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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진짜 좋다, 그렇지?”

        

       내 옆에 딱 달라붙은 하늘이가 그렇게 물어왔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대로변.

        

       사실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이제 지는 중이었으니까. 운 좋게도 벚꽃 피자마자 봄비가 내려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벚꽃이 질 때이긴 했다.

        

       길가의 벚나무들도 슬슬 파릇파릇한 새잎이 돋아 분홍색보다는 푸른색이 더 많이 보였고.

        

       하지만 여전히, 바람에 꽃잎이 날리기에는 충분하다.

        

       아직 나무에 매달려있는 꽃잎들이, 산들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날린다. 길거리에 꽃잎이 떨어져 꽃길을 만든다. 그 광경이, 아, 이제는 봄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우리가 이렇게 꽃구경을 나오게 된 것은, 지난달에 하늘이가 나에게 했던 말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된 지 이제 막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겪었던 일이 너무 많은 나머지 그런 약속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음, 생각해보면 약속이라기보단 지나가듯 나눈 이야기에 가까운 것 같기는 하지만, 뭐 예쁘니까 상관은 없나.

        

       우리가 입고 있는 옷도 그때 산 옷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복장에서 점퍼 대신 조금 더 얇은 옷을 걸치면 되었지만, 하늘이는 다르다. 입고 있는 옷이 원피스였으니까.

        

       3월달에 입었던 원피스였으니, 지금 입으면 조금 덥지 않을까?

        

       뭐, 본인은 별로 거리끼는 것이 없는 것 같으니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4월은, 3월보다는 훨씬 느긋하게 흘러갔다. 소희는 여전히 인수인계를 받는 중이었고, 수아는 이제 그래도 종종 집에 다녀오기도 했고, 하늘이도 가끔 와서 저택에서 자고 갔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더 이상 민망한 행동을 하지 않자 선도위원 손아름은 몹시 잠잠해졌고, 선생들도 지적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는지 더 이상 우리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물론 조금 불안하긴 했다.

        

       최나경은 4월 중순이 될 때까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게 사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이를 갈며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칼을 갈고 있다는 쪽이 맞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상해볼 뿐이다.

        

       아무튼, 뭐…… 그랬다.

        

       몹시 평화로웠다.

        

       …….

        

       “…….”

        

       “…….”

        

       어째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지만.

        

       예전에, 친구 관계에서도 서로 질투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남자한테 굳이 질투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성교육 시간에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다.

        

       그리고 아마, 내 주위의 여자애들은 분명히 그런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내 양쪽으로 하늘이와 수아가 서 있었다. 모두 나에게 딱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잠시 떨어졌다가 자리를 빼앗긴 소희는 계속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사라는 내 의식 깊은 곳에서 그 특유의 언짢은 기색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래, 이건 분명히 질투다.

        

       내가 여자들의 관심사 한가운데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바로 얼마 전까지는 꾸준히 부정하고 있었지만, 지난 한 달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진지하게 고민해본 결과, 이 아이들이 나를 중심에 두고 느끼는 감정은 질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물론 ‘연애 감정에 의한 질투’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로 자의식 과잉은 아니다.

        

       전생에 ‘여자가 나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라는, 읽어보기만 해도 쪽팔려 죽을 것 같은 글을 몇 번이나 보며 학습했기 때문에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여자가 모두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는 착각은 빠질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는 서로 친한 친구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친구 관계가 성립되었다. 내가 수아와 대화했고, 내가 하늘이와 친구가 되었고, 내가 소희의 머리 위에…… 그, 치마를 덮어씌웠으니까.

        

       ‘친한 정도’를 서로 따져보자면, 나는 세 사람과 각각 제일 친한 사이였다.

        

       …….

        

       그래, 당연히 사라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내가 누구 한 명과 친하게 지내면, 나머지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질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균형을 맞춰보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균형을 맞출 때마다 질투가 더 심해졌으니까.

        

       …….

        

       음, 내가 봐도 좀 재수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잘 알고 있네.

        

       사라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하늘이도 자고 가나?”

        

       “응!”

        

       내 물음에, 하늘이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붙잡고 있는 팔에 몸을 붙이고, 내 어깨에 자신의 볼을 가져다 대었다.

        

       ……오늘은 야식이나 잔뜩 시킬까.

        

       사실 종류별로 많이 시켜도 나는 많이 못 먹기는 한다. 그래도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때보다는 조금 살이 붙어서, 이제는 한 대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몸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른 편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등 한가득 멍까지 있었으니, 그때 나를 봤던 의사와 경찰들이 기겁할만했다.

        

       뭐, 그래도 오늘은 사람도 많고, 또 모여 앉아 이야기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자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그럴 때 입에 넣을 무언가라도 있으면 더 좋으니까.

        

       나 말고 나머지 세 명은 나보다 훨씬 많이 먹기도 했고.

        

       …….

        

       ……아니, 사라야, 너는 나랑 같이 먹잖아.

        

       이런 이야기 할 때는 당연히 숫자가 빠지지.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는 사라에게 다소 난감한 기분을 느끼며 걷고 있는데—

        

       “……어?”

        

       저 멀리, 저택의 대문 앞에서 누군가가 경비원과 충돌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 한 명에, 그보다는 젊은 남자 하나, 그리고 젊은 여성 한 명이었다.

        

       “거,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그 ‘아가씨’ 얼굴 좀 봅시다. 무사하다는 것만 확인하면 돌아가겠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아가씨께서는 지금 외출 중이시므로…….”

        

       “당신들이 그렇게 말해도, 저희 전부 다 알고 왔어요. 증거 사진도 있는데 그렇게 숨기려고 해봐야 더 불리해지기만 해요.”

        

       나이 많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번갈아서 그렇게 말하자, 경비원은 뭐라고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진짜로 외출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집 사용인들은 소희와 양혜인 딱 둘을 제외하면 나를 엄청나게 불편하게 여긴다. 그렇게 여기도록 내가 만들었으니까. 아마 그래서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본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버티고 있어도 문제 될 것도 없고.

        

       상황을 대충 파악했는지, 바로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수아와 하늘이가 나를 살며시 놓아주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쉰 뒤, 앞장서서 그 세 명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 잠깐만요. 선배님.”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고 젊은 남자 쪽이 반응했다.

        

       “응? 뭐, 왜?”

        

       그리고 그 말에 젊은 남자 쪽을 바라본 나이 든 남자는, 그 젊은 남자가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딱 굳어버렸다.

        

       제일 마지막으로 나를 알아차린 것은 젊은 여성 쪽이었다. 두 사람의 상태를 보고 나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여성은, 역시 내가 멀쩡하게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그래, 세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는 알 것 같다.

        

       그날 경찰들은 워낙 짧게 봤던 사람들이라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태도가 이거랑 비슷했으니까.

        

       물론 그때는 저 여자는 없었던 것 같지만.

        

       “어……?”

        

       그 세 사람은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경비원 쪽을 본 다음,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경비원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

        

       “앗, 아…… 고맙습니다.”

        

       응접실에 앉은 젊은 여성에게 양혜인이 말없이 홍차를 대령하자, 그녀는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가정폭력 신고받고 오셨다고요?”

        

       세 사람은 이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자신들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형사과에서 나온 경찰이었고, 젊은 여자는 공무원이었다. 아마 ‘가정폭력’이라는 말에 따라 나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 다,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는 조금 압도된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는 처음 와보나?

        

       ……하긴, 서울 한가운데에 조금 작기는 해도 백화점만 한 건물을 세워놓고 사는 사람이 나 말고 몇이나 될까.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백화점 건물이기도 했으니까. 아마 내가 여기 틀어박히지만 않았다면 유진 그룹의 특별관 같은 곳으로 사용되었을 거다. 저택 대부분은 비어있기도 했고.

        

       “예, 그렇습니다. 사실 신고가 들어온 것은 한참 되기는 했는데…….”

        

       신고하자마자 출동한 것이 아니라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때 양혜인이 누구에게 전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경찰의 높으신 분의 지시로 철수했었으니까. 나에게 제대로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그때는 내가 정신이 없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출동하게 된 것을 보면, 그 모든 문제를 어떻게든 건너뛰고 출동했다고 보면 되겠지. 그렇게 문제를 불식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을 거고.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지금 와서 증거를 가져가려고 해도 이미 남은 것이 없다. 내 등의 상처는 이제 다 나아서 없었고, 건강 상태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고, 고용인들은 내 말에 고분고분하고 학교에서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이제 경찰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가요…….”

        

       하지만,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도 그럴 게, 정작 내가 걸릴만한 것이 엄청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옆에 메이드 복을 입고 서 있는 소희만 해도 미성년자였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고, 양혜인이 서류정리를 깔끔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뇌물’을 먹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수아는 가출 청소년이었다. 그래도 집에 꾸준히 연락하고 있고, 종종 들렀다가 오고 있어서 완전히 가출이라고만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꼬투리를 잡고자 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여기 있는 세 명의 친구 중에 유일하게 법에 전혀 걸릴 일이 없는 아이는 하늘이뿐이었다.

        

       “그래서, 상담하고 싶은데요.”

        

       구청에서 나왔다는 공무원이 말했다.

        

       “혹시 가능하실까요?”

        

       “……네, 그럴게요.”

        

       여기서 내빼봐야 의심만 증폭시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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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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