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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응냐앙….”

        

       “아바타가 고양이라고 진짜 고양이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는데.”

        

        

        

        무기질적인 백색 콘크리트 바닥. 건너편에 세워진 여러 개의 타깃들. 구태여 이런저런 설명할 필요 없이, 그저 누가 들어오든 간에 사격장이란 걸 알 수 있는 공간.

        

        그 바닥 위에서, 추태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드러눕는다. 지금은 여기가 그 어디보다도 편했다. 피곤하고 눈이 감기는데 어디라고 못 잘까. 몸 위에서 덜그럭거리는 총기랑 등짝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감각. 가방 안에 든 여러가지 물품들 때문에 등이 배겼지만…아, 몰라.

        

        그렇게 대자로 뻗어 한 3초간 기절해있었을까.

        

        

        

       “아우으.”

        

       “오늘 열심히 하셨네요. 저 없이 처음으로 싸운 기분은 어때요?”

        

       “일단 내려줘요….”

        

        

        

        그 옛날, 거대 뱀이 나오는 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

        

        고개를 아래로 슬그머니 내리면 기억 속에 묵혀두었던 과거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사람을 잡아먹는 자이언트 아나콘다가 잽싸게 움직이며 등장인물 중 한 명의 몸을 칭칭 휘감고, 단숨에 꿀떡 삼켜버리는, 뭐 그런.

        

        슬금슬금 짓쳐든 뱀꼬리가 몸을 휘감는다. 허리 한 바퀴, 상체 한 바퀴. 그리고 꼬리 끄트머리는 내 볼을 쿡쿡 찌르고 있다. 별 무리 없이 몸이 공중으로 슬쩍 들리더니 어느샌가 내 몸은 의자에 앉게 되었다. 바로 왼쪽에는 유진 쌤.

        

        

        

       “꼬리 갖고 싶다.”

        

       “아쉽게도 비매품이네요.”

        

        

        

        합방 하기 전 마지막 연습, 그리고 그 이후로 대략 일곱 시간 정도 이어진 게임. 아무리 유진 선생님과 이래저래 돌아다니며 신경줄이 굵어졌어도 오늘은 상당한 강행군이었다.

        

        메시지는 일단 보았으니, 어떤 점이 미흡한지 알기 위해서라도 오긴 왔지만, 집중력이 한계다. 그러고 보니 방금 무슨 질문을 받았더라. 맞다. 비록 온전히 혼자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다른 유저들과 제대로 된 전투를 벌였었지.

        

        여태까지 열심히 배우면서 몇 번이고 들었던 단어로 설명하자면…디브리핑.

        

        조금씩 멀쩡해지기 시작한 정신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제멋대로 분해된 단어들을 이리저리 조립하면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하나둘씩 만들어낸다.

        

        

        

       “어…생각보다 할 만했다?”

        

       “예상했던 대답이네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단 걸까?

        

        그러나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힐끔 시선을 맞추었다. 더 이야기해보라는 눈치였다. 별 생각 없이 감상평을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유진 씨가 리액션이 큰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걸…교전이 좀 덜 부담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몸이 이전보다 훨씬 생각대로 잘 움직였다고 해야 하나….”

        

       “적이 살살 녹았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구야.

        

        그래도 그 말은 사실이긴 했다 – 오히려 여기서 스스로의 실력을 낮춰서 말한다면 유진 씨에 대한 실례겠지. 적이 못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긴 좀 창피하지만 내가 잘했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연습과 실전으로 말미암아, 이전보다는 확연히 나아진 플레이를 선보였다.

        

        대강 그런 뉘앙스로 말을 덧붙이고 나서 이어지는 시선 교차. 유진 씨는 여전히 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입가에 약간이나마 걸린 호선이 기분이 좋다는 것을 살그머니 암시해줄 뿐.

        

        입이 열렸다.

        

        

        

       “겉포장이 그럴싸하단 건 내용물은 별 것 없다는 소리죠. 다르게 말하면 개인과 개인 간의 교전 이상…그러니까 분대 단위로 이뤄지는 소규모 접전부터는 위치 선점과 철저히 계산된 기동이 더 중요해져요. 여태까지 저랑 다니면서 시야가 넓어진 탓에 적의 움직임이 더 잘 보였겠죠. 아닌가요?”

        

       “아…맞아요.”

        

       “개인의 전투력이란 건 사실 굉장히 넓은 범주의 개념이죠. 개별적인 지휘 능력, 상황 판단 능력, 사격 시의 리스크 관리와 방대한 색적 능력…에임 트래킹과 철저한 사격 훈련은 그 이후에 효과를 발휘하니까요.”

        

        

        

        이 즈음 유진 씨는 어디선가 파라락 하고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공중으로 내던지자 허공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더니 공중에 투영된 글씨가 되었다.

        

        하나둘씩 읽어보니…개선점. 그리고 다른 말로 하면 지적. 그것이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새카맣게 – 빼곡하게 써있었다. 저 정도의 양이면 오늘 내 플레이가 완전 엉망진창이었다고 주장해도 공신력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것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이어지는 말.

        

        

        

       “오늘 플레이는 잘 봤어요. 도미네이션 모드란 건 처음 봤는데, 구성은 상당히 단순하네요. 덕분에 전략적 요소에 그다지 집중할 필요가 없는 건 다행인 것 같고…그 덕분에 모니의 전술적 역량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니요?”

        

       “모니모니. 다른 분들은 그렇게 부르던데요? 재밌네요.”

        

        

        

        끄악.

        

        이걸 기어코 들어버렸어!

        

        하지만 건너편의 어느 누군가는 당연하게도 신경쓰지 않으신다. 그저 방금 전까지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는 듯 계속해서 스크립트를 훑을 뿐. 어떻게 보면 참으로 프로페셔널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가만히 있자 드디어 시선이 내게로 닿는다.

        

        

        

       “…이것저것 많이 적긴 했지만, 전부 평균 이상이에요. 전술적 역량, 상황 인식, 표적 추적, 전술 기동까지. 사격이 좀 아쉽지만, 원래 이동 표적에 대한 조준 추적은 가장 어려운 테크닉 중 하나니까요.”

        

       “그럼…앞으로의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나요?”

        

       “사격 비중을 좀 늘리죠. 다른 요소들이야 얼마든지 배울 기회가 있지만, 가장 약한 지점을 보강하면 체감이 확실할 거예요. 이동 사격의 정확성을 대폭 늘려보도록 합시다.”

        

        

        

        정말 무섭다.

        

        하지만 몸은 이미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있었다 – 한편 유진 씨는 사격장 세팅을 이리저리 조정하면서 이런저런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궁금한 건 없냐는 물음부터 요즘 생활 또는 커리큘럼에 대한 체험자의 평가 등. 그런 것들이 끝난 후에는 내가 역으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MCN이나 편집자, 그리고 유어스페이스에 대한 것들. 아무도 안 믿겠지만 유진 씨는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고작해야 40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나조차도 종종 까먹는 판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질문에 대답하고 있자니 스트리머가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히나 이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더. 이 분야가 여러모로 레드오션인만큼, 스트리머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지 않은 이상 무지막지하게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심지어는 평균 시청자수가 네 자리가 넘어가는 스트리머들조차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 자리에 안주하는 걸 넘어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대강 마무리하고 나니, 갑작스럽게 생각 하나가 몽글몽글 떠오른다.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유진 선생님의 트레이닝에 참여한 건.”

        

        

        

        앞으로 뭘 해야만 하는지,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걸 넘어서 – 길을 어떻게 가야만 할지에 대한 계획까지 미리 세워야 하는 스트리머가 아니라, 뚜렷한 목표점을 쉽게 가질 수 있는 한 명의 다크 존 유저로서.

        

        너무 피곤하면 구태여 다른 잡생각에 빠질 겨를도 없다는 말처럼, 어쩌면 한 점에 오롯이 자신의 집중력을 쏟아붓는 게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걸지도 모른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한, 뭐 그런.

        

        

        물론, 그런 나를 가만히 놔둘 선생님이 아니었다.

        

        

        

       “───한 시간 정도만 하고 끝내죠. 물론 성적이 제대로 안 나오면 골치아플 거예요.”

        

       “으에….”

        

        

        

        취소, 취소.

        

        방금 말은 취소다.

        

        나는 아무래도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하는 곳에 머리를 들이밀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100, 그리고 20.

        

       -이번 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전장의 불길 속에서 제련된 100명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기 위한 스무 개의 티켓을 주시합니다. 오직 다섯 명 중 한 명만에게만 허락된 기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

        

       -지금 당장 다크 존에 접속하여, 이 놀라운 기회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랍….

        

        

        

       “KSM? 저거 뭐더라?”

        

       “AP 대회잖아. 너 다크 존 안 해?”

        

       “아.”

        

        

        

        역내에 설치된 수많은 전광판.

        

        스크린도어 바로 옆.

        

        심지어는 근래 지하철 유리판에 새로이 도입된 탄소나노튜브 디스플레이를 통한 스크린 광고까지.

        

        제대로 된 대회도 아닌, 도화선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이펙스 프레데터 예선 랭크의 동시접속 시청자 수가 50만이라는 이례적인 숫자를 휙 하고 넘겨버리자, 이카루스는 이에 대한 열기를 부추기기 위해 광고에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TV에서는 실제 게임 플레이를 영화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멋들어지게 편집하여 만든 광고 영상이 심심하면 틀어졌고, 인터넷 사이트의 광고 칸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는 서울이라면 종종 볼 수 있는 건물 벽면의 대형 스크린마저 이 열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수많은 방법을 통해 풀려나간 접속 기기들. 단순히 게임 뿐만이 아니라 공부와 과제 제출, 실시간 수업. 그리고 그것이 가상현실 내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중 빙산의 일각이란 사실이 널리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학교, 그리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무지막지한 할인과 단체구매 등이 이뤄졌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군대를 다녀왔거나 다녀올 예정이라는 사실은 다크 존이 파고들기에 아주 좋은 배경이 되었다.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지? KSM 끝나고 2주 후에 아시아 예선전이라 그랬나? 그러면 우리 중간고사잖아.”

        

       “대학은 내년에도 다닐 수 있지. 근데 제3회 에이펙스 프레데터 매치는 이번 년도 아니면 못 본다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시험 점수를 제물로 삼을 수밖에.”

        

        

        

        이런 대화 내용조차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

        

        하는 사람만 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를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대화 주제가 겹칠 수 있을 정도의 위상으로 올라선다 – 그리고 근래 다크 존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상당히 많이 다뤄지는 토픽은 다름아닌 AP였다.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은 취미가 아닌 문화가 된다.

        

        사람들이 음악이나 옷, 신발, 더 나아간다면 축구 등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그와 동등한 위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 그리고 AP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다들 아는 말이 있었다.

        

        

        

       “100명 중 20명? 이번에는 또 누가 올라갈까 모르겠네.”

        

       “20명? 이번 년도에는 19명이지, 무슨 소리야.”

        

       “19명? 그게 뭔…아.”

        

        

        

        그 누구도 침범 불가능한 한 자리.

        

        그 말대로, 이번 년도에는 경쟁이 조금 더 치열해질 예정이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이미 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기존에 20명을 기준으로 수립되었던 구단들의 플랜이 왕창 어그러진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고.

        

        그리고 안타깝다면 안타깝게도, 당사자가 소속된 곳조차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유진 코치는 SSM 소속이라고 표기해야 하나? 아니면?”

        

       “허락을 받아와야지. 지금 그 사람한테 쏠린 이목이 얼만데.”

        

        

        

        유진의 소속을 표기한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그녀가 KSM 출전 명단 중 맨 윗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면서 SSM의 부서들은 제각기의 이유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유진과의 연락은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업무였다. 다이스는 유진이 그런 부분에 일일이 연연하지 않으리란 걸 대강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허가를 안 받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지.

        

        물론 그 외의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KSM의 출전 명단이 공표됨에 따라 SSM 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이에 대비해야만 했다. 유진을 포함한다면 세 명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두 명이었다. 현 AP 프로 구단이 10개에 출전 인원이 20명이었으니, 평균이라면 평균이었다.

        

        

        

       “아무튼 KSM 출전 축하한다. 너는 올라갈 것 같았어. 작년에도 올라갔고, 솔직히 SSM 중에서 너만큼 AP 잘하는 애도 없으니까…근데 왜 별로 안 기뻐보이냐?”

        

       “…그러게. 기뻐해야 하는데….”

        

        

        

        왜 별로 안 기쁠까.

        

        금발 아래의 청안이 슬그머니 움직여 동료 프로게이머를 보았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 유진이라는 사람의 트레이닝법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사람이라는 이름의 강철 막대기를 칼이 될 때까지 갈아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었다면, 여태까지의 커리큘럼은 SSM의 평균적인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군, 또는 연습생을 기준으로 짜여진 것에 가까웠다 – 반대로 말하면, 이제부터는 전혀 그렇지 않을 예정이라는 소리였다.

        

        당장 앞으로 KSM은 확정이었고, 다이스의 플레이 결과에 따라 아시아 예선전 및 본선까지 동고동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상황.

        

        그렇게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금방 답변 나오겠지. 그건 우리끼리 너무 걱정 안 해도 알아서 대답해줄걸.”

        

       “그렇겠지. 나는 KTM 준비하러 가야겠다. 나중에 보자.”

        

        

        

        소파에서 스윽 일어나며 그가 덧붙였다.

        

        슬그머니 공중에 녹아들어 사라지는 그를 뒤로 하고, 다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더욱 깊게 파묻었다.

        

        

        

       “힘들다, 힘들어.”

        

        

        

        물론, 진짜 힘든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언차암?

    연참할 글이 있어야 연참을 해주지!

    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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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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