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23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농처럼 들리나?”

       

       백일의 눈은 진중했다. 적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는 아니리라.

       

       “정신이 나갔군.”

       

       저 따위 권유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내 목을 따겠다며 달려드는 편이 훨씬 낫다.

       

       머리가 아프다. 내가 여태까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야.

       

       대체 곰방대를 사러 간 그 낭인 놈은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걸까. 무언가라도 입에 물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은데.

       

       “최강아. 이 분 외부인 아니시냐? 근데 왜 반응이 이러냐.”

       “진지하신 분이라서요.”

       “아아. 무림의 규율을 신경 쓰는 사람이더냐? 그걸 미리 말을 했어야지.”

       “설명하려고 했는데 무작정 쳐 들어 온 건 영감님이잖습니까.”

       “그른가?”

       

       내가 미간을 찌푸리건 말건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진지하게 탁자를 뒤엎고 싶어졌다.

       

       왜 저 놈들이 나를 별종 보듯이 쳐다보고 있는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정상은 나고 그대들이 비정상이지 않은가.

       

       “민트 공. 자네가 생각하는 무림이 어떤지는 모르겠네만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많이 바뀌었네.

       천마가 정파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그 날 이후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과거 정파에 복수를 행하던 나는 철저하게 정파를 몰락시키려 노력했다.

       

       “천마는 우리에게서 모든 걸 빼앗았네. 사람도, 우리가 지닌 여러 무공도, 심지어 정파가 가졌던 명예조차도.”

       

       단순히 학살을 벌인 것만이 아니었다.

       

       문파와 문파 사이를 이간질하여 정파 내에 내분을 일으켰고, 정파가 지닌 명분과 명예를 부수기 위해 힘을 썼으며, 무너진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많은 것을 빼앗았다.

       

       “죽는 것이 두려워 살아남은 우리들은 복수를 염원했으나 그를 이룰 수 없음을 알았네.

       정파의 생존자로써 정파의 명맥을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하고자 한다면 정파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음에도 그들의 마지막 생명줄을 남겨 준 것은 그들이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걸 잃어버린 이가 지켜야 할 게 있는 자들보다 귀찮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노력했으나 정파를 부흥 시킬 수는 없었네. 우리가 하는 일은 죽어가는 사람을 억지로 살려 놓는 것에 불과했지. 이대로 가면 우리가 몰락할 것을 자명했네.

       그러던 어느 날에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지. 그 때 우리는 생각했네. 저들이 있다면 정파를 다시 부활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래 내가 있던 무림에서 정파는 내가 의도했던 대로 밑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았다.

       

       내가 사라지며 나타난 혈교라는 위협에 고통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했다.

       

       허나 이 세상은 달랐다. 화룡무인 속 세상에 외부인이라는 변수가 나타나며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었다.

       

       “초기엔 우리의 사고방식과 저들의 사고방식이 달라 여러 갈등이 생겨났네만 지금은 아닐세. 급한 건 우리이니 우리가 외부인들에게 맞춰주기로 했지.”

       “어떤 무공을 쓰더라도 정파에 소속되어 있다면 정파다?”

       “그렇지. 지금의 무림에선 괜한 자존심을 세우다간 살아남지 못하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리를 필요로 한다네.”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나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그대들이 겉으로 표방하던 것마저 내버렸단 소리 아닌가.

       

       우습군.

       

       화산만 이상했던 것이 아니구나. 정파 전체가 기괴하게 뒤틀려 버린 것이었어.

       

       이들이 화산보다 나은 것은 오롯이 하나. 혈교와 협력하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는 셈인가.

       

       “그러니 자네가 바란다면 정파에 입문하는 걸 허하겠네. 또한 그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줌은 물론이요. 정파의 여러 절기들을 수학할 수 있도록 하지.”

       “내가 정파에 어울리는 인간이라 생각하나?”

       “혈교가 만들어 낸 재앙을 앞에 두고서도 물러서지 않고 홀로 맞서 싸워 결국에 재앙을 막아냈으니 어찌 그대에게 올바른 마음이 있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올바른 마음? 하. 개소리를 장황하게 지껄이는 구나.

       

       그대들이 언제 올바른 마음 같은 것에 신경이나 썼는가?

       

       정을 표방하면서도 권력와 명예에 미쳐 온갖 개짓거리를 하던 네놈들이 협의는 무슨 협의란 말이더냐.

       

       이런 내 생각이 겉으로 드러난 듯 백일이 뒷목을 긁적였다.

       

       “정파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가.”

       “그래.”

       “그렇다면 사파냐? 아니면 신공을 사용하는 만큼 신교로 갈 것이냐?”

       “그 어디에도 갈 생각이 없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정신 나간 무림의 실상을 알게 되니 더더욱 그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군.

       

       내 답을 들은 백일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화음군수의 옆에 앉았다.

       

       “그렇다면 내 따로 무어라 할 말은 없군. 혹시나 생각이 바뀌면 무림맹으로 오게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 일이 어디 생각한 대로 되나.”

       

       그리곤 객잔의 여주인을 불러서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나무판을 보지도 않고 음식을 말하는 것이 이 곳에 한 두 번 온 게 아닌 듯 했다.

       

       합석을 허락한 적도 없는데 실로 제멋대로군.

       

       “저기 화령님.”

       

       다시 자리에 앉으려던 때에 백일과 함께 왔던 유저가 말을 걸었다.

       

       “무언가.”

       “일단 감사인사를 전하겠습니다. 전 화산의 유저들을 이끌던 사람입니다.  

       화산에 살다시피 했으면서도 혈교가 암약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죠. 화령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뒤통수를 맞았을 겁니다.”

       “신경 쓰지 말게. 나는 단순히 바루의 부탁을 수행했을 뿐이니.”

       “그리고 죄송합니다. 저희 영감님이 제멋대로라서. 나쁜 분은 아니니 너무 밉게 보진 말아주십시오.”

       “누가 제멋대로란 게냐. 이 놈아!”

       

       자기를 깎아내리는 말이 튀어나오자 화음군수와 잡담을 나누던 백일이 유저를 향해 소리쳤다.

       

       정작 유저는 자기를 향해 무어라무어라 이야기하는 백일의 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녀석도 그리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구나.

       

       “그대도 나를 설득하려 하는 것인가?”

       “아뇨. 화령님이 어디에 소속되건 간에 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

       “그럼?”

       “매화검법. 비급서를 보여 달라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그 무공을 펼치는 걸 보여주시겠습니까?”

       

       아하. 그게 목적이었더냐?

       

       저 음흉한 놈보다 훨씬 낫구나. 무공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는 언제나 환영하는 바이지.

       

       본인도 매화검법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으니 들어주지 못할 부탁은 아니다. 다만.

       

       “일단 식사부터 하고 해도 되겠느냐? 음식이 식을 것 같아서 말이다.”

       

       *

       

       화령이 하는 설명을 들은 하린은 지금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했다.

       

       다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데 저기 화음군수님은 왜 만취해서 기절한 건가요?”

       “백일 저 노친네가 화음군수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먹였다.”

       “원래 남자와 남자가 만나면 술로써 배포를 푸는 게다! 그리고 몇 잔 먹이지도 않았다! 이 놈이 술에 약한 게 원인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백일이 괄괄한 목소리로 소리를 쳤지만 정작 그의 말에 동의하는 이는 객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백일과 동행인 유저 무림최강도 고개를 젓고 있었으니 화음군수가 뻗은 것은 어디까지나 백일의 문제인 것 같았다.

       

       “그럼 뒤에 도열하고 있는 낭인들은요?”

       “주제 파악을 시켜주는 중이지. 이 곳 소속이 된 만큼 미리 상하관계가 어찌 되는 지를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화령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낭인들이 깨어나자마자 살기로 위압을 가하는 중이라 했지만 살기에 몇 번 당해보았던 하린은 그게 말처럼 가벼운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살기에 잠시 당해도 식은땀이 나는데 그걸 계속해서?

       

       “저어. 슬슬 그만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저 분들도 다신 화령님한테 시비를 걸진 않을 것 같은데.”

       

       하린이 보기에 뒤에 도열한 낭인들이 다시 화령에게 덤빌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였다.

       

       시퍼렇게 질려서 화령을 쳐다보고 있는 저들이 정신이 나가지 않는 한 화령에게 시비를 걸 리가 없었다.

       

       화령은 하린의 말을 듣고 낭인 쪽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겠구나.”

       

       살기가 풀어지자 방금 전까지 꿋꿋이 서 있던 낭인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심호흡을 하던 이들은 이내 일어나서는 하린에게 다가와 살려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덩치 있는 성인 남자들이 울고 불며 고개를 숙이는 것에 하린이 당혹스러워 하는 동안 그 옆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포자를 노리고 백일과 바루가 대치하고 있던 것이다.

       

       음식을 씹으면서도 포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둘은 조금도 양보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이 음식을 삼킨 때는 비슷했다. 허나 손이 움직이는 속도는 달랐다.

       

       도술을 주로 다루는 바루와는 달리 백일은 무인.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 앞서는 게 당연했다.

       

       빠르게 뻗어나가는 젓가락을 보며 백일이 승리를 확신하던 순간 다른 젓가락이 끼어 들어 백일의 것을 막아냈다.

       

       화령의 젓가락이었다.

       

       “아니. 이 놈이?!”

       

       화령의 젓가락과 백일의 젓가락이 힘싸움을 벌이는 동안에도 바루의 손은 자유로웠고 결국 마지막 포자는 바루의 것이 되었다.

       

       우물거리며 보라는 듯 눈웃음을 짓는 바루를 본 순간 백일이 젓가락을 내려 놓고 삿대질을 했다.

       

       “이런 것을 원래 어른이 먹는 것이다!”

       “그대가 몇 년이나 살았기에 그런 말을 하는가?”

       “올해로 육십이 되는 사람이다!”

       “겨우?”

       

       바루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을 하자 백일이 당황을 했다.

       

       “…춘추가 어찌 되기에 그런 말을 하시는 지요.”

       “백 년 이후로는 세어보질 않아서 모르겠구나.”

       “과장이 심하구나! 어찌 사람이 백 년을 산단 말인가!”

       “이 놈이! 본인이 어디 평범한 존재인 줄 아느냐!”

       

       점차 객잔이 혼란에 빠지는 도중에 객잔의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꽤나 비싸 보이는 곰방대를 손에 쥔 낭인은 안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는 당황해서 눈을 끔뻑였다.

       

       “어…”

       

       그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화령이 일어나 낭인의 손에서 곰방대와 잎을 빼앗았다.

       

       그리고 화령이 물러서기 무섭게 다른 낭인들이 그 낭인을 둘러쌌다.

       

       “어. 미안하네. 다들 내가 술 때문에.”

       

       낭인이 변명을 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살기등등한 그 모습에 낭인이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을 무렵 화령이 곰방대에 잎을 담으며 목소리를 냈다.

       

       “소란을 피울 거면 나가서 하거라.”

       “옙!”

       

       낭인들이 나가고 나서도 객잔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한 쪽에선 바루와 백일이 말다툼을 나눴고, 무림최강이 그를 말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또 한 쪽에선 술에 취한 화음군수가 탁자에 머리를 박은 채 무어라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화령이 피우는 곰방대의 연기를 바라보며 하린이 괜히 이 곳에 왔단 생각을 할 무렵 화령이 말을 꺼냈다.

       

       “슬슬 식사도 다 했겠다 매화검법의 비급서를 열 터이다만 다 같이 볼 텐가?”

       

       화령이 꺼낸 말에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이 화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흥미가 있는 것 같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자기가 지닌 비급서를 내놓겠다고?”

       

       그녀의 말에 처음으로 답을 한 건 백일이었다.

       

       한 문파의 장로 역을 겸임하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비급서를 쉽게 낸다는 걸 이해할 수 없는 듯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상한가?”

       “당연히 이상하지.”

       

       백일은 매화검법이란 무공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허나 무림최강에게 전해 듣기로 저 비급서는 재앙을 막아낸 대가로 신령이 내린 선물이라 했다.

       

       그만한 역사를 지닌 비급서에 담긴 무공이 어디 가벼운 것이겠는가.

       

       상승의 무공이 담긴 비급은 하나의 문파를 세울 수 있을만한 힘을 지니거늘 그런 비급서의 내용을 이리 쉽게 공개하다니.

       

       백일로서는 화령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급서 속 글귀가 퍼지는 순간 그 비급서는 가치를 잃게 될 터.”

       “그렇겠지.”

       “알고서도 그런다고? 비급서 속에 담긴 것이 신공일지도 모르는데? 그를 모든 이들이 사용해도 괜찮다는 것이야?!”

       

       화령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하제일의 신공을 다루는 데 다른 무공이 남들에게 퍼진다 한들 무슨 상관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신공이 있는데 다른 무공이 퍼지건 말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