ​

        그렇지 않고서야 창에 기를 듬뿍 실은 공격을 무방비하게 맞고서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

        “금강불괴는 무슨.”

        ​

        윌리엄은 주먹에 맞고 날아간 흑귀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퉁퉁 부은 꼴을 보니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모양. 

        ​

        자기 딴에는 동귀어진의 수를 내질렀지만, 애석하게도 윌리엄에게 그 정도의 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

        그의 몸에 희미하게 덧씌워진 오러 아머 앞에서 고작 창기와 조기 정도로는 그럴듯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할 테니.

        ​

        “젠장…!”

        ​

        사혈창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었다.

        ​

        ‘윗줄의 고수를 만났을 적에도 이 정도로 벽을 느끼지 못했건만, 도대체 이자는 뭐 하는 자란 말인가!’

        ​

        전력으로 창에 기를 불어넣어 찔렀음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몸.

        ​

        제아무리 호신강기라 해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

        아니, 그 전에 호신강기가 저렇게 튼튼할 리가 없다.

        ​

        어설픈 수준이라면 모를까, 실력이 완숙에 이른 절정고수가 전력을 다해 내지른 창은 초절정 고수라도 쉽사리 무시할 수는 없었다.

        ​

        “넌 기다려라. 저놈부터 끝내고 올 테니.”

        ​

        ‘젠장!’

        ​

        사혈창이 급하게 창을 내질렀다.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

        흑귀마저 죽으면 자기 혼자 이 괴물을 상대해야 할진대.

        ​

        그의 간절함이 담긴 창끝이 다시 한번 윌리엄의 얼굴을 향해 내질러졌다. 

        ​

        흔들림 하나 없는 찌르기. 

        ​

        하지만 윌리엄의 대응은 간단했다.

        ​

        “하…!”

        ​

        “그렇게 먼저 죽고 싶다면야.”

        ​

        창기를 둘렀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잡힌 그의 애병.

        ​

        윌리엄은 왼손으로 창끝을 잡고는, 오른손에 들린 검의 손잡이로 사혈창의 어깨를 찍었다.

        ​

        창을 놓지 않는다면 피할 수 없는 일격.

        ​

        창수가 창을 놓아야 한다는 절망적인 상황.

        ​

        사혈창은 결국 창을 제때 놓지 못했다.

        ​

        “으아악!”

        ​

        터져 나오는 피. 절망에 휩싸인 비명. 윌리엄은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어깨가 박살 난 그의 목을 향해 글라디우스를 내질렀다.

        ​

        곧이어 파육음과 함께, 사혈창의 몸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

        그렇게 혈우창의 계승이 영영 끊어지고 말았다.

       

       “고이 잠드소서.”

        ​

        “제, 젠장…”

        ​

        마인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친다. 자신만만하게 하오문을 털기 위해 온 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추태.

        ​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

        마인에게도 삶은 소중한 것을.

        ​

        윌리엄은 사혈창의 목에 꽂힌 검을 뽑아 들고는, 흑귀에게 다가가 마찬가지로 저승 여행을 시켜주었다.

        ​

        싸늘하게 식은 네 구의 절정고수들.

        ​

        윌리엄의 시선이 잡졸들에게로 향했다.

        ​

        “너희들만 남았군.”

        ​

        “이, 이런 말도 안 돼…”

        ​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왔던 반란이 단 한 명에게 막히다니!

        ​

        윤철은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떨었다.

        ​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있어 다가올 결말이란,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

        “자네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 믿었겠지. 허나…하늘은 내 편이라네.”

        ​

        하오문주의 목소리가 윤철의 귓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

        “자네는 전부 토해내야 할 걸세. 어떻게 마교 놈들과 결탁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자들이 마교에 협력했는지 말일세.”

        ​

        “제, 젠…”

        ​

        ‘자, 자결해야…’

        ​

        차라리 품속에 있는 독약으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나을 터.

        ​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

        “여봐라! 저놈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제압하거라!”

        ​

        “존명!”

        ​

        하오문주의 호위 무사들이 눈 깜짝할 새에 다가와 윤철의 수혈을 짚었다.

        ​

        수혈을 짚인 윤철은 곧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

        그리고, 그사이에 마인들을 전부 저승으로 보내준 윌리엄이 하오문주에게 다가왔다.

        ​

        “이 정도면 할 일은 다 한 것 같소만.”

        ​

        “정말 고맙소. 하오문주의 이름을 걸고 그대에게 합당한 보상을 할 것이오.”

        ​

        ‘아주 잘 풀렸군.’

        ​

        윌리엄은 하오문주를 뜯어먹을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MI:로마 검투술은 레슬링, 각종 무기술, 복싱, 그외 타 지역 아츠가 잡다하게 섞인 종합 아츠입니닷.

    오래전 로마 검투술이 하나의 아츠로 집대성된 이래 수백개의 분파가 있으며, 분파마다 사용하는 세부 아츠가 다릅니닷.

    주인공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레슬링, 글라디우스 검술, 복싱 위주로 배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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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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