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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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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아아아아! 아가, 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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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이 하나, 둘 죽어갈 때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제 아이들의, 정령들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제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느껴야 했던 그녀는 거의 미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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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완전히 미쳐버리면 다른 정령들까지 마기에 침식당해 몬스터나 다를 바 없는 위험한 존재가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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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기에 그녀는 한점의 이성만을 꽉 붙잡고 있어야 했다. 몸이 산 채로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구원받았지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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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궁, 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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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퍼뜨리는 강대한 기운에 공간이 흔들렸다. 리안은 마검을 바닥에 박은 채 몸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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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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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방 안을 비추는 빛이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함께 흔들렸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새카만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정령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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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이걸 어쩌지?’
    [ 허헙, 꽤..꽤 봐줄 만하군. ]
    ​
    ​
    리안은 흥분한 정령의 모습에 당황했고 마검은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등장한 정령에게 감탄을 흘렸다.
    ​
    ​
    휘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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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는 사이 정령의 몸 주변에 새카만 어둠의 힘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마기와는 전혀 다른 힘, 어둠의 정령의 힘이 상반신만 한 구 형태로 뭉쳤다. 그 개수가 못해도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그 탓에 정령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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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겠어?’
    [ 정령은 어차피 죽어도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죽여버려라. ]
    ‘그건 안돼. 제대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잖아.’
    ​
    ​
    마검의 대답이 들려오기 직전, 거칠게 요동치던 공기가 갑작스럽게 잔잔해졌다.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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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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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 개의 구가 심장처럼 작게 맥박치더니 그대로 리안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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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앙! 쿠우웅! 콰지지직!
    ​
    ​
    리안은 빠르게 몸을 굴려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마치 유도미사일처럼 뒤이어 쏟아진 공격이 리안을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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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아앙! 콰직! 쿠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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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작은 간격을 두고 리안이 지나간 자리에 살벌한 공격이 떨어져 내렸다. 정령은 직접적으로 해할 수 없는 리안 입장에선 그저 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오로지 더 많은 피를 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니 마검의 기능은 대다수 살생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마검에게 ‘상처 없이 제압만 하는 기술’은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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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검이 방법을 떠올려 보겠다며 고민에 잠기는 와중 리안은 춤을 추는 것처럼 공격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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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그 춤이 품위 있는 귀족들의 춤이 아니라, 조금 경박하고 약을 올리는 듯한 춤 같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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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미아(장기를 보고 충격받았던 여흑마법사)의 공격을 허리를 휘어 C자 형태로 피했던 것처럼, 스텝을 밟고 스트레칭하듯 몸을 휘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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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드드…시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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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에 개그 필터에 묶인 검은색 구가 허공에 멈춰선 채 리안과 체조하는 기이한 일까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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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령이 괴이한 광경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을 갖추고 있었다면 저 어이없는 꼴에 당황하여 이성을 완전히 되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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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이 없다고 해도 상대가 바X벌레처럼 공격을 전부 피해버리면 공격 방법을 바꾸기 마련이었다. 정령 또한 본능적으로 새카만 구를 날리는 걸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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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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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고개를 들어 다시 드러난 정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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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정령들과 달리 인간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카만 머리카락, 분노로 치켜뜬 눈과 살기가 흘러나오는 표정, 정령답게 아름다운 외모 -….를 가리는 거대한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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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포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가슴을 가린 천 조각을 보고 있자니 순간 리안의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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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에 어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검을 소환해 빠르게 쥐고는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원거리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직접 다가가 공격하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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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리안의 목을 베기 위해 매섭게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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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코앞까지 다가온 풍만한 가슴을 마주한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떠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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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엄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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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법칙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형태나 크기 정도는 옷을 입어도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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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엄마만큼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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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엄마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웅장한 것을 마주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을 입에 담은 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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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정령의 검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리안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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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떨어지면 다시 붙이기도 굉장히 힘들다. 목을 붙이는 사이 몸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상태로 더 공격을 당해 몸이 난자당하면 복구하는데 오래걸릴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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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난 몸을 제자리에 붙이는 건 100조각짜리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귀찮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리안은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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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가르간도아 왜 가만히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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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면 항상 나서주었던 마검이 가만히 있자 리안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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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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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대답이 전부 들려오기도 전에 새하얀 빛이 번쩍거리고.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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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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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하고 포근한, 하지만 숨 막히는 거대한 살덩이가 리안의 얼굴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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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대가 살기를 거둔 상태에서 공격하는 건 ‘멋’이 없는 행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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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대답과 함께 묵직한 공격에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바닥을 뒹굴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몸이 포근하게 붕 떠올랐다. 동시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어둠이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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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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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얼빠진 소리를 흘리며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을 따라가기 위해 눈을 굴렸다. 얼굴이 옆으로 돌려진 채 정령의 가슴 사이에 반쯤 묻혀있었고, 몸은 어떠한 힘으로 허공에 붕 떠오른 상태였다. 뒷머리와 목 언저리가 정령에게 끌어안아진 상태로 토닥거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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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동자를 조금 더 굴려 위를 바라보자 사납던 정령은 어디 갔는지, 자애로운 표정을 한 ‘정령의 어머니’만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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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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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은 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성이 거의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리안이 뱉어낸 “엄마”라는 말이 진짜 엄마를 향한 말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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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제 엄마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그 말을 입에 담았고, 정령은 리안을 제 새끼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 탓에 포상…아니 토닥임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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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다정한 토닥거림을 5분이나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엄마처럼 부드럽게 웃어 보이곤 어깨 언저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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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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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리안은 다시 굳어져 버렸다. 잘못해서 마검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정령의 가슴은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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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이성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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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건 엄마…. 그래 엄마의 가슴이야. 엄마의 가슴이니까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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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그런 생각이 잘 먹혀들었다. 두 엄마(?)의 크기가 비슷한데다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꽤 익숙했기 때문이다. 리안의 엄마는 항상 퇴근한 후 리안의 어깨에 매달려 칭얼거리시는 게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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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의 경험 덕분에 리안은 간신히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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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 어찌되었든 일이 잘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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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이대로 정령을 등 뒤에 매단 채 밖으로 향하려 했다. 그 순간 문밖에서 익숙한 정령이 날아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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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콧수염 인간이 오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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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은 다급히 리안에게 날아오다가 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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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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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훌쩍거리며 제 어머니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손을 뻗어 어린 정령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정령이 [후에에엥!]하고 울며 제 어머니의 어깨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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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정령은 1살 된 아기보다 더 작은 크기였기에 2m 덩치를 가진 정령의 어머니를 끌어안을 수 없어 어깨 끝자락에 매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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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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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한 후 공격하는 게 더 편할 터였기에, 정령의 공격으로 끝부분이 찢어지긴 했지만, 방과 실험실 사이를 확실하게 가려주고 있는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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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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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오고 정령의 공격으로 부서진 문 너머에서 콧수염을 단 남자가 잔뜩 흐트러진 상태로 숨을 헐떡거리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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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헉… 젠장! 내, 내 실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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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정령의 어머니이자 어둠의 정령왕이 갇혀있던 장소가 텅 빈 걸 보곤 흐느끼는 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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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니야. 내, 내가 고작 여기서 망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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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흐느적거리며 반으로 쪼개져 무너진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한쪽에 처박혀 있는 가방을 가져와 서랍 안에 든 연구와 관련된 서류를 빠른 손길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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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결과가 있는 이상 난 다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서 마왕성으로 가는 거야. 결과지만 있으면…그래, 이것만 있으면 에르보안님께서 분명 중히 써주실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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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떡상을 코앞에 두고 망해버린 제 주식을 심폐소생술 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내 서류를 다 챙겼는지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다급히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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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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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순간 리안이 커튼 뒤에서 걸어 나와 남자를 바라보았다. 덜컥 멈춰선 남자가 몸을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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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글쓰는 것보다 삽화 뽑는게 더 힘드네요… ;0;
정령의 어머니는 히로인이 아닙니다!
삽화 뽑는 연습중이라 뽑아보았습니다.
제스랑 아이리스도 무한 뽑기중..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 아아! 아아아아! 아가, 아가! ]

정령이 하나, 둘 죽어갈 때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제 아이들의, 정령들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제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느껴야 했던 그녀는 거의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녀가 완전히 미쳐버리면 다른 정령들까지 마기에 침식당해 몬스터나 다를 바 없는 위험한 존재가 될 터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점의 이성만을 꽉 붙잡고 있어야 했다. 몸이 산 채로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구원받았지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쿠구궁, 쩌저적!

그녀가 퍼뜨리는 강대한 기운에 공간이 흔들렸다. 리안은 마검을 바닥에 박은 채 몸을 낮췄다.

끼익,끽.

천장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방 안을 비추는 빛이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함께 흔들렸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새카만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정령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으음, 이걸 어쩌지?’

[ 허헙, 꽤..꽤 봐줄 만하군. ]

리안은 흥분한 정령의 모습에 당황했고 마검은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등장한 정령에게 감탄을 흘렸다.

휘이이!

그러는 사이 정령의 몸 주변에 새카만 어둠의 힘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마기와는 전혀 다른 힘, 어둠의 정령의 힘이 상반신만 한 구 형태로 뭉쳤다. 그 개수가 못해도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그 탓에 정령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가르간도아,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겠어?’

[ 정령은 어차피 죽어도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죽여버려라. ]

‘그건 안돼. 제대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잖아.’

마검의 대답이 들려오기 직전, 거칠게 요동치던 공기가 갑작스럽게 잔잔해졌다.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치지직.

수십 개의 구가 심장처럼 작게 맥박치더니 그대로 리안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앙! 쿠우웅! 콰지지직!

리안은 빠르게 몸을 굴려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마치 유도미사일처럼 뒤이어 쏟아진 공격이 리안을 쫓아왔다.

쾅아앙! 콰직! 쿠구궁!

아주 작은 간격을 두고 리안이 지나간 자리에 살벌한 공격이 떨어져 내렸다. 정령은 직접적으로 해할 수 없는 리안 입장에선 그저 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로지 더 많은 피를 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니 마검의 기능은 대다수 살생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마검에게 ‘상처 없이 제압만 하는 기술’은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기술이었다.

마검이 방법을 떠올려 보겠다며 고민에 잠기는 와중 리안은 춤을 추는 것처럼 공격을 피했다.

문제는 그 춤이 품위 있는 귀족들의 춤이 아니라, 조금 경박하고 약을 올리는 듯한 춤 같다는데 있었다.

과거 미아(장기를 보고 충격받았던 여흑마법사)의 공격을 허리를 휘어 C자 형태로 피했던 것처럼, 스텝을 밟고 스트레칭하듯 몸을 휘어댔다.

“으드드…시원타.”

중간에 개그 필터에 묶인 검은색 구가 허공에 멈춰선 채 리안과 체조하는 기이한 일까지 발생했다.

정령이 괴이한 광경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을 갖추고 있었다면 저 어이없는 꼴에 당황하여 이성을 완전히 되찾았을 것이다.

이성이 없다고 해도 상대가 바X벌레처럼 공격을 전부 피해버리면 공격 방법을 바꾸기 마련이었다. 정령 또한 본능적으로 새카만 구를 날리는 걸 멈췄다.

“아…”

리안은 고개를 들어 다시 드러난 정령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린 정령들과 달리 인간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카만 머리카락, 분노로 치켜뜬 눈과 살기가 흘러나오는 표정, 정령답게 아름다운 외모 -….를 가리는 거대한 가슴.

흉포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가슴을 가린 천 조각을 보고 있자니 순간 리안의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정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에 어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검을 소환해 빠르게 쥐고는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원거리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직접 다가가 공격하면 될 뿐이었다.

그녀가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리안의 목을 베기 위해 매섭게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제 코앞까지 다가온 풍만한 가슴을 마주한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떠올리고 말았다.

“…어,엄마?”

[ …! ]

개그 세계의 법칙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형태나 크기 정도는 옷을 입어도 확인이 가능하다.

리안은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엄마만큼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제 엄마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웅장한 것을 마주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을 입에 담은 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정령의 검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리안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목이 떨어지면 다시 붙이기도 굉장히 힘들다. 목을 붙이는 사이 몸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상태로 더 공격을 당해 몸이 난자당하면 복구하는데 오래걸릴 터였다.

조각난 몸을 제자리에 붙이는 건 100조각짜리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귀찮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리안은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가, 가르간도아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면 항상 나서주었던 마검이 가만히 있자 리안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 그야 -…. ]

마검의 대답이 전부 들려오기도 전에 새하얀 빛이 번쩍거리고.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으븝!”

말랑하고 포근한, 하지만 숨 막히는 거대한 살덩이가 리안의 얼굴을 덮쳤다.

[ 상대가 살기를 거둔 상태에서 공격하는 건 ‘멋’이 없는 행동이다. ]

마검의 대답과 함께 묵직한 공격에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바닥을 뒹굴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몸이 포근하게 붕 떠올랐다. 동시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어둠이 걷혔다.

“어, 어어?”

리안은 얼빠진 소리를 흘리며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을 따라가기 위해 눈을 굴렸다. 얼굴이 옆으로 돌려진 채 정령의 가슴 사이에 반쯤 묻혀있었고, 몸은 어떠한 힘으로 허공에 붕 떠오른 상태였다. 뒷머리와 목 언저리가 정령에게 끌어안아진 상태로 토닥거려지고 있었다.

눈동자를 조금 더 굴려 위를 바라보자 사납던 정령은 어디 갔는지, 자애로운 표정을 한 ‘정령의 어머니’만이 그곳에 있었다.

[ 아가,아가… ]

정령은 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성이 거의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리안이 뱉어낸 “엄마”라는 말이 진짜 엄마를 향한 말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리안은 제 엄마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그 말을 입에 담았고, 정령은 리안을 제 새끼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 탓에 포상…아니 토닥임을 받고 있었다.

리안은 다정한 토닥거림을 5분이나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는 엄마처럼 부드럽게 웃어 보이곤 어깨 언저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머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리안은 다시 굳어져 버렸다. 잘못해서 마검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정령의 가슴은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다.

리안은 이성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이,이건 엄마…. 그래 엄마의 가슴이야. 엄마의 가슴이니까 정신 차리자.’

의외로 그런 생각이 잘 먹혀들었다. 두 엄마(?)의 크기가 비슷한데다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꽤 익숙했기 때문이다. 리안의 엄마는 항상 퇴근한 후 리안의 어깨에 매달려 칭얼거리시는 게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리안은 간신히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휴우.. 어찌되었든 일이 잘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겠다.’

리안은 이대로 정령을 등 뒤에 매단 채 밖으로 향하려 했다. 그 순간 문밖에서 익숙한 정령이 날아들어 왔다.

[ 콧수염 인간이 오고 있어요! ]

정령은 다급히 리안에게 날아오다가 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곤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어,어머니… ]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훌쩍거리며 제 어머니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손을 뻗어 어린 정령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정령이 [후에에엥!]하고 울며 제 어머니의 어깨에 매달렸다.

어린 정령은 1살 된 아기보다 더 작은 크기였기에 2m 덩치를 가진 정령의 어머니를 끌어안을 수 없어 어깨 끝자락에 매달린 것이다.

‘우선 숨자.’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한 후 공격하는 게 더 편할 터였기에, 정령의 공격으로 끝부분이 찢어지긴 했지만, 방과 실험실 사이를 확실하게 가려주고 있는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쿵! 쿵! 쿵!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오고 정령의 공격으로 부서진 문 너머에서 콧수염을 단 남자가 잔뜩 흐트러진 상태로 숨을 헐떡거리며 나타났다.

“허억,헉… 젠장! 내, 내 실험체!”

그는 정령의 어머니이자 어둠의 정령왕이 갇혀있던 장소가 텅 빈 걸 보곤 흐느끼는 소리를 흘렸다.

“아니, 아니야. 내, 내가 고작 여기서 망할 것 같아?”

그는 흐느적거리며 반으로 쪼개져 무너진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한쪽에 처박혀 있는 가방을 가져와 서랍 안에 든 연구와 관련된 서류를 빠른 손길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 결과가 있는 이상 난 다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서 마왕성으로 가는 거야. 결과지만 있으면…그래, 이것만 있으면 에르보안님께서 분명 중히 써주실 거라고.”

그는 떡상을 코앞에 두고 망해버린 제 주식을 심폐소생술 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내 서류를 다 챙겼는지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다급히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잠깐.”

그 순간 리안이 커튼 뒤에서 걸어 나와 남자를 바라보았다. 덜컥 멈춰선 남자가 몸을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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