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4

       *

         

         이반은 대개의 경우 속이 깊고 따스한 사람이지만, 자기객관화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냉철한 사내였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좋은 스승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엔리케처럼 제자를 가르칠 수 없다.

         

         

         “날… 죽여…!!”

         “그런 말 하지 마라. 넌 죽지 않는다.”

         “이 괴물…!! 나는 수강을… 취소하겠다…!!”

         “펠릭스 폰 에스빌, 틸레스 에스빌 백작가의 차남, 성하대로 3번구 21번지에 거주. 하녀 셋, 집사 하나, 시종 하나, 말 두 필, 일주일에 한 차례씩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나, 수신인은 에스빌 백작령에 있는 평민 소녀, 이릴다. 맞나?”

         “…히익?!”

         “내 수업엔 조기퇴소가 없다. 그러니 집중해라.”

         

         

         이반은 21세기의 진보된 교육과정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은 현대적인 보통교육을 실시하는 선진국이다.

         

         엔리케의 방식은 도제 시스템에 가깝다. 비인부전, 일인전승. 성심성의껏 제자를 골라내어, 그 제자에게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최선을 다해 주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보통교육은 그렇지 않다. 학생의 질은 중요하지 않다. 충분한 수준의 교육을 통해 전체 학생의 평균 수준을 신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니까.

         

         대한민국은 ‘의무교육’이라는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의사와 무방하게 학생 전반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이미 충분한 수준의 경고를 보냈다. 그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친절한 선전포고문이었다. (절멸부대의 집행엔 선전포고가 없다.)

         

         그러니 그의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은 수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겠노라 서명한 셈이다. 훌륭한 수강 태도였다.

         

         이반은 열정 있는 학생들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사가 되기로 했다. 이미 학생들의 인적사항은 모두 암기하고 있으므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한 동물이라, 사소한 ‘진실’도 협박이라고 ‘오인’하곤 하니까.

         

         장 자크 루소부터 페스탈로치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빛나는 교육철학은 이 미개한 전근대 사회를 밝게 비출 것이다.

         

         

         “으아아아—!! 내 팔이,  팔이이잇—!!”

         “쉿, 비명은 생존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인체 구조와 마력] 수업을 떠올리며 대처하는 거다. 팔의 신경이 끊어졌을 경우 응급처치 방법을 기억하고 신경을 이어라.”

         “그아아아악—!!”

         “네 신경은 끊어지지 않았다. 마비된 것에 불과하며, 네가 느끼는 고통은 환상통에 지나지 않는다. 집중해서, 천천히.”

         

         

         이반의 이런 교수법은 이미 수차례 그 유용성을 검증 받았다. 주로 전장에서 신병들을 교육할 때 그랬다는 의미다.

         

         개인의 재능과 무관하게 수행 능력의 평준화를 도모하는 것, 이 ‘의무교육’ 정신은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군사훈련’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 그는 엔리케보다 뛰어나다. 아니, 이세계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가 이토록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다.

         

         

         “그르르륵—.”

         “망가졌군. 파트리시아. 부탁한다.”

         “제가 진짜 눈 뜨고 못 보겠어요…. 이런 꼴을 보려고 신학대 학과장을 맡은 건 아닌데…. 형제님 부탁 아니었으면 이런 일을 할 이유도 없고요! 학과장이 보건교사로 보여요?!”

         “성녀로 보인다.”

         “…!!”

         

         

         이반은 짧게 대꾸한 뒤 주위를 살폈다. 50인 남짓의 학생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자세로 허물어져 있었다.

       

         괜찮다. 생존술은 이제 겨우 첫 삽을 뜬 셈이니까. 이 학생들은 반드시 훌륭히 교육받을 예정이었다. 그의 수업에 F란 없다.

         

         다만 불쾌한 점이 있다면, 단 하나뿐.

         

         이반의 수업 방식이 다소, 아주 소폭 거칠어진 까닭이 있다면. 유진의 상태창조차 ‘아카데미 마족 첩자’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내 예상이 틀렸나?’

         

         

         이반은 잠시 그런 고민을 한 뒤에 깨끗하게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

         

         파벨이 주도해 일어났던 지난 ‘아카데미 축제 습격’ 이래로, 프리첸카야의 대내첩보망은 역사상 가장 조밀하게 펼쳐져 있다. 반군 수괴가 아군이니 기존에 알려진 모든 취약점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세계인의 상식’대로라면 이 도시엔 더 이상 위협요인이 있을 수가 없다. 마왕이나 칠용장이 직접 강림하지 않는 이상에야.

         

         용사 파티의 도적이 뒷거리를 잡고 있고, 방첩사령부가 대내첩보망을 꽉 쥐고 있으며, 왕세자파는 몰락했고, 국정의 모든 행정부처는 왕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드워프들과의 연합전선 이래로 북방 군부 또한 왕녀에게 호의적이다. 직접 떠먹여준 보상이 만만치 않았으므로.

         

         이 상황에서 대체 누가, 대체 어떻게 프리첸카야에 첩자를 파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이세계 주민들의 상식’이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현대인의 상식’이 아니다. 아카데미엔 반드시 첩자가 있어야만 하니까.

         

         모든 가상적국이 가장 군침을 흘리며 노릴 학생들, 용사 파티의 자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기 다른 전공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업이 세 개나 있다. 심지어 전공과 무관한 선택 교양 과목이므로 잠입하기도 수월하다. 이런 조건이라면 무조건 첩자가 들어와야 정상이다.

         

         

         ‘종족 구분이 모두 인간이라면, 인간 중에 마족과 결탁한 녀석이 있다는 뜻이고.’

         

         

         그리고 크라실로프 출신일 수는 없으니, 제외한다면.

         

         이반은 학생들 중 외국 귀족들을 훑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가는 놈들이 스물은 족히 넘는 상황이다. 쉽지 않겠다.

         

         

         “아저씨!!”

         

         

         수업을 마치고 떠나는 길에, 외국 귀족 하나가 그에게 달려왔다. 곧, 다른 외국 귀족들이 그를 둘러쌌다.

         

         이자벨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반을 올려보았다. 지난 시대에 용사가 파티를 결성해 마왕을 타도하려던 때의 눈빛으로.

         

         결연한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 용사 파티 맴버들이 이반을 포위했다. 이반은 좌중을 천천히 훑었다.

         

         

         “교수님.”

         “예…?”

         “학교에선 호칭을 똑바로 사용하도록.”

         

         

         자칫 잘못하다간 다른 학생들에게 ‘특정 학생들을 편애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는 문제다. 이것은 보통교육의 교육철학에 위배된다.

         

         이반의 말에 이자벨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우리 사이라.”

         

         

         세상 모든 교수들이 그렇듯이 이반 또한 자신이 A+를 준 학생을 기억한다. 심지어 그 학생이 A+를 받고도 강의평가에 최악의 수업이라고 작성했다면 더더욱.

         

         이반은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런 일에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그저 합리적일 뿐이다. 그는 합리성을 담아서 불퉁하게 대꾸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오늘 저녁에 뭐해요?”

         “수업 준비.”

         “그거 말곤 없죠? 어차피 준비할 거 없잖아. 우리한테 했던 거 똑같이 하는 거잖아요!”

         

         

         이자벨은 하핫 하고 웃으며 고개를 당당히 들었다.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죠! 알겠어요?”

         “그럴 순 없다.”

         

         

         이반은 청빈한 사람이었으므로 성적을 목적으로 접근한 학생에게 금품을 갈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통교육의 원칙에서 위배….

         

         

         “저녁 메뉴가 김치볶음밥인데도?”

         “….”

         

         

         방첩사령부는 호기심이 많은 집단이었으므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해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반은 이자벨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서 짙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냄새가.

         

         

         “맛있게 드세요!”

         “아니, 이거 왜 맛있어 보이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에요? 여기 들어간 이 양배추, 그때 그거 맞아요?”

         “와, 대박. 이건 그냥 아예 다른 요린데?”

         

         

         익숙한 냄새가 난다.

         

         

        -달그락.

         

         

         이반은 조심스럽게 스푼을 들었다. 낯설다. 식기를 만지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대부분 찬합에 대충 끓인 죽을 그릇 째로 훌훌 털어 넣거나, 영양바를 으적거리는 것으로 식사를 갈음했던 탓이다.

         

         기본적으로 식사란 필요 영양분의 보급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 성능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하는 기초적인 병기 관리의 일환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스륵.

         

         

         보글보글 끓는 스튜, 굵게 손질된 고기 덩이와 감자 따위가 스푼에 부딪치며 부드럽게 으스러졌다. 오랫동안 잘 끓인, 정성을 다한 요리다.

         

         이반은 자신의 그릇에 담겨 있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스튜의 냄새를 맡으며 저도 모르게 코를 움찔거렸다.

         

         아무리 그라고 하더라도 음식의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중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맛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맛의 호오란, 결국 학습된 환경과 보편적인 인간의 미각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향수 섞인 자극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세상엔 그의 향수를 자극할 미감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후룩.

         

         

         스튜의 뜨겁고 질감 있는 목넘김이. 혀 끝에서 포슬포슬하게 으스러지는, 잘 삶아진 양지의 식감이. 충분히 잘 볶아서 단맛이 우러나오는 채소들이.

         

         그 사이에 매콤하게 얹어진 양념과, 산미를 잡기 위해 적절히 섞어놓은 라임, 사워크림의 마지막 미감까지.

         

         다소 변형되어 있지만 이건, 어느정도.

         

         

         “어때요?”

         

         

         이자벨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포개어 가슴에 얹고는 당당하게. 그러나 동시에 불안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잠시간의 침묵이 있었다. 이반은 말없이 혀를 움직여 입 안에 남은 음식을 깨끗하게 삼켰다.

         

         김선우는 고개를 숙였다.

         

         

         “맛있구나.”

         

         

         창 밖으로 눈이 내렸다. 크라실로프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니까. 다른 나라의 사계절과 달리, 크라실로프엔 언제나 겨울만 있었으니까.

         

         이반은 다시 스푼을 움직여 스튜를 크게 떠 입에 담았다. 기계적으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마침내 달그락, 스푼의 끝이 그릇의 바닥을 슬쩍 긁었다.

         

         

         “더 드릴까요? 많이 만들었는데.”

         “가능하다면.”

         “언제든지요. 얼마든지.”

         

         

         이자벨은 따듯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총총거리며 부엌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엔 기분 좋은 활력이 감돌았다.

         

         느리고 부드러운 대화가 테이블 위에서 도란도란 퍼져 나갔다.

         

         용사파티와 빙의자들. 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 ‘주인공’들.

         

         그와는 다른, 이번 세대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주역들.

         

         이 꼬마들은 제각각 시답잖은 이야기로 서로 농담을 하고, 장난스럽게 투덜거리고, 친근하게 히죽거리며 식사를 이어 나갔다.

         

         이반은 그 사이에서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건 예상 밖이군.’

         

         

         김선우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반은 짧게 동의했다. 예상 밖이다.

         

         이 미개한 세상에서 그가 향수를 느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때때로, 상식적이지 않은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찮구나.”

         

         

         이반은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창밖의 첫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이 내리는 흐린 하늘이, 북방전선이 아닌 다른 모습을 연상시킬 줄은 몰랐으니까.

         

         

         “삼촌 지금…?”

         “형님이 지금 괜찮…다고…?”

         “저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이것이 용사가 가진 재능의 편린이란 말인가…?”

         

         

         시끌벅적하게 활기를 되찾은 식탁에서, 이반은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새 스튜 그릇을 내려보았다.

         

         이자벨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그릇을 밀어주고는 밝게 미소 지었다.

         

         

         “많이 먹어요!”

         

         

         이반은 마주 웃었다.

         

         

       

       Side ep. 겨울은 김장의 계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에 한 에피씩 끝낸다는 마음으로 짧게 친 사이드 에피!!
    좋았어!
    집요정은 이제 자유로운 주말을 쟁취해냈다!
    도비 이 멍청한 집요정, 양말이 없어도 자유를 얻을 수 있건만!
    *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