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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4

   EP.124

     

   끼이익……

     

   멀리서 보았던 웅장함과는 대조가 되는 초라한 문을 열자 낡은 경첩이 삐걱 소리를 내며 나를 맞이했다.

     

   띠링.

     

   [무의 정원 – 1층]

     

   입장과 동시에 나의 눈앞에 장소에 대한 정보가 짧게 떠올랐다.

     

   정원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

   물론 공간이 넓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올라오던 ‘탑’과는 달리 천장도 벽도 있는 명백한 ‘건물의 내부’였다.

     

   “방에 가까운 느낌이네.”

     

   밖에서 봤을 때는 원형의 건물이었지만 내부 공간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런 감상이 잠시 이어질 때쯤.

     

   번쩍!

     

   방의 내벽에 빛의 구가 떠오르며 사방이 밝혀졌다.

     

   “예상은 했지만…”

     

   전방으로 사람의 허리쯤 되는 생명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굽어 있는 등. 짜리몽땅한 팔다리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조잡한 단검을 들고 있는 몬스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Lv.1 고블린 ]

     

   -키르륵?

     

   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른다는 듯한 모습.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이 반쯤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금방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예정인 것 같았다.

     

   -키에에엑!!!

     

   놈이 단검을 위로 치켜들며 나에게 달려든다.

   넘쳐나는 빈틈과 나약해 빠진 신체 능력. 그리고 나는 가만히 놈을 구경하다가 내 손바닥을 바라봤다.

     

   부웅-

     

   대충 봐도 관리하지 않은 듯한 녹슨 단검이 나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다.

   하지만 놈에게는 민첩함이 없었고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고블린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쩌어어억!

   드드득!!!

     

   따귀 한 방에 놈의 목이 돌아가며 뼈 부러지는 소리를 만든다.

     

   그야말로 즉사.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의 정원 1층의 고블린은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띠링!

     

   [1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정비를 마친 후, 2층으로 향하십시오.]

     

   “이렇게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싸워야 하는 건가?”

     

   고작 1층을 클리어한 상태였기에 알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지금과 같이 일대일의 구도로 전투가 진행될지, 앞으로 괴물이 나올지, 사람이 나올지…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가보면 알겠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블린 뒤에 있던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의 정원 – 2층]

     

   번쩍!

     

   1층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벽에 있던 조명이 하나둘 빛을 발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반복적인 연출 뒤로 나타난 다음 상대를 향해 눈을 돌렸다.

     

   -키야아!

     

   [ Lv.2 홉고블린 ]

     

   이전의 고블린과 비슷한 외형이었다.

   하지만 키도 크고 몸에 특이한 문신을 새긴 것으로 보아 고블린들의 행동대장이나 수장쯤으로 추측이 됐다.

     

   “너도 들어와.”

     

   나는 주먹을 들어 장검을 들고 있던 놈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머뭇거림은 없었다. 그저 무리하지 않으며 다음에 있을 싸움들을 위해 힘들 비축할 뿐.

     

   게다가 탑에 오르기 전에 봤던 검의 무덤에서도 아주 저층에서 탈락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조금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끼익!

     

   [2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정비를 마친 후, 3층으로 향하십시오.]

     

   [3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정비를 마친 후, 4층으로 향하십……

     

   ……

   ……

     

   [9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정비를 마친 후, 10층으로 향하십시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내가 그사이에 만나게 된 몬스터들도 특별히 강한 힘을 가지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다양한 무기로 무장한 채, 나에게 달려들었을 뿐.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적이나 시련들을 떠올리면 아무런 부담이 없는 약한 상대들이었다.

     

   끼익!

     

   나는 그렇게 10층의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만난 괴물들이 고블린이나 리자드맨, 스켈레톤 같은 무기를 들고 있던 몬스터였기에 10층도 비슷한 괴물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의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과거에 내가 만난 경험이 있었던 익숙한 괴물이었다.

     

   -키륵?!

     

   앞으로 툭 튀어나온 해골바가지.

   앙상한 신체의 마디마디를 보니 본능적으로 등 뒤로 소름이 돋아난다.

     

   “하.”

     

   피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몸에 덕지덕지 붙은 썩은 살점이 절로 눈을 찌푸리게 만드는 악취를 풍긴다.

   징그러울 정도로 등이 잔뜩 굽은 채, 사족보행을 하는 괴물의 모습을 보며 나는 미간을 좁혔다.

     

   “잘 만났다. 이 새끼… 튜토리얼 이후로 처음이지?”

     

   [ Lv.10 강화 구울 ]

     

   이제는 충분히 극복할 힘과 능력이 있지만 나의 악몽을 배회하는 기분 나쁜 생명체.

   스카이 게임즈의 사옥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일명 ‘튜토리얼 더미’가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키에에에엑!!!

     

   놈이 나를 향해 위협적이게 포효한다.

   튜토리얼 때 만났던 놈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괴물.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놈이 튜토리얼 더미든 강화 구울이든, 내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피잉-!

     

   나는 무의 정원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도약했다.

     

   -키에…!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며 나에게 달려드는 놈의 면상이 나의 시야에 담긴다.

   나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 어떤 초식도 스킬도 담지 않은 가벼운 일검.

     

   그리고 내가 다음으로 보게 된 장면은 세로로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을 나뒹구는 구울의 시체였다.

     

   “……”

     

   기분이 이상했다.

   강해진 것에 대한 감회인 것도 같았고 고작 일검에 두 조각이 되어 버린 괴물에 대한 허무함 일지도 모르겠거니 싶다.

     

   [상층의 누군가가 당신의 일격에 경악하며 눈을 비빕니다.]

   [상층의 누군가가 땀을 삐질 흘립니다.]

   [최상층의 누군가가 기립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검이 지나간 이후에 몇몇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

   입구 검의 무덤에서 읽은 기록을 토대로 상층의 존재들은 괴물이 아닌 누군가가 아닐까 싶었는데 나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아마도 화신이라는 놈들이겠지.’

     

   성좌인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를 따르는 그의 추종자들.

   몇 층부터 그들이 배치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들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상관은 없나?’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힘을 비축하며 차근차근 이곳을 올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것이 나의 임무.

     

   촤악!

     

   나는 구울을 베어낸 칼을 굳이 허공에 털어냈다.

   깔끔한 일도양단에 칼에 묻은 이물질 따위는 없었지만 기분 나쁜 괴물을 하나 잘라 냈으니 괜히 찝찝했던 탓이었다.

     

   [상층의 누군가가 당신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합니다.]

   [상층의 누군가의 얼굴이 굳습니다.]

     

   내가 한 행동들에 반응하기 시작한 무의 정원의 존재들.

   나는 뒤에 놓인 문을 통과해 다음 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

     

   11층부터의 상대는 초반과는 달리 다양한 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롤이나 거대 늑대 같은 생체 괴물들은 물론이고 골렘이나 나무 괴물 같은 의식이 없는 몬스터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전투를 치르는 괴물들.

   20층의 괴물은 그것들이 하나로 섞인 키메라가 등장했고 21층에 도달하는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컨셉이 있군.’

     

   1층에서 9층까지는 대인전에 가까운 인간형 몬스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10층에서 나름 보스라고 불릴만한 몬스터가 등장했고 11층부터는 괴수형 몬스터들이 주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마주하게 된 21층의 괴물은.

     

   화르륵!

     

   [ Lv.21 살라만다 ]

     

   온몸에 불이 붙어 있는 거대 도마뱀.

   누가 봐도 불 속성을 가지고 있는 괴수가 나를 보며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음.”

     

   저놈을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에 불이라는 것은 오래 닿아있을 수록 뜨거움을 느끼는 것.

     

   물론 순식간에 타버릴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감각을 느끼기 전에 숨통을 끊고 문을 통과하면 그만이었다.

     

   타앙!

     

   스스로 결론에 도달한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놈에게 검을 휘둘렀다.

   싸움을 하는 방법은 나의 체력을 조절하며 상대에게 맞지 않고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면 되는 것.

     

   서걱!

     

   솔직히 말해 저런 불덩이 괴물을 상대하는데 굳이 근접전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놈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낼 자신이 있었고 아직 반도 오지 못한 상태에서 마력을 남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빼애액!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안일했다.

     

   피부가 생각보다 단단했던지 즉사하지 않은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고개를 좌우 바닥에 처박으며 꿈틀거리는 불도마뱀의 모습에 나는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다시 한 번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응?”

     

   놈의 갈라진 배에서 반투명한 무언가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더니 다짜고짜 나의 얼굴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런…!”

     

   살라만다의 새끼. 괴물의 몸에서 빠져나온 작은 괴물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21층에서 리타이어한 누군가의 기록이 스쳐 지나갔다.

     

   「나쁘지 않은 쌍검술을 구사하던 인간. 나름 강자였지만 스스로를 너무 맹신했다. 조금만 더 겸손했고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가지는 않았을 것. [연鳶]」

     

   ‘이거였나?’

     

   순간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앞선 전투들을 너무 쉽게 끝낸 탓에 자만에 빠져 안일한 판단을 내렸다.

     

   충분히 놈의 상태를 파악하고 아래에서 읽은 기록을 더듬어가며 차근차근 진행할 수도 있었다.

     

   [최상층의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보며 혀를 찹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저지른 짓은 오직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나의 앞에 놓인 모든 시련을 깡그리 무시한 아주 오만방자한 행동이었다.

     

   -꾸우욱!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새끼 도마뱀의 몸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부풀어 오른다.

   지금까지 없었던 위험천만한 상황. 하지만.

     

   “닥쳐!”

     

   나는 최상층의 누군가에게 소리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오만하다 말해도 상관없었다. 교만하다 말해도 상관없었다.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은 그런 사소한 모든 것에 일일이 신경 쓰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앞으로 있을 모든 미래를 망치는 것.

     

   “해결하면 그만이야!”

     

   정신을 집중하자 괴물들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왕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때 느꼈던 것과 흡사한 감각.

     

   [스킬 ‘투지(A)’가 발동됩니다.]

     

   파파팟!

     

   나의 검이 공중을 가로저으며 가장 가깝게 다가온 도마뱀을 베어냈다.

     

   눈을 뒤집으며 빛이 꺼지기 시작하는 괴물의 모습.

   나는 곧장 또 다른 괴물을 향해 검을 내질렀고 그렇게 모든 괴물이 빛을 잃는 그 순간까지 나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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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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