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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오? 뭐야, 우리 귀염둥이 아가씨 일어났어? 어떻게 딱 맞춰서 깼네.”

         

         “……제발.”

         

         이딴 인사나 듣겠다고 정보 수집도 포기한 채 일어난 게 아닌데, 눈뜨자마자 고막을 울리는 첫마디가 저거라니. 그나마 있던 정신력마저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무반응으로 일관해서 해결될 안건이었다면 나도 참았겠지만 가만히 있는 켄 꼬마라고 뭐 호칭이나 취급이 다른 건 아니었으니… 참 한결 같은 인간과 엮였다고 말할 수밖에.

         

         – ……. –

         

         툭툭 하고 제로의 팔을 두드려서 지면에 두 다리로 안착한다.

         어쨌거나 기껏 침투한 네트워크 제어권까지 내려놓고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벌써 우리 차례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170…… 또 기권인가? 진행이 빠른 건 편하군.”

         

         …무슨 말이긴, 진짜 순서가 한바퀴 돌았다는 거지.

         그저 귀찮은 게 마무리되어가서 기꺼워하는 레오나르 경은 내버려두고 시계를 확인했다.

         

         흘러간 시간은 고작해야 7분? 8분?

         하필 처음 골라잡은 무작위 네트워크가 사설 파일 하나없이 텅 빈 이상한 곳이라,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시스템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 뒤져서 낭비가 좀 있었던 것치고는 꽤 나쁘지 않은 속도로 주파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여기서 문제, 왜 그 잠깐 사이에 수험번호는 100 가까이 지나갔을까?  

         정말 엉뚱하지만 이게 다 내 덕분이라고 한다.

         

         “시카고는 알지? 사이퍼 사이코의 잔뼈 굵은 협상가. 그 아재가 화들짝 놀라서 못 해먹겠다고 나가떨어지니까 다들 쫄아서 줄줄이 기권했어!”

         

         “어, 음. 물론이지.”

         

         마리나의 태도를 보면 아는 게 당연한 사람인가 본데 안타깝게도 내 인명부는 헤이븐 위키에 간신히 플러스 알파 된 수준이라 모르겠다. …우선 겉으로는 가열차게 고개를 끄덕여 두었으나.

         

         “아, 아재가 한 수 배웠다고 전해 달라는 걸 잊을 뻔했네. 역시 수도의 벽은 높다면서 감탄하시더라. 따로 방해 공작까지 할 정도로 의욕만만 했으면서 왜 아까는 빼는 척한 거야?”

         

         “어.”

         

         몸이 굳었다. 뒷부분의 오해를 정정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위장했는데 대체 어디서?

         방해 공작이라 할 정도로 포장될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뒤에서 능력을 이용해 벌이던 공작을 이렇게 발각된 적은 처음이었기에 단번에 머리가 헝클어졌다.

         

         그보다 들킬 건덕지가 있었다고…? 역시 자는 척한 게 무리였나? 그렇지만 자포자기하고 졸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나나 제로가 그렇게 눈에 띄었나? 만난 적도 없는 해커가 나를 지목할 정도로?

         

         어색하게 굳은 내 얼굴과 주변의 눈치를 슬쩍 본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는… 속삭여왔다.

         

         “…어비스 다이브, 썼지? 자기 기술이랑 팀 보안이 완전히 졌다고 하더라. 부끄럼쟁이 컴퓨터에도 네 쪽에서 발산된 신호가 잡혔고.”

         

         “아, 이런 망할.”

         

         제법이라는 듯,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는 눈을 보자마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머릿속에서는 벼락이 치면서 조각나 있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를 끼워 맞췄고.

         

         그러니까 정확하게 탐지된 건 제로를 통해 내보낸 신호뿐, 나머지는 아마 처음에 마주쳤던 그 유령 같던 게 밖에 나와서 떠든 내용이겠지. 그런 곳에서까지 이상한 형상으로 신원을 감추려 할 정도로 철저한 인간이었으니 이해가 간다.

         

         음, 먼저 선제공격을 해서라도 쫓아내길 잘했다.

         능력이나 행동을 특정 당한 게 아니라, 첫번째 네트워크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만 발각되었다는 것도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해준 신뢰의 근원이 흔들릴 뻔해서, 가슴이 좀 심하게 철렁였지만 이제는 괜찮다.

         

         “후우….”

         

         하여간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이번에는 바로 얼굴을 켄 쪽으로 돌렸다.

         들킨 건 들킨 건데, 얘는 왜 그 타이밍에 전파 탐지를 하고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로.

         

         너도 혹시 저기 참가자를 가장한 클라이언트의 끄나풀이라거나 뭐 그런 거니.

         

         “죄… 죄송해요…. 엿보려던 게 아니라,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장비라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 신호, 스펙트럼 분석 계측장비) 같은 부가장비들이 빼곡하게 달려있어서….”

         

         “……됐어 그럼.”

         

         노려보는 시선이 영 부담스러웠는지, 개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스스로를 변호하는 꼬마 도련님한테서 눈을 뗐다.

         

         같은 편이 유능하다니 고마워할지언정 추궁할 일은 아니다. 애당초 켄이나 마리나가 포섭된 인원이었다면 합격 확률을 높이자고 팀 업을 제안하지도 않았겠지. 옆에 출신도 모를 이상한 사람을 달고 다녀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다고.

         

         후아… 다행이다. 진짜 괜히 긴장해서 손해봤다.

         그래도 큰일이 아니었던 것도 알았고, 해결도 봤으니 이제 다시 원래 하던 일이나 계속….

         

         “174번! 흠, 너희들인가? 얼른 나오도록. 나도 개인 연구가 있어서 언제까지고 여기서 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신을 멸균 소독하려면 오늘은 글렀군.”

         

         해결되긴 개뿔…!

         저 무책임한 불량 심판의 소리를 듣자마자 일의 전말만 알았다 뿐이지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걸 자각했다.

         

         내가 쉬운 돈벌이를 마다하는 건 아닌데. 진짜 저 마녀의 가마솥 같은 물건에 손을 담가야 할까 싶었다.

         제로한테 흘러 들어가도 문제. 자칫 대응을 실수해서 나한테 역류하면 통신 임플란트가 망가져도 참사, 뇌에 닿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으웩.

         

         끼기긱…!!

         

         “자, 가볼까 제군들!”

         “아으… 진짜!!”

         

         제군…. 그래, 다른 호칭보다 저건 그나마 들어줄 만한 게 어디냐.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보다 기운 넘치는 그녀가 낑낑대며 펼쳐진 상태라 옮기기 불편해진 켄의 컴퓨터를 금고 곁으로 질질 끌려 하길래 제로를 시켜서 옮겨주었다.

         

         결국 마지못해 터벅터벅 내딛는 걸음걸이로 중앙에서 작업을 준비하는 우리 팀에게 아직 흥미가 남은 관객들의 관심이 쏠렸다.

         

         왠지 모두가 자연스럽게 기권하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저희는 할 건데요!’ 하고 튀어나오면 그럴 법도 하다.

         …아니면 이거 혹시 그건가? 강의 종료 직전에 교수님에게 손들고 질문하는 눈치 없는 놈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기 전에 보내는 최후의 경고?

         

         일단 발치 곳곳에 앞선 참가자들의 이런저런 체액(…)이 보이길래 얼른 신발로 주변 흙을 끌어 다가 쓱쓱 덮어버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머리를 푹 숙이고 고민하는 와중에도 시야 한 구석에는 그 망할 자료 금고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마치 안에 심장이라도 들은 것처럼 맥동하는 동력원과 그로 인한 미약한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져서 내가 멋대로 붙인 가마솥이나 짬통 가설이 더더욱 힘을 얻었다.

         

         심지어 잠금 상태를 의미하는 적색등도 간헐적으로 깜빡이는데, 이거 처음에 배송됐을 때만 해도 안 이랬던 거 같은데요.

         

         “……시발.”

         

         그래도 어쩌겠나? ‘여기까지 왔으니까 무조건 이득이라도 챙겨가야지.’ 하는 합리적인 결론으로 고민이 종료되려던 찰나,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어디, 제일 빡빡했던 경쟁자는 귀염둥이가 처리했으니까 적당히 쉬고 있어 볼래? 우리도 제 몫을 보여줘야지.”

         

         “응…? 어? 그러니까 둘이서도 충분하다고…?”

         

         멀뚱히 되묻는 사이, 만면의 미소와 긍정을 띤 마리나는 휴대하던 단말기와 손목-꼭 저런 생리적으로 오싹한 부위에 설치해야 했을까 싶지만-에서 뽑아낸 와이어를 준비된 컴퓨터에 연결시켰다.

         

         ……싫어하는 티를 너무 대놓고 냈나?! 이렇게까지 대접해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요!

         

         “작전이나 역할분담도 완벽해! 변칙적인 변조 프로그램이나 바이러스는 켄이 처리하고, 금고 로직은 온전히 내가 감당하는 걸로.”

         

         “그… 사이퍼 사이코를 미리 쳐내느라 힘들었을 텐데… 조금 쉬세요….”

         

         ‘발음도 어려운 뭐시깽이들보다는 니들의 극진한 태도가 더 힘든데.’

         

         하지만 속으로 외친 지적이 닿을 리도 없고.

         내가 무단침입을 일삼는 동안 확실하게 의논한 사항이 있는지,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척척 사전 준비를 마치고는 보기만해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금고에 와이어를 꽂아 넣어버렸으니.

         

         철컥!

         

         말릴 겨를도 없었다는 건 솔직히 변명이다. 제지하려는 티만 냈어도 탈인간급 반응 속도로 제로가 움직여서 제지했을 테니까.

         

         그러나 레오나르 경의 거름망도 어찌저찌 통과. 앞선 참가자들의 추태와 이 너덜너덜한 금고의 상태까지 보고도 여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이들의 실력이 나도 궁금해졌기에 구경하기로 마음먹은 건데.

         

         ………짤깍. ……짤깍.

         

         “……?”

         

         폭풍이 몰아치기 전 잠깐의 고요처럼.

         컴퓨터에서 금고로, 금고에서 컴퓨터로. 연결된 전선을 타고 미친 듯한 데이터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잠잠하던 화면에 하나 둘 뭔가가 표시되기 시작했으나… 나타나면 톡. 또 출력되면 토독.

         

         …짤깍, …짤깍.

         

         무슨 리듬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리나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글자와 숫자들이 지워진다.

         처음에는 5초에 한 번 꼴로, 몇 번 지나가자 4초… 이내 3초. 초 단위로 대응하던 게 수백 밀리초, 어쩌면 수십 밀리초 간격으로 내리쳐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짤깍, 짤깍. 짤깍짤깍. 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짤깍—–!!

         

         “어…….”

         

         저게 무슨 짓이냐고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저래도 괜찮냐고 닥터 스톱을 걸어야 할지.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금방 밝혀졌다.

         

         “…자료 금고와 관련된 코드 라이브러리를 통째로 외우고, 보안 로직에 따라 대응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매크로로 만들어서 등록해 놓고 맞춰서 쓰신다고 하더라고요.”

         

         친절한 설명은 고마웠으나 나는 ‘외웠다.’ 는 부분밖에 못 알아먹었다. 그렇지만 정확한 원리는 몰라도 저 노도와 같은 정보의 방류를 처리해내고 있는 건 분명했기에 내심 감탄이 나왔다.

         

         “말했잖아? 나 기억력은 좋다니까!”

         

         ……잘난 척하는 것도 확실하게 알겠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경고… 휴재 가능성 상승 중….

    오늘도 많이 지각했습니다. 항상 죄송하고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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