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3

   페이비가 소리를 치는 것을 보고서 뒤로 물러섰다.

   

   이게 게임이었을 적보다 캐스팅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은데?

   

   내 도발에 화가 제대로 났나 보네.

   

   눈이 이글거리는 것 좀 봐.

   

   벌개진 페이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예전에 모니터 너머에서 페이비가 화내는 모습을 보려고 온갖 지랄을 떨었었는데 말이야.

   

   너무 착해서 그 어떤 심술궃은 일을 하더라도 쓴웃음을 지을 뿐인 캐릭터가 있다면 무언가 특별한 상호작용이 있을 것 같잖아?

   

   그래서 소울 아카데미의 고인물은 페이비를 화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은 페이비가 화를 내는 상호작용은 없다는 것이었지.

   

   결론이 그렇게 나왔을 때 다들 제작사가 감이 없다며 한탄했던 기억이 나네.

   

   지금 화를 내는 페이비의 모습을 찍어서 커뮤니티에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재밌는 반응이 돌아올 거야.

   

   이제와서는 상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정화의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페이비가 그리 소리를 친 순간 그녀의 주변에서 신성이 터져 나왔다.

   

   할배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페이비가 실패하지 않았단 사실을.

   

   하. 진짜.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왜 처음에는 실패를 한 거야.

   

   그거 때문에 괜히 나만 나쁜 사람이 됐잖아.

   

   페이비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호감도를 깎아먹어야 한다니.

   

   진짜 눈물이 날라 그래.

   

   이걸 현장학습에서 만회할 수 있으려나.

   

   이윽고 기도문을 따라 페이비가 기도를 읊조리니 하늘에 떠 있는 용의 날갯짓이 점차 느려졌다.

   

   성녀가 지닌 고강한 신성의 앞에서는 용이라 할지라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으니.

   

   자신을 둘러싼 신성의 앞에 굴복한 용이 바닥에 나가떨어진다.

   

   공동이 진동하고 용이 떨어진 자리에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이제 거의 결말에 다다른 셈이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방패를 치켜 들고서 페이비와 프레이가 있는 곳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진동이 울리며 흙먼지가 걷혔다.

   

   인간의 신성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할지라도 용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니.

   

   그 끈질긴 생명력은 여전히 골렘의 육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역할은 간단하다.

   

   페이비가 정화의 기도를 끝마칠 때까지 앞에 서서 버티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도마뱀이 이 선을 지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탱커라면 해야 하는 것.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 자신하는 일.

   

   골렘의 육신을 지녔다 하더라도 용은 용이다.

   

   자신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뒤의 성녀를 향하고 있는 붉은 색의 눈동자를 본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어허. 어디서 뒤 쪽을 쳐다보려고.

   

   지금 네 앞에 자그마하고 귀엽고 얄미운 여자아이가 있잖아.

   

   길고 긴 세월을 산 용 주제에 매너도 모르는 거야?

   

   레이디가 춤을 추자면서 손을 내밀었다면 한 곡을 어울려 주는 게 예의라고.

   

   골렘의 몸에 들어가는 바람에 뇌까지 골렘이 되어버린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네.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다면 몸에 박아 넣어 줄게.

   

   오늘 이걸로 저승에 가게 되겠지만 혹시 알아?

   

   저승에서도 예의를 차릴 일이 생길지?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알겠지?

   

   “허접 도마뱀♡ 날 봐♡”

   

   나랑 같이 놀자고.

   

   *

   

   정화의 기도를 끝나고 동력원을 잃어버린 골렘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혹여나 모자랐을까봐 긴장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페이비는 던전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가 나타남과 동시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성공했어요!

   

   알른 영애에게 아르마디의 기적을 보여 줬다고요!

   

   자신의 마음을 붉게 물들이는 감정을 여태 겪어볼 일이 없었던 페이비다.

   

   그 때문에 그녀는 붉은 색을 극복해 성과를 낸 지금 그 어느 순간보다도 커다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알른 영애가 어떤 말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그 분께서 그토록 무시하시던 아르마디께서 내려주신 것으로 이만한 일을 벌였으니까요!

   

   페이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루시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알른 영애님! 할 말 없으신가요?!”

   

   루시가 흙먼지로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걸어오기 무섭게 페이비가 소리를 쳤다.

   

   그녀의 말을 들은 루시는 눈을 살짝 치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뭐. 뭔가요!

   

   왜 웃으시는 거죠?!

   

   지금 알른 영애께서 하셔야 하는 행동은 웃는 게 아니라 사과라고요! 사과!

   

   “아하핫. 쪼잔하시네요. 방금 걸 마음에 담아 두고 계셨어요?”

   “알른 영애께서 먼저 주신님을 모욕하셨잖아요!”

   

   온갖 불경한 말을 내뱉으셨으면서 어찌 이렇게 뻔뻔하실 수가 있죠?!

   

   전 아직도 알른 영애께서 ㅎ… 그거라고 하는 게 선명히 떠오른다고요!

   

   “그치만 처음에 실패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조롱당하기 싫었으면 잘했어야죠. 허접 성녀님.”

   “으으!…”

   

   이런 말다툼을 해 본 일이 없는 페이비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루시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교복의 치마를 양 손으로 꾹 붙잡은 채 자신을 노려보는 페이비를 구경하던 루시는 이내 페이비의 바로 앞까지 걸어와서는 팔을 위로 쭉 뻗어 페이비의 코를 꾹하고 눌렀다.

   

   이런 걸 당할 거라 예상치 못한 페이비가 양 손으로 코를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서자 루시의 입가에 새겨진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마지막엔 잘했어요. 진작 그럴 수 있으면서 왜 안 한 거에요? 진짜 허접이라니까.”

   

   루시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는 등을 돌리더니 던전의 보상이 나타난 곳으로 향했다.

   

   인정…해주신 건가?

   

   *

   

   아니! 야! 메스가키 스킬!

   

   다른 사람 코는 대체 왜 찌른 거야?!

   

   그거 때문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는 건 그렇다 치고 도발을 하는 건 아니잖아!

   

   흐으. 돌아버리겠네.

   

   페이비가 나를 도대체 어떤 인간으로 생각할까.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이 험악한 거야 익숙한 일이지만 설마 성녀님에게까지 미움을 사게 될 줄이야.

   

   메스가키 스킬의 패널티만 어떻게 없앨 수 없나.

   

   지난번에 우리 허접 주신님이 패널티를 줄여준 걸 보면 언젠가는 없애주지 않을까?

   

   희망회로를 굴려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접 주신은 어린 여자애한테 비난당하는 걸 좋아하는 마조이면서 사디인 개변태니까.

   

   악신을 다시 봉인하는 것 수준의 위업을 다시 달성하는 게 아니라면 나 좋은 일은 안 해주겠지.

   

   순식간에 체념을 한 나는 보상을 챙기기 위해 던전의 출구 앞에 있는 테이블에 다가섰다.

   

   “이거 뭐야?”

   

   프레이는 안에 연기가 낀 듯 뿌연 색을 지닌 네 개의 구슬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허접 검사. 이것도 몰라? 이건 숙련도 상승의 구슬이야.”

   

   “그게 뭐야?”

   

   그렇지. 너라면 당연히 모를 줄 알았어.

   

   아카데미 1학기 던전의 최초공략 보상은 바로 숙련도 상승의 구슬이다.

   

   이를 손에 쥐고 자신이 숙련도를 올리고 싶은 것을 마음속으로 정하면 그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하는 식이지.

   

   내가 한 달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려야하는 숙련도를 이 구슬 하나면 바로 올릴 수 있는 거다!

   

   이 아이템은 엄청나게 효율적이고 유용한 아이템이지만 그만큼 귀하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할 수 없는 녀석이다.

   

   괜히 아카데미 던전을 최초 공략한 것의 보상으로 선택된 아이템이 아니라 이거지.

   

   시장에 내놓으면 부르는 게 값일 걸?

   

   이게 게임일 적에 아카데미 1학기 던전 공략이 기피되었던 이유도 어디까지나 효율이 안 나와서였지 얻을 수 있다면 얻는 편이 나았으니까.

   

   내가 프레이에게 구슬의 정체를 알려주자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네 개의 구슬 중 하나를 들어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구슬 안에 있던 뿌연 것이 프레이의 몸으로 흘러 들어오더니 구슬이 맑은 빛의 수정구로 변했다.

   

   구슬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신의 몸을 살피던 프레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검을 들고 빈껍데기가 된 골렘에게 다가가 휘둘렀다.

   

   “오.”

   

   무언가 달라진 게 느껴진 걸까.

   

   프레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눈에 초점이 집중됐네.

   

   저 상태면 당분간은 아무 말도 안 듣겠다.

   

   나도 프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구슬을 들어서 상승시키고 싶은 숙련도를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올려야 하는 숙련도를 둘 중 하나지.

   

   메이스 아니면 방패.

   

   그 중에서 메이스는 무작정 휘두르면서 어떻게든 올릴 수 있지만 방패는 그게 안 되니까.

   

   방패의 숙련도를 먼저 올리자.

   

   그리 결심을 하자마자 구슬의 뿌연 연기가 몸에 흘러들어왔다.

   

   이거 기분이 미묘하네.

   

   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야.

   

   어디보자.

   

   이제 남은 두 개 중에 하나는 페이비꺼고.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다.

   

   본래라면 파티원 넷이 하나씩 가져가면 깔끔하거든?

   

   문제는 이 파티가 단순히 네 명으로 이루어 진 파티가 아니라는 거야.

   

   이 파티는 정확히 따지자면 세 명의 파티원과 한 명의 안전요원으로 되어 있거든.

   

   그러니까 잘 만 하면 숙련도 구슬 두 개를 집어먹을 수 있단 거지.

   

   이건 영약처럼 섭갯수 제한이 없으니까.

   

   내가 슬쩍 칼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그는 두 손을 저으며 사양의 말을 꺼냈다.

   

   “저는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까요. 다른 분들과 협의하셔서 사용처를 정하시죠.”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어.

   

   좋아. 그럼 네 고생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내가 따로 주도록 할게.

   

   안 그래도 검 대신 전시할 걸 선물해 주기로 했으니까.

   

   “저도 하나면 충분합니다. 마지막 그 순간 빼고는 제가 기여한 게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를 온전히 받는 것도 죄송스럽습니다.”

   

   페이비 같은 경우에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양을 했다.

   

   그치. 100층에서 활약을 하긴 했지만 그 아래의 99층을 짐짝 마냥 매달려서 아무것도 안했잖아.

   

   하나면 충분하지. 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어야 하는 건 프레이인데.

   

   “허접 검사♡!”

   

   아무리 집중을 한 상태라 할지라도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 앞에서는 무력했다.

   

   프레이는 내가 목소리를 내기 무섭게 고갤 돌리더니 검을 휘두르다 말고 이 쪽으로 걸어왔다.

   

   눈에 띌 정도로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프레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구슬 하나가 남아서 이것의 사용처를 정해야 한다고.

   

   그러자 구슬을 바라보는 프레이의 눈길에 탐욕이 서렸다.

   

   뭐야. 욕심나는 거야?

   

   내가 시키는 대로 뛰어다닌 것밖에 없는 주제에?

   

   그런 식으로 눈치를 주었지만 프레이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없었으면 하루 만에 공략 못했어.”

   

   그…건 그렇지.

   

   내 페이스에 따라올 수 있는 1학년은 사실상 없다시피하니까.

   

   조이도 아직 체력이 좋아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그러니까 나한테도 자격 있어.”

   

   포기하지 못하겠다 그거야?

   

   이걸로 얻을 수 있는 숙련도가 많이 매력적인가 봐?

   

   나도 그 숙련도 때문에 이 치졸한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까 할 말이 마땅찮네.

   

   오케이.

   

   알겠어.

   

   확실히 프레이 네가 없었으면 여러모로 더 고생을 했을 테니까.

   

   네 공로를 인정해 줄 게.

   

   ‘그러면…’

   “허접 검사. 그럼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승부하자.”

   

   “단판?”

   

   ‘네.’

   “응. 단판.”

   

   그 무엇도 개입하지 못하는 순수한 운의 대결.

   

   5:5의 싸움.

   

   이거면 공평하잖아.

   

   그치?

   

   “좋아.”

   

   하하! 걸렸구나! 멍청한 프레이!

   

   너는 모르겠지만 난 운이 무척이나 좋거든?

   

   아카데미 시험에서 다이스 갓에게 모든 걸 맡기고도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은 나다!

   

   운의 대결에서 남에게 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하지!

   

   자! 숙련도 구슬을 내놔라! 허접 검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