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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으, 머리야.”

       

       

       정신이 들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치 머리를 날카로운 물건으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고통.

       

       그런 두통과 함께 텁텁하다고 느낄 정도로 갈라진 입의 감각이 느껴졌다.

       

       ···물, 물이 필요해.

       

       

       “으, 물···.”

       

       

       가뭄이라도 온 듯 메마른 목을 축이고자 물을 찾아 일어서려고 했다.

       

       무언가에 가로막혀 일어나지 못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응?”

       

       

       턱, 턱.

       

       방금 잠에서 깨어난 탓에 아직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솔직히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물만 마시고 다시 드러누울 생각이었기에 눈을 감은 채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치 안전벨트를 맨 듯 움직이지 않는 몸에 의아함과 짜증이 생겼다.

       

       이런 건 숙소에 없었는데.

       

       도대체 뭐야.

       

       그런 생각이 들어, 짜증과 함께 그 물건을 치우고자 눈을 떴고···.

       

       두 눈이 활짝 뜨인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몸으로 알게 되었다.

       

       

       “무, 무무, 무, 무슨···!”

       

       

       이게 무슨 상황이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나는 조금 전까지 일어나려고 했던 것도 잊은 채로 한동안 입만 벙긋거렸다.

       

       내가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가 설마···.

       

       눈을 내리자 당연하다는 듯 시우의 팔이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히, 히이익···!”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벗어나지? 어떻게 시우 몰래 벗어나지?

       

       어젯밤의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두 눈을 감고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한 채로 어제의 일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부, 분명 셋이서 술을 먹고···.”

       

       

       그리고 기억이 없네.

       

       분명 저번에 넷이서 함께 먹었을 때 대충 주량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제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도수가 달랐나?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필름이 끊긴 날 일어나보니 이성의 침대에서 깨어났다니.

       

       정신을 차리자마자 머리를 두들기듯 때려 넣는 정보들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했나?

       

       설마 해버린 거야?

       

       그,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응? 그렇지?

       

       다급하게 확인해보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해봤지만, 여전히 시우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으, 으윽···!”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마력을 사용해서 억지로 떼어놓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러면 시우가 깨어나잖아.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시우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

       

       시우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려웠다.

       

       그렇기에 나는 억지로 벗어나지도 못한 채로, 한참 동안 시우의 품 안에서 끌어안겨지고 있어야만 했다.

       

       ···아, 따뜻하네.

       

       

       “···.”

       

       

       한동안 팔찌로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일까.

       

       시우가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 버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서늘한 바깥 공기를 막아주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누워있기 때문일까.

       

       온몸을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는 안도감에, 나는 벗어나려던 몸부림을 멈추었다.

       

       ···음, 그래.

       

       굳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목이 좀 마르기는 한데, 참지 못할 것 까지는 없고.

       

       안 그래도 최근 환절기라 아침에는 좀 춥단 말이지.

       

       이 상황에 밖으로 나갔다가 잠이 확 깨버리면 또 아쉽기도 하고.

       

       조금 피곤한 것 같으니까, 응.

       

       내가 이 세계에 넘어오기 전에 보았던 서적에 적힌 바에 따르면, 그런 걸 하고 난 다음 날은 허리가 아프댔으니까.

       

       ···딱히 아픈 것 같지도 않고, 시우잖아? 괜찮겠지.

       

       살짝 불편한 것 같아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아직 안 일어났지?”

       

       

       시우를 이리저리 바라보자 깨어난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자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 말이야.

       

       자다가 몸을 조금 뒤척이는 것 정도는 있을 법하지?

       

       응, 틀림없어.

       

       안는 베개라고 하던가.

       

       그런 커다란 베개를 껴안는다는 느낌으로, 자세를 고쳐잡고 한번 끌어안아 보았다.

       

       베개처럼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잘 단련된 근육 탓에 딱딱하다고 해야 옳겠지.

       

       그렇기에 분명 불편해야만 했다.

       

       불편해야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편안한 걸까.

       

       

       “···.”

       

       

       ···모르겠다.

       

       아직,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온기를 더욱 잘 느끼기 위해, 몸을 밀착해 한 번 더 끌어안았다.

       

       역시 따뜻하구나.

       

       자고 일어나면 시우가 당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뤄두었다.

       

       당황하면···. 그래.

       

       시우가 한동안 나를 내버려 뒀잖아.

       

       그 벌이라고 생각해야지.

       

       두 눈을 감자, 심장이 뛰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심장 소리가 점차 줄어들고, 아르테의 숨소리도 일정하게 골라졌을 무렵.

       

       한동안 움직임이 없던 시우가 눈을 떴다.

       

       

       “···후우, 들키는 줄 알았네.”

       

       

       

       ***

       

       

       

       “···그게 진짜야?”

       

       “그래, 진짜다. 됐냐?”

       

       

       오랜만에 나랑 도로시를 부른 이유가 뭔가 했더니.

       

       나와 도로시는 시우의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역시! 도로시, 너는 천재야!”

       

       “후, 제가 좀 똑똑하긴 하죠. 연애의 천재라고 불러주시겠어요?”

       

       “물론!”

       

       “너 연애 해본 적 없잖아···.”

       

       “조용히 하세요!”

       

       

       하여튼 저 자식은 눈치가 없다니까.

       

       직감이 눈치는 길러주지 않는 걸까?

       

       

       “거기서 콱 덮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거 범죄거든···?”

       

       “무슨 소리야? 합의하면 범죄 아니거든?”

       

       

       맨날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속으로 앓는 게 아르테다.

       

       라고 말해준 게 본인이면서,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스스로 부정하고 있을 뿐이지 이미 아르테는 시우에게 반해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남자답게 확 덮쳐도 아무 문제 없을 텐데.

       

       처음에야 발버둥 치겠지만, 사랑을 조금만 속삭여줘도 확 넘어갈 텐데.

       

       아멜리아는 시우가 아르테를 덮치고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휘저었다.

       

       이 동정 놈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멜리아가 보기에는 그게 가장 빠른 길이었지만, 이 녀석은 죽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게 뻔했다.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뭐.

       

       그거야 우리가 힘을 조금 써주면 되는 일이니까.

       

       

       “너도 알다시피, 아르테는 너 때문에 많이 외로워하고 있었거든?”

       

       “···윽.”

       

       “그래서 그렇게 진득하게 술을 마시기도 했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별 거 아냐. 오늘 하루는 아르테 곁에 꼭 붙어있어달라는 이야기지.”

       

       

       이 답답할 정도로 아르테를 아끼는 녀석이 아르테를 덮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아르테가 시우를 덮치게 하면 되는 거지.

       

       물론 아르테는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라서 조금 힘들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녀의 마음을 자각하게만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이야기지.

       

       

       “꼭 붙어있어 줘.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그거면 돼?”

       

       “그래. 아침에 너를 꽉 껴안았다면서?”

       

       “···알았어.”

       

       

       아르테가 시우를 덮칠 보장이 없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야, 그렇게 질투심이 많고 독점욕이 강한 아르테가 시우를 덮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지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건 그저 자기가 시우를 좋아한다는 걸 몰라서 그런 거다.

       

       최근 시우가 도로시랑 붙어 다녔을 때 보여주었던 표정.

       

       그 표정에 도로시가 겁에 잔뜩 질려서 해명한 적도 있었지.

       

       ···믿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게다가 저번에 친목을 다지려는 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를 무섭게 노려보던 것도 그렇고.

       

       아멜리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르테가 시우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눈치챈다면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걸 직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질투심에 휩싸인 아르테가 나를 죽이려 들 게 뻔하니 포기해야겠지.

       

       조금 아쉽네.

       

       

       “···그나저나, 아르테 오늘은 쉬는구나?”

       

       “내가 재워뒀어. 많이 피곤한 것 같아서.”

       

       “그렇겠죠. 어제 그렇게 술을 먹었는데.”

       

       “하긴.”

       

       

       이런 점에서는 또 배려심 넘치는 녀석인데 말이지.

       

       아르테가 빠지는 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슬슬 시우도 수색 대상의 위치를 대충 알아차린 것 같다는 모양이니까.

       

       오늘은 적당히 주변 탐색만 해도 괜찮겠지.

       

       본대도 주변에서 대기할 예정이니까.

       

       

       “꼭 아르테랑 같이 지내줘. 알겠지?”

       

       “알았다니까.”

       

       

       

       ***

       

       

       

       “으엑, 눈이 핑핑 도네···.”

       

       

       이렇게 어지러운 게 얼마 만이더라.

       

       독자님이 이곳에 눈을 뜬 첫날.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저번에 술 마실 때는 조금 자제하는 것 같더니, 오늘은 아예 정신을 놓고 들이켰기 때문일까.

       

       쿵쾅거리는 심장 탓에 조금 힘들었다.

       

       

       “···으,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네. 앞으로 조금이구나.”

       

       

       주인공에게 이렇게 두근거리는 걸 보아하니 앞으로 진짜 조금.

       

       정말 조금만 밀어준다면 확실하겠지.

       

       소녀는 방긋 웃으며 생각했다.

       

       

       “이제 슬슬 보낼 때도 된 것 같아!”

       

       

       주인공이 독자님에게 선물로 준 팔찌.

       

       마력이 담겨있는 걸로 보아하니 마수의 물건인 것 같던데.

       

       실을 뿜는 마수라면 거미 말고는 딱히 없잖아?

       

       그래서 생각했다.

       

       죽기 전에 새끼를 많이 쳐둔 거미라면 어떨까, 하고.

       

       

       “성장한 거미들의 복수!···같은 거지.”

       

       

       마침 팔찌라는 이정표도 있다.

       

       본능적으로 자기 부모의 마력이라는 걸 깨달은 거미들의, 인간들을 향한 복수.

       

       그 정도면 충분히 개연성 있고 좋은 습격이지 않을까?

       

       마침 주인공도 독자님을 재워두고 나갔으니까.

       

       주변에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독자님은 황급히 전장으로 향할 테지.

       

       조금만 시점을 잘 조절한다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네.

       

       소녀는 해맑게 웃었다.

       

       이번엔 정말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을거라고 말했던가

    그건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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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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