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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실수했네.”

       

        공역행 급행이 출발하는 1층의 플랫폼.

        왠일인지 어두침침한 로브를 뒤집어쓰지 않고 가벼운 차림을 한 프리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함께 있는 해주학파의 다른 사람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둘만 가는 거라고 해뒀어야 했는데.”

        “뭐가요?”

        “됐어. 저 사람들은 왜 죄다 따라 온 건데?”

        “아, 그게…….”

       

        아녜스는 내가 여러 사정으로 사감실을 계속 비우게 되면서 더는 혼자 둘 수 없어 데려왔다.

        기억을 잃은 동안 이자젤이 가끔씩 들러 밥을 챙겨주긴 한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보살핌이 필요하니까.

        루퍼트는 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안 쓰는 선로를 해주학파의 새로운 라운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역장과 협의 중이었다고 한다.

        사실상 문주인 그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같이 가겠냐고 권유한 것이었다.

       

        그리고 토비는…….

       

        “대학원생 할인이 있거든요.”

        “…….”

        “가뜩이나 표 구하기 어려운데 그가 끼면 대학원생 전용석에 탈 수도 있고요.”

        “난 동생을 찾으러 갈 기회가 있다기에 가는 것뿐이야.”

       

        아무튼, 이렇게 인원이 늘어나다보니 사실상 학파 전체가 가는 워크샵과 비슷한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프리나는 한숨을 푹 쉬더니 끌고 온 캐리어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나 짐칸에 실어.”

        “네, 근데 선배 향수 뿌렸어요?”

        “뭐?”

        “평소보다 차림도 가볍고 눈에 피로도 가득한게 혹시 어젯밤에 밤새 옷 고르다 한숨도 못 자고 부랴부랴 나온 건…….”

        “시, 시끄럽고 빨리 타! 여, 열차 출발하잖아!”

       

        프리나의 등쌀에 떠밀려 대학원생 전용석에 탑승하자 잠시 후 급행이 출발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인 것인지 다섯 명이 타도 넉넉한 객실의 크기.

        급행에 좋지 않은 경험이 있는 토비는 시큰둥했지만 아녜스는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신기하구나. 이런 게 있다니.”

        “한 번도 안 타보셨어요?”

        “내가 탑을 오를 때는 길이 오직 계단뿐이어서다. 열차는 커녕 시련으로 넘어가는 포탈도 없어 시련에 입장하려면 직접 천장을 부숴야 했지.”

        “참 야생의 시대였네요. 아, 계란 하나 드릴까요?”

       

        마침 사이다와 계란을 팔고 있어 몇 개 구매했다.

        참고로 이번 여행의 경비는 모두 실프 공략대 측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소비에 전혀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바구니에서 계란을 꺼내 아녜스 머리에 탁! 하고 부딪혔다.

       

        “악!”

       

        금이 간 계란 껍질을 손수 까서 직접 한입 먹여 주었다.

        입이 작아서 그런지 베어 문 것은 흰자뿐이었다.

        소금을 찍어 나도 한입 먹고 다시 아녜스에게 주었다.

       

        “하읍…….”

       

        차창 밖으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오물거리는 모습이 자뭇 귀여웠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무릎 위에 올린 채 계속 계란을 까 주었다.

       

        소금을 찍어 스승님 한입, 다시 소금을 찍어 나 한입, 소금을 살짝 찍어 스승님 한입, 다시 소금을 찍어 나 한입.

        소금을 살짝 찍어 나 한입, 소금을 듬뿍 찍어 스승님 한입, 소금을 살짝 찍어 나 한입, 소금을 듬뿍 찍어 스승님 한입…….

       

        “아악, 짜다! 그러지 말아다오……!”

       

        고통에 사이다를 마구 들이키는 아녜스를 보며 킥킥대던 그때, 오른쪽에 앉은 프리나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신체접촉을 거의 선호하지 않는 방구석아싸음침히키코모리커뮤중독저주술사라 워크샵에 따라온 것만도 놀라웠는데, 이건 더 놀라웠다.

       

        “무, 뭐해, 나도 줘야지.”

        “여기 바구니에 많이 있어요.”

        “네, 네가 깐 걸 달라는 말이잖아! 선배에게 후배가 직접 먹여주는 게 학파 규칙…….”

        “응? 그런 게 있었나?”

       

        맞은편에 앉은 루퍼트가 중얼거리자 프리나의 어깨가 흠칫 떨려왔다.

        그러더니 미쳐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우리 학파는 선후배 관계를 그렇게까지…….”

        “……은 아니지만, 돼, 됐어 그냥 따로 빼 둬! 이따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어디 가세요?”

        “아, 알 거 없어!”

       

        화장실 가나보군.

        이미 급행을 몇 번이나 타본 내가 보기에 저쪽 방향은 빼도 박도 못하는 화장실이었다.

        그러다 다시 들어와, 왠일로 평소 안 갖고 다니던 파우치까지 부랴부랴 챙기는 모습.

        뒤이어 복도에서 쿠당탕!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안에 있던 내용물을 죄다 쏟아버린 듯 했다.

       

        도착하기 전에 이번 워크샵 일정을 공지하려 했는데 그녀에게만 따로 말해둘까.

        나는 남은 계란껍질을 모아 버린 뒤, 모두에게 말했다. 

       

        “공역에 도착하면 실프 공략대 측께서 마중을 나와있을 겁니다. 제 개인적인 사업과 관련해 이번 워크샵에 도움을 주기로 했거든요.”

        “오, 그렇군.”

        “다양한 일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숙소에 짐을 푼 뒤 트라팔가 호수 견학, 왕성 탐험, 상품이 걸린 학파 내 족구 대회 등…….”

        “자유 시간은 언제 주는데?”

       

        토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오직 여동생을 찾을 생각뿐인 그의 갸륵한 생각에 허리춤의 살살이도 검신을 떨어댔다.

        해주학파 워크샵 내에서 대학원생에게 발언권은 없지만 덕분에 편하게 좌석을 확보한 공을 인정해 대답해주기로 했다.

       

        “중층을 등반 중인 저와 프리나 선배는 40층의 계층지기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시련을 건너뛰기 위한 수단으로?”

        “네, 이건 공략대 측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니 이번 기회에 해결하고 나오려 합니다. 그 편이 공역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학파와 마찰을 빚을 필요도 없고요.”

        “흠, 그렇군.”

       

        이 말을 하며 나는 슬쩍 무릎 위에 올려진 아녜스의 눈치를 봤다.

        시련을 건너뛴다는 것은 마법의 위계를 차근차근 올려가며 마탑에 안배된 기회를 모두 얻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오직 더 빠르게 높은 층으로 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다른 학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히 갈리는 주제였다.

        만약 아녜스가 내가 해주학파의 신비를 더욱 깊게 파기를 원한다면 이는 충분히 불편한 발언이 될 터.

       

        예상대로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

       

        “클락아…….”

        “예, 스승님.”

        “계란을 너무 많이 먹어 체한 것 같다, 물 좀 다오……!”

        “아이고, 여깄습니다.”

       

        음, 별 생각 없나.

        하긴 아녜스 본인부터 딱히 마법적인 탐구를 이유로 탑에 오르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살살이를 되살리려면 해주 마법을 배워야 하니 마법 연습 자체는 꾸준히 할 것이다.

       

        “저희가 계층지기를 만나러 다녀올 동안 자유롭게 활동하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 날 모여서 폐회식까지 하고 다시 내려오죠.”

        “그렇게 하도록 하겠네.”

       

        이걸로 만사형통이로군.

        일정 조율을 마친 나는 흔들리는 진동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이런 낭만있는 열차여행이라니, 대체 얼마만에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건지.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안전하게 공역에 도착할 게 분명…….

       

        — 가진 거 다 내놔!!

        — 꺄아아악! 열차 강도다!!!

       

        응?

       

       

       

        *

       

        “으엑? 얼굴이 왜 그래요 프리나?”

        “여, 열차가 흔들리잖아……!”

       

        같은 시각.

        마가렛은 화장실에서 한참 나오지 않는 프리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처음부터 해주학파 사람들과 함께 타고 가도 문제 없었으나 이렇게 따로 만난 이유는 친구의 부름 때문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화장을 고치려는 프리나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화장을 못 하는 거겠죠. 솜 줘봐요, 다시 지우고 그려줄 테니까.”

        “피, 필요 없거든……! 이런 거 갤러리에서 본 대로 따라하면…….”

        “거기는 지식의 보고가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쓰레기통이지. 그리고 저보도 도와달라고 했잖아요. 클락 씨와 잘 될 수 있도록.”

        “그, 그건…….”

       

        장난기 가득한 그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가렛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는 부탁이었다.

        동기이자 친구인 프리나가 클락과 이어진다면 공략대에 참여하도록 권유하기 한발 더 쉬워질 테니.

        거기에 혹시 잘 풀린다면 클락이 해주학파를 나와 다른 곳으로 전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의 연애를 옆에서 보는 재미까지 고려한다면 도와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설마 다른 사람들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어. 왜 안 막은 거야?”

        “다 같이 놀아야 분위기도 좋고 긴장이 풀리지 않겠어요? 그리고 둘만 있을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니 걱정 말아요.”

       

        문제는 클락과 가까워지려는 프리나의 방식에 있었다.

       

        “그, 그렇구나. 그러면 드디어 ‘그 규칙’을 쓸 때가…….”

        “잘은 모르겠는데 이상한 저주 같은 거죠? 왜 굳이 그렇게 하는 거에요?”

        “너, 너 같은 인싸는 몰라서 그래! 나, 나처럼 키도 작고 얼굴도 못생기고 붙임성 없고 말도 더듬고 다,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그렇다고 솔직하지도 않고 음침하고 꼰대 같고 음습한 여자를 누가 좋아해……!”

        “…….”

       

        충분히 매력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 입탑했을 때 봤던 프리나였다면 마가렛도 고개를 저었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엉망진창인 화장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미형의 외모에 아름다운 사복 차림.

        그러나 자존감이 낮아도 너무 낮아서 제대로 감정을 전달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 하루종일 갤질만 하고…… 아, 이건 좋아하려나. 아무튼 운동도 안 하고 꾸밀 줄도 모르고 밥도 혼자 먹고 취미도 없고…….”

        “자자, 알겠으니까 자기비하는 그만하고 그만 객실로 돌아가요.”

        “너는 같이 안 가?”

        “저는 공역에서 합류할 거에요. 중간에 이벤트들 많이 깔아놨으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그, 그래? 그럼…….”

       

        — 꺄아아악! 열차 강도다!!!

       

        바로 옆 차량에서 들려온 비명.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설마 이거야? 내가 강도한테 인질로 잡혔다 풀려나는 흔들다리 효과…….”

        “그런 코흘리개 애들한테나 먹힐 방법을 쓰겠어요? 그리고 열차 테러는 중죄라고요!”

       

        탑 전체를 가로지르는 급행은 한 번 사고가 날 경우 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자연재해급의 물리적 충격 앞에서는 날고 기는 마법사라도 답이 없다.

        승객은 대부분 관광객이지만 다행히 지금 이 열차에는 실프 공략대의 대원들이 타고 있었기에 빠르게 제압하면 피해는 커지지 않을 것이다.

        마가렛은 재빨리 수정구를 꺼내 대원들에게 연락했다.

       

        “지금 당장 2-B 칸으로 가서…… 네? 사라졌다고요?”

        “왜? 무슨 일인데?”

        “흔적도 없이? 빨리 쫓아봐요. 잠깐…… 누구요?”

       

        통신을 마친 그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가면 쓰고 창을 든 남자랑 다른 남자 하나가 강도들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데요.”

        “뭐?”

        “자기들이 열차 테러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했다던데, 짚이는 구석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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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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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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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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