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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바로바로 내가!”

         

       파스텔은 자신을 척 가리켰다.

         

       “차기 마왕이야!”

         

       엘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됐다.

         

       “뭐가?”

       “내가 마왕!”

         

       엘리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정적이 흐르다가 되물었다.

         

       “뭐가?”

         

       파스텔은 벌떡 일어났다.

         

       “마왕 폐하야! 마왕 폐하!”

         

       밀실을 우다다 뛰어다녔다.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마왕 파스텔!”

         

       마왕이 뭐 하는 직업인진 모르겠지만 착한 친구는 건드려선 안 되는 호칭인 건 잘 알겠어!

         

       이거 마왕 타락이야?

         

       두근두근.

         

       콩닥콩닥.

         

       짜릿짜릿.

         

       권력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원하는 대로 휘두르는 영향력.

         

       말 한마디로 마족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직책이라면 완전 권력 덩어리!

         

       백만 배 즐거울지도!

         

       “마왕마왕 파스텔!”

         

       파스텔은 우다다 달렸다. 근데 방안이라 공간이 좁아서 엘리 주변을 빙빙 돌았다.

         

       “오해받을 뉘앙스로 말하는 버릇은 버리는 게 어떨까.”

         

       엘리가 뛰어다니는 파스텔을 멍하니 봤다. 그러다 생각이 정리됐는지 마른세수를 했다.

         

       “이러니 네가 말하는 억울한 상황이라는 게 생기는 거 아니야.”

         

       다소 감정이 담긴 질책 어린 목소리.

         

       파스텔은 촥 하며 달리기를 멈췄다. 적절한 포즈로 엘리를 삿대질했다.

         

       “어허! 마왕님께 그게 무슨 무례에?!”

       “마왕님이라니.”

         

       엘리가 살짝 코웃음 쳤다.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어. 네 요상한 소품들은 나도 유심히 지켜보던 참이야. 부유하는 나이프나 빗자루는 사용자가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마왕이라는 소리나 다름없으니까.”

       “이해가 빠르구나!”

         

       내가 마왕 폐하야!

         

       “하지만 크래프트 혈통이 마왕일 리 없으니, 전쟁기 때 크래프트 가문이 강탈한 유산이나 기술로 만들었다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엘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당사자인 내가 모르는 우리 사이의 암묵적 합의와 뒷조사 같은 건 전혀 짐작할 수 없었지만 마왕 전설과 신화는 내 전공 분야니까.”

         

       으엣.

         

       악마님께 혼날 각오를 하고 큰맘 먹고 한 마왕 자백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

         

       엘리는 전공 분야에서 틀렸다.

         

       으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엘리 입장에선 편해?”

       “마음이 편한 게 아니라 사실이잖아. 크래프트 가문이 마왕의 권능을 조사하고 몰래 연구했던 건 이미 학계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야. 그 성공했는지까진 추측의 영역이었지만 가주인 네가 결과물을 만천하에 선보였으니 증명된 거지.”

         

       엘리가 페이스를 되찾았다. 침착하게 또박또박 말해왔다.

         

       “무슨 얘기인지 분명히 알겠어. 마왕 연기를 하자는 거잖아. 크래프트라는 신분만 숨기면 일단 차기 마왕이나 다름없긴 하니까. 온건파의 입장을 돌려놓은 일쯤은 쉽겠지.”

         

       으에.

         

       파스텔은 한쪽 볼을 부풀리며 실망했다.

         

       나 아직 보라색이 아닌가 봐.

         

       평소에 착하게 산 게 이런 부작용을 만든 걸까?

         

       좋은 일이지만 왠지 실망.

         

       이 실망 어린 기분을 해소하려면 대악마의 봉인을 풀어 세계 멸망의 위기를 초래하기 같은 나쁜 짓을 해야 할 것 같아.

         

       파스텔은 손가락을 올려 자신의 부풀어진 볼을 콕 찔렀다. 바람이 푸쉬식 빠졌다.

         

       “연기 아닌뎅.”

         

       뿌뿌.

         

       “엘리엘리. 전설과 신화를 전공으로 입학했으면서 중요할 때 틀리면 어떡해. 학술 공부 아니 학술 연구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야?”

         

       성실성 미달.

         

       “내 전공이니까 하는 얘기야.”

         

       엘리는 단호했다.

         

       “대다수의 마족은 마왕위가 가장 강한 자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필수조건은 아니야. 오히려 필수조건은 이방인 정체성이지.”

         

       으에.

         

       “마족과 인간은 구분되지만 족보를 타고 올라가면 결국 같은 존재야. 다만 다른 건 대신전 신화의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마계에 살게 된 인간이라는 정도. 신이 만든 세상에서 신화를 벗어난 존재는 언제나 이방인인 거지.”

         

       엘리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비동질성, 비전형성, 비관습성. 마왕의 힘은 물리적 파괴가 아니라 관념적 파괴로 구현되는 거야. 그렇기에 이방인이어야 하는 거고.”

         

       파스텔은 분홍 눈동자가 맹해졌다.

         

       갑자기 어려운 학술 얘기로 들어가면, 들어가며언.

         

       시선을 돌려 업무 책상을 바라봤다. 고급 목재의 무늬에 언뜻 귀여운 눈코입이 보였다.

         

       “와아! 강아지!”

         

       앞으로 여기서 업무 볼 땐 강아지 친구에게 먼저 인사해야겠다!

         

       “안녕 친구!”

         

       엘리가 당혹스러워했다.

         

       “뭐 하여튼 그렇다는 거야. 제국사의 메인스트림 그 자체인 크래프트 가문에서 태어난 존재가 이방인일 수는 없는 거지. 이건 마족의 원한과 별개야.”

       “응! 그렇구나!”

         

       다 흘려들은 파스텔은 알아들은 척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엘리가 마왕 파스텔을 못 받아들인다는 건 잘 알겠어!

         

       “엘리 마음대로 생각해도 돼! 어쨌든 철도 부설을 하면 좋으니까!”

         

       엘리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가짜 마왕을 만드는 건 들킬 경우를 감수해야겠지만 철도 프로젝트는 마계의 미래가 걸린 계획이니. 제국이 기술 대전환에 경각심을 갖기 전에 서둘러야…….”

         

       엘리가 생각을 정리하다가 흠칫했다. 말한 게 기밀 사항이었는지 파스텔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돌렸다.

         

       “마왕의 존재는 내가 책임지고 확언하면 될 거야. 가짜라고 의심하는 사람보다는 드디어 찾았다는 기대감에 젖은 사람이 많을 테니 신분을 감춰도 당분간은 괜찮겠지.”

       “와아!”

         

       파스텔은 만세 했다.

         

       “마왕 파스텔!”

         

       제자리 빙글빙글~!

         

       엘리가 휘날리는 분홍 머리카락을 유심히 봤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변장 정도는 준비해 놓는 게 좋겠어. 그 눈에 띄는 머리카락 어떻게 안 돼? 크래프트 가문의 변장 비법 같은 거 없어?”

       “두 배로 빙글빙글~!”

         

       파스텔은 고속 회전했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머리카락이 휘날리다가 엘리의 얼굴을 쳤다.

         

       “아.”

         

       엘리가 머리카락을 막으며 물러났다.

         

       “마왕님이야! 마왕 폐하!”

         

       이 타락 소식을 어서 악마님께 알려야 하는데!

         

       앗! 맞아!

         

       지금 알리면 되는구나!

         

       이 쉬운 걸 고민한 파스텔은 바보!

         

       “그보다 머리카락 어떻게 바꿀지 방법을-”

       “나 먼저 퇴근할게!”

         

       파스텔은 밀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카데미 복도가 펼쳐졌다. 종종 마주치는 친구들에겐 빠른 손 인사만 해주고 달렸다.

         

       “안녕! 안녕! 나와 대화하고 싶던 너희 마음은 알겠지만 내가 너무 바빠서! 무지무지 무지무지 바빠! 인기인의 의무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슝슝 슝슝.

         

       배정받은 개인 기숙사 이곳저곳을 뒤적이다가 주방에 들이닥쳤다. 주방 문을 벌컥 열자 악마가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앞치마 차림으로 밀가루 함량 높은 쿠키의 레시피를 만들던 악마가 돌아봤다.

         

       『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건가? 당혹스럽군. 기다려 봐라. 아직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다. 금방 해주마.』

         

       파스텔은 빠르게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직 점심시간 아니에요! 그보다! 그보다!”

         

       스스로를 척 가리켰다.

         

       “마왕 폐하!”

         

       분홍 눈동자가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악마가 의도를 모른 채 어리둥절해했다. 문가로 오더니 들은 사람이 없나 복도를 살피곤 문을 닫았다.

         

       『오늘은 조기 퇴근한 건가? 잘했다. 현재 학생회 업무는 괴상할 정도로 과해.』

         

       파스텔은 무시하고 다시 자신을 척 가리켰다.

         

       “마왕 폐하!”

         

       악마가 당혹스러워했다.

         

       『어린 크래프트, 대화는 양방통행이다. 자신만 아는 맥락을 들이댄다고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네에?”

         

       충격.

         

       “악마님이라면 알아들으셔야죠!”

         

       파스텔은 다시 척 가리켰다.

         

       “마왕 폐하!”

         

       대뜸 주어진 수수께끼에 악마가 다소 고통스러워했다. 이걸 어떻게 어울려 줘야 하나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악마가 고심하더니 양손을 들었다.

         

       『모르겠군.』

         

       파스텔은 자신을 가리킨 손을 내렸다. 볼이 천천히 부풀려졌다.

         

       뿌우.

         

       『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반응하는 거냐. 이건 네 잘못이다.』

         

       뿌우!

         

       『정말 어디까지 바라는 거냐.』

         

       악마가 한숨 쉬더니 손가락을 움직였다. 파스텔의 볼을 콕 찔렀다. 바람이 푸쉬식 빠졌다.

         

       “으아아! 내 볼 빵빵!”

         

       아무나 못 만지는 건데에!

         

       악마가 픽 웃었다.

         

       『이상한데 집착하지 마라. 흠? 이런, 밀가루를 묻혀 버렸군.』

         

       악마가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닦아줬다.

         

       『그래서 마왕 폐하가 어쨌다는 거지? 새로운 마왕의 유산이라도 찾은 건가?』

         

       파스텔은 뾰로통해졌다.

         

       “크래프트 가문이니 의심받기 어렵긴 해도 남에게 정체를 자백하는 건 절대 안 되다고 악마님이 강조하셨잖아요.”

       『넌 체감이 안 되겠지만 마왕의 존재는 제국이 가볍게 여기지 못해. 소식을 들으면 즉시 조치를 취하겠지.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헤헤.”

         

       파스텔은 은근히 웃었다.

         

       악마가 멈칫했다.

         

       『설마……?』

       “말해 버렸네요!”

         

       한 바퀴 돈 다음 폴짝 뛰며 양팔을 번쩍 들었다.

         

       “야호!”

         

       악마가 말없이 이마를 짚었다.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소녀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진 듯했다.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원하던 반응!

         

       『살인 멸구는, 아니 할 리가 없나.』

         

       악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님! 악마님!”

         

       파스텔은 기분이 풀리는 걸 넘어 즐거워졌다.

         

       “저 잘했죠?! 완전 잘했죠?!”

       『혼나고 싶은 건 잘 알겠군.』

         

       악마가 손을 뻗었다. 파스텔의 양볼을 잡더니 쭉 당겼다.

         

       『반성을 해라 좀.』

         

       볼이 쭉 늘어났다. 그만큼 고통도 늘어났다.

         

       “우아앙!”

         

       파스텔은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

         

       악마님 완전 나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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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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