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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형사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온갖 지저분한 일을 다 보게 되는 법이다.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정치학적으로, 온갖 곳에서 대놓고 썩어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많이, 잘 보였다.

        

       차라리 좁고 더러운 골목이라면 나았다. 범죄가 일어나긴 해도, 모두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가 덮어줄 이유도 없고 판사가 봐줄 이유도 없었다. 그저 개인이 저지른 잘못에 따라 형량대로 결과가 떨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으리으리하고 번쩍거리는 곳일수록, 그런 것이 뒤틀릴 가능성이 크다.

        

       기껏 잡아넣어도 무혐의로 풀려나온다거나, 재판까지 가서 처벌받아도 비싼 변호사 덕분에 최소한의 형량만 받는다. 어디선가 위쪽에 찔러넣은 뇌물 때문에 일 처리 자체가 안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바로 지난번에 이 소녀를 보았을 때처럼.

        

       “그럼, 개인적으로 상담하고 싶은데요. 그래도 될까요?”

        

       구청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경찰 윗선에서 다시 자를 것이 뻔해서, 구청까지 엮어 어떻게든 여기에 올 수 있도록 일을 키웠다. 상사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날뛰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으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죄인이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만, 죄가 크면 클수록 돈이 많은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 일만 끝내면, 그냥 이런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저 자신을 따라다니는 막내에게만 미안할 뿐이었다.

        

       세계 최대의 재벌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십 대로 꼽히는 소녀라고 해도, 결국 그저 십 대 중반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을 보면 분명 여기에는 뭔가 있었다.

        

       그는 부디, 그 소녀가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기를 바랐다.

        

       *

        

       하, 씨, 어디까지 말해야 하지?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는 조금 초조하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이 좋은 기회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나경을 어떻게든 엿먹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나도 켕기는 구석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몇천만 원씩 뿌리고 다니는 게 절대로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을 거 아니야? 친구가 학교에 뇌물 먹이는 것을 도와주고, 연봉을 억 단위로 쓰면서 친구를 메이드로 쓰고……

        

       와, 생각해보니 하나하나가 전부 정신 나갔네.

        

       전부 네가 생각한 거잖아.

        

       그건 그래.

        

       사실 나의 금전 감각이 마비되어있었던 것이 맞는 말일 거다. 재산이 조 단위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수억 원 정도 쓰는 것이 뭐 어떠냐는 생각했을 정도니까.

        

       ……이상한가?

       

     

       그리고 여기에 더욱 금전 감각이 망가진 애가 하나 더 있었다.

        

       아니, 이쪽은 굳이 따지면 금전 감각이 망가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금전 감각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돈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을 테니까.

        

       …….

        

       아마 없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내가 공무원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내가 지내고 있는 방이었다.

        

       “……어…….”

        

       그리고 내 방을 본 공무원은 순간 말을 잃었다.

        

       웬만한 집보다 넓은 방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 라고 생각하다가, 공무원의 눈이 엄청나게 큰 침대와 다른 침대 하나에 머물렀다.

        

       “…….”

        

       어, 이거 좀 위험한가?

        

       ……설마 침대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

        

       다시 생각해보니, 이 세계는 여자끼리도 스캔들이 일어나는 세상이었다. 혹시라도 침대가 두 개 있다거나, 커다란 침대 하나만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튈지도 모른다.

        

       아니, 뭐, 최나경이 사라를 볼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덕분에 나는 평소처럼 습관적으로 침대에 앉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조금 어색하게 방향을 틀어 테이블 쪽으로 갔다. 공무원은 말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 뒤를 따라올 뿐이었다.

        

       테이블 앞에 서서, 나는 잠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먼저 앉으라고 권해야 하나?

        

       하지만 공무원이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나는 그냥 주춤거리면서 먼저 자리에 앉았다.

        

       “그럼,”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자신도 자리를 찾아 앉은 뒤, 공무원이 한쪽 손에 들고 있던 공책을 펼쳐두고 말했다.

        

       “저는 보건복지상담센터에서 나온 김슬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다.

        

       “아, 예, 안녕하세요…….”

        

       내가 다소 어색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빙긋 웃어준 다음에 말을 이었다.

        

       “아래에서 이야기해드렸듯, 저희는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여기까지 왔어요. 거기 관련해서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시종일관 부드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에 대해서 모르고 진짜로 폭력으로 신고받고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괴로운 기억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요.”

        

       ……괜찮겠어?

        

       나는 사라에게 물었다.

        

       뭐가?

       

     

       사라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혹시라도 너의 과거에 대해서 말해야 할지도 모르잖아.

        

       물론 여기서 전부 말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은 여기서 이 사람들과 엮이면 엮일수록 이야기가 꼬일 테니까. 나중에 최나경이 관련 법률로 심판받는다고 해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꺼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

        

       그녀는 딸깍, 하고 볼펜 심을 꺼내며 말했다.

        

       “혹시, 최근에 다칠 일이 있었나요?”

        

       “다칠 일이요?”

        

       혹시 최나경에게 맞았냐고 간접적으로 물어보는 건가?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맞은 적은 없었다. 밤에 사라와 이야기 할 때도 그렇게 말했었고. 정서적인 학대가 심각하긴 했지만, 적어도 육체적인 폭력은 없었다.

        

       ……아니지, 정신적인 폭력도 폭력인가?

        

       내가 그렇게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놓치지 않았는지, 그 김슬기라는 사람은 노트에 뭐라고 적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방을 곁눈질한 뒤 물었다.

        

       “혹시…… 어머님께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예?”

        

       그 정신이 아득해지는 질문에, 나는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 그래, 그랬다.

        

       여기는 동성애가 비교적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계.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도,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동성애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세계였다.

        

       그리고 당연히, 성범죄도 이성과 동성 상관없이 따지리라.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끼리 서로 끌어안고 다니면 그건 우정일 수 있지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어른이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몸을 비빈다면, 그건 소아성애다.

        

       “…….”

        

       그리고 최나경은 그렇게 했었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다.

        

       내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자, 공무원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너…….

        

       그리고, 나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최나경이 원하는 것은, 사라의 몸이었다. 비록 당장 덮치는 일은 없었지만 언제든지 그런 상황에 부닥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사라가 최나경의 품에 안기는 것을 원한다고 해도 내가 막았어야 했다. 자기 수양딸을 끌어안은 채로 허벅지를 만지고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상대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나는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최나경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성범죄가 외모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기, 나는 괜찮은데…….

        

       사라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괜찮지 않다.

        

       설령 기억을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사라를 최나경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짓을 하지 않았지만, 최나경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사람이었다. 진짜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뭔가 있는 거죠?”

        

       공무원이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여기에 그렇다고 대답해도 될까?

        

       나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증거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증거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기지 않도록 할 거니까.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결국 그 사람도 포기했는지, 이내 나에게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말하기 힘들면 여기서 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저희는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으니까요. 언제 제대로 용기가 나면, 그때 말할 수 있도록 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넘겼으니까.

        

       “혹시 모르니, 저희는 주기적으로 여기에 와서 사라 양이 안전하게 있는지, 무사한지 확인해보도록 할게요. 괜찮을까요?”

        

       “네?”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내가 깜짝 놀라 되물어보자, 그 사람은 내가 기뻐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이라도 했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진짜 망했네.

        

       *

        

       그렇게 상담 아닌 상담을 끝내고 내려왔더니, 이번에는 이쪽이 문제였다.

        

       경찰 두 사람이 엄청나게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하늘, 소희, 수아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양혜인은 그저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설마 경찰이랑 싸우기라도 한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문의 사라 대사가 기울임체 처리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

    엘스트릭님, 후원 감사합니다!

    하루에 두 번이나 후원해주셨네요ㅠㅠ 익명이 아니라 제대로 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글 쓰는 사람으로써 제 글실력에 대한 칭찬만큼 기쁜 것은 없죠. 제가 쓰는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이미 제 목적은 이룬 셈입니다. 물론, 앞으로 이야기가 한참 남아있으니 목적을 달성했다고 멈출 수는 없습니다. 확실하게 여러분께서 사라와 그 친구들의 결말을 볼 수 있도록 완결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고플 수 밖에 없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그 글을 남들이 읽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그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 또한 저의 글을 읽어주는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 감사한 사실을 잊지 않고, 여러분께서 즐기실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느낀 즐거움을, 여러분께서도 즐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며 투자해주신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도록, 앞으로 완결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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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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