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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빅토르가 선불로 내겠다고 한 벙커는 며칠 만에 진성의 손에 들어왔다.

         

       물론 완벽하게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법적으로는 빅토르의 소유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빅토르는 이것을 진성에게 줄 생각이며, 진성이 성인이 되는 그 순간 온전히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인데.

         

       중요한 것은 벙커가 진성의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벙커가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좋은 냉기를 품고 있구나.”

         

       진성은 하늘을 반사하며 새파란 색을 품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호수는 하늘을 그대로 품은 듯 저 멀리까지 찰랑대는 물결로 자신의 넓음을 과시하고 있었고, 곳곳에 섬을 품어 자신이 호수가 아닌 자그마한 바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찰랑거리는 물결의 아래에는 연어와 흡사하게 생긴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었고, 물범 하나가 바삐 헤엄치는 물고기를 쫓아 연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놓쳐버렸는지 분한 듯 몸을 떨더니 수면 위로 올라와 머리를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차례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분노를 가라앉히곤 다시 들어가 먹이를 찾았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진성은 바이칼 호수로 다가가 플라스틱 컵으로 호수의 물을 떠올렸다.

         

       새파란 색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되었던 바이칼 호수의 물은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햇빛을 그대로 통과시키며 자신의 깨끗함을 과시해주었고, 그것은 마치 세월과 함께 얼어붙으며 순결을 유지한 알프스의 물과도 비슷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차갑기는 사람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였으며, 진성의 손목의 움직임에 맞춰 찰랑거리는 모습은 이것을 제 몸으로 집어넣고 싶게 만드는 유혹의 춤과 같았다.

         

       진성은 그 유혹에 못 이긴 듯 물을 입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미식가처럼 바이칼 호수의 물을 즐기는 대신, 그는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몸 곳곳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이는 마치 손가락을 붓처럼 사용해 피부에 글을 쓰는 것과 같아, 붉은색으로 날카롭게 긁힌 자국이 하나둘 떠오르며 그의 몸에 글자의 형상을 이루었다.

         

       아니.

       이것을 글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얼음 조각을 늘어놓아 규칙성을 만든 것 같은 것을, 이것을 글자라고 할 수 있을까?

         

       빨갛게 긁힌 자국은 몸에 새겨진 채 물의 흐름에 따라 솟아올랐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며 그의 몸에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이 가지게 된다는 기묘한 형상의 흉터 같기도 하였고, 차가운 한파를 갑작스레 맞이한 나무가 얼어붙는 모양과도 흡사했으며, 현미경으로 본 눈 결정의 형상과도 흡사했다.

         

       이것은 글자이되 글자가 아닌 것.

       한없이 그림에 가깝지만,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그것이 진성의 몸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의미를 만들어내었다.

         

       진성은 자신의 몸 곳곳에 붉은 자국이 가득한 것을 잘 확인하고는 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물 위를 걸었다는 옛 성인의 형상과 아주 흡사하였으나.

         

       첨벙.

         

       진성은 기적을 행했다는 그와는 다르게 속절없이 호수로 빠져버렸다.

       그의 발이 냉기를 품은 물에 잠기고, 다음에는 다리가, 다음에는 허리가, 이윽고 목까지.

         

       진성이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그의 몸은 점차 물에 잠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고, 머리끝까지 물에 잠기고 점차 깊은 곳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의 숨통은 턱 막히게 되었다. 하지만 진성은 마치 육지에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물속을 누비고 다녔다.

         

       그 모습에 심술이 난 것일까?

       호수는 진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꾹 다문 입가에는 물결이 넘실거리며 침입해 폐를 잠기게 하려 하고, 뻥 뚫린 콧구멍 안으로는 물이 찰랑거리며 들어가려다가도 어떠한 보이지 않는 것에 막혀 입구에서만 서성이고.

       제 몸을 이용해 익사시키려는 것이 실패하자 심통이라도 난 것처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빛을 줄이고, 진성의 발걸음과 함께 온갖 퇴적물을 물속에 부유하게 만들어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시퍼렇게 뜨고 있는 그의 두 눈에 이물질을 넣으려 했다.

         

       하지만 진성은 눈에 불꽃을 피워 들어오려는 이물질을 모조리 태워버렸고, 주술로 강화된 눈으로 어둠이 가득한 호수의 밑바닥을 대낮을 활보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두 눈에 피워지는 불꽃의 빛에 혹해 찾아오는 물고기들은 약한 전기를 뿜어내는 주술을 사용해 쫓아버리며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진성의 눈앞에 거대한 절벽이 나타났다.

       호수의 밑바닥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절벽이.

         

       바다의 해저협곡을 축소해놓으면 이런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자연이 조각했다고는 차마 믿기지 않는 아름다움을, 하지만 자연이 조각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장엄하고 거대한 형상의 협곡이 그의 두 눈에 담겼다.

         

       협곡의 아래에는 끔찍할 정도의 어둠이 있었다.

       기괴하게 생긴 심해어들은 어둠 속에서 헤엄치는 부정한 것들처럼 쉼 없이 누비고 다녔으며, 겨울철에 내리는 눈과 너무나도 흡사한 새하얀 바다눈은 일찍이 시체가 가지고 있었을 영양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라고 있었다.

         

       하얀 눈이 내리는 어둠이 가득한 공간.

       어떤 기괴한 것이 있을지 모르는 공간.

         

       진성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절벽의 앞쪽에 털썩 앉았다.

       그가 앉음에 따라 절벽 가장자리에 쌓여있던 퇴적물들이 움직이며 물을 살짝 더럽혔고, 그것은 바다 눈과 섞여 심해의 밑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

         

       진성은 그것을 바라보며 몸에 진동을 만들어내었다.

       목에서부터 시작한 진동은 그의 배를 가득 울렸고, 심해의 압력에 쪼그라들었던 폐는 그의 진동과 함께 움직이며 그의 몸 안에서 공기 방울을 내뱉었다. 이는 육지생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증거요, 호수의 밑바닥에서 의식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몸 안에 남아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했다.

         

       진성은 폐의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가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그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차갑기 짝이 없는 호수의 물이 그의 폐를 가득 채워 그를 익사시키리라. 그리고 죽어버린 그의 시체는 일부는 물고기의 시체가 되고, 남은 것들은 오랜 세월과 함께 분해되며 지금 심해에 내리는 바다눈의 형태가 되어 또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겠지.

         

       그래.

       분명 그렇게 되리라.

         

       그러니 죽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푸욱!

         

       진성은 품 안에 챙겨두었던 주사기를 팔에 꽂아 넣었다.

       그리곤 주사기를 계속해서 꺼내며 몸 이곳저곳에 꽂아 넣었는데, 꽂히는 부분이 하나같이 긁힌 자국으로 흉하게 변한 곳들이었다. 거기에 꽂힌 주사는 진성이 숨을 쉬지 않고 있음에도 그의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였고, 진성이 계속해서 만드는 진동과 공명하며 그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진성은 가부좌를 틀고는 고개를 슬쩍 들어 수면 위를 쳐다보았다.

       어둠과 부유물, 그리고 그의 두 눈에 서린 불꽃에 홀려 찾아오는 물고기가 발하는 자그마한 빛.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별이 헤엄치는 형상과도 흡사하였다.

         

       물고기의 눈은 별이 되었다.

       물속을 떠도는 온갖 것들은 구름이 되었다.

       호수의 물은 공기가 되었고, 그 흐름은 바람이 되었다.

         

       이는 구름이 바람에 떠밀려 제 형상을 바꾸고 제 위치를 계속해서 바꾸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은 별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이니.

         

       진성은 마치 그것을 자신이 읽어내려야 할 하늘의 뜻이라도 된다는 듯 바라보았고, 물고기가 접근할 때마다 터지는 스파크를 별똥별로 삼아 자신에게 길한 시간을 읽어내려 하였다.

         

       그는 더 물고기가 접근하지 않게 되자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내리더니, 가만히 눈이 내리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심해에 사는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를 연상케 하는 협곡 아래의 구멍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진성이 구름 위에 앉아 눈을 내리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눈을 뿌리는 선녀도 없으며, 가위질로 구름을 조각내 눈으로 만들어 땅에 떨구는 가위 손도 없다.

       다만 눈이 내리는 곳은 구름이요, 그 구름의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눈을 통제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지금 이 순간.

       진성은 냉기를 품을 수 있는 신체가 되었다.

         

       “—–”

         

       진성은 가만히 눈을 감고 진동을 만들었다.

       이 진동은 목과 배를 진동시켰던 아까와는 달리, 몸의 말단을 진동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진동과 함께 물이 품고 있던 냉기가 빨려 들어가듯 진성의 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냉기가 그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마치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진성의 몸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되자 진성의 귓가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변하지도 않았음에도 얼음을 연상케 할 정도로 차가운 모습이 되었고, 툭 건드리면 부서져 내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귀를 시작으로 진성의 뼈마디에 시린 듯한 느낌이 엄습해오고, 골수부터 얼어붙는 끔찍한 고통이 그의 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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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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