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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감히 총독에게 불경한 언사를!』

       『오이, 여자! 연행이다!』

       

       경부보 한 명에 순사부장 한 명. 두 명의 일본인 경찰이 계춘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용원의 공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고,  두 경찰은 허리에 찬 경찰도를 덜그럭거리며 다가오는데, 노한 얼굴이 금방이라도 계춘희를 체포할 기세였다.

       

       계춘희는, 경찰들이 뜬금없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지레 겁을 먹고, 나에게 달라붙어서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자, 작은도련님? 저 순사양반들이 왜, 왜 저런대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춘희가 별 생각 없이 ‘미남이시네요’라고 한 말이, 저 일본인 경찰들의 귀에는 「미나미 시네요(南 死ねよ; 미나미 죽어라)」로 들렸던 것이었다. 

       

       총독의 존함을 함부로 내뱉은데다가 죽으라고까지 한 꼴이었으니, 일본인 경찰이 분노할 만도 했던 것이다.

       

       “네가 방금 한 말. 일본어로 들으면 ‘미나미 죽어라’라는 뜻이야.”

       

       그제서야 계춘희도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고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아이고! 그게 아니예요, 순사 어르신들! 고까이데스(오해예요)! 고까이데스!” 

       『오해는 뭐가 오해냐! 순순히 따라와라!』

       

       계춘희는 짧은 일본어로 항변했지만 이미 껀수를 잡은 순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계춘희의 팔을 붙들고 미용원 밖으로 끌고가려고 했다.

       

       “아이고! 순사가 사람 잡네! 꺄악!” 

       『이잇! 이 요보 여자가!』

       

       계춘희가 반항하며 소리를 지르자 경부보가 결국 손을 치켜들었다. 바로 따귀라도 날릴 기세였다.

       

       ‘후우.’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계춘희와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경부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짝-!

       

       손을 날렸다. 하지만 내 손이 향한 곳은 경부보나 순사부장의 낯짝이 아니었다.

       

       “자, 작은도련님……?”

       

       계춘희는 자신의 얼얼한 뺨을 매만지며 날 쳐다보았다. 일부러 계춘희의 뺨을 때린 나는 짐짓 호되게 호통을 쳤다.

       

       “이 녀언! 무슨 말버릇이냐!”

       

       내가 나서서 계춘희의 뺨을 때리자 경찰들 역시 당황했는지 한 걸음 물러서서는,

       

       『오이, 너는 뭐냐!』 

       

       하고 물어온다. 나는 경찰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자세를 바르게 하며 담담히 대답했다.

       

       『시라바야시 남작의 차남이오.』

       

       그러자 경부보와 순사부장은 자기들끼리,

       

       『시라바야시 남작의? 시라바야시 남작이라면……』

       『그, 저기 팔달정 위에 사는 조선 귀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아! 그 조선 귀족…… 그 노인의 아들인가.』

       

       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순사부장이 한 걸음 나서서 말했다.

       

       『하지만 이 여자, 총독에게 불령한 언사를 한 여자와는 무슨 관계요? 죄가 중하니 즉시 연행해야 합니다만……』

       

       나는 두 손을 펼치며 설명했다.

       

       『아아. 이것은 단순한 오해입니다.』 

       『오해?』

       『이 여자는 제가 부리는 하녀인데, 일본어를 전연 모릅니다. 일본어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불령한 말처럼 들렸겠지만, 조선어로는 단지 「미남자입니다」라는 뜻이지요.』

       『음……! 오이, 긴 상. 그것이 사실이오?』

       

       경부보는 근처의 조선인 중년 신사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경찰들의 옆에 붙어서 미나미 총독에게 선물을 무얼 하면 좋을까 하는 얘기를 하며 알랑방귀를 뀌던 조선인 중년이었다.

       

       『에…… 예! 그렇습니다, 경부보님! 아시다시피 조선어는 발음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언어인지라, 일본어로 듣기엔 우스꽝스럽거나 불량하게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그 말을 들은 경부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오해였던 모양이군.』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계춘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은 곳에서 조선어를 입에 담은 것은 이 아이의 불찰이니, 주인인 제가 엄격히 지도하지요.』

       『음. 그러시오.』 

       

       나와 계춘희를 주인과 하녀의 관계로 만들고, 어디까지나 주인인 나의 불찰이니 내가 책임을 지겠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경찰도 더 이상 딴죽을 걸지는 못했다. 

       

       나는 계춘희를 끌고 미용원에서 나왔다. 미용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계춘희는 내 손을 뿌리치고 빽 외쳤다.

       

       “아니, 다짜고짜 따귀를 때려요! 때릴 거면 순사 뺨이나 때리지……”

       

       아닌게아니라, 갑자기 나에게 뺨을 맞은 계춘희로서는 억울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찰이 아니라 일부러 계춘희의 뺨을 때린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일개 순사라면 모를까, 하나는 순사부장이고 하나는 경부보였다. 한국 경찰이라면 일개 순경이 아니라 경사, 경위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놈들이겠지.

       

       아무리 내가 지역 유지 집안 사람이요 시마즈구미와 친분이 있다지만, 어느정도 계급이 있는 경찰에게 함부로 손을 뻗치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저런 놈들을 후려친다고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걱정되는 것은 계춘희였는데, 계춘희는 내가 수원을 떠나면 경찰들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일을 좋게 풀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설명해주고는 계춘희에게 말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넌 벌써 경찰서로 끌려갔어. 고마운 줄 알아.”

       

       계춘희는 뺨을 매만지며, 짙은 눈화장 덕에 더욱 표독스러워 보이는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흥! 세상 천지에 어느 년이 미쳤다고, 뺨 맞고 고맙다고 하겠수! 아무리 세상에 무슨 ‘마조키스트’인가 하는 변태가 있다지만……”

       

       하긴. 대뜸 뺨 맞고 고마워하는 여자가 있을까. 마조키스트도 아니고…… 계춘희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더니만 고개를 돌리며,

       

       “그래도, 뺨 한대 맞고 마는거가 순사한테 끌려가는 거 보다야 감지덕지니깐…… 작은도련님한테 신세 졌수!”

       “그래. 이번엔 내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무마시켜줬지만, 다음부턴 일본 놈들 앞에서는 말조심 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계춘희는 쏘아붙였다.

       

       “말조심요? 애비애미도 없는 년이라 학교는 문턱도 못 가봐서, 못 하는 일본 말을 어떻게 말조심을 해요!”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길가에 관상용으로 심어진 화단에 침을 퉤 뱉는데, 그러자 환하게 피어있던 분꽃이 순식간에 수그러졌다. 

       

       ‘독성물질 분배 능력!’ 

       

       계춘희가 이 능력을 직접 눈 앞에서 쓰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 보는 것이라 그동안  몰랐었는데, 이게 타액으로 나오는 거였던가. 

       

       그나저나 이렇게 침을 뱉는 것이 썩 좋은 모습도 아니었을 뿐더러 길가의 화단까지 상해버렸기에, 나는 핀잔을 주었다.

       

       “야, 침을 아무데나 뱉으면……”

       “무얼요! 숫제 애비애미 없어 못 배운 년이라 그렇겠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홱 돌리고, 핸드백에서 궐련을 꺼내물고 피우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배움이 짧아서 고초를 겪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얘도 참…… 사정이 딱하긴 하네.’

       

       문득 경성 하숙집의 함서주가 생각났다. 그나마 함서주에게는 딸을 아끼는 아버지도 있는데다가 어렸을 때는 그럭저럭 살았었기에 보통학교라도 나올 수 있었지만, 계춘희는 어릴 때 부모한테 버려지고 기방으로 팔아넘겨져 그럴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계춘희는 담배를 빽빽 피워대며 말했다.

       

       “그래, 나도 누구처럼 부모만 잘 만났으면은,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나는 그런 계춘희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계춘희의 부모라…….’

       

       나는 일련의 사건 덕분에, 경성의 한 끽다점에서 마주쳤던 강도가 계춘희의 부친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가짜 사이가네 교수 최성길에게 피를 빨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최성길을 죽였으니, 따지고 보면 내가 계춘희의 복수를 대신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걸 계춘희에게 말해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말해주지 않는게 좋겠지.’

       

       계춘희가 아무리 자기 입으로는 부모를 원망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래도 정작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정적인 동요가 있으리라.

       

       ‘아직 살아있을지 모를 어머니라도 찾아야겠다며, 수원을 떠날지도 모르고.’

       

       차라리 내가 대신 찾아줄 망정, 계춘희가 내 아버지 백노평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되었기에, 나는 진실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

       

       

       

       언덕을 한참 올라가던 인력거가 멈춘 곳은, 긴 돌담을 낀 궁궐같은 한옥의 솟을대문 앞이었다.

       

       내가 빙의된 백철연의 아버지이자 시라바야시 남작으로 통하는 백노평의 집이었다. 저번에도 와 봤지만 참, 인력거를 타고 오기 미안한 집구석이었다. 

       

       언덕길 맨 위에 위치한데다가 이번에는 계춘희까지 옆에 타고 왔으니, 인력거꾼이 인력거 체장을 내려놓고 다리를 후들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 왔습니다요! 삯은 그저 십오 전만- 아이고! 이리 많게 주십니까요?”

       “고생하셨으니 좀 더 쳐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인력거꾼에게 삯을 후하게 주며, 삼십 분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노인네와 몇 마디만 하고 수원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예예! 그럼, 저쪽 담벼락 밑에서 기다리렵니다요!”

       

       인력거꾼이 멀찍이 물러나자, 나는 솟을대문 앞에 서서 옷깃을 여미며 몸가짐을 바로했다. 계춘희의 말대로, 교복이 곳곳이 해지고 찢어진 덕분에 대충 양장점에서 기성품으로 사서 걸친 양복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계춘희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호호! 그래도 내 덕에 번듯한 사내 태가 좀 나네! 영감님도 깜짝 놀라시겠수!”

       

       대문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춘월이냐?” 

       

       대문 옆의 쪼그만 쪽문이 열리며 늙수그레한 아저씨 한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집의 행랑아범인지 집사인지 하는 아저씨였다.

       

       “대감 마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데, 왜 이리 늦게…… 작은도련님?”

       

       행랑아범은 나를 알아보고 말했다.

       

       “아니, 작은도련님이 어찌 기별도 없이……? 대감 마님께 알리겠습니다요. 대감-!”

       “아니, 잠깐만요.”

       

       행랑아범이 마당 안쪽의 본채를 향해 외치려기에 나는 그를 제지했다. 괜히 집안 사람들에게 일일히 인사하고 얼굴을 비출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만 잠깐 보고 갈 겁니다.”

       

       그리고 나는 계춘희에게 눈짓을 해서, 계춘희를 먼저 들여보냈다. 나와 계춘희가 한번에 같이 들어가면 혹시라도 백노평의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노인네의 애첩 역할이니까.’

       

       잠시 후,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 앞에 서니, 노인네 백노평이 신음을 내며 외치는 소리가 문 너머로도 들려왔다.

       

       “에구, 에구……! 남차랑 총독이 왔는데, 내가 몸이 아파서 못 간다니! 내가 마땅히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에구, 에구구!”

       

       이 노인네도 미나미 총독이 수원에 왔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구나. 그런데, 총독의 이름인 ‘미나미 지로(南次郎)’를 한자 그대로 ‘남차랑(南次郎)’이라고 부르는 백노평이었다.

       

       ‘저런 놈이 어떻게 남작 작위를 얻었지?’

       

       조선귀족 작위를 받을 정도면 친일도 능력있게 해야 했을 터. 그런데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무식쟁이에, 별다른 능력도 없어보이는 노인네가 어떻게 작위를 받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안방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그러자 곧 안에서,

       

       “으응? ……철연이? 철연이 아니냐? 네가 왜 왔느냐?”

       

       하는 백노평의 이빨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보러 오는데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걱정되어 뵈러 왔습니다.”

       “으응, 그래! 들어오거라!” 

       

       나는 구두를 벗고 쪽마루에 올라서서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보료에 비스듬히 누워서 계춘희의 안마를 받고 있는 백노평의 얼굴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욱 나이들고 수척해 보였다.

       

       “에구, 에구구……!”

       

       백노평이 앓는 병이야 애초부터 계춘희가 독성 물질 분배 능력으로 심어둔 것인데다가, 계춘희에게는 내 명령으로 백노평을 살려두라고 지시했으니 병세가 더 심해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저렇게 곧 죽을 노인처럼 되어버린 것은 심리적인 이유이리라. 나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친일을 못해서 속이 타들어가는 모양이구만.’

       

       아까도 엿들었듯이, 기껏 총독이 수원에 왔는데, 자신이 충성을 보여줄 기회를 병환 때문에 놓쳐서 어지간히도 분하고 서러운 모양이었다.

       

       “앉아 보거라! 그래, 어찌 된 일이냐?” 

       “주말에 불현듯 아버지가 염려되어 찾아왔습니다.”

       “네가 네 형 철우보다 낫구나! 이렇게 아픈 애비도 다아 보러 오고…… 네 형 철우보다 나아!”

       

       그러는 백노평의 말에, 백노평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계춘희도 한 마디 얹었다.

       

       “영감님도, 차암. 작은도련님은 장차 큰 일을 하실 분이잖아요? 큰도련님도 대단은 하시지마는, 어딜 작은도련님에 비할까.”

       

       그러고는 내 쪽을 보며, 몰래 한쪽 눈을 찡긋한다. 내가 저번에 지시한 대로, 백노평으로 하여금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계춘희는 잘 하고 있고.’

       

       나 역시 백노평 몰래 계춘희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춘희의 말을 들은 백노평은 흡족한 듯이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옳지, 옳아! 네 말대로, 철연이가 차암 장하느니! 그래, 철우처럼 응, 회사니 뭐니 차려서 장사꾼 노릇하는 것보담은, 공명정대한 일본의 장수가 되는 것이 차암 옳은 길이지, 옳아……”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돈 좀.”

       “돈?”

       

       돈 얘기를 꺼내니 순간 날카로워지는 백노평의 얼굴이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우선 이번 달에는 백 원만 주십시오. 쓸 일이 많아서요.”

       “백 원? 이백 원…… 그래, 그래! 네 위신이 내 위신인데 돈을 아끼겠느냐? 내 바로 지시해서 구좌에 넣어 주마!”

       

       오십 원이면 초봉 교사의 월급이요, 백 원이면 동네 의사의 월수입 정도는 되는 돈이었다. 분명 학생의 생활비로는 과분할 정도의 돈이었지만, 그런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주면서도 헤벌쭉 웃는 백노평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쉽군.’

       

       뭐, 이 정도면 수원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계춘희가 내 지시대로 잘 하고 있는 것도 보았고, 백노평이 나에게 가진 신뢰도 확인했고, 적지 않은 돈도 타 냈다.

       

       ‘슬슬 돌아가 볼까.’

       

       나는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시계는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성으로 돌아가는 열차가 9시 쯤이었으니, 슬슬 수원역으로 가면 되리라.

       

       내가 엉덩이를 들자 백노평이 말했다.

       

       “아니, 너 어디를 가느냐? 벌써 가려느냐?” 

       “예.”

       “하룻밤 있다가 내일 가면은? 응? 저녁 찬도 안 하지 않았니? 내 상을 내오라고 하마! 여봐라, 거기-”

       

       백노평이 저녁밥 상을 차리기 위해 하인들을 부르려 하자, 나는 거절하며 말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애초에 잠깐 들렀던 것이고, 곧 열차시간이라 이제 올라가야 합니다. 학업이 바빠서요.”

       

       그야 나로서는 애당초 방문 목적을 달성했으니, 굳이 여기에 더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노인네에게 신뢰를 심어준 탓일까, 아니면 노인네가 몸이 아프다보니 늙으막에 본 자식이 더욱 귀히 여겨져서였을까, 백노평은 날 어떻게든 붙잡을 기세였던 것이다.

       

       “으응, 아무리 바빠도 하룻밤을 못 있느냐?” 

       

       그래서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대일본제국의 황군이 되려면 평일이든 주말이든 밤낮없이 매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해해 주십시오.”

       

       그러자 백노평은 만족스러웠는지 끌끌 웃으며 말했다.

       

       “옳구나! 나는 바라는 것이 따로 없다! 다만 네가 우리 집안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 제일이지! 암……”

       

       그렇게 백노평은 연신 수염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리다가,

       

       “그래…… 그래!” 

       

       하고 외치는데, 같은 ‘그래’였지만 동어반복이 아니었다. 앞의 ‘그래……’는 ‘그러냐’ 정도의 뉘앙스고, 뒤의 ‘그래’는 마치 기막힌 것을 깨달은 것 마냥, 손바닥으로 바닥을 탁 치면서 말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레카!’에 비견될 뉘앙스였다.

       

       “그래! 철연이, 네가……”

       

       그래서 당췌 무엇을 깨달은 것인가, 더없이 흡족한 얼굴을 한 백노평은 뼈마디가 울거진 마른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겨 외쳤다.

       

       “네가 가면 되겠구나! 옳지! 그러면 내 위신도 살고……” 

       “예?”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어서 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되묻자, 백노평이 다 빠진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외쳤다.

       

       “내 대신으로, 총독께 인사를 올리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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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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