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5

        

       진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방을 벗어나 다시 어두컴컴한 통로로 들어섰고, 곰팡이와 오물의 냄새가 가득한 벙커의 통로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진성의 발걸음 소리는 저벅거리는 소리가 아닌 찰박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진성이 허리를 숙여야만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낮은 통로에 물이 들어차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자 환풍구로 추측되는 엄청나게 높은 천장 위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폭포에서 물이 쏟아지듯, 벙커에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진 물은 바닥을 잔뜩 메우며 벙커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하려고 했지만, 바닥에 뚫려있는 하수구에 의해 대부분 배출되며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의 영향이 닿는 모든 곳에는 종유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종유석.

       미끈미끈하고, 탁한 빛을 품고 있으며,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것들.

       그리고 그 종유석의 사이사이에는 박쥐가 몸을 웅크린 채 매달려 있었고, 벽면에는 동굴에나 살법한 눈이 퇴화한 벌레들이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진성은 물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걸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이끼의 감촉.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보라.

       종유석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소리.

         

       그는 벽면으로 다가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벌레들을 집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콰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벌레는 조각나며 그의 위장으로 쏟아졌고, 그는 벌레가 목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배에 문양을 그렸다.

         

       그는 마침내 충분히 준비되었음을 깨닫자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삼매진화를 피워 몸에 묻은 물기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다 마른 옷가지를 챙겨 갈아입고는 벙커 밖으로 나갔다.

         

       벙커의 밖으로 나가자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빛을 내는 호수가 보였고, 그 중간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물범도 보았다.

       물범은 너 같은 생명체는 처음 본다는 듯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성은 그 물범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허공을 쥐어 호수 속에서 헤엄치던 커다란 물고기 하나를 잡았다. 그리곤 그것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물범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물범은 첨벙 뛰어오르며 물고기를 낚아챘다.

         

       진성은 물범이 물고기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몸을 돌렸다. 그리곤 축지를 연달아 사용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가 공항으로 이동하자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백인, 황인, 흑인.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담은 옷을 입고, 다른 행동을 하며, 다른 표정을 하고 공항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온갖 개성들이 부딪치고 어우러지며 그들을 개인이 아닌 군체처럼 느끼게 했으며, 사람을 살펴보려 하려다가도 그들의 개성에 눈이 빼앗겨 현혹당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개성 속에서도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으니.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나이 차이가 있는 자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똑 닮은 얼굴의 쌍둥이 자매.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두 명의 성인 여성.

         

       존재감을 한껏 뽐내고 있는 미인들이었다.

         

       “아-린의 집이 좀 특이하다고요?”

       “응. 뭐, 그 뭐냐. 우리 집 꼰대가 그…. 결혼을 여러 번 했거든? 그래서 엄마가 4명이 있어….”

       “아, 그러면 부모님이 5명이나 되는 거네요?”

       “응? 어, 응.”

       “우와. 부모님이 많아서 좋겠네요~”

       “…응?”

         

       이아린은 아나스타시아에게 복잡한 가정 사정을 설명하다가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너무 천진난만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말을 듣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고.

         

       “큼. 배가 고프지 않니? 뭐라도 먹겠느냐?”

       “…괘, 괜찮답니다….”

         

       그 옆에는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어색함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오딜리아와 엘라가 있었다.

         

       “세린. 당신은 복잡한 가정사를 가졌음에도 이렇게 번듯하게 자란 거로군요. 참으로 심성이 고와요.”

       “아, 아니….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은데….”

       “식물이 예쁘게 자라기 위해서는 지지대가 필요한 법이에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햇빛과 물이 필요하고, 뿌리를 썩게 하지 않을 정도의. 하지만 충분한 영양분이 있어야 하죠. 당신이 이렇게 번듯하게 자란 것은 당신과 당신 주변의 환경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랍니다.”

       “그….”

       “필시 세린의 부모님은 자애롭고, 때로는 엄하고. 하지만 분명히 자식을 사랑하는 분일 거예요. 게다가 세린을 이렇게 예쁘게 키워낸 것만 봐도 그분들이 얼마나 자식 교육을 잘 시킨 것인지 알 수 있겠네요. 이렇게 건전하고, 도덕적이고, 착하고, 예쁜 아이라니. 그래요. 가정사가 복잡하다고 한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겠어요? 사람이 좋고 집의 분위기가 좋은데 거기에 뭐가 더 필요할까요?”

       “과, 과찬…이에요.”

       “아니랍니다. 게다가 계약자이기까지 하다니. 세린은 정말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죠? 아, 인복. 인복을 타고난 것 같네요. 본래 사람은 사람에게 고통받고, 사람에게 치유를 받는 존재랍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세린은 충분히 축복받은 삶을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앞쪽에선 아그네스가 이세린을 위로가 담긴 좋은 말로 후려치고 있었다.

       이세린은 명백한 호의가 담긴 아그네스의 말에 몸 둘 바를 모르며 빠져나가고 싶어 했지만, 그녀의 손등을 덮고 있는 아그네스의 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슬쩍슬쩍 눈을 돌리며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가 이세린은 악마가 무언가를 속삭인 것인지 고개를 홱 돌렸다.

         

       “오, 오빠.”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진성은 사뿐사뿐 그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비행기 시간이 다 되었다고 설명을 하곤 그들을 이끌고 걸어갔다.

         

       그 덕분에 엘라는 숨이 막힐 듯한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아나스타시아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아린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동생에게 착 달라붙을 수 있었으며, 이세린은 자신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오딜리아의 옆에 착 달라붙어 무관심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는.

       한국.

         

         

        * * *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인신공양을 하는 주술사의 습격을 받는다는 커다란 사건이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실을 이세린과 이아린의 부모가 모를 리가 없다. 그것도 광양 그룹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이끄는 회장인 이양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의 손길은 러시아에도 닿아있었으며, 재빠르지는 않았지만 알아야 하는 정보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이세린과 이아린에게 전화를 걸어 너희 몸은 괜찮냐, 무슨 문제가 없냐, 일이 어떻게 된 거냐, 진성의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지 않았냐, 주술에는 대가가 필요한데 너희를 구하느라 진성의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 너희 당장 돌아와라 등의 말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세린과 이아린은 한국에 잠깐 돌아가서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고, 기왕 가는 거 같이 사건에 휘말렸던 엘라와 아나스타시아, 그리고 보호자인 아그네스와 오딜리아에게 한국에 같이 가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친구이기도 했고, 같이 사건에 휘말렸던 동료이기도 했으며, 그들도 한국에서 관광하며 힐링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여섯 명의 조합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공항에서처럼 어색한 조합은 있기는 했으나, 어색하기만 했을 뿐이니 익숙해지기만 하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을 것이고, 도리어 여행이라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을 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으니 어쩌면 이 역시 여행의 참맛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진성이 끼자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흠~”

         

       진성의 비행기 옆 좌석에 당첨된 아나스타시아는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말 없이 진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으며.

         

       “큼, 크흠.”

         

       이양훈이 보낸 리무진에서는 진성의 옆에 자리한 오딜리아가 연신 진성의 눈치를 보며 몸을 꼼지락댔다. 그리고 진성의 맞은편에 있는 엘라는 오딜리아의 기묘한 태도에 수상하다는 시선을 보내면서도, 그 옆에 있는 진성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지 입술을 달싹거렸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이는 자신에게 친절했던 진성의 태도를 떠올리며 말을 붙일까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며칠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에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리는 것이 반복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렇다.

       얼마 전의 진성과 달리 지금의 진성은 왠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만지면 차가울 것 같은 얼음 같은 느낌도 있었고, 가까이하면 데일 것 같은 뜨거운 불꽃의 느낌도 있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에 펄펄 끓어오르는 물을 보는 것도 같았고, 제 몸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몸을 비틀며 제 몸을 이곳저곳으로 휘두르는 불꽃을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는 맹수를 품은 듯.

       혹은 서로가 몸을 합쳐 형태를 바꾸는 기괴한 것을 품은 듯.

         

       “흐음~”

         

       그렇기에 아나스타시아는 진성을 관찰하듯 빤히 쳐다보았고.

         

       “큼. 크흠.”

         

       원래부터 진성을 어려워하던 오딜리아는 계속 그의 눈치만 보고 있었으며.

         

       “그…. 응? 상징이 계속 뒤바뀌고 있다고…? 안정이 덜 되었다고…?”

         

       이세린은 리무진의 구석에서 악마가 설명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아린은 아그네스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고 있었고, 아그네스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