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3

       특정 시점 이전으로 가는 방법은 막혔지만, 그게 나에게 있어서 아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지보를 도둑맞은 것이나 그 검은 로브를 입은 인간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뼈아팠지만, 그렇다고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이전으로 시간을 더 돌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 다시 그놈을 만나서 돌아가는 길이 막히기 전에 조금 더 확실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황실 금서고를 돌아다니면서 그 책의 내용을 더 꼼꼼하게 확인한다든지.

        

       몇 년 전에 내가 그곳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황녀조차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단 말이지.

        

       게임 속에서도 이미 여러 번 들어가면서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알고 있었고, 실제로 몇 번 정도 들락날락하면서 내부 구조를 파악했다.

        

       ……몇 년 전에 들락날락할 때보다는 훨씬 더 들어가기 힘들었지만.

        

       실린더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틈을 열심히 기어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런 식으로 납작 엎드려서 기어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긴 했지만—

        

       서브컬쳐에서 거유 캐릭터들이 종종 빈유 캐릭터를 부러워하는 것 같은 말을 해서 열받게 만들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어깨가 결린다던가, 계단을 내려가며 발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하다든가 하는 말들이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난 그 말에 여러모로 공감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을 때도 안에 최대한 가슴을 고정하지 않으면 뛰어다니기가 더럽게 힘들었고.

        

       “……하아.”

        

       나는 기어가던 것을 멈추고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리 위에서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고, 유압 실린더가 꾸준히 움직이면서 기름칠 잘 된 기계가 돌아갈 때 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행히 여기서는 증기를 뿜어내는 기계는 없었다.

        

       ‘금서고’는 황궁 가장 깊은 곳, 다시 말하자면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없다.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 했고, 그 엘리베이터의 입구도 두꺼운 강철 문이 보호하는 방 안에 있는 데다가 그 방 밖, 방 안에도 경비들이 수없이 있다.

        

       앨리스와 레오가 황궁 안에 잠입했을 때도, 그래서 그쪽으로는 가지 않기로 했었지.

        

       평소에는 중무장한 병사 네 명에서 여섯 명도 한꺼번에 상대하는 캐릭터들이 고작 몇 명의 적이 서 있다는 이유로 그 앞을 피하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뭐, 총알이 사람을 뚫을 수 있는 세계이면서도 막상 전투에서는 몇 번을 맞아도 포션이나 회복 마법이면 살아나니까.

        

       아무튼, 그래서 그 두 사람이 선택한 것이 이 정비용 통로였다.

        

       황궁 안에도 해석기관과 차분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반도체를 이용하는 CPU와는 다르게 조금 ‘컴퓨터적인’ 행동하는 기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증기기관으로 돌리는 거대한 기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톱니바퀴와 갈퀴들, 유압 실린더가 끊임없이 돌아가며 ‘화면 비슷한 것’에 정보를 표시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부품이 많은 만큼 고장 날 구석도 많다. 크게는 사람만 하고, 작게는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가장 작은 톱니바퀴만큼이나 작은 부품들이 수도 없이 있으니, 수명이 다하면 주기적으로 고치기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걸 고치러 다니기 위한 입구도 있는 것이다.

        

       그 입구도 당연히 사람들이 지키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 ‘일반적으로는’ 이 안으로 들어와서 금서고까지 갈 방법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여기처럼 사람이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을 찾아 들어가서 가야 했으니까.

        

       황궁 설계도를 미리 찾아 읽은 앨리스와 레오였기에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이미 그 길을 알고 있었고.

        

       ……시간을 돌린다면 그 입구를 그냥 통과할 수도 있겠지만…….

        

       몇 년이나 지내면서 황궁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여러모로 대화를 하며 지냈고, 그래서…… 뭐랄까, 쓰기가 영 그랬다.

        

       그나마 이런 방법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

        

       처음에는 던전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들어왔을 때 내 기억 속에 있던 그 모습과 똑같았던 것이 참 신기했었지. 워낙 복잡한 곳이라서 몇 번 헤매고 시간을 돌려가며 들어가긴 했지만.

        

       그렇다. 던전이다.

        

       내가 총을 가지고 온 것도 그런 이유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총을 앞으로 밀고, 다시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을 꾸준히 반복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지내며 근육이 조금은 붙었는지, 쉬엄쉬엄 움직이니 충분히 가볼 만한 것 같았다.

        

       “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꾸역꾸역 기어서 겨우 밖으로 나왔더니—

        

       끼릭끼릭.

        

       기름칠이 잘 안된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끼릭끼릭, 짐승의 발소리라기에는 이질적인, 톱니바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총알이 장전된 총을 손에 들고 일어나 앞을 보았다.

        

       어두침침하긴 했지만, 조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마력석 덕분에 방 안이 약하게 밝혀져 있었다.

        

       갑옷을 입은 사람이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쪽 손, 이라고 할만한 부분에는 손 대신 검이 붙어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짧은 총기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다리는 없다. 허리 부분이 끊어진 채 그대로 장대에 박혀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저거 자체가 통째로 기계였으니 딱히 잔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격장에 있는 움직이는 과녁처럼 아래에 있는 쇠막대가 그대로 바닥에 길게 나 있는 틈 안에 고정되어 있었다. 톱니바퀴 굴러가는 소리는 그 안에서 나고 있었다.

        

       바닥에 이리저리 어지러이 그리는 선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나를 따라오겠지.

        

       ……안에 언제나 사람이 상주하기 힘드니 중간중간 있는 보안장치들이었다.

        

       물론 사람보다는 한없이 멍청하긴 하지만.

        

       나는 그대로 총기를 들어서 움직이는 것 중 하나를 겨누었다.

        

       약점이라면 알고 있다. 게임에서는 결국 HP가 다 떨어질 때까지 때린 후에야 막타로 약점을 치는 연출이 나왔지만, 여기는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탕!

        

       그런 소리와 동시에 등 쪽의 철판을 깨끗하게 관통당한 한 기가 허리를 앞으로 축 늘어뜨렸다. 그런 와중에도 쇠막대는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고, 가동을 멈춘 기계는 쇠막대가 움직이는 대로 흐느적거리며 자세를 바꾸었다.

        

       다행히 보안설비가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기가 작동 정지했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나머지 두기의 몸통이 내 쪽으로 휙 돌았다.

        

       오른쪽이 먼저, 그리고 왼쪽이 그 다음.

        

       좋아.

        

       다시!

        

       *

        

       오른쪽이 먼저 돌기 전에, 나는 곧장 팔을 돌려서 쏘아 맞혔다.

        

       저것들의 전면장갑은 일반적인 소총이 관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한, 두 개를 먼저 정리한 다음에 그 다음 것을 정리하는 것이 낫다.

        

       남은 한기가 내 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며, 나는 곧장 바닥을 굴렀다.

        

       그 기계는 돌아서는 동시에 총을 발포했다. 투캉,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산탄이 내가 있던 곳의 바닥을 치며 불꽃을 만들어냈다.

        

       진짜,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거라서 다행이라니까.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카메라도 없고, 레이저 같은 것으로 하는 동작감지 센서도 없는 세상에서는 오로지 물리적인 충격만이 기계가 상황을 파악할 방법이었다.

        

       이 방의 바닥에도 미세한 스위치가 빽빽하게 있었고, 관리인이 내려서기 위한 곳 빼고는 전부 위험구역이었다. 잘못 밟았다가는 곧장 기계가 이쪽을 향해 총알을 날릴 테니까.

        

       기계에서 굴러가는 톱니바퀴를 파악하고 충격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파악하고……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톱니바퀴가 굴러가고 나서야 파악을 하게 되는 거니까.

        

       투캉, 투캉, 몇 번이나 내가 있던 곳을 쏘는 기계를 중심으로 나는 열심히 뛰며 돌았다.

        

       내 쪽으로 가장 빠른 레일을 통해 다가오는 기계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섬뜩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한 번도 상대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투캉!

        

       한 발 쏘고, 아주 미세한 틈을 두고 내 쪽으로 돌고— 만약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 기계는 나를 쏠 수 있었겠지만.

        

       탕! 탕!

        

       그래도 미리 생각하고 돌기 시작한 내 쪽이 아주 미세하게 더 빨랐다.

        

       기계의 옆쪽으로 돌아간 나는 곧장 옆구리에 총알을 두 발 갈겼다. 끼릭끼릭, 부품 몇 개가 나가기라도 했는지 허리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기계의 뒤로 돌아가서 마지막으로 한 발을 쏘았다.

        

       등 쪽의 가장 중요한 부품이 나간 뒤에야, 기계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여전히 바닥에서 내 쪽으로 움직이려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쇠막대 때문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기계 모두 나를 따라오고 있었지만.

        

       지체할 시간 없이 나는 곧장 다음 통로를 향했다. 바닥의 스위치는 저 기계들을 깨우는 역할도 했지만, 동시에 외부에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역할도 했으니까.

        

       사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정보를 알아내더라도 빠져나갈 방법을 모두 잃게 되겠지.

        

       나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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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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