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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병사들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숲길을 가득 채웠다.

         

       뜻하지 않은 행군.

       그것도 그냥 행군이 아니었다.

       무려 수천 미터 거리를 뛰듯이 주파해야 했으며, 1초라도 뒤처져선 안 되었다.

         

       전쟁이 터져도 이렇게 무식한 행군은 하지 않으리라.

       싸우기도 전에 체력을 다 소비할 판이었으니.

         

       그러나 지금은.

         

       쿠구구궁!

         

       “조, 좀 더 빨리 달려!”

       “2차 지진이다!”

       “모,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불만이나 불평 따위를 내뱉지 않고 안간힘을 쓰기 바빴다.

       지진이란, 자연이 내뱉는 분노에 대적할 인간은 감히 없는 법이었다.

         

       쩌저저적!

         

       안 그래도 웜들이 땅을 헤집어대는 탓에 약했던 지반은 지진으로 인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일쑤였고, 주변 수백 미터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저기 휘말렸다간 생매장이 아니라 푹 꺼진 절벽으로 떨어지듯, 터진 토마토 같은 몰골이 되리라.

       그러한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병사들은 마냥 최선을 다하여 지진이 일어나는 지대에서 벗어났다.

         

       털썩!

         

       그렇게 불과 수십 분.

       병사들은 기적적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인간이란 생물은 하고자 하면 뭐든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 살았다….”

       “나, 나 더 이상은 못 걸어….”

       “…뒤지겠다.”

         

       털썩, 거리며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간부들이 나서 뭐라고 하며 질서라도 맞춰야 한다고 일갈을 내뱉을 타이밍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간부들 또한 상황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하는 중이었다.

         

       기진맥진하며 그렇게 안도하기도 잠시.

         

       콰과광!!

         

       “아…….”

         

       ……땅굴이 무너진다.

         

       남부 대륙 최대의 비료생산지이자 백 년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를 가진 죄인들의 지옥이.

         

       콰드드드득!

       우직-!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현장을 목도하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건 살았다는 안도감이 아닌 경외감과 아연함뿐이었다.

       수백 미터 반경의 땅이 모조리 움푹 꺼지며 무너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인간이 얼마나 있으랴.

       아니, 아마 있을지라도 그날이 대부분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를 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운이 좋았다.

         

       “이게 다 왕자님, 아, 아니 아렌 경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아렌 경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어휴!!”

       “고귀하고도 현명한 팬드래건의 백사자여! 당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와아아아아!]

         

       병사들은 그들을 구한 왕족 출신 기사에게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재빠른 판단력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살아남은 이들이 많지 않았을 터이니.

       소문이 퍼진다면 모든 백성이 감탄을 마지않을 업적인 바.

         

       어마어마한 명성과 명예가 약속된 순간이었고, 아렌이란 남자의 성격상 한없이 만족감을 느끼며 오만해 할 타이밍이었지만.

         

       “……제발 그만둬라, 제발…!”

         

       그는 수치스럽다며 얼굴을 감쌀 따름이었다.

         

       타인의 공적을 훔친 주제에 뻔뻔스레 제 것인 것처럼 웃는 이들이 있노라면, 반대로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법.

         

       그리고 아렌은 명백히 후자 측이었다.

         

       비록 성격은 오만했었지만, 최근 본의 아니게 정신 교육을 강하게 받다 보니 조금은 철이 든 것이었고, 철이 든 금쪽이 왕자는 그렇게 자신을 향한 찬양에 몸서리를 쳤다.

         

       너무 수치스럽다며.

         

       허나.

         

       “겸손도 하시긴…!”

       “역시 왕족!”

       “위대한 기사왕의 후예!!”

         

       한 번 좋게 보이면 뭐든 다 좋게 보인다 했던가, 병사들의 콩깍지는 쉽게 떨어져날 것이 아니었다.

         

       “다 닥치란 말이다!!”

         

       “하하, 쑥스러우신가 보군.”

       “이거야, 원.”

       “겸손도 하시지….”

         

       “아아악!!”

         

       철이 든 금쪽이는 괴로웠다.

         

         

         

         

         

       “-충분히 찬양 받을 만한데, 왜 저러는지, 원.”

       “그러게 말이다.”

         

       두 기사, 제이크와 요르드는 아렌이 몸서리치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상 병사 대부분을 구해낸 건 아렌이 맞았으니 말이다.

         

       “왕족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병사들이 이토록 순수하게 협조하며 대피 명령을 따르고, 죄수들마저 챙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다름 아닌 ‘왕족’이 직접 나서 일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들이 설령 백은사자 소속 기사라 할지언정 저들이 그들의 명령을 쉽게 따라줄 리가 있겠는가?

       뭉그적거리는 수준이면 다행이고, 명령 불복종이 난무했을 터.

         

       허나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는 다름 아닌 고귀한 백은의 용에게 축복을 받은 기사왕의 후예다.

         

       이를 상징하는 백은발의 머리칼과 팬드래건의 이름은 불합리한 명령조차 따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오늘만큼은 칭송 받아 마땅했으나….

         

       “늦은 나이에 철이 들어서 그런가? 자기 객관화를 잘 못하는군.”

         

       아니면 평생을 거짓된 칭찬만 듣다가 지금처럼 진심 어린 찬양이 처음인지라 낯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들은 저러한 반응도 나쁘지 않다 싶었고, 자신들의 입으로 칭찬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기껏 금쪽이가 철이 들었는데, 괜히 칭찬해줬다가 다시 못난 놈으로 변한다면 기껏 개과천선한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한 왈.

       사람만큼 철이 안 듣는 동물도 없으며, 아무리 개과천선시켜봤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길 마련이라 하였다.

       그러니 수시로 몽둥이를 들어 두들겨줘야….

         

       “후우, 몽둥이를 들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도 빨리 찾아야겠군.”

       “그냥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씀하시는 게….”

       “뭐?”

       “…아닙니다, 아무것도.”

         

       제이크와 요르드는 무너진 땅굴로 빠르게 다가갔다.

       끝내 지하에서 올라오지 않은 그를 찾기 위하여.

       무사하리라 믿고는 있지만 혹시나 싶은 것이다.

       아무리 괴물 같은 녀석이라도 진짜 괴물인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듯.

         

       “도,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진짜 싸우다 죽으신 거 아니야?”

         

       자신들보다 먼저 그를 열심히 찾는 선객이 보였다.

         

       회색머리의 소년.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조력자님이군.”

         

       땅굴에서 그들을 도와준 조력자.

       분명 이름이….

         

       “데릭 공. 선배를 찾고 계시는 겁니까?”

       “요르드 경.”

       “…후우, 역시 선배는 안 빠져 나온 것입니까?”

       “……여러 일이 있었어요.”

       “…음.”

         

       차마 제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기 힘든 표정을 지은 데릭이었고, 그들은 무언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며 침음을 흘렸다.

         

       ‘그 녀석….’

       ‘아무리 선배님이라도 지하에 깔리셨다면…. 으음!’

         

       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실상 누군가의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임무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희생자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중….

         

       “아! 있다!”

         

       “?”

         

       “…근데 뭐지? 왜 여기서 [감지]되는 거지?”

         

       “??”

         

       갑작스레 의미 불명에 말을 내뱉는 데릭이었고, 이에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감지한다는 걸까?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쿵!

         

       “!!!?”

         

       잔잔한 들썩임을 보인 흙더미를 보며 곧장 알 수 있었다.

         

       “서, 설마!”

       “이, 일단 파! 빨리…!!”

         

       두 기사는 빠르게 흙더미를 파기 시작했다.

       삽이 없어 검으로 땅을 파야 하는 상황….

       어찌 보면 기사로서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지만, 동료를 구하는 데 검이 문제겠는가!

       그 이상의 짓도 감수해야지.

         

       지금만큼은 기사의 동반자인 검은 훌륭한 삽이 되어주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땅을 파고 있자….

         

       쿵! 쿠웅!

         

       흙은 더욱 빠르게 들썩이기 시작했고, 기어이….

         

       푸화아악!!

         

       팔이 뻗어 나왔다.

         

       “……와아, 진짜 어떻게 사셨지?”

         

       그러한 팔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는 데릭이었고, 저러한 말에 역성을 내듯!

         

       콰아아앙!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헉어어억!!”

         

       나오자마자 흙을 한 움큼 크게 뱉어내며 연달아 기침을 토하는 그는 엉망진창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였고, 상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남들 같았으면 진작 세상을 하직하고도 남았을 상태지만,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는 지상의 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시며 점차.

         

       “하아아아! 주, 죽다 살았네…!”

         

       어딘지 회복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세 사람은.

         

       “저놈, 지금 설마 땅 파서 지상까지 올라온 거야?”

       “…지진도 지진인데, 그 엄청난 흙더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워, 웜도 아니고, 뭔.”

         

       아니, 진짜 샌드 웜도 이만한 질량의 토사에선 못 살아남는 게 상식이란 것인데, 참….

         

       ‘…사실 내가 아는 상식은 틀린 걸까?’

         

       데릭은 살아남은 것도 살아남은 거지만, 기어이 한 명의 거한도 같이 데리고 흙더미에서 탈출을 성공한 그를 보며 마냥 멍하였다.

         

       그러나 곧.

         

       “…하하.”

         

       데릭은 안도감이 번지며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이 상황 자체가 유쾌한 것도 있어서.

         

       하여튼.

         

       ‘사는 것 자체가 재밌는 분이야.’

         

       질릴 틈이 없다.

         

       * * *

         

       ……죽다 살았다.

         

       ‘와, 나 어떻게 살았냐?’

         

       이한은 여전히 흙을 토해내며 기침했다.

       산소가 너무 달았고, 햇볕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야말로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이 느끼는 감동을 모두 만끽하는 중이었다.

         

       허나 그러면서도 자신이 생환한 것이 본인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살다살다 마물 새끼가 도움이 다 될 때가 있네.’

         

       이한이 난도질하고 막시무스가 막타를 날려 죽인 거대 샌드 웜.

       이한은 그 샌드 웜의 사체를 셸터 삼아 가까스로 살아남은 셈이었다.

       덩치가 깡패라고, 아니면 흙에서 사는 놈인 덕분인지 샌드 웜의 외피는 토사의 압력을 어느 정도 버틴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일어난 과정은 간단했다.

         

       어느 정도 지진이 진정된 후 그저 맨손으로 땅을 팠고, 온몸으로 토사 속을 헤엄치듯 기었다.

       마치 두더지나 지렁이처럼 얼마나 흙속을 유영했는지….

         

       언제 토사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고, 괜히 빠져나오다 죽을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이한은 결국 해냈다.

         

       말 그대로 인간승리!

         

       자기 자신에게 칭찬을 하고 싶어진다.

         

       “…허허, 혼자 나왔으면 됐을 것을. 왜 나까지 데리고 나와서 위험을 자처하는가.”

       “이제야 정신이 들었네, 이 인간.”

       “공기가 이렇게 달달한 것이었군.”

       “알았으면 감사나 해. 놀 같은 소리나 하지 말고.”

       “……아무렴. 생명을 구원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지.”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됐어. 그럴 바엔 감사를 안 하느니만도 못하다, 이 인간아.”

       “어, 억울하군, 정말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거늘….”

         

       막시무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주면 구해줬지,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목숨을 빚지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지라 인사가 어설픈 것뿐, 그가 고마움을 모를 정도로 막돼먹은 놈은 아니었다.

         

       이 억울함을 풀고자 몸이라도 일으키고 싶으나.

         

       “…마음만큼은 당장 절이라도 하고 싶으나, 몸이 움직이질 않는군.”

       “경을 그따위로 쓰니까 그렇지.”

       “동감한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몸이 엉망이 될 줄이야. …이게 근육통이란 것인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자랑이다.”

         

       막시무스가 경을 쓴 방식은 무식하다 못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특히 마지막.

       [하늘 부수기]를 쓸 때는 그조차 내심 기겁했다.

       이한 본인도 중첩경을 쓸 때 다섯 번 이상 중첩시키지 않건만, 저 인간은 무려 열두 번 이상을 중첩시키더라.

       다른 이였다면 진작 몸이 터져나갔을 행위.

         

       오로지 [특성-천무지체]를 가진 막시무스이기에 버텨낸 것이긴 했지만, 아마 한동안 정양의 시간이 필요할 터.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안타까운 일이군.”

       “?”

       “결판을 냈어야 했거늘.”

       “……얼씨구.”

         

       막시무스는 더할 나위 없이 아쉬웠다.

         

       근육통 때문에 승부를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것이…-.

         

       “-흐음,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결국 내가 패배한 것 같군. 끝내 마지막까지 서 있던 것은 자네니까.”

       “…….”

       “인정하네, 자네가 승자일세.”

       “…….”

       “다음에는 내가 다시금 도전자가 되어 와야겠군, 허허!”

       “…놀고 있네.”

         

       이한은 무어라 더 쏘아붙이려고 했다.

       반박할 거리가 있었기에.

         

       한데 눈치도 없게….

         

       후욱!

         

       “-죄송합니다, 경. 부단장님을 구해주신 은혜는 나중에 갚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리가 영 아닌 것 같군요.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길!”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어느 여성이 그에게 고갤 숙이며 다급히 몸을 돌렸다.

         

       북부 출신으로 보이는 피부가 새하얀 180의 장신을 자랑하는 여성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2미터 30의 거한을 짊어지며 빠르게 사라진 것.

         

       그야말로 일순간에 발생한 일.

         

       이한은….

         

       “거, 힘도 좋으시네.”

         

       애초에 데려가는 것을 말릴 생각도 없었기에 마냥 떨떠름하게 볼을 긁적였다.

         

       하며….

         

       “…저 인간, 기만질 하고 튀어버리네.”

         

       이한은 저 인간이 적선하듯 준 ‘승리’가 여간 불쾌한 게 아니라며 미간을 찌푸리곤 제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를 보았다.

         

       칼날이 모두 사라져버린 글라디우스였던 검의 유해를 말이다─.

         

       참으로.

         

       “이게 어떻게 승리한 사람 몰골이냐….”

         

       패배보다 짜증스러운 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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