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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교단원들을 불태워 버린 이드밀라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달려와 아르를 꼬옥 껴안았다. 

       

       “아이구, 우리 아르. 메롱하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

       

       이드밀라는 아르의 뺨에 자신의 뺨을 마구 비볐다. 

       

       “사실 아까 놈들 앞에서 연기할 때도 아르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몇 번 실수를 할 뻔했단다. 감정 가다듬느라 힘들었어.”

       

       방금까지 이 레어 안의 공기 자체를 무겁게 만들고 교단원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이드밀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아르를 껴안았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드밀라가 일어나자 말했다. 

       

       “방금 연기는 정말 명품이었습니다.”

       

       역시 몇천 년 고룡 짬밥은 어디 안 가는구나. 

       

       나는 엄지를 치켜 올려 보였다. 

       

       “후후. 이 정도쯤이야. 레어에서 놀러 오는 용 하나 없이 몇십 년 동안 혼자 있어 봐라. 좀이 쑤셔서 혼잣말에 상황극에, 연기가 안 늘 수가 없다니까.”

       

       어, 그건 좀 슬픈데요.

       

       ‘그러고 보면 용은 참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지.’

       

       성체가 되고 각자의 레어를 마련해 거주하기 시작하면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다른 용과 딱히 교류를 할 일이 없으니까. 

       

       그중에서 뭐 사교성이 특출나 직접 놀러 다니면서 교류를 이어 가는 용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해츨링 때 어울려 놀던 용과도 마치 초등학교 동창처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수명이 기니 맘만 먹으면 연락을 하거나 만날 기회도 언제든 있긴 하겠지만….’

       

       오히려 주어진 시간이 많기에 자주 만나지 않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동면이라도 안 하면 진짜 심심하긴 하겠다.’

       

       물론 이번 동면은 드래곤들이 마신과의 전쟁에서 힘을 너무 많이 소모한 탓에 반강제적으로 들어간 거긴 하지만.

       

       ‘그런 심심함 때문에 어떤 드래곤들은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한 상태로 사회에 섞여 들어가 자연스럽게 사는 경우도 있다던데….’

       

       문헌에 전설로만 내려오는 이야기기도 하고, 솔직히 폴리모프라는 모든 변신 마법의 상위호환 기술은 몸을 완벽하게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구별해 낼 방법도 없다. 

       

       여튼, 그리운 친구의 후손을 만난 이드밀라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드밀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드밀라도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왜 그러느냐? 눈빛이 굉장히 부자연스럽다만.”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음, 그게. 사실 시선을 둘 데가 얼굴밖에 없어서요. 아까 말했어야 했는데 긴장하기도 했고 타이밍도 놓쳐서….”

       

       당연하게도 이드밀라는 드래곤일 때 옷을 입고 있지 않았고, 폴리모프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맨몸인 상태였다. 

       

       아까는 엄청난 레드 드래곤의 포스,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긴장이 풀리고 나니 괜히 의식이 되기 시작해 시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의복을 착용하지 않았군. 미안하구나. 폴리모프는 오랜만이라.”

       

       이드밀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화아악.

       

       “……!”

       

       그러자 놀랍게도 이드밀라에게 잘 어울리는 붉은 의복이 짠, 하고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입고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와아. 방금 뭐였죠? 이거 환각 마법도 아니고 진짜 옷인 거 같은데.”

       “쀼우! 싱기해! 아르는 아공간에서 옷 꺼내서 주셤주셤 이버야 하는데!”

       

       실비아와 아르도 그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드밀라는 씨익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 너머로는 이드밀라에게 어울릴 법한 의복들이 촤르륵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지금 이드밀라가 입고 있는 옷과 똑같은 옷도 있었다. 

       

       “어, 저거 지금 입고 있는 옷 아니에요?”

       

       이드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제 눈치챘겠지만, 나는 아공간에 맘에 드는 옷을 넣어 두고 입고 싶을 때마다 복제 및 소환 마법을 응용해 이렇게 간편하게 입고 있지.”

       

       아뇨, 다 설명하실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요.

       

       “복째? 소한? 아르도 해 보구 시퍼!”

       

       아르는 방금 이드밀라의 손짓과 함께 주변에 나타났던 마나의 작용들을 곰곰이 떠올리며 복기하는 듯하더니, 곧 앙증맞은 손가락을 공중에 튕겼다.

        

       틱.

       

       물론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은 정상적으로 작동한 듯, 아르가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옷이 그대로 아르의 손 앞에 소환되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이드밀라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걸 한 번 본 것만으로 따라할 수 있다니. 역시 카르사유가의 아이로구나!”

       

       이드밀라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카르사유도 어떤 마법이든 한 번 보면 절대 잊지 않고 바로 따라하곤 했었지. 그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구나.”

       “아르가 진짜 천재긴 해요.”

       

       머리도 똑똑하고, 마법도 잘 쓰고.

       게다가 순수하고 착하기까지 하니, 이런 아이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아르가 독보적이지, 암.’

       

       아르는 그새 옷을 다시 소환 해제한 뒤, 이번에는 이드밀라처럼 변신 이후에 다시 소환해 보기로 했다. 

       

       아르가 눈을 꼭 감자, 빛무리가 아르를 감쌌고 곧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오오…!”

       

       그리고, 동시에 옷이 소환되어 마치 처음부터 착용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입혀졌다. 

       

       “이야, 역시 우리 아르. 바로 성공했네?”

       “히히, 아르 잘했어?”

       “고럼. 이제 밖에서 폴리모프할 일 있을 때도 전혀 문제없겠어.”

       

       그렇게 칭찬하며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옆에서 이드밀라가 경악한 얼굴로 아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맙소사. 벌써 폴리모프를 쓸 수 있다고…?”

       “아아, 그렇긴 한데…. 사실 익힌 지는 얼마 안 됐어요.”

       “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배우는 게 정말 빠르구나.”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듣자 하니 폴리모프도 성체가 되거나 성체에 근접할 때까지는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하아, 폴리모프한 모습도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기 짝이 없구나.”

       

       이드밀라는 아르의 폴리모프 폼도 마음에 들어했다. 

       

       “크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

       

       또 아르 쓰다듬기 삼매경에 잠시 빠졌던 이드밀라는, 곧 아공간에서 아까 놈들이 지부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꺼냈다. 

       

       “캬. 엄청난 수확이네요.”

       

       정보 길드에 의뢰를 해 놓긴 했지만, 솔직히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드넓은 남부에서 지부를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낼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아무리 꼼꼼하게 조사를 한다고 해도 어디 구석에서 사건 사고 잘 안 일으키고 숨어 지내는 지부가 있다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놈들이 직접 위치를 분 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거 봐. 여기도 있네.’

       

       아니나 다를까, 쉽사리 예측하지 못할 만한 곳에도 표시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여기도…. 여기도…. 어? 근데 이거….”

       

       위치를 체크하던 나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실비아도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눈썹을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표시된 위치가 좀 많은데요? 지부가 이렇게 많을 리는 없을 텐데.”

       “게다가 여기. 비교적 도심지 쪽에도 작게 표시가 되어 있어요.”

       “엇. 이거…. 정보 길드 위치도 표시돼 있는데요…? 아!”

       

       아주 잠깐 정보 길드를 의심했던 나는, 이내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 그 녀석들, 지부 위치만 표시한 게 아니라 자기들 산하 세력 위치까지 표시해 놓은 것 같아요. 저희가 해결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주변은 정보 길드뿐 아니라 토리온 패거리가 꽤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잖아요.”

       “아아…! 역시, 갑자기 용병 출신 패거리가 정보 길드를 압박한다 싶었더니 뒤에서 사주를 넣었던 거군요.”

       “놈들은 토리온 패거리가 곧 정보 길드를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렇게만 되면 자신들에게 꽤 좋은 패가 생기는 셈이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 않았던 거죠.”

       

       즉, 놈들은 지부의 위치를 표시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여기도 쑥대밭 되긴 아까운데, 어차피 학회라고 구라 쳐 놨으니 우리 산하 세력까지 표시해서 살려 볼까? 라는 생각이었던 거지.’

       

       하지만 놈들의 잔머리 덕에, 우리는 지부뿐 아니라 이제 산하 세력까지 전부 소탕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내 앞에서 꾀를 부린 벌을 받은 게지.”

       

       이드밀라는 쌤통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이곳을 제외하고 전부 다 쓸어 버리면 되는 것이지? 어서 가자꾸나. 간만에 몸 좀 풀어 봐야겠군.”

       “아아, 이드밀라 님. 작은 세력은 저희가 다 쓸어 버리고 올 테니 조금 쉬고 계셔도 됩니다. 동면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어떤 게 지부고 어떤 게 세력인지도 다 조사해서 올 테니 쉬고 계세요.”

       

       나름 이드밀라를 배려해서 한 말이었지만, 이드밀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냐! 당연히 같이 다녀야지!”

       “하지만….”

       “과거 대륙 남부를 수호하던 드래곤으로서, 마왕의 산하 세력을 눈 뜨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느냐!”

       

       이드밀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르를 얼른 품에 안았다. 

       

       ‘아…. 그냥 아르랑 같이 있고 싶으신 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동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하하핫!”

       

       기분이 좋아진 이드밀라는 아르에게 물었다. 

       

       “아르야, 인간 모습으로 돌아다닐 때 이 녀석들의 딸인 걸로 하고 다닌다고 했지?”

       “우응! 레온이 아빠, 실비아 언니가 엄마예여!”

       

       이드밀라는 잠시 실비아를 째려보았다. 

       아무래도 아르의 진짜 어머니인 카르사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거라 조금 눈에 걸리는 듯했다. 

       

       “…뭐, 카르사유를 보좌하던 조력자의 후손이니.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할 명분은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곤란해질 뻔했던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드밀라는 씩 웃더니, 다시 상냥해진 목소리로 아르에게 말했다.

        

       “자아, 그럼 아르야. 앞으로 나는 이모라고 부르렴. 알겠지?”

       

       이모…?

       아, 하긴. 카르사유 님과 친자매 같은 관계였던 분이긴 하지.

       

       아르는 이모라는 말을 몇 번 중얼거리더니, 활짝 웃으며 이드밀라를 껴안았다. 

       

       “우응! 이모라고 부를게여!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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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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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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