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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에 벌레가 꼬이기 마련.

     물론 그건 꽃이 벌레를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유인하는 것.

     현 상황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누아르 도련님! 이번에 있을 강의는….”

     누아르 지브롤터라는 인간의 근처.

     “혹시 음식은 뭘 좋아하세요? 혹시 해산물을 좋아하시나요? 저희 영지에….”

     “예전에 지브롤터에서 열린 연회에서 봤었지 않소? 누아르 공이 7살일 때, 소생도 8살로서….”

     

     여러 사람이 들이대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다.

     “시험장에서는 정말 멋졌습니다! 나리아 공주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검을 휘두르는 당대함! 왕가를 상대로도 검을 뻗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기백이었습니다!”

     “아, 그래, 그래.”

     그레이 지브롤터가 봤다면 ‘벌레’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리고 있다.

     “하, 하하…. 그래. 내가 좀 굉장하긴 하지.”

     누아르는 적당히 웃음으로 들이대는 이들에 답하며 주변을 살폈다.

     -네 주변에 달라붙는 이들은 아마 대부분 남작가, 자작가거나 평민 출신일 거다. 처음에는.

     입학 전, 그레이 지브롤터는 경고했다.

     -지브롤터 백작가의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탈을 쓰고, 어떻게든 눈에 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지브롤터의 유력 후계자.

     14살의 나이로 수석 입학.

     어려서부터 단련하여 젖살도 좀 빠진 덕분에, 조금은 체격이 작은 성인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준수한 외모.

     -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남자들도 노리겠지.

     “누아르 도련님. 혹시 대련 상대가 필요해? 내가 중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술 시험에서 나름 등수가 높았던 사람이야!”

     “제국어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우웅, 크리스틴은 제국어 잘 모르겠더라고요. 혹시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그야말로 온갖 이들이 달라붙어 대화를 시도한다.

     솔직히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입학식 다음 날부터 이렇게 달라붙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아, 그래.”

     누아르는 적당히 대답하며, 그 누구에게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네가 나이가 14살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귀족들의 수호자인 지브롤터라는 이유만으로 감히 얕잡아보려는 이들이 먼저 달라붙을 거다.

     그레이 지브롤터의 조언을 누아르는 몇 번이고 떠올렸다.

     -당분간은 시달릴 거야. 아쉽게도 오로솔 아카데미에는 지브롤터 영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네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지.

     귀족이 왜 옆에 기사나 병사들을 대동하고 다니는가.

     왜 형이 항상 로버트 경이나 멘테 리프트 자작을 대동하고 다녔던가.

     왜 항상 자신에게 ‘최소한 암흑기사단 후보생 한 명이라도 데리고 다녀라. 에단 세자르라도’라고 말을 했던가.

     “역시 지브롤터네요! 도련님을 모시기 위한 시종을 시험에 합격시키다니! 역시 대단한 변경백 가문답습니다! 하하하!”

     “…….”

     

     지브롤터에서 암흑기사단 수습 후보생들을 친위대로 데리고 다녔을 때가 얼마나 편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직접 겪어보면 깨닫게 되겠지. 지브롤터라는 협곡이 얼마나 따뜻한 곳이었는지.

     누아르 지브롤터는 대련을 하면서도 들었던 그레이의 말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누아르 도련님. 이번에-”

     “야.”

     옆에서 달라붙는 벌레를 향해 말하기 전 떠오른 그레이의 말.

     “너….”

     -한 번, 마음대로 해봐.

     그레이 지브롤터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누구를 친위대로 삼든, 누구를 벗으로 삼든. 그건 네 자유다.

     아군, 지인, 벗.

     누구든 상관없다고 했다.

     -누구를 적으로 두든 상관없다. 네가 지브롤터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적이라면 말이지.

     심지어 누군가와 척지더라도,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저지르라고 말했다.

     “도련님. 저랑 한 번 대결을-”

     “너, 뭐 되냐?”

     “예, 예…?”

     “누구길래 자꾸 귀찮게 구냐고.”

     “아, 그, 그게. 저는 일전에 인사를 드렸던….”

     “인사 한번 했으면 이렇게 계속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게 굴어도 되는 거냐?”

     “…….”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누아르가 한 명을 잡고 대놓고 면박을 주자, 달라붙으려던 이들이 하나둘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후….”

     한참 거리를 벌리고 난 뒤.

     “…웬즈데이. 나, 좀 어떻게, 형 같았어?”

     누아르는 앞을 계속 바라보며 걸으며, 자신의 뒤를 따라붙는 여인에게 물었다.

     “그레이 님은 꺼지라는 말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 그렇긴 하지.”

     “아예 질문하려고 달라붙는 인간에 대해서는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여지조차 주지 않으시죠.”

     “나도 그래야 하나…?”

     누아르는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목덜미를 손으로 가볍게 쓸었다.

     “벌써 피곤하십니까?”

     “피곤한 건 아니긴 한데, 어째 영 내키는 사람이 없네.”

     누아르는 웬즈데이-45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차라리 나도 얼음공주처럼 해버릴까?”

     “…나리아 공주를 말하는 거라면, 지금보다도 뒤에서 욕을 엄청나게 먹을 겁니다. 마침 저기 있군요.”

     전방, 아카데미 건물 사이에 난 광장 너머.

     “저기 보이십니까? 나리아 공주가 홀로 손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

     “…….”

     “왕가에서 따로 사람조차 붙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접근하는 이도 없죠. 왕족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형이 그랬어. 향기조차 없는 꽃에는 벌레조차 꼬이지 않는다고. 나리아 공주를 향해서는 어른들은 몰라도, 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을 거라고.”

     누아르는 인파가 갈라지는 광장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나리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리아 공주, 아예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지도 않아.”

     “시선을 느낀 거죠. 이미 입학식 첫날, 사람들을 훑어보던 나리아 공주의 시선을.”

     그것을 무엇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형이 간혹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의 얼굴을 보거나 명단을 살필 때의 눈을 하고 있더라. 나리아 공주.”

     “그 말은….”

     “왕국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지금부터 찾아다니고 있는 거야.”

     노스트럼 왕국은 위태롭다.

     세인트 지오의 무능이라는 폭정은 나라 재정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곳간은 나날이 비어가고 백성들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다.

     나리아 공주에게는 필요하다.

     흔들리는 노스트럼 왕성의 기둥을 함께 옆에서 지탱할 사람이.

     기둥을 붙잡은 채로 수많은 공문을 처리하고, 새로운 기둥을 한 발로 세우고 한 손으로는 기둥을 수리하는 능력 있는 행정가가 대량으로 필요하다.

     유능한.

     “네 생각에는 어때? 사람과 이야기하기도 전에 등급을 책정하는 듯한 시선.”

     “저에 대해 이미 파악이 전부 끝난, 상급자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직 성인이 되기 이전의 아이들이지만, 인간적으로 시선을 통해 바로 느낄 수 있다.

     이 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윗사람’의 시선이 담겨있다.

     범접할 수 없는 권력자의 눈.

     “어찌 됐든, 왕녀라는 건가….”

     “3년 뒤에 왕위에 오를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기는 합니다.”

     “아카데미의 왕이자, 노스트럼의 왕이 될 사람. 괜히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가 나중에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지.”

     그 누구도 함부로 나리아 공주, 차기 국왕을 향해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친구, 제대로 사귈 수 있을까?”

     “친구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울 겁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신하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모두가 의심하고 있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굳이 일반 왕립 아카데미가 아닌 오로솔 아카데미에 들어오려고 한 이유에 대하여.

     “3년 뒤에 자기 신하가 될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형이 그렇게 이야기했었지.”

     “누가 신하가 되고 싶어 할까요. 지금도 일이 힘들어 행정가들이 떠나고 있는 상황에.”

     왕의 최측근.

     멋진 말이다.

     “왕녀는 지금 찾고 있는 거야.”

     

     외척인 모르가니아 공작가에서 공작가의 살림을 전부 놔두고 왕국 전체의 운영을 위해 전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않았으면.

     “헥스 자작처럼 일할 사람을.”

     

     사치와 향락을 부려도 될 정도의 권력자가 ‘이러다가 나라 망한다’라고 생각해서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않았으면.

     “그래서 나리아 공주 곁에 안 가는 거구나. 신입생, 다들.”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곳곳에 잘 세워두고 최측근은 권력을 누리고 부를 마음껏 누릴 수만 있었다면.

     “…그냥 변경백이 될 사람과 친해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마도, 지금쯤 누아르 지브롤터를 향해 접근하려던 이들 중 태반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에게 빌붙어보려고 갖은 애를 썼을 것이다.

     “누가 자기 영지를 내던지고 왕도에서 머리 벗겨지고 허리 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을까. 그것도….”

     “지금 물리면 아카데미 1학년 때부터 왕국을 위해 일하게 될 겁니다. 무조건.”

     “…….”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만인의 관심을 받는 누아르 지브롤터와 달리, 모두가 꺼리는 폭풍의 핵.

     “형은….”

     “앗. 도련님. 잠시.” 

     누아르가 뭔가 말하려고 한 순간, 웬즈데이가 당황하며 누아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조용히, 이쪽으로.”

     “갑자기 무슨-”

     갑작스러운 웬즈데이의 행동에 누아르가 당황했으나.

     “……!!”

     웬즈데이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고는 즉시 자리를 벗어나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

     

     순식간에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누아르를 보며 망연히 헛웃음을 지은 웬즈데이는 누아르를 따라가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

     태풍의 핵?

     저것은 걸어 다니는 태풍 그 자체다.

     “…….”

     그레이 지브롤터.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두 사람이 아카데미 광장을 가로지르며 걷고 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러고보니.”

     웬즈데이는 건물 안으로 숨어들어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팡이는 왜 들고 다니는 거야…?”

     * * *

     한 손은 아스타시아의 손을.

     다른 한 손은 지팡이를.

     오른쪽 다리를 절면서 걷는 건 아니지만, 남들의 걸음보다 한참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냥 달리면 안 될까요, 이사장님?”

     “안 돼.”

     밖이라,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엄혹한 목소리와 말투로 말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야 하거든.”

     “저는 도망가지 않아요.”

     “글쎄. 붙잡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데.”

     “…….”

     아스타시아는 열심히 질색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내 앞에서 손목을 잡힌 채 걷는다.

     누가 봐도 내가 아스타시아를 붙잡고 구속하는 듯한 모습.

     입학식 다음날부터 제국의 황손녀 손목을 잡고 걷는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저게 뭐시여, 시벙.”

     왕도의 아카데미에 올라왔다고 애써 말투를 교정하려던 이가 자신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나올 정도로 당황한다.

     “황손녀가 잡아끄는…? 아니야. 잡혀있는데…?”

     “저거 봐. 손목 붉은 거. 꽉 잡고 안 놓아주는 거 같은데…?”

     “어째서, 왜? 저건 도대체 뭐지?”

     모두가 혼란스러워한다.

     “제국의 황손녀를…저래도 되나?”

     상식이 붕괴되고 이성이 마비되며, 왕국의 미래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던 이들도 국제외교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이사장님. 그, 손은….”

     “왜. 싫나?”

     “그, 그런 건 아닌데….”

     “원한다면 내가 밧줄 같은 거라도 준비해줄 수 있다.”

     “그, 그런 말은 좀…!”

     그 누구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오늘 오후가 되면 아카데미 전체에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스타시아 황손녀의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게 되겠지.

     ‘누가 잡았는가가 중요해.’

     얼핏 보면 아스타시아가 앞서나가고 있어서 내가 뒤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은 내가 잡고 있는 게 중요하다.

     “내가 싫나?”

     “시, 싫은 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면 얌전히 앞으로 가도록. 남들 보는 앞에서 목줄 채워버리기 전에.”

     “이…! 제국의 황손녀를 상대로 그런 무례한 말을 해도 되는 건가요?”

     아스타시아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 아무리 제가 내기에서 졌다고 하지만!!”

     그런 내기는 한 적은 없었는데.

     “야, 약속은 약속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그러길래 말조심을 하셨어야지. 내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내기를 한 적 없다.

     “원래 뱀은 한 번 문 사냥감을 붙잡은 채로 소화될 때까지 놓지 않는 법.”

     “제가 사냥감인가요?”

     “나로서는 놓고 싶지 않은 여인이라서.”

     “…하.”

     아스타시아가 걸음을 멈춘 채,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왜요?”

     “품고 싶은 여자라서?”

     “…….”

     “좋아하는 여자를 보고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모든 수컷의 기본이지. 나도 수컷이고.”

     “하….”

     아스타시아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다.

     “왕국 남자들을 전부 다 이런 건가요?”

     “글쎄. 대부분 비슷하지 않겠어?”

     “지브롤터 가문의 사람들은 전부 신사적이라고 들었는데.”

     “그 신사다움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가지고 싶은 거지.”

     “여자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소유물이라. 그래. 소유물이 아니지. 소유물이었으면, 진작에 주머니에 넣고 꺼내지도 않았을걸.”

     “하아….”

     

     아스타시아가 한숨을 한 번 더 푹 내쉰다.

     “그레이 지브롤터, 협곡재단 이사장님.”

     오로솔 아카데미 정문에서 쭉 뻗어 나오는 중앙 광장.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왜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야.”

     선언한다.

     “내가 그대를 가져야겠거든.”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에게 집착한다는 걸, 이 모두에게.

     퍼뜨려라.

     온 대륙이 알 수 있게.

     저기 황궁으로 돌아간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이 소식을 듣자마자 발로 박수를 칠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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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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