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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역시 엘프식으로 만들면 맛이 다르군.”

    몇개씩이나 번갈아 먹어가면서 확실히 알아낸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료가 같지 않은데 같은 맛이 날 리가 없는 것이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물론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루크가 약속한 사실은 ‘같은 맛’을 내는 것이었다.

    식물성으로 만들어낸 생크림은 역시 우유를 사용한 생크림과 식감이나 맛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아몬드우유로 만들어진 빵은 기존보다 조금 더 퍽퍽하고 기름진 느낌이 든다.

    그야 맛있기는 했지만, 맛의 지향점이 다르다고 할까.

    엘프식으로 만들어진 빵의 맛이 고소함과 질감이 강조된 맛이라면, 정식으로 제작된 메론빵은 더 부드럽고 촉촉한데다 깔끔했으니까.

    “음, 그나저나. 어떤 식으로 제작해봐야하지?”

    아직 루크에겐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바로, 루크는 제빵을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는 것.

    루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예르나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예르나에게 물어봤자, 당연히 모르겠지.’

    집에 제빵도구는 단 하나도 없고,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요리도 초보적이다.

    예르나가 제빵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특별한 일이겠지.

    루크는 그냥 컴퓨터를 켜곤 ‘메론빵 만드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정보를 띄우는 화면, 루크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건 그래도 검색을 하면 나오는구나.”

    그동안 제대로 쓸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아서 맨날 고양이영상이나 찾아보던 컴퓨터가 조금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

    그후로 루크가 한 행동은 예르나와 함께 제빵도구를 사고, 재료들을 한가득 사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찰칵,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재료 한가득을 부엌에 온통 올려둔다.

    이렇게 보니까 재료가 정말 많았다.

    밀가루, 종류별로 준비된 우유, 그리고 설탕, 이스트 등등…….

    루크가 만들것은 단순한 메론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엘프식재료로 우유의 맛을 재현하는 것이었기에, 재료는 가능한 다양하게 준비했다.

    루크는 부엌을 가득채운 재료들에 나름대로 흡족함을 느꼈다.

    ‘좋아, 이정도면 연구할 맛은 나겠군.’

    그동안 마법사로서 무언가를 연구하고 탐구하는 감각은 잊어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주어진 용인의 피는 꽤 재미있는 연구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연구할 용인의 피를 잃어버린 지금, 루크는 또 다른 연구로 그 실망감을 덮어버리려면 새로운 연구감이 절실했다.

    그러던 중, 떠오른 발상은 조금 엉뚱하게도 메론빵 만들기였지만.

    뭐 어떤가, 심심풀이로 제격이 아닌가?

    루크는 예르나에게 자신의 머리를 묶어줄 것을 요구했다.

    예르나는 흔쾌히 루크의 머리를 뒤로 빗어주고는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묶으며 말했다.

    “루크, 다 만들면 언니도 줄거지?”

    “그야 물론이지, 그대는 그 부분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후후, 기대되는걸.”

    루크는 어느새 앞치마까지 두르고 본격적인 제빵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은 모두 한개씩 만들어볼까.’

    있는 그릇을 모두 꺼내고, 그 위에 체를 두고 밀가루를 적당히 하나씩 털어낸다.

    그리고 루크는 곧바로 그 위로 재료들을 털어넣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르나가 묻는다.

    “루, 그릇을 왜 그렇게 많이 꺼내니? 설거지하기 힘들게…….”

    “반죽을 모두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니까. 식물성재료로 우유와 버터, 계란을 사용한 것과 완전히 동일한 맛을 내는 것이 이 실험의 목적이다. 설거지는 끝나고 알아서 해둘테니까 너무 걱정 말게나.”

    “그러니……? 알겠어, 응원할게.”

    그래서 이렇게 재료를 다양하게 산 거였구나……?

    그냥 다 자기가 먹고싶어서 산 줄 알았는데 말이다.

    ——–

    -띵.

    예르나의 집에 몇 안되는 가열마도구, 오븐이 빵의 완성을 알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빵들은 모두 우유를 넣은 것, 코코넛밀크를 넣은 것, 두유를 넣은 것으로 바리에이션을 두고 여러가지를 만들었다.

    거기에더해 계란을 넣은 것과 아마씨나 두부등을 대체제로 이용한 반죽들까지 더해서 종류가 꽤 되었다만, 재료 배합에 따라 어떤 맛이 나는가에 대한 실험적인 것이라, 각각 한두입이면 사라지는 정도의 크기다.

    그럼에도 그 양은 꽤 많았다.

    게다가, 이렇게보니 빵보다는 쿠키에 가까워보였다.

    작게 만들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메론빵보다 조금 더 바삭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루크는 적당히 우유와 버터를넣고 정석적으로 만들어진 메론 빵을 집어들어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음, 오븐의 열기를 조금 낮추거나, 시간을 줄였어야 했었나.”

    아쉽게도 만들어진 것은 빵과 쿠키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물건. 

    그래도 맛은 있는 것 같다.

    파이가 그 모습을 보며 침을 삼키는 듯 한 소리를 냈지만, 루크는 어쩔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잠깐 파이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먹을 수 있게 되면 빵정도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테니까 지금은 참게나.”

    그러자 파이는 기대된다는 듯이 반짝거리면서 통통거리며 꺄륵댔다.

    그 음성의 의미는…….

    -나도 얼른 루크가 만든 쿠키 먹고 싶다!

    였다.

    루크는 살짝 눈을 감고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쿠키가 아니라 빵이라니까.”

    파이가 조금 원망스러워지려고 한다.

    하지만 루크가 만든 결과물을 바라본 예르나 역시 비슷한 감상이었다.

    “음, 만든다는게 쿠키였니?”

    “……아니다. 이건 확실히 빵이다만.”

    루크는 예르나의 물음에 살짝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자꾸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결과물을 부정하는 듯 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래? 미안.”

    “괜찮다. 뭐, 그대도 악의는 없었을테니까. 휴, 이건 실패로군. 하긴, 처음부터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아냐, 아냐! 이것도 맛있어보이는데? 실패라니!”

    루크가 삐질듯 한 느낌이 들자 예르나는 곧바로 루크를 위로하면서 빵? 쿠키? 아무튼 그것을 집어들어 살폈다.

    색은 굉장히 예쁘다. 겉부분에 바삭해보이는 설탕코팅에 설탕 알갱이가 반짝거리는 것이 무슨 보석이라도 박아놓은 것 같았다.

    이게 빵인지 쿠키인지는 별개로, 그래도 확실히 맛은 있어보인다.

    “예르나, 그건 버터가 들어간 거니까, 이걸로 먹어보게.”

    “아, 그래? 고마워.”

    예르나는 그렇게 루크가 건네는 것으로 바꾸고는 조금 기대를 하면서 입에 넣어봤다.

    “음…….”

    겉은 바삭하고 달콤한 설탕옷, 그 속은 반대로 쿠키보다는 조금 더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한 크림이 터져나오는 맛.

    쿠키와 빵의 장점을 멋지게 뒤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

    루크는 실패작으로 여기지만, 이정도면 꽤 아름다운 실패가 아닐까?

    “맛있네! 차랑 같이 먹으면 최고겠는데?”

    “그런가.”

    루크도 사실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건 아니었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루드에게 줄 때 몇개정도 챙겨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

    몇번의 실험이 더 지속된 후, 재료가 모두 떨어져서 루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한숨을 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이블 위에 크기에 상관 없이 마구잡이로 꺼내둔 그릇과 컵, 재료봉투들이 널부러져있고 밀가루와 계란, 버터등도 열심히 섞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튀어서 묻어있었다.

    수많은 시도의 흔적, 그럼에도 루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역시 잘 안되는군.”

    쉽지않다.

    역시 재료가 다르면 동일한 맛을 낼 수 없는걸까?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라면 다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야, 영약은 다른 재료를 써도 동일한 효과를 내도록 제작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맛은 아주 조그만, 미묘한 차이만으로도 바뀌었으니…….

    만드는 난이도를 따지면 물론 영약쪽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영약은 약초들간의 효과적인 밸런스에 더해, 마력의 농도와 마법적 효과까지 생각해서 제조해야 하는데, 음식은 그냥 맛만 내면 되니까.

    하지만 모르는 소리였다.

    그 맛이라는것도, 굉장히 미묘한 차이로도 바뀌는 것인데, 하물며 재료가 달라져서야 동일한 맛이 날 리가 없는 것이다.

    “흠.”

    루크는 고민했다.

    이미 뱉은 말을 철회하고 그냥 만들어진 메론빵중 엘프식으로 만들어진 아무거나 시루드에게 주어도 되겠지만, 그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결과다.

    루크는 어중간한 타협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했던 말은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라도, 아이와 약속한 것은 확실하게 지켜내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우유 없이 비슷한 맛을 낸다라…….’

    한동안 고민하던 루크는 턱을 쓸다가 문득 떠오른 발상에 손가락을 튕기며 일어났다.

    “발상을 바꿔볼까.”

    비슷한 맛을 낸다, 우유 없이.

    ‘하지만 우유가 아니면 같은 맛이 나지 않아.’

    여러번의 실험이 증명했다. 

    동일한 맛을 내려면 동일한 재료를 써야한다고.

    그렇다면 간단하다.

    “내가 재료부터 만들기 시작하면 되겠군.”

    루크는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어쩌면 이 발상으로, 연구가 굉장히 재미있어질 것 같아서.

    루크는 그동안 숲을 산책하며 모아둔 수많은 마력초들을 꺼내서 연금술을 시작했다. 풀을 갈고, 건조시키고, 증류하고, 첨가하고.

    없으면 만든다, 마법사로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감칠맛을 위해 지르코스를 넣을까? 우유의 고소함을 위해서는 디릭스풀을 추출한 성분으로 흉내낼 수 있겠군. 독성은 제레늄으로 중화하고, 질감은 희석시키면 되겠지.’

    ——-

    “완성이로군.”

    루크는 드디어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듯이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수십종의 마력초와 찻잎으로 우유의 식감을 재현한, 이론상 완벽한 메론빵이다.

    “좋아, 이거면 되겠어.”

    시험삼아 맛을 봤을 때도 완벽한 맛이었다.

    동물은 티끌만큼도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물론 엘프가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

    루크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것을 다른 메론빵-쿠키들과 함께 냉장고에 집어넣어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루크가 청소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 무렵, 파이는 지금 완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냉장고 안에 있는 그 메론빵……. 아무래도 마력의 농축률이 심상치않다.

    앨릭서나 다름없는 그 마력의 형상. 루크는 그 우유를 만들때 단지 신체적효과만을 계산했지만, 마력적으로는 수십가지의 마력초를 한데섞어 만들어낸 것이므로 결코 가벼운 마력이 아니다.

    파이는 홀린듯 루크가 만들어둔 메론빵에 다가갔다.

    -어쩌면, 이건 먹을 수 있을지도!

    ——-

    “예르나. 혹시 냉장고에 넣어놨던 커다란 메론빵, 그대가 먹었는가?”

    “어? 아니? 언니는 오늘 빵은 하나도 안 먹었는데……?”

    “흠……. 그런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고?”

    “내가 왜 루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알겠네.”

    루크는 살짝 눈을 감았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의 반응이야 너무도 잘 알고 있으므로, 예르나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수 있었다.

    설마 정령인 파이가 먹었을리는 없고.

    뭐, 도둑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도둑도 말은 안된다. 뭔가 다른 훔쳐간 물건은 없는 듯 한데, 대체 얼마나 한가한 도둑이 힘들게 침입해서는 냉장고에 넣어둔 빵 하나만 훔쳐먹고 사라진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굉장히 양심적인 도둑이 아닌가.

    아니면 간단하게, 예르나가 먹어놓고 기억을 못 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더 추궁하기도 뭐해서 루크는 체념했다.

    고작 빵 좀 먹은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니니까.

    ‘나중에 하나 더 만들어야겠군.’

    그러나 이제는 수중에 남은 마력초가 거의 없었다.

    나중에 숲에 가던가, 식물상점에가서 구매를 하던가 해야겠지.

    그러다가 문득, 루크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내내 파이가 보이지 않는구나.’

    말도 없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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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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