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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내 진로 설문지는 구겨지고 땀에 절여진 채로 돌아왔다. 

       

        볼 거면 좀 얌전히 볼 것이지.

       

        [그래도 찢어버리지 않은 게 어디에요.]

       

        양장본의 말에 빠르게 수긍하며 픽 웃음을 지었다.

       

        로즈마리도 로즈마리지만, 지금은 플레어의 소형화가 급선무다.

       

        이사장이 블랜튼 가문의 암살을 위해 마련하라고 부탁하였던 그 소형 플레어 말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만들어 달라고 했었던가?

       

        무선전화를 만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6G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제작해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놀이용으로 만드는 건 아니니까 GOS 성능은 고려할 필요 없겠지?

       

        …막 이래.

       

        이사장이 학비와 생활비를 대 줬으니 어떻게든 보답하긴 해야 한다. 이쪽에서 계약을 파기하면 그건 내로남불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거든요….

       

        “후우.”

       

        이걸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하나.

       

        이 자리에서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건 없던 참이었다.

       

        설문지를 책상 서랍에 넣고 기다리니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월요일 1교시는 정령마도이론 시간으로, 카이뤼삭 교수가 강의를 진행한다.

       

        지구로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과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들어두면 좋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직 학기 시작한 지 1주밖에 안 됐다. 대학의 모든 강의가 그렇듯이 이것도 3~4주차부터 어려워지겠지. 처음 보는 과목이니만큼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으며 예·복습을 해야 한다.

       

        “이번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대정령이 무엇인지, 원소별로 어떠한 능력을 지녔는지를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상식과도 맞닿아 있는 능력이니까 잘 들어두도록 하세요. 그래야 어디 가서 나 정령마도 공부했다는 소리 할 수 있겠죠?”

       

        그리고 한동안 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원소마도의 정령의 눈 색은 우리 눈동자의 색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령의 정식 명칭은 ‘사대정령’이다. 크게 네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불, 물, 흙, 공기.

       

        판타지 하면 흔히 나오는 4원소 설정.

       

        정령도 마수처럼 인간형과 인간형이 아닌 것이 있지만, 인간형 정령은 그들이 관장하는 원소에 맞춰 눈동자 색을 지닌다는 걸 방금 배웠다. 딱히 필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현재는 이 이론으로 금안족이 왜 마법을 홀로 사용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카이뤼삭 교수. 악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달가운 시선도 아니다.

       

        “금안족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대응하는 정령이 없어서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그럴 거라고 추정만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신이 금안족을 편애하고 있지 않다는 소리 아닌가. 다른 종족은 다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줬으면서 하필이면 우리만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억울해서 복장 터지겠네.

       

        “교수님.”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로즈마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러면 여신은 처음 종족을 만드실 때 평등하게 능력을 주지 않았다는 말씀이죠?”

       

        뭔가 했더니 조금 전 프레이와의 말다툼에서 앙금이 남아 있던 모양. 어지간히도 뒤끝 심한 녀석이다.

       

        “글쎄요. 능력 자체는 동일하지 않지만 그건 평등함과는 거리가 멀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모두 다 다른 조건에서 태어났습니다. 차이는 존재해요. 하지만 그걸 차별로 두지 않는 것, 그게 평등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로즈마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인간 주제에’ 따위의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닐까.

       

        “답변이 됐을까요?”

        “…네.”

        “그럼 이어서 하도록 합시다. 이런 사대정령 중 하나만 있어도 원소마도의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는 건 첫 시간에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조금 엄밀하게 나가봅시다.”

       

        탁, 타탁.

       

        분필을 집어 들더니 칠판에 무언가를 적은 카이뤼삭 교수.

       

        “여기 이 수식을 보시길 바랍니다.”

       

        무언가 복잡한 공식이다.

       

        대강 훑어보니 무얼 뜻하는지는 알겠다. 정령마도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는 관계식이다.

       

        어라, 잠깐만.

       

        “예를 들어 아주 미세한 대상을 컨트롤할 일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경우에 정령마도가 없는 사람은 제아무리 힘을 갈고 닦아봤자 백만분의 일 단위의 조작이 한계일 겁니다. 이건 연구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 왼쪽 텀을 보세요. 정령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쓴 버전에서는 나노미터 단위에서도 마도공정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저거 저 식대로면 스크롤을 작게 만드는 작업도 가능하지 않나?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시려나 모르겠네요. 제가 이 나노미터 단위의 물성을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은근슬쩍 랩실 홍보하기. 대학원생에 목마른 교수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내가 학부생일 때 만났던 수많은 교수님도 강의 PPT에 자기 연구 결과를 삽입하며 학생들에게 진득하니 어필하셨는데….

       

        아무래도 이 어필에 관심을 보여야 할 듯하다.

       

       

        **

       

       

        갑자기 2학기에 들어온 한 학생.

       

        로즈마리 블랜튼 공녀.

       

        헤를라인을 비롯하여 몇몇 사람은 그녀가 마수, 혹은 마수와 연관 있는 존재라는 걸 눈치챈 지 오래였다.

       

        제1황자를 담가버린 것이 블랜튼 공작.

       

        여자만 조금 밝힐 뿐인, 평범하디 평범한 제2황자를 세뇌하여 난폭하게 만든 것도 블랜튼 공작.

       

        클라이스를 찾아 떠나려는 자신을 막은 것조차도 블랜튼 공작.

       

        모든 것이 블랜튼과 연결되어 있다. 여름방학 이후로 이 생각을 하루라도 안 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저번 주 공녀의 ‘견학’이 결정타가 되었다.

       

        로즈마리가 등장하자, 자신을 도와주던 학생이 몸을 숨기길 청했다. 그동안 차분해 보이던 그 친구가 목소리까지 덜덜 떨어가면서 말이다.

       

        ‘버멜 호르데.’

       

        그는 엘프다. 엘프가 어떻게 제국 사정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학생이 어떻게 황성 정치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꿰뚫고 있는지 모르겠다.

       

        ‘신기한 아이야.’

       

        헤를라인의 관심은 대부분 그곳에 쏠려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고도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학생이 하나 더 있었으니.

       

        “…….” 

       

        시간은 흘러 오후.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온 헤를라인은 책상에 진로 설문지를 올려놓았다.

       

        조각상처럼 의자에 앉아 설문지를 한 장씩 훑어본다.

       

        “프레이, 로테…. 모두 괜찮게 써서 냈구나.” 

       

        학생의 진로를 신경 쓰는 것 또한 선생의 업무다. 다른 교사라면 이러한 학생의 지침에 앓는 소리를 내었겠지만 헤를라인은 달랐다.

       

        대략 3년 전.

       

        북방 전선에서 복역하던 시절 헤를라인은 비공정을 닮은 절멸급 마수에게 한쪽 눈을 잃었다.

       

        그 후로 통감한 것이다. 혼자서는 안 된다고.

       

        그런 이유로 오랜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질 걸 알면서도 금안족 소녀의 입학까지 도와주었다. 어찌 보면 이기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그만큼 아까운 인재였다.

       

        보라. 그 선택의 결과가 여기 있지 않은가.

       

        ##########

        [2. 구체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적으시오.]

       

        – 플레어를 비롯한 공격용 마도의 소형화

        – 피치블렌드 마석의 쓰임새 연구

       

        – 텔러-울람 설계법을 활용한 50Mt 이상의 폭탄 개발

        → 철의 마탑 폭파

        → 철병팔진 폭파

        → 1, 2, 3차 저지선 폭파

        → A, B 도련선 폭파

        → 기타 전선에서 재앙급 이하의 마수 일소

       

        – 레이저 플라스마 이론을 활용한 150Mt 이상의 폭탄 개발

        → 마왕군 절대방위선 폭파

        → 마왕성 폭파

        → 절멸급 마수 일소

        → 마왕이 부활할 경우 사살

       

        – 위 폭탄 연구의 상용화 및 소형화 방법 구축

        ##########

       

        장래에 무얼 이루고 싶은지 적으랬더니, 아예 연구계획서를 써 놓았다.

       

        이름을 안 봐도 누구의 꿈인지 알 것 같다.

       

        모든 종족을 조화롭게 만들고 싶다는 프레이의 꿈도.

       

        모든 마수를 몰아내고 평화로운 대륙을 건설할 전투마도사가 되고 싶다는 로테의 꿈도.

       

        전부 창창하고 응원해줄 만한 것이었지만 에테르에 비하면 한없이 추상적이다. 현실주의자가 보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헤를라인은 그런 아이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진하고도 포부가 있어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에테르의 장래 계획에는 ‘엄밀함’이 있다.

       

        “무얼 읽고 있어요?”

       

        감상에 젖어 있던 헤를라인을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낸 건 동료 교수였다.

       

        “아, 저희 반 학생들 진로 설문지에요.”

        “와. 이 학생은 엄청나게 길게 썼네요?”

        “네. 저번 학기 반에서 1등 한 친구거든요.”

        “역시 수석은 달라도 다르나 봐요…. 장래 희망도 남들과는 다르네요.”

       

        이 교수는 원래부터 리액션이 많은 사람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 학생이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니, 원래는 내 학생이 아니었지.

       

        블랙 커피 같은 씁쓸한 맛이 혀끝을 맴돈다. 누군가의 생각을 할 때마다 심장이 미어지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떠나간 일을 심사숙고할 여유조차 내리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헤를라인은 테뉴어를 받은 교수. 잠이 모자랄 정도로 일이 바쁜 사람이었으니.

       

        “그럼 전 오후에 미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볼게요.”

        “어머…. 잘하고 오시길 바랄게요.”

       

        교무실을 떠나기 직전, 헤를라인은 설문지 맨 앞장에 적어 놓았던 필기를 떠올렸다.

       

        ‘끝나고 교양관 지하실로 올 것.’

       

        예의 학생을 다시 만나러 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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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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