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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엇차, 숲은 정리 끝났습니다. 위험한 마물은 더 없을 겁니다.”

     

    모험가파티의 대장이 선봉에서 기세 좋게 웨어울프를 토벌하고는 내게 보고해왔다.

     

    우리는 북부 숲을 거의 빠져나온 참이었다.

     

    “웨어울프가 서식한다는 건 라이칸도 출몰할 수 있단 뜻이지. 경계 늦추지 마.”

     

    내가 덧붙이니 대장이 살짝 놀라며 입꼬리를 올렸다.

     

    “잘 아시네요? 혹시 나오면 깜짝 놀라게 해드릴 생각이었는데.”

     

    “왜, 샌님 기사들 입 벌어지는 꼴이 보고 싶었어?”

     

    “허, 어떻게 아셨습니까. 의사 선생님, 전에 모험가라도 하셨는지요?”

     

    대장이 허를 찔려서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용사파티의 전사와 궁수가 모험가 출신이라 늘 짓궂은 장난을 치곤 했었다.

     

    모험가들은 몸놀림이 거칠고 성격도 투박한 편이다.

     

    “하하, 장난이었습니다. 걱정 마십쇼. 저희 전원 B급 파티에 저는 A급입니다. 라이칸 정도는 얼마든지 토벌할 수 있죠. 그 야만족인지 뭔지도요.”

     

    “마물이야 그렇다 쳐도 야만족은 그렇게 얕볼 상대가 아닐걸.”

     

    “그래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위험 수당 받았었나?”

     

    “이미 환경 특수로 1할 더 받았으니 대충 퉁치자고.”

     

    “그랬습죠. 뭐 이리 추운 지역에 산답니까. 애초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맞슴까? 별 기술도 없는 야만족인데.”

     

    천둥족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긴 하지.

     

    “받은 만큼 일이나 해. 슬슬 고산지가 나타난다. 탐색 부탁해.”

     

    “물론입죠.”

     

    모험가들이 선두에서 지형을 파악하고 길을 낸다. 루트를 따라 나와 기사단의 각 부대가 조금씩 진격한다.

     

    숲을 나오니 마치 경계처럼 나무와 풀이 뚝 끊긴 지형이 나타났다.

     

    “오우.”

     

    흙내음이 사라지고 하얀색이 시야를 채운다. 높은 봉우리가 나를 맞이했다.

    천장은 구름으로 가득 차올라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최북단으로의 시야와 이동을 막고 있고, 그 사이의 틈새 골짜기만이 입구라고 어필하는 듯하다.

     

    “불길하군.”

     

    모험가 대장의 말대로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처럼, 마물의 입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바로 앞까지 천천히 전진한다.

     

    모험가들이 적습을 경계하며 주변을 탐색하고, 기사들도 태세를 늦추지 않는다.

     

     

    도중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골짜기 입구, 양쪽에 문양이 새겨진 나무 기둥이었다. 일종의 토템이었다.

     

    “정지.”

     

    전군을 멈추고 나는 말에서 내렸다.

     

    한 걸음씩,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어 앞으로 나아간다.

     

    “선생님.”

     

    나를 따라오려는 타냐를 제지한다.

     

    토템에서 살짝 떨어져서 모습을 확인한다.

     

    ‘맞네, 본 적 있는 모양이야.’

     

    미래에서 천둥족은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할 때 이걸 쓰곤 했었다.

     

    “일종의 탐지기야. 토템이 표시한 선을 넘어가면 야만족이 우리의 존재를 깨닫고 즉시 공격해올 거야.”

     

    “전투를 준비할까요?”

     

    “우선 평화로운 방법부터 써야지 않겠어.”

     

    기사단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천둥족 족장은 강하다. 용사도 없는데 쓰러트려서 폭풍석을 뺏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전쟁이 되면 시간도 뺏긴다.

     

    “브루노, 가져와.”

     

    “예.”

     

    브루노가 기사들고 함께 미리 준비한 짐마차를 끌고 왔다.

     

    짐을 풀어 안에서 물건을 꺼내고 보기 좋게 쌓기 시작한다. 꼭 제사상 같네.

     

    “뭘 준비하셨습니까?”

     

    “남쪽 지방의 열대과일. 북부의 야만족은 평생 못 먹어봤을 과즙 많고 달달한 음식이야. 한 입 먹으면 눈이 돌아가겠지.”

     

    “협상 재료로 쓰실 생각이군요. 과연 잘 통할지요. 비상시를 대비해 매복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타냐가 염려를 내비쳤다. 미지의 상대와의 첫 조우니 그녀의 판단도 올바랐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의 첫 조우를 수도 없이 해 봤다.

     

    “매복 말고 은폐로 포진해. 처음부터 대군을 보여주면 저들도 위기감을 느낄 테니 소수만 먼저 나가는 게 좋아. 아, 그리고.”

     

    내가 타냐의 투구 보호대를 내려주었다.

     

    “단장은 얼굴 가리고 다녀. 저들은 여자를 안 좋아하거든. 대신 강한 자는 좋아해.”

     

    “그렇습니까. 명심하지요.”

     

    모험가와 기사단은 은폐시키고 나와 타냐, 브루노를 포함한 한 개 분대만이 골짜기 입구 경계에 섰다.

     

    나무 열매를 잔뜩 쌓은 마차를 슬쩍 경계선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자 봉우리 전체에 파동이 웅웅 울린다. 하피가 비명을 지른 느낌이랄까.

     

    “으음…”

     

    기사들이 긴장하기도 잠시.

     

    ―쿵, 쿵, 쿵!!

     

    멀리서 지면을 가르는 발소리가 조금씩 커지더니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시야에 그것들이 나타나자 기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황을 살피러 나타난 야만족은 두 명. 얼굴에 문양을 새기고 모피를 덮었다. 이 추운 기후에도 맨살을 듬성듬성 드러냈다.

     

    다만 그들은 매우 위협적인 행태였는데, 한입에 사람 머리통을 씹어먹게 생긴 커다란 백곰을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고, 곰을 길들인 건가.”

     

    “평범한 곰이 아냐. 마물이다.”

     

    두 야만족이 우리를 보고 경계했다. 뾰족한 철제 촉이 달린 장창을 들고 당장에라도 던질 기세였다.

     

    “어떡하죠, 선생님?”

     

    “아이, 쟤네도 사람인데 설마 웃는 얼굴에 침 뱉겠어?”

     

    내가 여유롭게 양팔을 펼치며 그들 앞으로 나섰다.

     

    “하하하하! 순대국밥! 제육볶음!”

     

    내가 기세등등하게 외치자 타냐가 조그맣게 물었다.

     

    “저들의 언어입니까?”

     

    “아니, 그냥 기분 좋은 단어.”

     

    생글생글 웃으며 과일을 향해 손짓했다. 양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적대심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야만족 둘은 나를 경계하면서도 과일에 관심이 갔는지 고삐를 당겨 슬금슬금 다가오고는 매서운 눈으로 우리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얼굴과 체형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여자였군요.”

     

    “천둥족은 여성으로만 이뤄진 부족이거든.”

     

    “그래요? 흠.”

     

    브루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번식은 어떻게 하는…”

     

    “쉿.”

     

    팍! 야만족이 창으로 과일을 하나 찍어 가져갔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번쩍 눈을 뜨고는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이야기를 나눈다.

     

    내 눈치를 보길래 헤이 츄라이 츄라이 하는 느낌으로 환한 영업 미소를 보내줬다.

     

    한 명이 와드득, 터프하게 과일을 한 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빵긋 올렸다.

     

    다른 한 명도 시식에 동참하더니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곧 신이 나서 몇 개를 입안에 가득 우겨 넣고는, 창에 열매를 가득 꿴 후 다시 곰에 올라탔다.

     

    그 후에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인간, 목적, 말해라.”

     

    나는 퉁퉁 가슴을 두드렸다. 그들이 좋아하는 제스처다.

     

    “족장과 친구가 되고 싶어.”

     

    “족장, 친구.”

     

    야만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수를 틀어 골짜기 안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른 한 명이 나를 향해 윙크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야만족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기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상당한 위압감이었습니다.”

    “저만한 마물을 다루는 이들이라니.”

    “백작령에서 싸웠던 바위족보다 훨씬 수준이 높군요.”

     

    타냐가 내게 물었다.

     

    “의도가 제대로 전해졌을지요.”

     

    “기다려 봐야지. 족장이 호의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내가 반복한 한 달에서 과일 선물이 실패한 적은 없었지만, 지금과 다른 시간대기도 하고.

     

    ‘천둥족은 협상하면 이익이 되는 세력이야.’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내 회귀는 용사파티의 세 번째 임무인가. 서부 공작령으로 밀려드는 마물과 협곡 전투를 하면서 시작했다. 제국 서쪽에 있던 왕국이나 소국들은 이미 마족에게 함락된 상태였고.

     

    제국 곳곳에 설치된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계속 파견되어 정신없이 싸웠다. 중간중간 제도에 들러 아셀라와 충돌하는 건 덤이었지. 원작에선 세이브포인트 느낌이었다.

     

    사천왕들과 전투도 제도에서 이뤄졌다. 처음 찾아오는 놈이 대악마, 두 번째가 사룡이다.

     

    그러다 이미 1년 전에 선행한 부대가 마계에 잠입해 게이트를 설치하면 비로소 용사파티도 마왕성 공략을 시작하는 전개였다.

     

     

    ‘야만족과는 꽤 초반에 엮이지.’

     

    그만큼 천둥족 족장도 볼 일은 많았다.

     

    [No. 035 : 야만족 침공 8%]

    [No. 039 : 폭풍의 눈 4%]

    [No. 064 : 병력부족 12%]

    [No. 070 : 대악마 군세 11%]

     

    야만족, 사천왕 대악마와 관련된 배드엔딩은 총 열세 개다.

     

    사천왕 중 고위계 악마가 있는데, 놈은 야만족을 자신의 피로 감염시켜 수하로 쓴다.

     

    ‘바위족이 나타나면 가장 골치 아팠는데.’

     

    바위족은 지난번에 토벌했으니 [오염된 야만족] 배드엔딩은 사라졌다.

     

    ‘반대로 천둥족은 감염돼도 의지력이 강해 마족에게 저항해. 동맹이 되면 더 좋아.’

     

    우연히 천둥족 족장과 뜻이 맞아 함께 사천왕을 적대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병력부족]과 [대악마 군세] 엔딩을 피할 수 있었고, 초반에 이들과의 전투도 피하게 되니 용사파티의 부담도 덜어졌다.

     

    이후로 나는 천둥족이 수하로 나타날 때마다 족장과 친해질 방법을 찾았고, 가장 좋은 법은 음식이라고 깨달았다.

     

     

    ―쿵, 쿵.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는군요.”

    “아까보다 숫자가 많습니다.”

    “또 마물 곰인가.”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아까와 같은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쾅! 쾅!!

     

    대지가 울리며 그때마다 산지에서 눈발이 휘몰아친다.

     

    그야말로 천둥이 치는 소리.

     

    “저, 저건!”

     

    시야에 소리의 근원이 들어오자 기사들은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나타난 짐승은 뿔의 길이만 3미터, 키는 6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매머드였다.

     

    “대체 저게 뭐지!”

    “저런 마물은 처음 봅니다!”

     

    그리고 매머드에 목줄을 채우고 호기롭게 안장 위에 올라타 고삐를 당기는 야만인.

     

    천둥족의 족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당당하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고삐를 당겨 천천히 매머드를 멈춘 족장이 뿔 투구 아래에서 눈을 번뜩 뜨고 나를 내려다본다.

     

    “아, 흰 머리로군!”

     

    족장은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고는, 단숨에 안장 위에서 뛰어내려 내 앞에 착지했다.

     

    “우웃!”

     

    기사들이 그녀의 패기에 압도되어 자세가 흐트러졌다.

     

    족장은 옆에 놓인 과일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맛이야!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나, 제국민 인간.”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맞아, 천둥족의 족장. 라스라고 해. 사람을 고치는 자야.”

     

    내가 흐트러짐 없이 대답하니 족장이 허리를 쭉 폈다.

     

    코트처럼 엮은 모피 아래에서 새하얗고 탄탄한 몸이 드러났다.

     

    뼈 투구 사이로 정돈되지 않은 새파란 장발이 흩날린다.

     

    야성미를 있는 힘껏 뽐내며 족장,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라스 고트베르크! 바위족 족장의 목을 떨어트린 자가 아닌가!”

     

    오, 바위족 토벌전을 아네?

     

    족장을 토벌한 건 내가 아니라 타냐였지만.

     

    백작령에서 천둥족 정찰병이 멀리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족장의 목과 함께 내가 절벽 밑으로 떨어진 탓에 내가 해치웠다고 착각한 것 같다.

     

    야만족은 부족끼리 굉장히 적대적이니까.

     

    “적을 해치우고 선물을 가져온 너는 이미 나의 친구다! 천둥은 너를 환영한다!”

     

    그녀가 이빨이 드러날 정도로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좋은 느낌이 드는데.

     

    “라스, 고치는 자. 나는 기슈타, 잡아먹는 자다!”

     

    턱, 기슈타가 튼실한 양손으로 내 얼굴을 콱 잡았다.

     

    “우리 부족에는 남자가 없지. 좋은 남자는 낚아챈다, 잡아먹는다!”

     

    정정.

     

    살짝은 나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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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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