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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그리고 이 고통은 그의 귀가, 뼈가, 그의 신장과 방광이 얼어붙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었다.

       냉기는 수(水)의 성질을 품은 곳에 자신을 밀어 넣어 겨울철의 제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냉기가 그의 신장과 방광을 얼어붙게 하려 하면 몸 안에서 피어나는 삼매의 불꽃이 순식간에 냉기를 중화시켰고, 방광과 신장에 있는 액체를 얼어붙게 만들어 뾰족한 형상으로 만들어 갈기갈기 찢어놓을라치면 액체도 고체도 아닌 형태가 되어 부유하게 했다. 귀 역시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하며 말랑해졌고, 환골탈태도 아닌 주제에 소리를 듣기에 적합한 형태로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다만 오직 뼈.

       뼈의 골수만큼은 냉기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니.

       냉기는 뼈를 얼리고 또 얼리며 그 강도를 금속보다도 더 단단하게 바꿨다.

         

       ‘물은 제 성질을 바꾼다. 차갑고 단단하며, 뜨겁고 형체가 없다. 이는 마치 사람의 신체와 같으니. 딱딱하니 이는 뼈와 같고, 형체가 없으니 마치 귀로 듣는 소리와 같다. 다만 차갑고 뜨거운 것은 오직 나의 마음에 달려있으니. 이것이 바로 자연을 닮는 방법이니라.’

         

       진성은 고통을 견디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귀에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오게 되었을 때.

         

       그는 번쩍 눈을 뜨며 어둠을 꿰뚫어 보았다.

         

       얼음이 얼어붙으며 내는 소리.

       흐르던 것이 제 움직임을 멈추고, 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열을 빼앗기며, 살아있는 것이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릴 때 나는 소리.

       그것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얼리는 소리이며, 바이칼 호수가 품은 끔찍한 냉기의 집합체가 있음을 알리는 기척이었다.

         

       ‘바이칼 호수의 빙정(氷晶).’

         

       기나긴 세월 동안 냉기를 품으며 형상을 이룬 보물이며, 회귀 전 러시아와 중국이 싸우도록 만들었던 물건이었다.

         

       그리고, 진성이 빅토르에게 굳이 이곳의 벙커를 요구한 이유이기도 했다.

         

       ‘빙정은 순수한 수(水)의 성질과 어마어마한 냉기를 품고 있으니. 참으로 훌륭한 주물이 될 수 있을 것인즉.’

         

       회귀 전 이 빙정의 존재를 알게 된 중국은 그 어떠한 선전포고도 없이 바이칼 호수를 점령해버렸다. 그리곤 중국 공산당이 자랑하는 특수 부대인 애국광전사단을 움직여 바이칼 호수 반경 50km 내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다 죽여버린 후 빙정을 들고 국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중국이 한 짓을 보고 눈이 돌아간 빅토르는 그들의 머리 위에 핵을 떨어뜨리고, 군사를 움직였다.

         

       그리고 중국은 자신이 한 짓도 잊었는지 ‘러시아가 소중한 우리 군인을 공격했다.’, ’20억 중국 인민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마찬가지로 군사를 움직였다.

         

       그리고 전쟁의 불씨가 된 빙정은 러시아에 파견된 영국 스파이가 몰래 챙겨서 영국으로 보내버렸다.

         

       당연히 닭 쫓던 개 꼴이 되어버린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싸우는 와중에도 영국에 항의했고, 세계 3차 대전 사이에 힘을 잔뜩 기른 영국은 그들의 항의를 모조리 무시해버렸다. 도리어 ‘내가 가져갔으면 뭐. 너희가 할 수 있는 게 있긴 하냐?’라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하지만 영국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세계 3차 대전 당시의 러시아와 중국은 한 대 얻어맞고 절대 가만히 있을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상황이었다면 이득을 위해 입을 다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나라는 계속되는 승리로 에고가 잔뜩 부풀어 오른 상태였고, 자신들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것을 무엇보다도 혐오하였다. 그렇기에 러시아와 중국은 전쟁하는 와중에도 따로 특수 부대를 빼서 영국에 파견해 온갖 분탕질을 벌였다.

         

       연구소를 폭파하고.

       항공모함에 잠입해서 침몰을 시키고.

       핵 가방을 이용해서 군사 기지를 초토화를 하고.

       저주를 이용해 권력자들을 괴롭혔으며.

       해적으로 위장해 무역선을 나포시켰다.

         

       당연히 영국 역시 공격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나라는 아니어서 두 나라에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특수 부대를 파견하기는 하되 그 희생을 최소화하고 싶었던 것인지 용병을 잔뜩 고용했고, 진성 역시 영국에게 고용되어 활동하기도 했었다.

         

       그때 진성은 교훈 하나를 얻게 되었다.

         

       영국 놈들은 믿어서는 안 되는 족속들이라는 것을.

         

       비싼 돈을 아끼겠다고 사지로 밀어 넣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작전이 끝난 후 특수 부대로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서류를 조작하면서까지 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회귀 전의 진성에게 어마어마한 분노를 일으켰었다.

         

       ‘하니 내가 저 빙정을 취하는 것은 선한 것이며, 옳은 일이다.’

         

       회귀 전에 충분한 보복을 했으니 그것을 끌고 와 복수할 생각은 없었다.

         

       인과응보라.

       뿌리에서 과실이 열리고, 그 과실이 씨앗이 된다.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다시 과실을 키우니.

         

       이는 마땅히 원인이 있다면 결과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바꿔 말한다면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생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렀으니 그가 분노할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그러니 그가 보복하는 것은 뿌리가 없음에도 과실을 취하려는 행위와 같다.

       만약 그가 보복하게 된다면 그의 보복이 뿌리가 되어 영국이 정당한 복수라는 과실을 그에게 휘두를 것이니.

         

       이는 옳지 못한 일이었다.

         

       다만 나라라는 것은 쉬이 그 성질을 바꾸지 않으며.

       특별한 개입이 없으면 반드시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법.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눈에 귀한 것이 보이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면 탐하게 되며, 탐하게 되면 욕망에 몸을 맡겨 죄를 짓게 되는 법.

       그렇기에 처음부터 없다면 그 어떤 욕심도 생길 이유가 없다.

         

       그가 빙정을 취하여 러시아와 중국의 전쟁을 막고, 영국이 개입해 둘을 분노하게 하는 것도 막을 수 있으며, 영국이 용병에게 몹쓸 짓을 하여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용병들이 영국 곳곳으로 퍼져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테러를 저지르지도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선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빙정은 사람의 몸으로 쉬이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낱 호수의 냉기만을 받아들였음에도 끔찍한 고통을 맛볼 정도다.

       그나마도 진성이 주사기에 들어있는 특수 약물과 일본에서 행했던 의식의 효과, 그리고 몸에 걸었던 냉기에 적응하는 주술 덕분에 이 정도다. 별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즉시 냉기에 심장이 멈춰버리거나 몸이 꽁꽁 얼어붙게 될 것이고, 육체는 물고기 밥이 되고 영혼은 물귀신이 되어서 바이칼 호수를 떠돌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빙정은 오죽하겠는가.

         

       ‘오늘은 물의 성질을 몸에 받아들인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진성은 훗날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고는 오금을 살짝 굽히고, 점프하듯 위로 뛰었다.

       그러자 누군가 밀어주는 것처럼 진성은 빠르게 수면 위로 솟구쳐올랐고, 이윽고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공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진성의 몸은 얼음처럼 수면 위에 둥둥 떠올랐다.

       사해에서 사람이 누웠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는 배영을 이용해 뭍으로 이동하고는, 바이칼 호수 한 쪽에 우거진 숲속에 있는 낡은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걸어갔다. 그리곤 낡디낡은 철문에 어울리지 않는 스마트 도어락을 움직여 번호를 입력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코를 찌르는 곰팡이의 냄새와 오물이 널려있는 통로, 그리고 이끼가 가득 껴있는 벽면이 그를 맞이해주었다. 그는 벽면을 유심히 쳐다보며 걷다가 왠지 모르게 사람의 손때가 타 있는 벽을 발견하였다.

       그는 벽면에 손을 얹고는 더듬더듬 만지며 벽에 숨겨진 장치를 움직였다.

         

       그러자 쿠구궁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벽이 열리며 숨겨진 공간을 드러내었다.

         

       숨겨진 공간은 더럽고, 낡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병에 걸릴 것 같았던 통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벙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

       높디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17세기 혹은 18세기에 유행했을 것 같은 화려하고 강렬한 실내장식.

         

       벽 한쪽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와인들.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월 때문에 조금 낡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앤틱(Antique) 느낌을 물씬 풍겨 더 화려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는 소련 시절 당 간부들이 만들어놓은 ‘호화 벙커’ 그대로의 모습이며, 소련이 터져나간 이후 다른 이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 회수하지 못했던 사치품들이었다.

         

       진성은 장치를 조작해 벽을 닫아버리곤 손을 튕겼다.

       그러자 소리에 반응해 샹들리에에 불이 켜지고, 방 내부에 설치된 난방 장치가 가동되며 습하고 차가운 벙커의 공기를 훈훈하게 바꿔놓았다.

         

       진성은 대충 옷가지를 난방 장치 근처에다 벗어서 집어던지곤 알몸으로 소파로 향했다. 그리곤 쌓여있는 먼지를 삼매진화로 태워서 없애버리곤 그곳에 몸을 뉘었다.

         

       ‘참으로 좋은 거점이로다.’

         

       사람은 동굴에 있을 때 안정을 느낀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진성이 몸을 뉘고 있는 곳은 아주 호화로운 동굴일 것이다.

       만족을 느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아주 호화롭고 훌륭한 동굴.

         

       하지만 사람이 동굴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는 법.

         

       나무집에서도 살고, 돌로 만든 집에서도 살고.

       별장에 놀러 가기도 하고.

       그것이 진정 호화로운 삶이 아니겠는가?

         

       그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 일본에 0엔, 100엔으로 살 수 있는 별장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을 구매하도록 해라. 별장에 악귀나 악령이 창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자연재해가 잦은 곳은 피해야 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닌 너 역시도 머물 수 있는 곳이니만큼 안전에는 주의해야 할 것이니라. 』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리세에게 답장이 왔다.

         

       『 걱정하지 마세요. 신주님과 제가 지낼 집이니만큼 제가 잘 살펴보고 사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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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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