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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희망(希望).

       

       종막을 앞둔 무대에 청색의 마법소녀가 뛰어들었다. 한 줄기 바람에도 휩쓸려 꺾일 것 같은 가녀린 꽃이었으나, 이글거리는 두 눈동자를 보거든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승리하리라는 만용도, 어떻게든 해내어야만 한다는 의무도 아니다. 불길로 형태를 바꾸어 빛을 뿜어내는 것은 선명한 의지다.

       

       그 눈빛이 인상을 180도 바꿔낸다. 부러질 것 같은 얇은 손목은 레이피어를 쥔 전사의 것이며,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드레스는 기사의 복장이다.

       

       퓨어 나이트, 로데루스는 오연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껍데기라도 귀족은 귀족,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방법은 수백 가지도 넘게 알고 있었다. 손을 떨쳐내는 동작 하나에도 고귀함이 깃들고, 발걸음에는 품위가 있다.

       

       시선이 쏠린다. 반짝이는 소녀에게 퓨어 에너지가 쏟아진다.

       

       시민들은 절망해야 했다. 이제 와서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로데루스의 주변을 휘감으며 점차 또렷해지는 청색광에, 제크니엘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법소녀,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너희는 패배했다. 너희가 당하는 모습은 이미 모든 사람이 보았어.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녀석들은 마법소녀들 중에서도 최약체였지.”

       

       “네놈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안다, 마법소녀. 그렇게 피칠갑을 하고서-”

       

       “이건 내가 흘린 피가 아니다, 천것아.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도록.”

       

       파스스스스.

       

       로데루스의 피부를 덮은 붉은 혈액이 증기가 되어 흩어졌다. 상처를 없앤 게 아니다. 마력으로 ‘끓여서’ 증발시켜, 실시간으로 지워내고 있는 것이었다.

       

       제크니엘의 눈에는 너덜너덜한 몸으로 자신은 멀쩡하다며 허세를 부리는 꼴이었지만,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에는 로데루스의 말이 사실처럼 보였다. 저 마법소녀는 상처 하나 없이 무결했다.

       

       희망이 쌓인다. 이토록 당당하게 나섰다면, 정말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제크니엘은 이를 갈았다.

       

       “멍청한, 멍청한 인간들 같으니⋯⋯!!”

       

       “껍데기를 조금 신경 쓰지 그랬나?”

       

       “마왕은 강림 직전이고, 남은 마법소녀는 고작 한 명이다! 어째서 희망을 품는 거냐, 덜떨어진 인간들아!”

       

       “언성을 높이는 꼴이 추하군. 봐라, 천민들아. 너희가 두려워하던 놈은 악을 쓰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제, 나를 봐라.”

       

       챠라라라라락-!

       

       마법봉을 닮은 레이피어에 푸른 은하수가 휘감겼다.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며, 폭풍우를 뚫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보였다.

       

       단적으로 말해서 에너지 낭비, 살상력이라고는 하나 없는 보여주기식 운용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믿음이 힘으로 치환되는 이 상황에서, 쇼맨십에 소모한 에너지는 더욱 많은 에너지를 불러왔다.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팔을 당기고, 기술명을 외치며 찌른다. 

       

       “『스타라이트 스팅거』──!!”

       

       “⋯⋯⋯⋯!!”

       

       파아아앗──!!

       

       별의 격류가 쏟아져나왔다. 과장되게 그려진 커다란 하트나 별, 음표 따위의 아기자기한 효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런 이펙트 아래에서, 암살자의 음습한 기교가 펼쳐졌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기류가 제크니엘의 전신 급소를 노리고 쏘아졌다. 눈알, 아랫도리, 관자놀이, 목. 보는 사람이 섬짓할 정도로 독랄한 수다.

       

       희망을 노래하는 마법소녀가 적의 안구를 쑤시는 꼴을 보이면 쓰나. 그러니 숨겼다. 제크니엘은 로데루스의 까다로운 공격에 임퓨어 에너지를 둘러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끼기긱.

       

       방어를 선택한 제크니엘은 퓨어 에너지의 압력에 세 걸음 정도 뒤로 밀려났다. 주르륵. 그의 뺨에 얇은 생채기가 생겨 새까만 액체가 흘러나왔다.

       

       슈르르륵.

       

       제크니엘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자 감쪽같이 회복되었다. 자체적인 수복 능력이 있는 듯했다.

       

       로데루스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보란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어때, 이제는 내 승리를 믿을 수 있겠나?”

       

       “허세를 부리기는⋯⋯!!”

       

       한 방 먹인 듯 보였어도 전황은 제크니엘이 유리했다. 로데루스는 낭비에 가깝게 공격했고, 제크니엘은 소모를 최소화하여 막았다. 에너지의 총량 또한 제크니엘이 더욱 높았다. 

       

       악랄한 수에 놀라서 꼼꼼하게 방어했을 뿐, 공격을 허용했다고 해서 단번에 죽을 만큼 제크니엘의 내구도가 낮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마법소녀 퓨어 나이트의 강력한 일격에 맥을 못 추고 밀려나 버린 괴인의 모습이다.

       

       이건, 정말로 이겨버리는 게 아닌가?!

       

       파아아앗.

       

       퓨어 에너지가 물밀듯이 몰려온다. 빛이 투과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진 청색광은, 마치 날개처럼 로데루스의 등 뒤에서 너울거렸다.

       

       제크니엘은 이 이상 기세를 빼앗기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지만, 어쩌면, 저 마법소녀가 이렇게 야금야금 에너지를 충전하면⋯⋯.

       

       불안이 싹튼다. 대수롭지도 않다는 양 웃고 있는 로데루스의 껍데기(연기)가 제크니엘의 불안감에 부채질을 가했다.

       

       무엇보다도 ‘어쩌면’을 부추기게 되는 건, 저 눈.

       

       저 확신에 찬 눈동자!

       

       제크니엘은 고함을 외치면서 『암흑성계』에 필요한 임퓨어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마법소녀──!!”

       

       “흥.”

       

       우드득. 쩌적.

       

       로데루스의 귀에만 들리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퓨어 에너지와 우화의 충돌이 가속화되며 전신에 일어난 균열이 커지고 있었다.

       

       시민들의 응원은 힘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의 죽음을 가속시키고 있었다.

       

       혓바닥으로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와 맛. 로데루스는 피를 삼켜내며 겉모습을 꾸몄다. 밀리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최대한 크랙이 피부 표면이 아니라 몸 안쪽에서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내장이 망가지고, 근육이 끊어지면, 퓨어 에너지를 써서 강제로 꿰매 움직이도록 한다.

       

       그 모습을, 제크니엘은 알 수 있었다.

       

       “좀비같은 꼴로 잘도 움직이는구나, 마법소녀!”

       

       “이렇게 아름답고도 우아한 좀비를 본 적이 있던가? 내가 절박하다며 깎아내리고 싶은 거라면, 좀 더 설득력 있는 음해를 해 보도록.”

       

       “그 어설픈 껍데기를 벗겨주마, 『암흑성계』──!!”

       

       “그건, 이미 한 번 겪었던 공격이다.”

       

       새까만 우주, 응축된 별빛과 밀려드는 암흑의 파도.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탁류에 맞서서, 로데루스는 레이피어를 비스듬히 세우고 타이밍을 기다렸다.

       

       연상하는 것은 모서리에 각이 서 있는 구조물.

       

       “우화(羽化) – 『마력경화(魔力硬化)』.”

       

       촤아아아악──!!

       

       몰려드는 탁류의 일부를 굳혀 방패막으로 삼는다. 각진 모서리에 부딪힌 파도는 반으로 쪼개져 양쪽으로 흐르고, 로데루스는 그 중심을 베어 갈랐다.

       

       파앗──!!

       

       쩌저적.

       

       푸르른 섬격이 탁류를 쪼갰다. 동시에 울컥 하고,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쳤다. 로데루스는 그 즉시 화려한 이펙트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돌진했다.

       

       퓨어 나이트의 주위를 넘실거리는 마력이 회전하며, 전방으로 빙글빙글 도는 우산의 형태를 만들었다. 로데루스는 우산 아래에 숨어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촤아아아앗-!!

       

       우산을 쓴 마법소녀가 어두운 격류를 뚫고 오른다. 그 모습은 어둠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블루밍 엄브렐라』!”

       

       날아다니는 별과 리본, 프릴이 달려 있기에 모두가 ‘우산’이라고 인식했을 뿐, 그것은 고속으로 회전하는 마력 드릴에 가까웠다. 마법소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크니엘은 접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예감에, 방사형인 『암흑성계』를 거두고 우산을 벗겨내기 위한 마법을 준비했다.

       

       “이 자식⋯⋯!! 『암흑마력탄』, 받아라-!!”

       

       제크니엘은 양손에 암흑 구체를 띄워 마구잡이로 날려댔다. 초당 세 발씩 발사되는 마력탄 연사. 비 오듯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도 로데루스는 차분했다.

       

       퓨어 나이트는 자신의 몸을 지키던 마력 우산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마력탄의 앞에서 레이피어를 치켜세웠다.

       

       “이미 지워 낸 이름이지만, 알려주지. 내가 한때 무엇이라고 불렸는지를.”

       

       쳐낸다.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관절의 탄성을 이용한다.

       

       타앙. 탕.

       

       경로를 계산하고, 순서에 맞춰서 레이피어를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해내고, 쳐낼 수 있는 건 쳐낸다.

       

       탓, 타닷, 타다다다당-!!

       

       무언가가 연속해서 튕기는 소리, 그리고 순간적으로 텅 비어버린 공간. 소나기에 맞서는 검격은 내리는 비마저 그치게 했다. 

       

       고요함 속에서, 로데루스는 조용히 읊조렸다.

       

       “『마법사의 악몽』이다.”

       

       “네까짓 게──!!”

       

       파라라라락!

       

       공중에 띄운 우산이 퍼져나가며 소용돌이치는 장막을 만들었다. 관객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 꽃잎이 흩날리고, 사방을 밝게 비추었다. 

       

       그리고 화려한 껍데기에 가려진 장막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로데루스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밀집된 에너지에 레이피어가 달아오르고, 눈이 시릴 정도로 환한 청색광이 빛났다.

       

       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면 진다. 머리에 화살을 맞아가며 배운 교훈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확실하게!

       

       “쓰레기같이 죽어 널브러져라, 괴인──!!”

       

       그리고 퍼부어지는 찌르기.

       

       영창이 이루어지는 목울대를 도려내고.

       

       수인을 맺는 양손, 팔뚝을 지나가는 신경을 해체하고.

       

       턱 아래로부터 꿰어 눈을 터뜨리고. 녀석의 몸이 재생되면, 다시.

       

       촤자자자자작──!!

       

       사방으로 검은 액체가 튀었다. 제크니엘의 본체는 유나리스와 비슷한 슬라임인듯, 잘리고 꿰뚫리면 서로 엉겨 붙으며 회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레이피어의 움직임이 좀 더 빠르다. 찢겨나가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 로데루스는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일말의 틈이라도 내주지 않겠다!

       

       제크니엘은 난자되어 형체가 허물어지는 도중에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마법소녀여──! 우리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목숨을 걸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냐⋯⋯!”

       

       “⋯⋯⋯⋯.”

       

       이유는, 많았다. 

       

       도덕의 필요성과 그 혜택을 인정하게 된 것도 맞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려는 안일한 세계는, 무척이나 달콤하고도 포근했다. 

       

       친구들의 정의에 경도된 것도 맞다.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반짝거린다고 생각했다.

       

       복수심에 의한 것도 맞다. 김루루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오혜인을 너덜너덜하게 만든 놈들의 멱을 따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과거와 미련, 자신에 대한 회의, 상실, 그럴듯한 이유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로데루스는 그 모든 감정을 한 문장에 담았다.

       

       “하고 싶으니까.”

       

       “그깟, 변덕에 의해, 우리들의 계획이⋯⋯!!”

       

       핵을 찾았다.

       

       푸욱──!!

       

       퓨어 나이트, 로데루스는 제크니엘의 핵에 레이피어를 꽂아 넣었다. 제크니엘은 무어라 말을 내뱉으려다, 점성 없는 액체가 되어 철퍽 하고 흩어졌다.

       

       “이걸 ‘그깟 변덕’으로 치부하는 시점에서, 너희들이 진 거다. 반푼이들아.”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 간단한 문장을 입에 담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세월을 헤맸던가. 껍데기 안에 있는 것은, 결국 그런 당연한 것이었다.

       

       로데루스는 시체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

       

       바닥에 드러누운 오혜인의 위로 사람 그림자가 드리웠다. 오대수였다.

       

       “⋯⋯대수 오빠.”

       

       “오혜인, 네가 입은 상처는⋯⋯ 죽을 정도의 부상은 아니야. 뼈 위치가 어긋나지 않게 얌전히 누워 있으면, 응급실에서 알아서 살려 줄 거니까. 가만히만 있어.”

       

       “그게 무슨 꼴이야, 대체⋯⋯ 쓰지 말랬잖아.”

       

       “귀족은 평민 말 안 들어. 정글 말도 안 듣고.”

       

       로데루스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게 소용돌이치는 하늘에는 여전히 마왕의 손이 돋아나 있었다.

       

       투둑. 투두둑.

       

       제크니엘의 시체, 지면에 흩뿌려진 검은 액체가 방울방울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땅에서 하늘로 비를 내리려는 것처럼.

       

       뭔가 더 있을 줄은 알았다.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로데루스는 비장의 수를 남겨 두고 있었으니까.

       

       사천왕을 꺾은 것으로 인해, 로데루스의 몸에는 퓨어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밀집된 마력이 피부 표면에 결정화되어 자라날 정도로.

       

       『우화』와 퓨어 에너지의 충돌.

       

       로데루스는 그것을 이용하여 변신장치를 수류탄으로 만들어, 유나리스를 처치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동일한 원리다. 마법소녀 퓨어 나이트의 몸 자체를 폭탄으로 만든다. 마왕이든, 제크니엘이든, 상공에 모인 막대한 임퓨어 에너지든, 이걸로 싹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오혜인은 자기 팔뚝을 눈가 위에 올리고 중얼거렸다.

       

       “⋯⋯하지 마.”

       

       “나는 이세계 사람이다. 죽는 것도 아니고, 꿈에서 깨어날 뿐이야.”

       

       “루루도 가고, 너도 가면, 나는 어떡하는데.”

       

       “새 친구를 사귀어야지. 그게 나만 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이미 죽을 몸이었다. 연이은 에너지의 충돌로 내장기관은 완전히 망가졌다. 변신이 풀리는 즉시 피를 토하고 죽어버릴 터.

       

       그러니 겸사겸사, 좋은 일에 쓰고 가는 것이라며. 오혜인에게 가볍게 웃어 보였다.

       

       정말로 패널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꿈과 현실은 몸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공유한다. 죽음을 경험하는 건, 어쩌면 그의 『우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마력의 충돌로 인간 수류탄이 되어 터져나가는 죽음은 더더욱 그렇다. 지금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프니, 폭발할 때는 얼마나 아플지 걱정도 좀 됐으나.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덕분에 즐거웠고⋯⋯ 많이 배웠어. 너를 내 친구이자 왼팔로 임명해 주지.”

       

       “⋯⋯뭔데 그게. 그리고, 왜 하필 왼팔인데.”

       

       “오른팔은 이미 선약이 차 있어서.”

       

       둥실.

       

       가볍게 힘을 주는 것으로 로데루스의 몸이 날아올랐다. 푸르게 빛나는 퓨어 에너지가 넘실거리며 날갯짓을 대신했다.

       

       지상이 점점 멀어진다. 오혜인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다가, 이제는 엄지손가락만 하게 되었다. 반면에 하늘 위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오혜인이 뭐라고 더 말하는 것 같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이젠 들리지 않았다.

       

       로데루스는 어색하게 웃고는, 목을 가다듬고.

       

       “잘 지내.”

       

       작별인사를 했다.

       

       ⋯⋯⋯⋯.

       

       도시의 사람들은 보았다. 푸른 별빛이 새까만 소용돌이의 안으로 삼켜지는 것을. 그리고,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어둠을 지워내는 것을.

       

       구오오오오오──

       

       먹구름이 밀려나며 흩어지고, 천지가 흔들리는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빛이 부풀어 오르며 온 하늘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마법소녀의 마지막 빛은 일순간이나마 밤을 몰아냈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밀려들었을 때에는, 불길한 기운을 머금은 소용돌이는 온데간데없고. 반짝이는 별과 안온한 달만이 남아 세상을 평화롭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구했다.

       

       ===============================================================

       

       레드번 공작의 저택 지하에는 감옥이 있다.

       

       시설은 열악하고,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했으나, 그곳에는 놀랍게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백 서른하나, 백 서른둘.”

       

       팔굽혀펴기를 반복한다. 칼로리를 보충할 수 있는 선에서. 

       

       벽의 이끼는 구역을 나누어 계획적으로 수분을 보충한다. 이제는 이끼를 핥아먹는 것도 요령이 생겼다.

       

       지나가는 벌레는 놓치지 않고 잡는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알뜰하게 씹어 먹고, 약간은 남겨서 미끼로도 썼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으나, 꿈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깨어나고 며칠 동안은 실망했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여전히 가끔 우울해지거나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괜찮았다. 그에게는 목표가 생겼으니까.

       

       삶은 끝나지 않았고, 살아 있으면, 당연하게도 살아가야만 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고, 유년기의 자신이 바라던 것을 떠올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레드번을 ‘좋게’ 만들고 싶었다.

       

       그때에는 막연하게 ‘너무 심한 경쟁은 막는다’ 정도를 떠올릴 따름이었으나,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레드번 가문을 바로잡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변신장치가 반짝였다.

       

       ===============================================================

       

       “충분히 반성했겠지.”

       

       “예, 아버지. 다음부터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때가 되면 다시 너를 중히 쓸 것이다. 그전까지는 요양하면서 가문의 소일거리를 돕도록 해라, 아들아.”

       

       “명을 받듭니다.”

       

       로데루스는 공작에게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비굴하게 느껴질 정도로. 공작은 만족하며 손을 내저었다. 로데루스는 뒷걸음질로 방에서 빠져나왔다.

       

       오래 햇빛을 보지 않아서 피부는 창백했고, 근육도 많이 빠졌다. 몸을 정상 컨디션으로 돌려놓으려면 균형 잡힌 식사와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 타이밍에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라. 로데루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상다리가 부러지라 차려진 음식을 뜯어 먹으며 생각했다.

       

       레드번 공작 막시무스는 강하다.

       

       그 냉혹한 수완도 매섭지만, 공작 본인의 실력 자체가 막강했다. 그래서, 암살은 활로가 아니었다. 암살로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가문 자체를 조금씩 바꿔야 한다. 사람을 모으고, 공작의 계획을 방해하고, 결정적인 타이밍을 위해서 날카롭게 칼날을 갈아 둬야만 한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는 공작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변신.”

       

       파아아앗──!!

       

       푸른 빛이 지나간 이후, 로데루스의 방에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병약 미소녀 오대수가 서 있었다. 

       

       “⋯⋯흣.”

       

       오대수는 현기증에 휘청이면서 주저앉았다. 남자의 모습과 여자의 모습은 컨디션을 공유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잠깐 앓는 소리를 내다가, 다시 포크를 집어 들었다.

       

       우선은 먹어야 산다.

       

       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로데루스는 『변신장치(드리밍 미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문의 세뇌 교육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게 되어서인지.

       

       마법소녀로 살아가던 날들이 무척이나 행복했기 때문인지.

       

       최종결전에서의 대폭발이 의식에 뭔가 영향을 준 것인지⋯⋯.

       

       딱 집어 말할 수 있는 원인은 없으나, 꿈속에서의 시간이 그를 바꿔놓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따라서 추측건대, 우화의 변질이리라.

       

       그의 본래 능력인 『마력경화(魔力硬化』의 범위와 출력이 떨어진 대신 변신장치가 생겼다. 기분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유용하다는 점은 틀림없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 이 위장신분을 이용해서 계획을 추진한다. 목표는 레드번의 갱생과 더 나은 크라운홀 만들기였다. 치안이라던가 여러모로.

       

       어째서 도시의 치안을 바로잡을 생각을 했느냐고 하면, 자신이 꿈을 통해서 이세계에 불시착했듯이, 자신의 친구들 또한 이곳에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가설 때문이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그때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못 드는 것보다야⋯⋯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크라운홀을 누비는 정의의 마법소녀가 탄생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션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마이 무림 프렌즈 동도 여러분, 내일 뵙겠습니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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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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