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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머리가 텅 빈 것 같다.

       

       어쩌면,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해서 빈 것처럼 느껴지는지도.

       

       망설임이 조금 더 짧았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이전에, 제대로 김루루를 붙잡고 싸움을 가르쳤더라면.

       

       혹은, 자신이 여전히 마법소녀인 채였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슬프지 않아.”

       

       몇 걸음 걸어가던 로데루스는, 벽면에 팔을 기대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아무것도 든 게 없어서 위액을 게워 냈다.

       

       내리는 비에 고여버린 물웅덩이 위로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슬픔과 자책,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눌려 일그러진 표정이다. 빗방울이 무겁다.

       

       마음에 상처가 난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고른다. 애초에 다친 적 없었다며 스스로를 속이고 외면하거나, 상처를 받아들이고 나아가거나.

       

       이전, 어린 로데루스는 첫 번째를 골랐다.

       

       고통에 굴복하고 순종하여, 그는 결국 『마법사의 악몽』이라는 껍데기를 얻었다. 한때는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안다. 

       

       “원래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시끄럽기만 하고, 말은 더럽게 안 듣는⋯⋯ 계집애였다. 멍청하기까지 했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다른 새의 깃털을 가져다 붙여도, 아무리 자신을 속이고 외면하더라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깟⋯⋯ 천민 하나가, 죽었다고 한들. 내가 슬플 이유는 없다. 그냥, 언제나처럼, 항상 봐 오던 시체일 뿐이야⋯⋯.”

       

       사실 그녀를 싫어했다면서, 마음속 도화지에 아무리 먹칠을 해 봐도.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지 않은가.

       

       “⋯⋯⋯⋯.”

       

       덧칠한 검은색은 내리는 비에 씻겨 나가, 기억 속에서 환하게 웃는 루루의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을 깎아내려도 마찬가지였다. 

       

       로데루스는 김루루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명제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그와 그녀는 친구였다.

       

       “⋯⋯이제는 거짓말도 못 하게 됐군, 얼간이 새끼⋯⋯.”

       

       쩌적.

       

       『마법사의 악몽』에 금이 갔다. 얼굴을 덮은 손가락 사이로, 공작이 덧씌운 껍데기가 산산조각 나 떨어졌다. 남을 깔보는 냉혹한 암살자는 여기에 없었다.

       

       두터운 갑옷을 빼앗겨 추위에 떨고 있는 인간 한 명이 있을 뿐이다.

       

       로데루스는 휘청거리며 걸었다.

       

       ===============================================================

       

       『제크니엘』은 하늘에서 부유한 채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왕 강림을 위한 소용돌이를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었으니, 마법소녀들을 요격하는 것은 부하의 몫이었다.

       

       하여, 지상에서는 『퓨어 라이트』와 『유리 프로스트러버』의 박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리 비켜⋯⋯!!”

       

       “지나가게 둘 수는 없습니다. 또한, 마왕님의 어전이니. 침묵하십시오.”

       

       양손에서 빛을 뿜어내는 마법소녀와, 전신에 식물 줄기를 감은 채로 공세를 가하는 여간부의 대결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세계의 마법소녀와, 사람을 죽일 각오가 된 여간부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더하여, 시간에 쫒기는 쪽은 오혜인이었다. 그 조급함이 전투의 흐름을 미묘하게 바꾸었다.

       

       “옆구리가 비었습니다.”

       

       “으끅⋯⋯!!”

       

       손해의 누적.

       

       단단한 수비를 기반으로, 오혜인이 빈틈을 드러낼 때마다 급소를 향해 날아오는 주먹. 짧게 끊어 치는 타격에 데미지는 착실하게 쌓여나가고 있었다.

       

       “『호프니스 애로우』!”

       

       오혜인은 빛나는 화살을 쏘아 날렸다. 유리 프로스트러버는 팔을 들어서 막아냈고, 화살은 그녀의 팔을 휘감은 식물 줄기만을 태워버리고 힘이 다했다. 

       

       슈르르륵. 식물 줄기는 금세 회복되었다.

       

       공격력의 부족이다.

       

       방어를 뚫어낼 공격력도, 역습을 막아 낼 기술도 없다. 오혜인에게 남은 것은 용기뿐이었다. 사람들을 구해 낼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명감.

       

       “그러나, 간절한 사람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불가항력이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그런 건 없어!”

       

       “당신의 능력치는 밸런스형. 부족한 것 없이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건, 송곳처럼 뚫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유리 프로스트러버는 시종일관 우세를 점했다. 높다란 성벽과도 같다. 그러나 마법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승패와는 관계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오혜인이 다시금 자세를 다잡고 격돌하려고 할 때. 

       

       “이런, 어서 오세요. 마법도 소녀도 아닌 자여.”

       

       번쩍.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뜩이며, 유리의 머리를 향해 레이피어가 쇄도했다. 유리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틀어 피해내고.

       

       “선물입니다.”

       

       “읏⋯⋯?!”

       

       오혜인의 손목을 잡고,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집어 던져 후속타를 봉쇄했다.

       

       그림자 속에서 기습을 가했던 로데루스는, 공격을 멈추고 날아오는 오혜인을 받아들었다.

       

       “⋯⋯대수 오빠?!”

       

       “고생하고 있는 것 같더군.”

       

       “잠깐, 대수 오빠 손이⋯⋯.”

       

       오른팔 전체를 둘둘 동여맨 붕대를 적시며 흘러나오는 피. 로데루스는 마력으로 레이피어를 만들기 위해서 『우화』를 사용했고, 그 반동으로 팔이 걸레짝이 되었다.

       

       오혜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쓰면, 죽는다니까?!”

       

       “안 죽을 정도로 조절해서 썼어. 무기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여긴 나한테 맡기고 가래도!”

       

       로데루스는 걱정스레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혜인과 눈을 마주치고, 눈꺼풀에서 슬픔을 털어내며 조용히 말했다. 

       

       “⋯⋯루루가 죽었어.”

       

       “⋯⋯⋯⋯.”

       

       “너마저 잃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하는 편이 유리할 거다. 금방 정리하고 따라갈 테니, 마지막 놈을 잡으러 가.”

       

       “⋯⋯알았어.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는데. 쓰지 마. 죽지 마.”

       

       로데루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혜인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마왕 강림을 막아내기 위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지상에 남은 로데루스는 유리에게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유리 또한 자세를 갖추었다. 

       

       발끝의 움직임과 시선, 서로의 움직임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해 가는 포지션. 날카롭게 정제된 살의(殺意). 사람 죽이는 법을 전문적으로 단련한 자들의 수싸움이 시작됐다.

       

       “그 자세⋯⋯ 『퓨어 나이트』였군요. 이터널 다크에게 정보는 공유받았습니다만, 설마하니 변신장치도 없는 채로 여기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송곳 하나만 있어도 이기고도 남아.”

       

       “그런 것치고는⋯⋯ 촉수에게 너무 많이 당하지 않았습니까? 싸움을 모르는 분도 아니니, 제가 당신보다 세 수는 앞서 있다는 걸 느끼고 있을 텐데요.”

       

       무방비한 목덜미.

       

       뻔한 함정이다. 노리고 찌르면, 안에서 밖으로 쳐내는 타격이 팔꿈치를 꺾어버릴 거다.

       

       “어째서 싸우십니까?”

       

       “널 죽이려고.”

       

       “신경을 긁기 위한 무의미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말로, 이해가 안 가더군요. 당신은 이세계인이 아닙니까. 이곳이 무너져도 당신은 죽지 않아요.”

       

       깊이 패인 가슴골, 그 너머에 있을 심장.

       

       앞을 가로막는 손이 거슬린다. 십중팔구는 손으로 레이피어를 걷어낼 것이고, 일할로 뚫어내더라도 어깨로 받아 낼 확률이 높다. 

       

       “당신에게는 이 모든 것이 꿈. 그러니, 시답잖은 우정 놀이 대신에⋯⋯ 좀 더 쾌락을 추구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지?”

       

       “같은 입장이니까요. 우리들, 『레전드 오브 데빌즈』 전원은⋯⋯ 모두 이세계에서 왔습니다. 유성을 타고, 꿈을 넘어서. 각자 다른 세계에서.”

       

       “⋯⋯⋯⋯.”

       

       옆트임이 된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다리.

       

       관절부터 노려 망가뜨린다면 말려 죽일 수 있겠으나, 힘이 들어간 발끝이 보인다. 팽팽하게 수축된 종아리 근육도. 장전된 총과 같다.

       

       『우화』를 사용할 수 있다면 마력 방패로 막았겠으나, 지금은 마력을 쓰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실컷 즐길 수 있었습니다. 꿈이니까요. 사람을 죽이고, 온갖 일을 벌여도, 이곳은 그냥⋯⋯ 환상이니까. 당신도 마음을 조금 가볍게 먹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희에게 합류하세요. 그러면, 저 마법소녀는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추가로, 도시 하나 정도는 선물로 드릴 수 있어요.”

       

       “⋯⋯⋯⋯.”

       

       로데루스는 레이피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 어디를 노려도, 죽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미적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싸움이 길어지면 식견이 높은 쪽이 이긴다. 시선의 차이는 매 합마다 손해를 누적시킬 것이고, 결국 누적되는 데미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겠지.

       

       단기 결전이어야 한다. 의표를 찔러야 한다. 기회는 한 번이다.

       

       사천왕의 유혹이 이어졌다.

       

       “마왕님께서 곧 모든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실 테니, 그 순간 이 꿈속 세계는 우리들의 놀이공원이 됩니다. 그곳에서 왕이 되십시오. 당신이 바라는 평화로운 일상을, 영원히 즐기는 겁니다.”

       

       “⋯⋯영원히.”

       

       “예. 영원히 이어지는, 멋진 놀이터죠.”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모두가 꼭두각시가 된 세상 속에서. 로데루스는 멋대로 남을 조종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연기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라고도, 혹은 옷을 벗어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언젠가 꿈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할 일도 없을 테고, 영원히 이어지는 마음의 안식처가 생겨날 것이다.

       

       비록 모든 것이 가짜일지언정, 껍데기만큼은 명령에 따라서 로데루스를 사랑할 것인데.

       

       유리 프로스트러버가 웃었다.

       

       “어떻습니까?”

       

       “⋯⋯나는, 말이지.”

       

       “예.”

       

       “그 빌어먹을 껍데기에 그 어떤 의미도 없다는걸, 여기서 배웠다. 천한 종족아.”

       

       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고는, 이빨을 드러내는 로데루스를 바라보며 식물 줄기를 불러내었다.

       

       “유감입니──”

       

       푸욱.

       

       그 순간, 그녀의 가슴팍을 꿰뚫고 레이피어가 튀어나왔다. 유리 프로스트러버는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가슴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분신입니까?”

       

       “그래. 마력으로 만들어 낸⋯⋯ 유사 골렘이지. 어떤 정신 나간 마법사 덕분에 알게 된 응용이다.”

       

       “원래 세계의 힘, 퓨어 에너지와 충돌이 있었을 텐데요⋯⋯.”

       

       “⋯⋯⋯⋯.”

       

       로데루스는 말없이 레이피어를 갈무리하고 몸을 돌렸다. 그의 등은 커다란 균열이 일어나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 고통을 참아 가면서 능력을 한계까지 운용한 건가. 나쁘지 않은 도박수로군. 그녀는 내심 감탄했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그대로 지면에 엎어졌다.

       

       ⋯⋯⋯⋯.

       

       로데루스가 충분히 멀어지고 난 뒤. 그녀의 귓가에 무전이 울렸다. 자탑주의 목소리였다.

       

       -저기, 진짜로 당한 거야? 그 분신에?

       

       죽은 척 엎어져 있었던 핑발레즈가 대답했다.

       

       “설마요. 분신 보내는 거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냥 귀여워서 한 번 당해 준 겁니다.”

       

       -재등장 안 하구, 관전석 들어올 거지?

       

       “예. 만족했습니다. 역할이 끝났으니, 배우는 돌아가야죠.”

       

       -응. 소환할게.

       

       파스스스스.

       

       사천왕 유리 프로스트러버의 몸이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녀는 퇴장하는 도중, 마음속으로 로데루스의 건투를 빌어주었다.

       

       들키긴 했어도, 꽤 나쁘지 않은 수였으니까.

       

       ===============================================================

       

       사천왕 서열 1위 제크니엘은 지상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굳은 눈빛으로 제크니엘을 노려보는 마법소녀 『퓨어 라이트』가 서 있었다.

       

       제크니엘은 흑백의 날개를 펄럭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모두 죽었군, 나 혼자만 남았나.”

       

       “⋯⋯!! 그래, 포기해 제크니엘. 또 하나의 마법소녀가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까. 1대 2야⋯⋯!”

       

       “알고 있었다. 모두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모두와 함께, 말이지.”

       

       “⋯⋯⋯⋯?”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오혜인이 긴장한 채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그는 운을 떼었다.

       

       “우리가, 왜 너희들과 놀아주었다고 생각하나.”

       

       “⋯⋯그 이야기는 이터널 다크에게 들었어. 임퓨어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해서, 우리를 죽이지 않았다고.”

       

       “아니⋯⋯ 나는,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마법소녀여. 식견도 짧고, 답을 뻔히 가르쳐주어도 사고에 진전이 없구나. 너희는 어째서 사천왕이 한번에 공격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했어야 했다.”

       

       “⋯⋯⋯⋯뭐?”

       

       제크니엘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지직 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창 너머에는 마법소녀가 싸우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루루가 이터널 다크에게 박살 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그리고 각도를 바꾸어, 대치하는 『퓨어 라이트』와 제크니엘의 모습. 생중계되는 영상이었다.

       

       “이건, 설마⋯⋯!”

       

       “그래, 시민 모두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지. 시민들은 마법소녀의 패배에, 어느 때보다도 절망하며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네가 마지막이다.”

       

       “⋯⋯⋯⋯.”

       

       “너를 조각내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일 것이다, 마법소녀. 그것이 절망의 시발점이 될 것이고, 마왕은 완전히 강림한다.”

       

       파앙-!

       

       먹구름으로부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마법소녀의 주변을 넓게 비추었다. 먹구름에 새까맣게 잠긴 도시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중앙은 아주 잘 보였다.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 마법소녀의 패배에.

       

       아니,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제크니엘을 이기고, 마왕의 강림을 막아내면 된다.

       

       “⋯⋯⋯⋯.”

       

       심호흡하는 오혜인의 시야에 로데루스가 잡혔다. 그는 제크니엘의 뒤로 조용히 다가서고 있었다. 유리 프로스트러버를 이기고 온 것이다.

       

       기쁨도 잠시.

       

       오혜인의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로데루스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었다! 오혜인은 손을 뻗으면서 기습을 준비하는 로데루스에게 소리쳤다.

       

       “대수 오빠, 오지 마──!!”

       

       “⋯⋯⋯⋯!!”

       

       제크니엘이 비죽 웃었다. 그리고.

       

       “『암흑성계』.”

       

       고오오오오.

       

       새까맣고 공허한 우주가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빛과 어둠이 어지러이 얽히며, 응축된 별빛이 폭발했다. 막대한 에너지가 주변을 밀어내며 퍼져나갔다. 

       

       격류. 모든 것을 부수는 새까만 암흑 파도가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다가서던 로데루스도, 경고하던 오혜인도 휘말려 단숨에 쓸려나갔다.

       

       쿠아아아아아──!!

       

       “크윽──!!”

       

       “꺄아아아악!!”

       

       시야가 사방으로 흔들리고 몸이 어딘가에 부딪히며 멀어져간다. 한 시간 같은 10초가 지나간 뒤에야, 암흑 파도는 힘을 잃고 지면으로 가라앉았다.

       

       로데루스와 오혜인은 전투 불능이 된 상태였다.

       

       “크억, 컥⋯⋯.”

       

       “우둔한 자여. 전향하기로 마음먹었더라면 무한한 쾌락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잘못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거기서 네 동료의 죽음을 보고 있어라.”

       

       제크니엘은 여유롭게 걸어 오혜인에게 다가섰다. 그녀의 변신은 풀려 있었다. 

       

       이제 마지막 마법소녀를 죽이고, 그 모습을 모두에게 보일 것이다. 사람들은 끝없는 절망에 빠질 것이고, 이로써 마왕은 이 세상에 가볍게 내려앉으리라.

       

       스르르릉.

       

       제크니엘은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한다.

       

       로데루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사지 말단부터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강력한 공격이었다.

       

       주변을 단번에 갈아버리는 광역 마법. 그걸 쓰고도 제크니엘이라는 놈은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천왕 서열 1위에 걸맞은 강적이다.

       

       죽을 각오로 『우화』를 이용한다고 해도⋯⋯ 놈을 쓰러트리기도 전에 죽어버릴 거다. 그리고 애초에, 우화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대로.

       

       이대로 정말,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걸까.

       

       두렵다. 삶의 안식처를 잃고 감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도 두렵지만, 그 무엇보다도. 세상을 지키기 위한 친구들의 노력이 무로 돌아간다는 게, 친구가 죽는다는 게, 치가 떨리게 두려웠다.

       

       무력하다. 

       

       『마법사의 악몽』은, 친구를 구해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효율의 문제 아니겠냐몽? 인간이라는 생물은 시각적인 껍데기에 많이 의존한다몽.’

       

       ‘인간의 본능은 솔직한 법. 물론, 쓰러져가는 빌딩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극한 상황에서 구해진다면 외모와는 관계없이 최대치의 퓨어 에너지(감사)를 얻을 것.’

       

       ‘그러니까, 쿨계 미소녀와 활달한 미소녀 두 가지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상황은⋯⋯ 퓨어 에너지 수집에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몽!’

       

       “⋯⋯⋯⋯.”

       

       마법소녀 『퓨어 나이트』라면.

       

       현재, 제크니엘에 의해서 마법소녀의 전투는 모든 시민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그러니, 퓨어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는 도시 전체.

       

       극한 상황에서 구해진 시민들로부터 ‘퓨어 에너지(기대)’를 끌어모아, 몸의 붕괴를 늦추면서, 제크니엘에게 맞선다면.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면.”

       

       중요한 것은.

       

       ‘그럼, 나랑 지금 대화하는 사람이 누군데! 오대수, 아니야?’

       

       마음.

       

       “⋯⋯⋯⋯.”

       

       쩌적, 쩍.

       

       깨지고, 다시 붙는다. 『마법사의 악몽』에 금이 가서 떨어져 내리고, 『퓨어 나이트』가 섞인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설프게 기워 붙인 마음이지만.

       

       이제는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구한다. 친구를 위해서.

       

       어느샌가 로데루스의 오른손에는 『변신장치(드리밍 미러)』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피투성이인 채로 팔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소리 높여 외쳤다.

       

       “드리밍 미러, 내 진정한 모습을 비추어라──!!”

       

       그리하여 빛이 있었다.

       

       ===============================================================

       

       “종언을 맞이해라, 마법소녀.”

       

       제크니엘의 롱소드가 반월을 그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오혜인의 목을 베어 가르려 할 때.

       

       채앵-!!

       

       튕겨 나갔다. 무언가가 쏘아져서 롱소드를 튕겨낸 것이다.

       

       제크니엘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마법소녀가 있었다. 하늘색 머리카락과 파란색 리본, 새하얀 장갑과 튜닉. 깃털 달린 모자와 망토. 그리고 이글거리는 불길을 품은 눈동자.

       

       촤아앙-!!

       

       마법소녀는 반짝이는 레이피어로 검광을 뿌려대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반짝반짝, 빛나는 승리의 한 수, 『퓨어 나이트』!”

       

       “⋯⋯아직 마법소녀가 남아 있었나?”

       

       “여전히 괴인이 남아 있었군, 응? 다른 사천왕은 모조리 죽였는데 말이야!”

       

       퓨어 나이트, 로데루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보라는 듯이. 너희들을 지킬 마법소녀가 여기에 있다는 듯이.

       

       그리고, 포효했다.

       

       “내가, 모두를 구할 거다. 그러니까, 방구석에서 벌벌 떨지 말고, 나를 응원해라 이 천민들아──!!”

       

       “⋯⋯네놈! 무슨 짓을⋯⋯!!”

       

       퓨어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시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상하시던 그 말이 맞아요.
    일요일 쉬고, 월요일날 다시 만납시다! 미래에서 만나요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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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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