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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은은한 주황빛 조명과 괜찮은 음악,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꽤 아늑하고 안정된 느낌의 식당이었다.

     

    그리고 예르나 역시 그런 일반적인 취향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 엘프식으로 요리된 토마토 파스타였다.

    향도 꽤 좋고 먹었을 때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것이 꽤 마음에 드는 맛이었다.

    재료도 상당히 신선한 것인 듯, 분명 요리를 한 것임에도 깊숙한 어딘가에서 아삭거리는 식감이 남아있었다.

     

    “맛있다, 괜찮은 식당이야.”

    “다행이네. 여기 분위기는 어떤 것 같아?”

    “정말 좋아. 나중에 써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

    “……다행이네.”

     

    다른 사람이랑 오는 것을 전제한 말에 다이튼은 역시 한숨을 쉬었다.

     

    사실은 꽤 옛날부터 예르나랑 오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던 식당이었다.

    엘프식 식당중에서 평가도 가장 좋은 편이고, 분위기도 연인한테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예르나와 단 둘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지금 그의 앞에는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예르나가 있었고, 자신에게 미소짓고 있었고, 정말로 기뻐하고 있었다.

     

    ‘정말 좋아, 좋기는 한데.’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비참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그 혼자만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다이튼, 어디 속이라도 안 좋아? 표정이 안 좋아 보여.”

     

    예르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다이튼은 곧바로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래?”

     

    예르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예르나는 아직도 멍청한 표정의 웃음을 짓고 있는 다이튼을 향해 마주 웃어보였다.

    의미심장한 웃음, 다이튼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는 사람이 엘프인가봐?”

    “……! 그걸 어떻게……?”

     

    설마, 아직 말도 안 했는데 눈치를 챈 걸까?

    다이튼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예르나의 말을 기다렸다.

     

    “뻔하지 않아?”

     

    예르나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여기, ‘엘프식 전문 레스토랑’이잖아? 후후, 네가 왜 나한테 같이 와달라고 한 지 알겠어. 그래서 엘프인 내게 물어보고 싶었던 거지?”

     

    “……뭐, 그렇지.”

    글렀다.

     

    ——

     

    “흠, 휴일이라 모두 문을 닫았나 보군.”

     

    평소 등하굣길을 오가며 봤던 마력초를 팔던 꽃집은 입구에 ‘쉬는 날’이라는 팻말을 달아 놓은 채였다.

    약재상도 마찬가지로 문을 닫고 있었기에, 루크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알 수 없는 쓸쓸한 감각이 든다. 세상이 조용한 기분.

     

    ‘꽤 허전하군.’

     

    그것은 항상 곁에서 촐랑촐랑 따라다니던 정령이 보이질 않아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파이의 소란스런 소리들에 적응을 했던 모양이다.

     

    “흠.”

     

    루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뭐, 금방 돌아오겠지.”

     

    파이도 언제나 자신의 곁에 붙어있기만 할 수는 없는 존재이겠지.

    그도 자신만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리라, 정령이라서 그런지 시간관념은 딱히 없지만 말이다.

     

    ‘…….’

     

    하지만 뭔가 삶에서 한 부분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예르나도 집에 늦게 돌아올 것이다.

    당장 집에 돌아가봤자 혼자밖에 없을 것이고, 혼자서 할 거라고는 박스안에 들어가서 뒹굴거리는 정도 밖에 없다.

     

    루크는 그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할 일을 생각해봤다.

     

    “아, 그냥 돌아가지 말고 장이라도 좀 봐둘까.”

     

    식재료를 좀 사서 돌아가서 요리라도 해먹어야겠다. 그러면 좀 허전함을 덜 수 있겠지.

     

    혼자라는 감각은 그에겐 정말이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동료이자 하인이던 가장 친한 친구, 케일 프롭슨이 죽고 레니에마저 전쟁 후에 혼란스러운 국가의 운영에 바빠져 쉽게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루크는 꽤 오랜 시간을 혼자라는 감각에 빠져 지냈었다.

    그것도 무료하지만 사실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로움은 꽤 잘 버틸 수 있다고 자부했지만…….

     

    매일매일이 소란스러웠기 때문일까, 예상치못하게 찾아온 ‘혼자’라는 감각은 예상보다 루크의 심정을 뒤흔들었다.

     

    루크는 새삼스럽게 이 몸으로 다시 깨어난 이후, 타인들에게 생각보다 많은 관심과 감정을 할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하….”

     

    진짜 어린아이도 아닌데 뭘 고작 이런걸로 외로워한다는 말인가.

     

    —-

     

    세레나가 운영한다는 휴트리 그룹 산하의 휴튼 백화점, 일요일에도 밤까지 운영하는 거대한 상점이었다.

     

    다시찾은 백화점은 역시 기억속의 그것과 동일하게 압도적인 크기였다.

     

    “역시 다시봐도 참 넓단 말이지.”

     

    이정도 크기라면 확실히 왕성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의 성을 통째로 상점으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과연 이 건물 전체에 상품은 몇 종이나 존재하는 것일까.

     

    루크는 다시한번 그 위용에 감탄하며 안내판을 따라 이동했다.

     

    이런 곳이라면 마력초도 팔지 않을까?

    루크는 곧장 입구에 서있던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응? 왜 그러니, 꼬마야? 부모님은 같이 안 오셨니? 길을 잃어버린거야?”

    “……나는 미아가 아니다만, 내 그대에게 묻고 싶은게 있어서 부른걸세.”

     

    아예 미아취급까지 받은 루크는 이제는 일일히 호칭을 고쳐주는 것마저도 슬슬 지쳐서 조금 표정을 찡그리고는 말을 이을 뿐이었다.

    안내원은 그저 그 반응이 귀여울 뿐이었지만.

     

    뭐, 어린이라고 혼자서 백화점에 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물론 이정도로 어린 아이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백화점으로 놀러오는 경우는 흔한 편에 속하니까.

    아마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력초는 어디서 파는가?”

    “미안, 우리는 마력초나 약재는 취급하지 않아. 식료품이라면 팔지만.”

    “그런가, 실례했군. 수고하시게.”

    “그래, 좋은 쇼핑되렴.”

     

    ‘마력초가 없는 건 아쉽게 되었군. 그럼 그냥 밀가루와 우유나 좀 더 사야겠어.’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쇼핑에 도움을 주기위한 카트와 바구니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루크는 카트를 하나 꺼낼지 바구니를 하나 들지 고민하다가 카트를 뽑았다.

    뭘 살지 정확히 정하진 않았으니 이왕이면 더 많은 용량을 담을 수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쓰는 방법은 이전에 이미 예르나가 사용하는 방법을 봐서 알고 있었다.

     

    ‘그래, 분명 동전을 여기 끼우면….’

     

    찰칵, 잠금장치의 해제음이 경쾌하게 울리고나면 다른 카트와 연결되었던 사슬이 풀려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방식이었다.

     

    전에는 카트를 예르나가 계속 쥐고 있었고 도와준다고 해도 예르나는 그저 웃으면서 안 그래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루크가 밀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마 ‘내가 밀고싶다’라고 했다면 밀게 해줬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루크는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카트를 미는 게 처음이다.

     

     

     

    ‘오오, 이거 생각보다 꽤 부드럽게 밀리는군.’

     

    루크는 카트가 부드럽게 밀리는 감각이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옛날에 쓰던 손수레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다고 할까.

     

    왠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은 무시하기로 했다. 어린아이 혼자 온게 그리도 신기한 모양이지.

     

    ——-

     

    역시나, 안내원이 말해준 대로 마력초나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을 만한 약재는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야채나 과일등은 많이 보였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마력초 대신으로 사용할만한 식물등은 좀 찾을 수 있었기에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특히 눈에 띄는 독성이 적은 도로네스 풀은 독특한 향과 식감으로 비교적 요리에 자주 사용되기도 하니까.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루크의 눈에 문득, 한 과일이 들어왔다.

     

    초록빛의 두꺼운 껍질과 그 겉을 감싼 그물 같은 흰 줄무늬.

     

    바로, 멜론이었다.

     

    루크는 홀린듯이 멜론을 집어들고 상상했다.

     

    일전에도 한번 생각한 것이지만, 멜론빵에 정말로 멜론을 집어넣는 것은 어떨까?

    멜론의 맛이 과연 어울릴까?

     

    ‘이름값을 위해 한번 넣어보지.’

     

    생각해봐도 역시 나쁜 시도는 아닐 것 같았기에, 루크는 곧바로 그것도 카트에 집어넣었다.

     

    ‘오. 생선이라’, 그것도 역시 집어넣는다. 냉동마법으로 꽁꽁 얼어있는 물고기를 보니, 옛날에 크라켄사냥을 위해 항해를 하던 중 배 위에서 구워먹었던 생선구이의 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중에 돈은 꽤 있었다. 저번의 연주로 벌어들인 돈이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조금정도는 충동적으로 구매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것은 또 아니기에 루크는 더 이상은 자제하기로 했다.

     

    ‘좋아, 이 이상 더 구매하면 돈이 부족하겠군.’

     

    그렇게 다짐하고 돌아보니 갑자기 입맛을 돋구는 향기에 루크는 곧장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시지인가? 흠, 냄새 한번 끔찍하게도 좋군 그래.’

     

    냄새를 풍겨서 구매를 유도하는 상술임을 알면서도 루크는 어쩔 수 없이 냄새에 이끌려 와버린 자신에게 살짝 실망했다.

    뭐, 소시지 몇 개정도는 구매해도 좋겠다만, 지금 골라놓은 것은 금액을 거의 정확히 맞춰서 계산한 것들이다.

    소시지를 골라가려면 카트에서 물건 몇 개를 빼야 할 텐데.

     

    ‘뭘 빼야하지, 뺀다면 역시 생선인가, 아니면 멜론? 고민이 되는군…….’

     

    연신 침을 삼키며 소시지가 구워지는 장면을 빤히 바라보던 루크를 부르는 목소리.

     

    “꼬마야.”

    “…지금 날 부른겐가?”

    “그래, 여기 꼬마가 너 말고 누가 더 있니.”

     

    그렇긴 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기정도의 어린 아이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있다고해도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과 함께 있었다.

    루크도 자신이 어린아이로 보이는 것만은 부정하지 않기에 체념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한입크기로 작게 자른 소시지를 이쑤시개에 찍어서 루크에게 건네며 말했다.

     

    “먹고 싶으면 여기 한입 해도 좋아.”

    “…정말인가?”

    “그럼.”

     

    루크는 일단 그것을 받아들고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작은 소시지꼬치와 그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무래도 의심스럽지 않은가.

    갑자기 직원 복장을 입은 사람이 와서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건네준다니.

    공짜일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이걸 먹으면 하나를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거나……. 그런건가?”

     

    루크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바라본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손사래를 쳤다.

     

    “걱정마! 그냥 맛보기니까. 먹고 맘에 안 들면 안 사도 돼!”

    “……음. 그럼 사양않고…….”

     

    루크는 아직 뜨거운 소시지를 후, 후 불며 적당히 식힌 뒤에 조심스럽게 앞니만으로 물어서 빼냈다.

    이빨로 전해지는 뜨거운 감각에 저절로 흐아, 흐아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맛은 정말 좋았다.

     

    “마, 맛있군, 흐아. 좀 뜨겁긴 하지만.”

    “그러니? 하나 더 먹을래?”

    “그, 그래도 되나?”

    “맘대로 먹어도 돼.”

    “저, 정말인가?”

    “그럼, 물론이지.”

     

    “그럼 한 개 더 부탁하네!”

     

    —–

     

    “한 개 더!”

     

    호기롭게 ‘한 개 더!’를 외치는 꼬마에게 잘 익은 소시지를 또 한 조각을 잘라서 건넸다.

     

    벌써 저 꼬마가 먹은 소시지는 한 팩을 넘겼다.

    생각보다 너무 잘 먹는다. 어린아이라 소시지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많이 먹는 꼬마는 본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마냥 불쾌하기만 한 것은 또 아니었다.

    이 앞에서 계속 해맑게 ‘한 개 더!’를 말하며 맛있게 소시지를 먹는 꼬마의 모습은 이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바람잡이였다.

     

    아이가 소시지 한 개를 먹을 때마다 치마 아래로 튀어나온 백금빛의 꼬리가 마치 뱀이 움직이듯이 꼬물거린다. 뜨거운지 꼬치를 후, 후, 열심히 불어대면서도 결국 참지 못하고 아직 뜨거울 때 입에 넣는지 입 안에서 바람을 부는 소리도 낸다.

     

    그 모습을 보던 손님들은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이거 한 팩 주세요.”

     

    라고.

     

    꼬마를 보자마자 이 전략을 생각해낸 자신에게 박수를.

    생김새부터 저렇게 눈에 띄는 아이는 좀처럼 없는데 리액션까지 좋다니, 바람잡이론 더할나위 없지 않은가?

     

    ‘이게 윈윈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녀를 바라보자, 소녀는 입 안에 소시지를 겨우 삼키곤 조금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흠, 슬슬 미안해지는구나. 이제 그만 먹어야겠어.”

    “아냐, 전혀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더 먹을래?”

    “그, 그럼 한 개 더 먹어도 되나?”

    “그럼, 그럼.”

     

    ‘여기 소시지 다 팔릴때까지 계속 먹어도 좋단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식코너 루크는 미리 그려둔 거였는데 카트 미는 루크는 갑자기 그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리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근데 어떻게 저걸 안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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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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