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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드디어 시작된 제 1회 해주학파 상반기 워크샵!

       

        가장 먼저 준비된 코스는 트라팔가 호수에서 즐기는 물놀이였다.

        개회식 연설을 해야 할 현자님께서 부재(낮잠)중인 관계로 우리는 곧장 마차를 타고 호수로 이동했다.

        한때 자신들 가문 소유였던 호수를 바라보는 토비의 표정이 더없이 착잡했지만 굳이 목적지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가 그를 놀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와, 관리인 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크리스티나 님.”

        “저야 비나랑 떨어져 있으면 항상 좋죠. 걔 요즘 좀 괜찮아요? 극지에서 나온 뒤로 통 연락이 안 되는데.”

        “만날 때마다 이상한 인사를 하는 것 빼곤 문제 없습니다. 강의도 꼬박꼬박 잘 하고 있고요.”

       

        개추가면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강의 시간에도 쓰고 다니는 비나를 떠올리며 크리스티나와 재회했다.

        니플헤이르 가문이 소유한 트라팔가 호수는 물놀이를 즐기기엔 다소 차가웠다.

        루퍼트가 호수 주변을 거닐고, 프리나가 애써 준비한 수영복을 입지 못해 시무룩해하는 동안 나는 크리스티나와 마주앉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잊었을 지 모르겠지만 이번 워크샵은 어디까지나 사업 차 나온 것.

        그녀는 나의 사업 파트너였다.

       

        “정수기에 쓰일 물을 저희 트라팔가 호수에서 공수하고 싶으시다라…… 괜찮을까요? 운송비가 보통이 아닐 텐데.”

        “메릴랜드 관의 기숙사 물을 마셨더니 피로가 회복되고 마나의 순도가 높아진다는 소문이 돌면 사람들이 더 몰릴 테니 사업성은 있습니다. 그리고 비나 님도 더 이상 정수기 코드를 빼놓지 않으시겠죠.”

        “으응, 클락아. 그거 마시면 키도 커지느냐?”

        “하루 2리터씩 마셔야 한답니다.”

        “리터어…….”

       

        조만간 물로 배가 빵빵한 아녜스를 볼 수 있겠군.

       

        무릇 사업이란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철저히 비즈니스 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판단을 해야 한다.

        내 제안을 들은 크리스티나는 서글서글한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냉철하게 팔짱을 낀 채로 숙고했다.

        사람들은 니플헤이르라면 미티어의 대척점에 있는 원소학파 쯤으로 여기지만 그들의 진정한 수완은 장사에 있다.

        웃음기를 지운 얼음장 같은 표정만 봐도 비나를 제외한 가문의 구성원 전체가 상재(商才)를 타고났음을 알 수 있었다.

       

        “관리인 님이 말씀하신 조건을 받아들이기에는 저희 쪽 이득이 너무 적네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가.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수익 비율을 어디까지 생각하십니까? 원하신다면 정수기를 신형으로 교체하며 창출할 복사…… ‘부가적인 가치’도 공유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가치가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금액 문제가 아니에요. 니플헤이르의 자산은 오직 니플헤이르만의 것. 학회에서 설화수를 공개하려는 비나를 막으려고 저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관리인 님도 보셨으니 알 거라고 믿어요.”

       

        그런가, 크리스티나의 입장은 자신들의 마력이 담긴 트라팔가 호수의 물을 불특정 다수의 마법사들에게 분배하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거절할 거였다면 굳이 여기까지 나를 부르지는 않았으리라.

        즉, 저들은 돈이 아니라 내게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뜻.

       

        예상대로 크리스티나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관리인 님께서 저희 가문의 일원이 되시는 건 어떨까요?”

        “네?”

        “아, 오해하진 마세요. 저는 아직도 비나와의 혼인은 반대하는 입장이라. 단지 옆에서 챙겨주시면 그만큼 돌발행동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제안드리는 거에요.”

        “…….”

       

        나에 대한 비나의 감정은 기껏해야 가지고 싶은데 손에 잘 들어오지 않는 장난감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가문의 일원 취급을 해준다면 이쪽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지.

       

        그렇게 비나의 금쪽행동을 막으려는 크리스티나와 나의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주 3회 데이트 어떠세요? 이틀은 주말을 포함해서요.”

        “주말엔 원탁회에 참석해야 하기에 양일 모두는 힘드네요. 하루 정도라면 제가 오후 시간 동안 비나 님을 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학파와 마찰을 빚거나 가문이 수습해야 하는 사고를 치게 둬서는 안 돼요. 특히 메테오 운운하면서 니플헤이르의 마법을 유출하는 건 절대로요.”

        “맡겨 주십쇼. 이번 워크샵이 끝나면 비원의 층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도장 찍으시면 매일 수업 끝나고 안전하게 자택까지 바래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주말 중 하루 동안 비나 돌보기와 강의 후 이상한 곳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는 에스코트 서비스를 조건으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시간을 투자해 추가적인 지출을 막았으니 나로써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계약서에 서명한 크리스티나는 품속에서 반지를 하나 꺼내었다.

        니플헤이르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푸른 수정이 박혀있었다.

       

        “니플헤이르의 구성원임을 증명하는 마도구이니 여러모로 쓸모가 있으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편하게 쉬다 가세요. 비나는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리고요.”

        “저야말로요.”

       

        트라팔가 호수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우리는 왕성으로 향했다.

        명계의 문 사건 당시 위원회가 열렸던 곳으로 지금은 마치 관광지처럼 개방되어 있었다.

        이런 볼거리 없는 곳이 뭐가 관광지냐 싶겠지만 무릇 명소란 스토리와 사연이 얽혀서 탄생하는 법이었다.

       

        “이곳이 현재 마족전담기구 극채색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 회의실이 유명해진 이유가 단지 그뿐만은 아닌데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이 잇따랐기 때문이죠.”

       

        가이드가 으스스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자 사람들이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뚜벅, 뚜벅.

        층고가 높은 돌바닥을 거니는 그의 발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문앞으로 다가온 가이드는 심드렁하게 서 있는 프리나의 발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리따운 여성분께서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당시 운드라 가문의 소가주였던 빈센트 경이 체포되었습니다. 아마 당시 갤러리를 보고 있던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아, 혹시 주딱을 사칭한 그 사람인가요?”

        “맞습니다. 헌데 이상한 건, 결국 갤러리의 관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이후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는 겁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진 것처럼요.”

        “히익……!”

       

        세상에, 여기서 그런 무서운 사건이 벌어졌었다니.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평소 꽃이 꺾이는 것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로서는 돌바닥에 찍혀 있는 무수한 저항의 흔적들을 도저히 맨눈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조사를 맡았던 정보부가 이 사건을 기밀에 부치자, 진실은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갤러리에서는 주딱을 사칭했다는 죄로 저주를 받았다는 게시글만이 공공연히 나돌곤 했죠. 하지만……!”

       

        쿵!

       

        바람이 불어 문이 닫히고 회의실의 촛불이 모두 꺼졌다.

        가이드의 이야기는 어느덧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의 영혼은 이곳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마치 꽃을 찾아다니는 꿀벌처럼 말이죠.”

        “꺄아아악!!!”

       

       

       

       

        *

       

        “이야, 소름돋는 이야기였네요. 투어 수준이 꽤 높은데요?”

        “그래? 난 별로 재미 없었는데. 거짓말일 게 뻔하잖아 그런 거.”

        “재미로 보는 거죠. 스승님, 다 끝났으니까 손 떼셔도 돼요.”

        “아아아아아안들린다아아아!”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가판대에서 산 와플을 먹으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저녁쯤 되자 제법 한산해진 왕성에는 사진을 찍는 커플 몇 명이 남아 있었다.

        석양이 비치는 유명한 포토존인지 회의실 앞에 있는 돌 의자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던 나는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맞다.”

        “응? 왜?”

        “저희 단체사진 안 찍었어요. 아까 플랫폼에서 내려서 찍으려고 했는데 검문이 들어오는 바람에…….”

       

        가각, 가가각!!

       

        “농담이야 농담, 물론 너도 안 잊고 있었어.”

       

        검집에서 풀려난 살살이가 바닥을 마구 긁어댔다.

        나는 이목이 끌리기 전에 급히 녀석을 다시 허리춤에 매달며 달랬다.

       

        “그러고 보니까 그 마검은 왜 계속 들고 다니는 거야?”

        “다 사연이 있어요. 선배, 저랑 저기 같이 줄 서죠.”

        “뭐? 나, 나는 밖에서 사진 따위는…….”

        “자자, 그러지 말고 두분 가서 찍고 오세요. 저는 다른 분들이랑 호텔로 돌아갈 마차 잡아 놓을게요.”

       

        마가렛의 등쌀에 떠밀려 프리나와 포토존 앞에 선 나는 차례를 기다렸다.

        저 돌 의자는 내가 공역에 왔을 당시, 살살이를 발견했던 보물방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다행히 우리 뒤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서지 않았기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뭐해? 빠, 빨리 안 찍고.”

        “잠시만요 선배. 돌 아래에 뭔가 있는 것 같아서 잠깐 나와 보세요.”

       

        이걸 치우면 갇혀있던 마침내 살살이의 본체를 만나게 되겠지.

        역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메릴린 동상 옆에다 세워주겠다느니, 주기적으로 대장간에도 대려가 주겠다느니 설득을 시도해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정의롭던 선은 무너지고 사악한 마검이 자유를 되찾고야 마는 건가.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무거운 돌을 천천히 밀어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이건…….”

        “그냥 바닥인데? 시멘트 부어놓은 걸 보니 최근에 보수공사를 했었나보네.”

       

        하늘이 무너질 법한 슬픈 소식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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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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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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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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