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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세 사람은 잠시 입을 다물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만큼 갑자기 던져진 정보가 주는 충격은 컸다.

         

       검은 마도사와 데볼루트.

       두 존재는 오랫동안 그 악명에 비해 알려진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둘이 서로 연관이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한 가지 추론으로 이어졌다.

         

       “혹시 저주 역병도 검은 마도사가 일으킨 거란 말인가?”

         

       신부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바예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발렌티나 수녀가 새벽에 어비스의 문이 열린 사건에 대해 역학 조사를 했습니다.”

         

       마귀의 출현에는 항상 초자연적인 흔적들이 함께 나타났다.

         

       퇴마사들은 그것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어비스와의 통로가 연결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조사 결과, 대량의 원혼에 의한 비율이 2할, 환경적 요소가 1할, 그리고 마신에 대한 ‘제사’가 6할.”

         

       제사라는 말에 신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인가? 제사라고?”

         

       마신에 대한 제사는 마신과 소통하기 위한 모든 종류의 방법을 뜻했다.

         

       제사를 통해 마도사는 마신으로부터 의뢰나 보상을 받고, 마신과 거래를 하고, 마신에게 부탁을 할 수 있었다.

         

       제사는 성교회에서 선전하는 것과 달리 꼭 피 흘리는 제물을 바치거나 퇴폐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키르쿠스와 소통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사는 ‘공연’이었다. 곡예사, 마술사, 배우들이 구경거리를 보이고 많은 사람의 환호와 열기를 받는 것으로 그들은 마신 키르쿠스에게 제를 올릴 수 있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인스피라라는 초상적인 힘을 부여받곤 했다.

         

       마신이 부여한 힘들은 대부분 제사를 주기적으로 올려야 유지되기에, 마도사들은 자신이 모시는 마신에 따른 각자만의 방식으로 제사를 올렸다.

         

       범죄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마신 신앙이 세상의 탄압을 받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신을 향한 제사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마신과 소통을 하는 작용 자체가 이 세계와 어비스의 통로를 넓힌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성교회가 마신 신앙을 탄압하는 제1 명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온갖 원시 신앙이 판을 쳤던 과거에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서운 마귀들이 지상을 배회했고, 인간들은 미약한 불빛에 의지해 밤을 지내야 했다.

         

       비행선이 하늘을 날고 증기기관차가 땅을 달리는 지금은 도저히 믿기 힘든 우울한 동화 속 이야기들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교회가 그 세를 키우면서부터 많은 토속 신앙이 인간을 위협하는 죄악으로 간주 되어 박멸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평생 마귀 한 번 못 보고 사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들은 보기 드물어졌다.

         

       그런 탄압의 역사 속에서도 다행히 키르쿠스에 대한 제사는 공연을 통해 사람들의 영적인 기운을 고양시키기 때문에, 어비스의 벽을 허무는 작용과 상쇄되는 것으로 판명되어 종교적 엄숙주의 기조 아래에서도 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그러한 광신적인 시대는 예전에 종말을 고했다.

       성교회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과 마도 연구의 발전으로 마신 신앙 탄압은 예전만큼 힘을 얻지 못했다.

         

       마도사들도 이제 제사를 지내면 대낮의 사람 많은 도시에서 조용한 곳을 빌려 지내려 하지,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픽픽 죽어 나가는 밤의 시골에서 지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일부러 마귀를 불러들이려는 계책이 아니고서야…….

         

       “고위 마귀가 출현할 정도로 대규모 제사라…….”

       “뭔가 수상쩍은 인물이 근처에 출현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나보다 이바넨코 경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 걸세. 그가 역병이 터지자마자 이 마을에 와서 모든 치안을 감독했네. 뭔가 소식이 있다면, 그에게 들어왔을 거야. 참, 그러고 보니 이바넨코 경은 어디 갔나? 사신을 퇴치할 때, 함께 있었다고 들었는데…….”

         

       신부의 질문에 바예르는 발렌티나와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고는 말했다.

         

       “근처 마을에 소식을 전하러 갔습니다. 곧 올 겁니다.”

       

       식사를 마친 추적대는 교회를 나왔다.

       두 사람은 포도주를 권하는 신부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들이 막 마을 회관에 다다랐을 무렵, 이바넨코 역시 말을 타고 도착했다.

         

       “서커스단은 어떻게 됐습니까?”

       “해변 대로 쪽에 데려다주고 왔소.”

         

       발렌티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문제없겠습니까? 늦어도 내일이면 근처로 소문이 퍼질 텐데 말입니다.”

       “눈에 띄는 단원들은 마차 안에 들어가거나 우리에 넣고 막을 덮어 씌었소. 그들은 그런 일이 익숙한지 능숙하게 처리하더군. 거기다 내가 준 통행증이 있으니 구릉지 내에서 검문을 받을 일은 없을 거요.”

         

       이번 일로 무려 마을 하나가 몰살당했다.

       사람들을 죽인 건 괴물과 마귀였지만, 밖에서는 저주 역병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봉쇄되었던 곳이니까.

         

       그런데 모두가 죽은 현장에서 괴물서커스단만 살아남았다?

         

       공포에 찬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놈들이 또 역병을 퍼트리기 전에 죽이겠다고 난동을 피울 확률이 높았다.

       그런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영주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설 수 있었다.

         

       세 사람이 그들이 그런 게 아니라고 변호한다고 한들, “그놈들 때문에 마귀가 나타난 거다!”라는 식으로 나올 게 뻔했다.

         

       이곳에 남아있었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부상을 회복하지도 못한 그들을 내쫓듯 보내버렸다.

       마귀를 물리친 영웅들에게 참 못할 대접이었다.

         

       바예르와 발렌티나가 신부에게 원더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지역에 대한 영적 방호는 신부의 의무였다.

       어비스와의 통로가 열린 일에 대해서는 그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사정이야 어쨌든 도적떼가 마을을 휩쓸고 간 마당에 혼자 살아남은 보안관이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마녀 재판 같은 상황을 방치하거나 조장할지 몰랐다.

         

       그래서 괴물서커스 얘기를 숨겼다.

       교회에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 몰살당했고, 종지기는 좀 모자란 사람인 데다가 원더스타인이 폭로당할 당시 자리에 없었던지라, 남자 수도사 분은 죽었다는 식으로 쉽게 속여넘길 수 있었다.

         

       이바넨코는 교회에 올라가기 전에 두 사람이 한 얘기와 합을 맞췄다.

         

       “그런데 이바넨코 경, 역병 초기부터 이 마을의 치안을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만…….”

       “혹시 검은 마도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예전에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바예르는 서커스 그랑프리 테러와 그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자신들이 그를 쫓고 있다는 것도.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소.”

       “저희가 검은 마도사에 대한 그림을 입수했는데, 이 자가 이번 일을 꾸민 범인일지도 모릅니다.”

         

       발렌티나는 품에서 그림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림을 살피던 이바넨코는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건……?”

         

       바예르가 그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가 보인 반응은 분명 뭔가를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기사는 떨리는 눈으로 그림을 살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난생 처음 보는 기괴한 형상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중 세 가지를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등 뒤에서 뻗어 나온 거미 다리와 그 끝에 달린 칼날.

       내뻗은 팔에서 쏘아져 나오는 뼈의 창.

       마지막으로 갈라진 손바닥 틈으로 보이는 이빨과 길게 내민 혀.

         

       그것은 분명 회관에서 자카누바와 싸울 때 원더스타인이 보인 모습이었다.

         

       그는 칼날을 꺼내 놈을 베고, 창을 쏘아 놈을 꿰뚫고, 손으로 놈을 물어뜯었다.

         

       서커스 그랑프리를 습격한 검은 마도사.

       저주 역병을 퍼트린 원흉.

       살덩어리 괴물의 창조자.

       괴물서커스단의 단장.

         

       이바넨코는 머리가 후끈 달아올랐다.

         

       설마…….

         

       “뭔가 아시겠습니까?”

         

       바예르가 창백해진 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

         

       이바넨코는 시선을 돌리며 손을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품은 의심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까?

         

       그는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원더스타인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졌다.

         

       동시에 그가 직접 봤던 원더스타인의 모습도 떠올랐다.

         

       고통을 참으며 병자들을 치료하던 그.

       자신을 공격한 여인도 용서하던 그.

       사람들을 보호하고 나서서 괴물을 물리치던 그.

       마귀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그.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뒹굴던 그.

         

       이바넨코는 살짝 숨을 고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교회에 나타났던 살덩어리 괴물과 닮은 점이 있구려.”

         

       그의 대답에 바예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 괴물이 교회에 나타났을 때, 기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가 검은 마도사의 신체적 특징을 알아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발렌티나가 그림을 다시 품에 갈무리하는 것을 보며 바예르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수상한 사람에 대한 목격담이 들어온 건 없습니까? 검은 마도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것 말입니다.”

         

       이건 공무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바넨코는 사적인 감정은 던져두고 기사로서의 신념과 양심으로 답했다.

         

       “아니. 들어 본 적 없소.”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목격담을 들은 적은 없었으니까.

       그가 직접 봤을 뿐이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이걸로 끝이었다.

       바예르와 발렌티나는 그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떠났다.

         

       둘은 어제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현장을 지났다.

         

       바예르는 남아있는 흔적을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사신은 소름 끼치도록 강력한 마귀였다.

         

       그런 그를 혼자의 힘으로 물리친 원더스타인이라는 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발렌티나의 관찰대로라면 키르쿠스의 힘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은 확실했다.

       다른 마신이라면 몰라도 그의 힘을 사용하는 자라면 어제의 활약도 납득은 갔다.

         

       키르쿠스의 인스피라는 마신이 내리는 축복 중에 가장 예측불허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혼돈.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성질 덕에 사람들의 경계를 덜 살 뿐이었다.

         

       “혹시나 말인데, 그 원더스타인이라는 자가…….”

         

       바예르가 조심스럽게 추측을 내려 했지만, 발렌티나가 날카롭게 쏘아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분이 이곳에 온 것은 저주 역병이 퍼지고 며칠 뒤였습니다!”

       “하지만 수상하지 않나? 하필 데볼루트를 치료하는 자가…….”

       “그분이 이끄는 서커스 단원들을 보시지 말입니다! 그분이 단원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다가 능력을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을 찾은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딱 그가 출현하자마자 사건이 터진 것이…….”

       “저는 바로 옆에서 계속 원더스타인 씨를 봐왔습니다! 그분은 다른 일 없이 사람들의 치료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바보라도 그분이 무슨 짓을 했다면 알아차렸을 겁니다! 원더스타인 씨가 허공에 손가락 몇 번 놀리는 것으로 제사를 치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씩씩대는 발렌티나를 보며 바예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

       “아앗!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그저 사실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일말의 사적인 감정도 없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바예르도 그녀의 말을 수긍하고 넘어갔다.

       하긴 그렇게 조용하게 마신과 소통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바예르도 보름마다 그런 귀찮은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키르쿠스의 신도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요란하고 화려한 게 보통이니.

         

       “그건 그렇고……. 단장님과 그 부단장이라는 여자애가 괜찮은지 걱정입니다.”

         

       발렌티나가 해변 대로 방향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토했다.

         

       부상당한 그들의 몸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

       마도사인 그들에게 함부로 성침을 꽂을 수도 없어서 응급도구를 활용한 치료로 만족해야 했다.

         

       “우린 갈 길이 바쁘다.”

       “알고 있습니다…….”

         

       침울해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바예르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음 장소를 들렀다가 시간이 나면 찾아가 보자. 나도 내 권능에 직격당한 인간이 어떻게 됐는지 신경쓰이니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헤헤, 그것 아십니까? 대장님의 성격은 좀 더 좋게 바뀐 거 같습니다!”

         

       어제까지의 그였다면, 이런 건방진 대답을 하는 부하의 볼을 마구 잡아당기며 윽박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권능을 과도하게 사용한 덕분에 그의 인격도 상당히 반전되었다.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새로 갈아입고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한 것부터 스스로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신의 낫에 권능을 사용할 때만 해도 부작용이 그렇게 안 느껴졌는데…….

       역시 마지막에 너무 급하게 능력을 때려 부은 탓이 컸다.

         

       “어떻게 뒤집어졌을까……?”

         

       바예르는 괴물서커스단이 떠난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어서 다음 목적지로 가자고 방방 뛰는 발렌티나를 쫓아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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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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