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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먹고, 마시고, 그 와중에 옆에 앉은 여인 곁눈질 하느라 바쁜 장삼과 구왕수를 내버려둔 채, 백우진은 금양루주의 뒤를 따라 칠 층에 마련된 또 다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

         

       작고 아담한 크기의,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방이었다.

         

       먹고 마시는 분위기보다 가볍게 차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자신이 초대에 응할 줄 알았다는 듯, 작은 탁자 위에는 뜨거운 김이 솟아나는 차와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리 앉으셔요.”

         

       마련된 자리 중 상석으로 그를 안내하는 금양루주.

         

       금양루주를 부릴 수 있는 이라면 황금상단 내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 텐데, 자신을 상석에 앉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갑인가 보네.’

         

       그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뜻.

         

       쪼르르륵

         

       작은 찻잔에 진하게 우러난 찻물이 차오른다.

         

       차를 가까이한 적이 없는 그의 코에도 지금의 차향은 각별하게 느껴졌다.

         

       “군산은침이랍니다.”

         

       무협지에서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차.

         

       적당한 온기를 머금은 찻물을 들이켜자 부드러운 단맛과 더불어 상쾌함이 가득 퍼진다.

         

       빈 찻잔에 금양루주가 두 번째 찻물을 들이부을 즈음.

         

       문밖으로부터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듯, 작위적인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오셨네요.”

         

       주전자를 내려놓은 금양루주가 문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들어서는 이는 배불뚝이 중년 사내였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들어선 그는 백우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황금상단의 사 행수, 황철운이오. 근래 명성이 자자한 옥면신룡을 뵈어 영광이외다.”

         

       황금상단을 이끌어가는 여덟 명의 행수 중 한 사람이라.

         

       예상을 뛰어넘는 거물의 등장에 백우진 또한 정중한 태도로 포권을 취하며 제 소개를 했다.

         

       “백우진입니다.”

         

       가벼운 소개를 마친 두 사람은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가운데 앉은 금양루주가 따라주는 찻물을 한잔 들이키고 난 뒤, 백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실은 백 소협에게 거래를 제안하고자 이리 실례를 무릅쓰게 되었소.”

       “제게는 황금상단과 거래할 만한 물건이 없습니다만.”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자, 황철운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허허, 최근 좋은 물건을 손에 넣은 것으로 알고 있소만.”

       “…….”

         

       백우진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그가 최근 얻은 물건은 단 하나.

         

       장보도 뿐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에 대한 정보가 풀릴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이토록 빨리 알려지는 건 예상 밖인데.’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에게 보인 것은 제 얼굴뿐이었다.

         

       흔치 않은 외모라곤 하나, 얼굴 하나만으로 이를 찾으려면 사나흘은 걸리리라 예상했건만.

         

       ‘설마 화산파가…?’

         

       그들에게 향하는 의심암귀가 머리를 불쑥 들이밀었다.

         

       자신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그들이 전부였기에 타당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좋지 않은 끝맺음이었다곤 하나 그들은 정파의 대들보요, 섬서백가와는 든든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한들, 쉽게 떠벌리고 다녔다간 매화검수라 해도 큰 처벌을 피하지 못할 터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백우진이 낮은 어조로 묻자, 황철운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후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소. 지난밤 백 소협이 장보도를 탈취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소문이었소.”

         

       장보도를 손에 넣은 뒤 백하현으로 돌아왔을 때가 오전 무렵이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보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인데.

         

       ‘이대로 싸움을 끝낼 순 없다, 이건가.’

         

       범인은 뻔하다.

         

       쟁탈전이 더욱 심화되어 더 많은 피가 섬서에 뿌려지기를 원하는 마교가 퍼뜨렸을 테지.

         

       아무래도 자신의 인지를 뛰어넘는 곳에서 이쪽을 감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백우진을 향해, 황철운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백 소협, 나는 그 장보도를 사고 싶소.”

         

       중원 제일의 상단.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해오고 있는 그들에게도 모자란 것은 있었으니.

         

       바로 무공이다.

         

       “우리 황금상단은 명실상부 중원 제일의 상단이오.”

       “그렇지요.”

         

       그들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부를 이룩한 일 등 상단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적도 많소.”

         

       그들을 제치고 일 등이 되고자 하는 상단은 많고, 그들이 평생토록 쌓아둔 금을 노리는 자들 또한 수두룩했다.

         

       오직 황금상단의 상행만 골라서 터는 담당 산적이 생겨났을 정도.

         

       “우리는 힘이 필요하오. 적들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한 힘이 말이오.”

         

       황철운이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은 약하지 않다.

         

       풍족하게 쌓은 돈을 이용하여 외부에서 고수를 초빙하고, 온갖 무공을 사들여 합치고, 개량한 끝에 웬만한 문파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황금상단을 노리는 적들을 기준으로 했을 땐 여전히 모자랐다.

         

       “돈을 풀어서 고수를 초빙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더욱 강해지고자 마음먹었소.”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고수의 한계는 명확하다.

         

       막말로 화경쯤 되는 고수를 돈으로 초빙하려 하면 얼마가 들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들이 돈에 의해 움직여줄까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

         

       이를 깨달은 그들은 언젠가부터 고수를 찾기보다 무공을 찾기 시작했다.

         

       스스로 고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허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무림 세력이 황금상단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금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탑을 세워둔 이들이 고강한 무력까지 손에 넣는다면 무림의 판도가 뒤흔들릴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렇듯 여러 세력이 견제하는 와중에 얻을 수 있는 거라곤 자잘한 무공들 뿐.

         

       더 강한 무공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 나타난 혈수마녀의 장보도를 보고, 그들은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으리라.

         

       “값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치르겠소. 그러니 부디 장보도를 팔아주지 않겠소?”

         

       황금상단의 사 행수.

         

       상단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높은 지위에 앉은 인물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절박한 심정은 잘 알았다.

         

       여린 마음의 소유자인 백우진 또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미안하지만, 장보도는 못 팝니다.”

         

       장보도는 그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저한테도 사정이 좀 있어서 말입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날렸단 생각 때문일까.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해졌다.

         

       백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다시 뵙지요.”

         

       장보도에 적힌 위치를 찾아가 무사히 무공을 손에 넣었을 때.

         

       섬서에 들이닥친 혼란이 완전히 해소되었을 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장보도 자체는 팔 수 없지만, 그곳에서 무공을 찾는다면 그것은 팔 수도 있다는 뜻.

         

       절망에 잠식되어 있던 표정이 재차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정말 고맙소.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라오.”

         

       되찾은 일말의 희망이 부디 빛이기를 바라며, 그는 멀어져가는 백우진을 보며 바라고 또 바랐다.

         

         

       * * *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백우진은 홀로 술잔을 들이켜며 조금 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상단을 제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느껴지는 말들.

         

       겉으로 보기에 그의 말들은 하나 같이 진실로 느껴졌다.

         

       하지만.

         

       ‘황금상단….’

         

       사실 백우진은 황금상단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미연이 당선영을 시집보내기 위해 마련해둔 혼처가 바로 황금상단을 이끌어가는 금씨 가문이었다.

         

       하마터면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아 갈 뻔한 연적이 아닌가.

         

       ‘이런 유치한 이유가 전부라면 좋겠지만.’

         

       단순히 돈이 많은 가문이기에 선택한 가문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사태를 해결한 이후 마주한 당연신은 그리 말했다.

         

       어쩌면 그들에게도 마교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증거로 내민 것이 바로 그녀가 실험을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구매한 내역이었다.

         

       분명히 다른 상단을 이용하면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것들도 굳이 웃돈을 줘가며 황금상단의 것을 고집했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신은 황금상단 내에 마교도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당시에는 무엇이든 덜미를 잡아 혼사를 막기 위함이었으나, 모두가 밝혀진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황금상단에도 마교도가 숨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냐고.

         

       ‘가능성은 충분히….’

         

       점점 더 생각이 깊어져갈 무렵.

         

       “야아, 우진아! 거기서 자꾸 혼자 있지 말고 한 잔 하자아!”

         

       술에 취한 구왕수가 어깨동무를 하더니 술냄새 풀풀 풍기는 입으로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가능성은….’

         

       “야아! 너 술 좋아하잖아아! 어? 너 막, 맨날 혼자서 호리병에 술 담아가지고 말이야! 혼자 막 마시고 말이야!”

         

       ‘그러니까 가능성이….’

         

       “그런 녀석이 여기까지 와서 그러는 건 아뉘지이! 무려 금양루 칠 층이라고?!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 곳이라고?!”

         

       가능성도, 생각도 뚝 끊겼다.

         

       저거 그냥 죽일까.

         

       백우진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에휴.”

         

       알딸딸한 녀석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금세 화가 식어버렸다.

         

       구왕수에겐 묘한 매력이 있다.

         

       부려 먹고 싶고, 괴롭히고 싶고, 못살게 굴고 싶게 만드는 느낌이랄까.

         

       “그래. 여기까지 와서 생각은 무슨.”

         

       애초에 오늘은 놀러 나온 날이 아니었던가.

       

       백우진은 상념을 훌훌 털어냈다. 그리고 한층 홀가분해진 미소와 함께 잔을 들었다.

         

       “마시자, 광수야.”

       “조오취이!”

         

       죽을 때까지.

         

         

       * * *

         

         

       술고래나 다름없는 백우진을 깨운 구왕수는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구우우우우우웨에에에에에엑!”

         

       거하게 뿜어내는 구왕수를 황급히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여인들.

         

       백우진은 마지막 한 잔을 들이켜며 좌측에 앉은 장삼을 보았다.

         

       시중들던 여인들도 어느새 뻗어 잠이 들었는데, 그만큼은 멀쩡한 듯 보였다.

         

       “제법 잘 마시네.”

       “후후, 없어서 못 마실 뿐이었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긴 했지만, 정신은 멀쩡하다는 듯 웃는 장삼.

         

       “최근 고민이 많아진 것 같소.”

         

       그가 대뜸 말했다.

         

       “어…, 제법 있기야 하지, 음.”

         

       시간이 갈수록 해결되기는커녕 쌓여가는 고민들.

         

       당장 신예화와 유화연에 대한 문제도 그랬고, 조금 전에도 황금상단에 대한 의문도 쌓였다.

         

       곧 있으면 닥쳐올 청룡단과 흑풍대를 상대하여 적절한 발언권도 얻어야 하는 등.

         

       “그중 신 소저와 유 소저가 가장 골칫거리 아니오?”

       “…….”

         

       그는 알고 있다.

         

       백우진의 육신과 혼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안다.

         

       그가 유화연과 신예화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고 밀어내야만 하는 진짜 이유를.

         

       “진실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요?”

         

       그의 물음에 백우진이 쓰게 웃었다.

         

       “믿겠냐.”

       “하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장삼.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영혼을 볼 수 있는 장삼, 자신과는 달리 다른 이들은 영혼을 볼 수 없으니.

         

       그는 평소와는 다른, 더없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백우진에게 말했다.

         

       “그럼 조장이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어떻소.”

       “누구.”

         

       본인이 직접 얘기해도 믿지 않을 상황을 다른 누군가가 얘기한들 무에 달라진단 말인가.

         

       그가 짜증 섞인 물음을 던지자, 장삼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술잔을 털어 넣었다.

         

       입가에 흐르는 한 줄기 술을 소매로 닦아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몸의 진짜 주인 말이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근에 바쁜 일들이 연달아 쏟아지는 바람에 앉아서 진득하게 집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ㅠ…

    또 하필 이번편에 이후 에피소드에 중요하게 다뤄질 황금상단과 장삼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내느라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연재 이후에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수정이 더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재에 차질을 빚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좀 더 평소에 준비를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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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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