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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눕길래 뭘 하나 했더니, 자는 척을 하다가 일어나는 거였구나. 

       

       ‘정확히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지켜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슬쩍 바위 틈새로 이드밀라와 헤카르테교 교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아르도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한 듯 내 옷자락을 잡은 채 살짝 까치발을 들어 바위 틈새 가까이에 동그란 눈을 가져다 댔다. 

       

       실비아도 쭈그리고 앉아 아르의 말랑한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고 같이 구경 모드에 들어갔다.

       

       교단원들은 전설의 레드 드래곤이 깨어나자 침을 꿀꺽 삼켰다. 

       

       “지, 진짜 일어났어.”

       “멍청아, 어서 인사 드려야지!”

       

       교단원 하나가 이드밀라의 위압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옆에 있던 교단원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그렇지! 이런 실례를….”

       

       교단원들은 눈을 맞춘 뒤,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렸다. 

       

       “위대하신 레드 드래곤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니다!”

       

       이드밀라는 묻어가듯 끝말만 따라한 교단원을 슬쩍 째려보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라.”

       “…옙!”

       

       고개를 재빨리 든 교단원 하나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영롱하게 빛나는, 예쁘게 세공된 진보랏빛 자수정이었다. 

       

       자수정을 본 이드밀라의 눈의 독기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건?”

       

       이드밀라의 표정이 누그러지는 걸 캐치한 교단원이 얼른 말했다.

       

       “저희가 레드 드래곤님의 레어에 찾아오면서 빈손으로 찾아올 수는 또 없지 않겠습니까. 약소하게나마 선물을 준비해 왔으니 부디 사양하지 말고….”

       “사양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침 이쪽에 보물상자가 있으니 여기에 놓겠습니다.”

       

       교단원은 매우 자연스럽게 자수정을 들고 보물상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자수정을 놓으면서 보물상자 안을 보더니, 별안간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맙소사! 내가 본 것이 역시 헛것이 아니었어!”

       

       …거 연기가 너무 티 나는데.

       

       “무슨 말이냐?”

       “레드 드래곤 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혹여 지금 레드 드래곤 님의 유물인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거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데.

       

       “파이어 브레이슬릿? 그거라면 여기에 없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내가 따로 비밀스러운 공간에 보관해 두고 있으니까.”

       “맙소사!”

       “또 뭐냐?”

       

       자꾸만 발연기 톤으로 맙소사를 연발하는 교단원에게 이드밀라는 조금 화가 났지만 참는 것 같았다.

       

       “사실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레드 드래곤 님의 유물을 멋대로 사용하는 자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뭣이라?”

       

       이드밀라가 크게 소리쳤다.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와, 이드밀라 님 연기 잘 하네.’

       

       여룡주연상 하나 챙겨 가셔야겠어.

       

       어찌나 연기를 잘 했는지, 이드밀라가 일부러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르가 자기도 모르게 무서워서 꼬리를 찔끔 떨 정도였다.

       

       “그 유물이 있는 공간에는 드래곤만 들어갈 수 있도록 결계를 쳐 놨을 터인데!”

       “저희의 예상이지만 아무래도 대량의 마력석을 구매해서 결계를 왜곡하는 데에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상은 개뿔. 

       지들이 쓰려던 방법이었으면서.

       

       “마력석으로?”

       “예. 저희가 놈들의 뒤를 밟아 확인한 바, 놈들의 마차 짐칸에서 힘을 잃은 최상급 마력석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마력석에 들어 있는 마력을 전부 소모했다는 뜻이겠지요.”

       “최상급 마력석이라…. 그렇게 엄청난 마력량이라면 결계를 부수는 건 몰라도 일시적으로 왜곡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결계를 만든 직후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지금이야 워낙 오래된 결계라서 말이지.”

       “그렇습니다!”

       

       교단원은 이제 진짜 본론을 꺼냈다.

       

       “여튼, 저희는 놈들이 파이어 브레이슬릿의 힘으로 약탈과 살인을 서슴없이 일삼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이미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반쯤 미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일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유물이 아니야. 쓰면 쓸수록 점점 유물의 힘에 먹혀 들어갈 거다.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라고!”

       

       이드밀라는 다시 한번 마나를 담아 짓씹듯 내뱉었다. 

       

       레드 드래곤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크르릉 소리가 레어 안을 울렸다. 

       

       꿀꺽.

       아르는 침을 꼴깍 삼키고 손바닥 젤리에 땀을 쥐면서도 그 모습을 꿋꿋이 지켜보았다. 

       마치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사람이 공포 영화는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래서, 너희는 그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너희들은 내 유물과 레어에 대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그건….”

       

       대답을 미리 준비해 온 듯, 교단원이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사실 위대하신 드래곤 님의 업적을 연구하고 칭송하는 학회 소속입니다.”

       “학회?”

       “예. 파벌이 좀 나뉘어 있긴 하지만, 저희는 모두 드래곤 님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분들의 유물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고 있습죠.”

       “그래서 파이어 브레이슬릿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거군.”

       “예. 그리고 레어는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대략적인 위치를 특정하고 나머지는 흔히 말하는 그 노가다로다가 일일이 찾았습니다.”

       

       교단원은 짐짓 슬픈 목소리를 꾸며 말했다.

       

       “저희도 레드 드래곤 님의 단잠을 깨워 가면서까지 보고 드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대로라면 유물이 너무 악용될까 하여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시오!”

       

       이드밀라는 자꾸 마지막 말만 따라하는 교단원을 째려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걸 방치하면 유물은 주인을 옮겨 다니면서 그들을 조종하고, 생명력을 빨아먹겠지. 내 유물을 멋대로 쓰는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그런 인간 따위의 오염된 생명력이 내 귀중한 유물에 깃들 걸 생각하니 짜증이 치미는군.”

       

       이드밀라가 화가 난 듯 콧김을 내뿜자, 공중에서 뜨거운 불길이 화악 일었다. 

       

       단순히 콧김 한 번을 뿜었을 뿐이었지만, 그 불길의 위력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6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사용한 화염 마법 수준으로 보였다. 

       

       “히익!”

       

       콧김의 후폭풍에 닿을 뻔한 교단원 하나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까비.’

       

       이드밀라는 분노가 가득 깃든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놈들은 어디에 있지?”

       

       드디어 이드밀라의 입에서 원하던 말이 나오자, 교단원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남부의 대도시인 로멜드에 머물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지금 당장 그놈들을 찾아가 철저히 벌하리라! 아니….”

       

       이드밀라가 외쳤다. 

       

       “그놈들이 아니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 이미 썩어빠진 그곳의 인간들을 전부 쓸어 버려야겠어!”

       

       교단원들은 드디어 됐다는 듯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안 되겠다. 이 기회에 대륙 남부 전체를 한 번 뒤집어 엎어야겠어. 내 불길로 인간이 오염시킨 대륙을 정화해 주겠다!”

       “예…?”

       

       설마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던 교단원들이 벙찐 듯 우뚝 섰다. 

       

       “그,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헤카르테교는 지금까지 공을 들여 대륙 남부 이곳저곳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시켜 놓은 상태.

       

       게다가 애초에 헤카르테교의 지부 자체도 대륙 남부에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부까지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지금 감히 내 결정에 토를 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죄송합니다!”

       

       점점 살벌해지는 레드 드래곤의 눈빛에, 교단원들은 몸을 벌벌 떨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난폭한 레드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빈대 하나에 짜증이 나서 초가삼간이 아니라 산 전체까지도 태워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흘러갔지만, 레드 드래곤이 직접 결정한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잠깐. 생각해 보니 대륙 남부에는 너희의 학회도 있겠구나. 우리 드래곤을 칭송하고, 애써 여기까지 보고를 하러 찾아온 녀석들까지 태워 버릴 수는 없지.”

       

       레드 드래곤의 한마디에, 교단원들은 마치 지옥불 구덩이 앞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니다!”

       

       다음 순간, 마지막 말만 따라하던 교단원이 갑자기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었다. 

       

       “내 앞에서 말을 짧게 한 대가다.”

       “히이익!”

       

       레드 드래곤은 공포에 질린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대륙 남부를 이렇게 만들 거다. 특별히 너희 학회가 있는 곳은 남겨 두고 말이야.”

       

       레드 드래곤은 아공간에서 대륙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종이를 꺼냈다. 

       

       “여기에 학회의 위치를 표시해라. 표시된 부분은 제외시켜 주지.”

       “아, 알겠습니다!”

       

       교단원들은 즉시 앞다투어 지도에 헤카르테교 지부들의 위치를 표시했다. 

       

       레드 드래곤은 지도를 회수한 뒤, 아공간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이제 표시된 부분들을 불태워 버리러 가 봐야겠군.”

       “감사합…예? 방금 뭐라고….”

       

       간신히 살았다고 생각한 교단원들이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되물었다. 

       

       이드밀라는 그제야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나와라.”

       

       그 말에 나와 실비아, 그리고 아르는 기다렸다는 듯 바위 뒤에서 나왔다. 

       

       우리의 모습, 정확히는 실버 드래곤인 아르를 본 헤카르테교 교단원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너, 너희들은!”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드밀라에게 말했다. 

       

       “이래서 숨어 있으라고 하셨군요.”

       “연기력이 상당하시던데요.”

       “쀼우! 엄청 무서어써!”

       

       이드밀라가 피식 웃었다. 

       

       “예로부터 마왕들은 자신의 수하가 정신 조작 계열 마법에 걸리면 즉시 뇌가 터져 죽도록 암시를 걸어 두었지.”

       

       이드밀라가 아무리 다른 드래곤에 비해 마법 실력은 떨어진다 해도, 인간을 상대로 정신 마법을 걸어서 정보를 토해 내게 하는 것쯤은 쉬운 일.

       

       하지만 마왕은 그런 상황을 대비해 수하가 정신 조작을 당하거나 겁박을 당해 정보를 뱉을 때 사망하도록 암시를 걸어 두었다. 

       

       그래서 이드밀라는 놈들이 오히려 지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인식하도록 만들면서 위치를 불게 만든 것이었다. 

       

       ‘혹시 그래도 직접 발설하면 터질까 봐 일부러 지도에 표시하라고 하는 치밀함까지.’

       

       연기력부터 치밀함까지 갖춘 이드밀라의 모습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속아 넘어갔음을 깨달은 교단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할! 실버 드래곤 쪽이 먼저 도착했을 줄이야!”

       “저 빌어먹을 실버 드래곤 때문에…!”

       

       차마 레드 드래곤을 탓할 수 없었던 그들은 아르에게 삿대질을 하며 억울한 듯 소리쳤다. 

       

       “쀼우?”

       

       아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는 교단원들을 향해 눈을 감으며 혀를 쭉 내밀었다.

       

       “뿌우.”

       “아이고, 우리 아르. 메롱은 또 어디서 배웠어? 귀여워라.”

       

       이드밀라는 아르가 메롱을 하고 내 뒤로 슬쩍 숨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와는 딴판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교단원들을 바라보았다. 

       

       “뭐, 어쨌든 고생했다. 너희 지부는 내가 조금도 남김없이 쓸어 버릴 테니 걱정 말거라.”

       

       이드밀라가 말을 맺자마자, 교단원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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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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